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2) /빤냐와로 스님

관리자
2021-04-21
조회수 184

작성일 : 14-09-28 13:43 


3.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분별법


■판단 착오가 불행을 부른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선우와 나쁜 친구를 구별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판단 착오로 악인을 선우라고 생각해 버리면, 우리의 인생 그 자체가 파멸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우·나쁜 친구의 판단은 결코 간단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해탈에 이르는 일도 선우의 지도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한 선우를 만난 적이 없다」고 수행을 뒷전으로 한다고 해도, 결코 일순간도 뒷전에 둘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이 세상, 인간의 사회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은 행복하고 밝게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날의 생활 속에서도 올바른 선우와 나쁜 친구를 구별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판단 착오를 범해 버립니다. 그래서 그만큼 고생하지 않아도, 고민하지 않아도 좋은 인생인데, 필요이상으로 괴로워하거나, 고민하거나하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나쁜 친구는 지갑에 구멍을 뚫는다■

노력하여 모은 재산을 구멍이 뚫린 물통과 같이 쓸데없이 새어 사라져 버리는 원인의 한 가지는 나쁜 친구와 어울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당시의 사회에서 볼 수 있던 나쁜 친구들을 예로 들어 친절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도박꾼(dhuttā), 방종자(soṇḍā:이성·음식·술 등 무엇에라도 쉽게 빠져 버리는 심약한 성격 자), 술꾼(pipāsā : <한잔하고 싶은> 갈증, 갈망이 많은 자), 사기꾼(nekatikā :상대가 눈치 채지 않게 교묘하게 속이는 자), 기만자(vañcanikā:어긋나게 허위로 속이는 자), 폭력자(sāhasikā)라고 하는 6종류의 나쁜 인간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자신의 재산은 구멍 뚫린 항아리로부터 물이 새듯이 사라져 버립니다.」


나쁜 친구를 구별하여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정도의 설명으로는 부족하다고 부처님은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누구와 사이좋게 지낼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진지하게 임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한층 더 자세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친구처럼 보여도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오히려 나쁜 친구라고 봐야 할 사람들이 4 종류가 있습니다.

상대에게 악의를 갖고 있는데도 친절한척 가면을 써서 상대를 불행에 빠뜨리는 사람들인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입니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에 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전에 말한 6종류의 나쁜 친구는 선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난폭한 사람이면 곧바로 알 수 있으니까 관계를 끊는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제일 질이 나쁜 것은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입니다. 지금부터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4 종류의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을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3-1. 네 종류의 Mittapaṭirūpaka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


■①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Aññadatthuhara (안냐닷투하라)■

「재가의 젊은이여!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의 첫 번째는 「눈앞의 이익을 탐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는 다음의 4가지 특징으로부터 알아야 한다.

첫 번째의 특징은 aññadatthuharo hoti(어떤 것이든 얻어서 돌아간다. 단지 남의 것을 얻을 뿐이다)

두 번째는 appenabahumicchati(조금주고 바라는 것은 많다)

세 번째는 bhayassakiccaṃkaroti(자신에게 위험이 생기면 비굴한 노예와 같이 상대에게 능글맞게 친하게 지낸다)

네 번째는 sevati atthakāraṇā(자신에게 무엇인가 이익이 있을 때에만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이 4가지의 특징으로부터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나쁜 친구라고 구별하여 판단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의 특징인 「안냐닷투하라」의 의미인데, aññad atthu는 「어찌되었던, 반드시」,   hara 는 「가지고 돌아 간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남의 것을 얻을 뿐인 사람,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라고 의역할 수 있습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매우 칭찬해 주지만, 이 칭찬하는 방법이 조금 다릅니다. 「나도 갖고 싶다, 내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어서 유감스럽다, 부럽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칭찬합니다. 듣고 있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그것을 주지 않으면 기분 나쁜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버립니다. 「이 사람이 이것을 받으면 몹시 기쁠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해서, 그것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준 사람도 별로 손해 본 기분은 들지 않지만 횟수가 거듭되면 상당한 손해가 됩니다. 오래도록 미량의 독을 맛있는 음식에 섞어 천천히 죽이는 것과 같은 사람입니다. 손해 보는 측은 「상대는 친구니까」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친구에게 친절하게 하는 사람의 훌륭한 감정을 악용해서 희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두 번째의 특징인 「조금주고 바라는 것은 많다」라고 것은 알기 쉬운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나쁜 친구라고 자는 쉽게 정체가 발각될 만큼 얼간이가 아닙니다.

나쁜 친구를 간단하게 간파할 수가 있다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이 상식적인 기브 앤 테이크의 인간관계를 능숙하게 연기합니다. 친구관계의 기브 앤 테이크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집에서 응급환자가 생겼다고 합시다. 자신에게는 돌볼 아이가 있는데, 철야로 간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친구가 와서, 「너는 간병하는데 신경 쓰라. 아이는 우리 집에 데려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이고, 놀아도 주고, 목욕도 시켜서 재울께. 내일 학교에 잘 보내 줄 테니 걱정 말고 나에게 맡겨라」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아이 한사람을 돌봐 주는 것이 그 친구에게 있어서는 아무 일도 아닌 오히려 즐거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제안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일입니다. 「하루 아이를 돌보면 얼마 정도의 답례를 하면 좋은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피차일반인 것입니다.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이 도와주면 좋습니다. 도와주는 측에서는 별일 아니지만 도움받는 측에서는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 돕는 올바른 인간관계는 이러한 것입니다. 친구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할 때는 상대에게 있어서 부담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이 법칙은 없습니다. 주는 경우도 받는 측에게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을 줍니다. 처치 곤란한 것 등을 억지로 줍니다. 혹은 정말로 시시한 것에 불필요한 부가가치를 붙입니다. 

예를 들어 「이 무거운 것을 강원도에서 직접 내가 캐서 보따리에 넣어 가져 왔다」라고 말하며 1킬로 정도의 고구마를 줍니다. 받는 측은 거절하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필요 없는 고구마를 받아야 하는 상태가 됩니다. 거기에서 문제는 끝나지 않습니다. 상대는 기브 앤 테이크의 감정에 편승 해서 상당한 답례를 요구합니다. 


세 번째의 특징은 「자신에게 걱정거리가 생기거나 위험을 당하면 비굴하게 노예와 같이 뭐든지 해 준다.」 그러나 상대의 힘으로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했을 때에는 노예는커녕 연락마저도 없습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만 얼굴을 내미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는 즐거운 일인데 이러한 사람과 어울리는 경우는 언제나 도와주는 것뿐으로 손해만 볼 뿐,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네 번째의 특징은 알기 쉽습니다. 자신의 용무가 있을 때, 자신에게 이익이 있을 때만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보통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닙니다. 내 쪽에서 용무가 있을 경우에는 변명을 하며 잘 도망칩니다. 만나주지 않습니다.


이 4가지의 특징으로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라고 하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선우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나쁜 친구」라고 하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의 첫 번째는 언제라도 자신의 형편 밖에 생각하지 않는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②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Vacīparama(와찌-빠라마)■

 Vacī는 「말」, parama는 「최상의」. vacīparama는「언설이 뛰어난 자, 최상의 말을 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즉, 말만 번지러하게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입만 살아있어 능숙하게 다 할 듯이 말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는 「수다쟁이」라고 명명해 둡시다.


이런 자들은 다음의 4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첫 번째의 특징은 atītena paṭisantharati(과거 자신의 공로에 대한 말로 대응한다)

두 번째의 특징은 anāgatena paṭisantharati(장래 자신의 역할에 대한 말로 대응한다)

세 번째의 특징은 niratthakena saṅgaṇhāti(그냥 무의미한 말(빈말, 공허한 선의)로 대응한다)

네 번째의 특징은 paccuppannesu kiccesu byasanaṁ dasseti(도와주고 해야 할 일이 닥치면, 형편이 나쁘다고 변명한다)


이것들을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알기 쉽게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특징을 예로 들면,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친구로부터 빌리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지난달에 부탁했다면 그 두 배도 빌려 줄 수 있었는데 유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지난주라면 좋았는데, 어제라면 좋았는데」등 무언가 과거의 일을 말합니다. 빌리려고 한 친구는 자신의 부탁을 딱 거절당했다고 단정 짓지 못합니다. 정말로 좋은 친구라고 착각하며 맨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다음 달이라면, 내년이라면」이라고 장래의 일을 말하며, 친구를 돕지 않고 도망칩니다.


세 번째의 무의미한 말로 대응하는 예를 들겠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겨 「내가 기르는 개를 잠시 맡아주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합시다.

친구라면 「좋아」라고 기분 좋게 돌봐 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쁜 친구는 무의미한 말로 「친절」하게만 대응합니다. 「개라는 것은 주인에게 큰 변화가 생겨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정신적으로 곤경에 빠져 나중에 통제하기 힘들게 된다. 그것은 잘 알지요? 그래서 개가 우울증에 빠지면 주인을 신뢰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다른 사람이 먹이를 주면 전혀 먹지 않는 개도 있다. 그래도 나는 책임 못 진다」라고 친절을 가장한 공허한 말을 합니다.

친구는 「친절하게 좋은 충고를 해 주었다」라고 착각하며 돌아갑니다. 결과적으로는 개를 맡아 달라고 두 번 다시 부탁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친구다」라는 전도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네 번째의 특징은 이와 같이 이해합시다.

여름휴가에 친구들이 모여 바비큐 요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곳에서는 모두 협력해서 자신이 맡은 바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중에는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양파를 벗겨 주세요.」라고 말하면 「나는 양파를 까면 눈물이 나오는 알레르기 반응이 있기 때문에 집에서도 다른 사람이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구마 다듬는 것을 부탁하면 「당신은 프로같이 재빠르고 능숙한데, 내가 하면 하루 종일 걸릴지도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모두가 도와서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그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주변이 좋아서 그가 일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않게 합니다. 모두들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이 중간에 있으면서 재미있는 말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라는 착각으로 끝납니다.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은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 」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어울려도 그들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친구다」라는 기분을 잘 유지시켜 주므로, 이쪽에서는 친구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을 뭐든지 해 주는 처지가 됩니다. 서로 돕는 친구는 아니라, 일방적으로 도와 줄 뿐인 사람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③ 아첨하는 사람:Anuppiyabhāṇī (아눕삐야바-니-)■

 Piya는 「마음에 드는, 기뻐하는」이라는 의미이고, anu는 「~에 따라서」라는 의미입니다. Bhāṇī는 「말하는 사람」입니다. 즉, Anuppiyabhāṇī가 되면 「상대의 마음에 들도록 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은〈입을 맞추는〉성격입니다. 언제라도 그 사람에 맞추어, 반대하는 일 없이 뭐든지 「네, 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잘못 알면 친절한 사람같이 들리겠지만, 사실은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입니다. 그런 자는 「아첨꾼」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아첨하는 사람」이란 나쁜 친구를 알기 위한 특징이 4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의 특징은 pāpakaṁpissa anujānāti(악행에도 찬성한다)

두 번째의 특징은 kalyāṇaṁpissa anujānāti(선행에도 찬성한다)

세 번째의 특징은 sammukhāssa vaṇṇaṁ bhāsati(눈앞에서는 칭찬하며 말한다)

네 번째의 특징은 parammukhāssa avaṇṇaṁ bhāsati(뒤돌아서는 비난하며 말한다)


이것들을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나쁜 일,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제 회사 돈을 횡령하지 않으면 월급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하면, 이 사람은 주위를 엿보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찬성한다. 「들키지 않으면 아무 일 없을 거다. 회사도 우리들을 실컷 일하게 해 돈을 벌고 있는데, 상여금도 새 발의 피같이 준다. 그 정도의 돈은 회사에 어떤 손해도 없다」라고 말하며 찬성하고 아군이 됩니다.

다음은 좋은 일, 예를 들어 「이번 일요일에 자원봉사로 공원을 청소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혹은 양로원에 도와주러 간다.」라고 좋은 일을 말했다고 하면, 그것도 기분 좋게 찬성한다.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아무쪼록 노력해라」라고 응원합니다. 이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특징입니다. 이와 같이 선이든지 악이든지, 무분별하게 양손을 들어 찬성한다고 하는, 상대에게 영합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성향의 사람은 친구와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만은 그 친구를 좋게 칭찬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없는 곳에서는 욕을 하거나 비판하거나 합니다. 이것은 세 번째와 네 번째의 특징입니다. 친구가 좋은 행위를 해도 뒤돌아서는 「내가 열심히 도와주고 응원해주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나쁜 일의 경우는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쁜 짓을 한다. 주의를 줘도 들어 주지 않는다. 그러다 잘못되면 우리들까지 피해를 준다.」등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네, 네」라고 아첨하며 입을 맞추어 주어도, 결국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정치가들도 보좌관 등을 「아첨하는 사람」을 선택하면 부패 정치가 되어 정치 생명도 끊어지게 되어 버립니다. 그 때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나쁜 행위까지도 공공연히 증언합니다. 「아첨하는 사람」에게 잡아 홀리면, 어떤 훌륭한 사람이라도 불행에 빠집니다.


친구라면, 무슨 일이 있으면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고 실제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첨하는 사람」도 친구에게 진지하게 가르쳐 주고 도와준다는 얼굴을 하며 교묘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남김없이 단순한 「네, 네」라는 결론으로 끝나서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만나고 있을 때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무엇을 해도 칭찬하는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주위에도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나쁜 친구에게 감쪽같이 속습니다. 나쁜 친구인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합니다. 뒤돌아서 욕을 하는 사람이니까 신뢰성은 제로이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사람을 신뢰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어집니다.「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자신의 아군이다」라는 착각으로부터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입을 모아 찬성하고 응원하지만, 실제로 하게 되면 아무것도 해 주지 않습니다. 나쁜 일의 경우는 협력했다면 자신의 손도 더러워지기 때문에 혼자만 조심합니다. 좋은 일의 경우도 협력하지 않고 뒤돌아서서 「내가 말해주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덕으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대체로 꼬드기고, 아첨하고, 칭찬받는 것에 약합니다. 칭찬해 주자마자 본 궤도에 오릅니다. 칭찬한 사람을 좋아하고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 주고 싶어집니다. 이 약점을 갖고 있는 한은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안심하고 살 수 없습니다.

칭찬하는 사람은 칭찬하는 것만으로 끝나지만, 그 사람을 친구로 둔 사람은 자신이 모든 일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첨하는 사람」도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만 손해 볼 뿐입니다. 손해뿐 아니라, 인생이 완전하게 파괴되어 버릴 수도 충분히 있습니다.


■④ 지옥으로 불러들이는 사람:Apāyasahāya(아빠-야사하-야)■

 Apāya는 「지옥」, sahāya는 「동료」입니다. 고통스런 세계로 떨어트리는 사람,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쁜 친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도 4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의 특징은 surāmeraya majjappamādaṭṭhānānuyoge sahāyo hoti(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이나 약물들을 같이 하기 위해 동료가 된다)

두 번째의 특징은 vikāla visikhā cariyānuyoge sahāyo hoti(외출해선 안 되는 시간에 밤놀이를 위해서 동료가 된다)

세 번째의 특징은 samajjābhicaraṇe sahāyo hoti(음악·춤·축제 등에 빠지기 위해서 동료가 된다)

네 번째의 특징은 jūtappamādaṭṭhānānuyoge sahāyo hoti(방일의 원인이 되는 도박에 빠지기 위해서 동료가 된다)


나쁜 일을 하는 동료는 만들기 쉽습니다. 타락하는 길이면 친구는 많이 있습니다. 이 4개의 항목을 읽은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술친구라는 것은 술을 마실 때에만 어울려 주는 사람입니다. 다른 일이 있을 때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다. 「오늘 밤 함께 한 잔할까?」라고 권하면 「네, 만납시다!」라고 기꺼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가족문제의 상담이나 회사일의 상담 등에는 응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하고는 관계없다. 그런 일은 모른다」라는 태도로 도망쳐 버립니다.


우리는 「술 정도는 괜찮다. 왜 나쁘냐?」라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술은 사람을 빠지게 한다.」라는 것도 또한 사실인 것입니다. 「한 방울의 술도 마셔선 안 된다」라는 것은 불교도의 계율입니다. 술을 금지한 것은 인류에게 술이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술은 사람을 의존시키는 것입니다. 머리를 혼란시키고, 뇌세포에 악영향을 줍니다. 사람이 흉악한 범죄 등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경우는 술의 힘을 빌립니다. 평상시는 점잖은 사람인데 술에 취하면 죄를 짓는 일도 있습니다.

밤놀이도, 도박도 의존증을 일으킵니다. 음악 공연·영화·춤·축제등도 적당함을 모르면 위험합니다. 그러한 즐길 거리는 얼마든지 있으므로 의존증에 걸립니다.


나쁜 것에는 아주 간단하게 동반할 수 있습니다. 나쁜 친구들의 경우 동료의식이 단단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천상으로의 안내인이 아니라, 지옥으로 불러들이는 나쁜 친구입니다. 절대로 피해야 할 인간인 것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므로, 나쁜 친구인줄 알아차리지 못하고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위험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나쁜 친구의 성격이다」라고 알아도, 그 사람에게 화를 내서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조심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영향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것이기에, 자신이 나쁜 영향을 받지 않게 경우에 따라서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나쁜 친구가 화내며 멀어져 갔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손해도 없습니다. 그것은 더 바랄 나위 없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선우를 잃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대단한 손실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 선우는 어떤 사람들인지, 진정한 친구는 어떠한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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