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1) /빤냐와로 스님

관리자
2021-04-21
조회수 249

14-09-28 13:38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


1. Bālāsevana 어리석은 자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경전 「보름날 밤의 설법」에서 부처님께서는 나쁜 사람과의 교제와 선한 사람과의 교제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쁜 사람은 친구나 동행자로서 다음과 같은 사람을 선택합니다. 신뢰가 없는 사람. 행동에 대해 수치스러움을 알지 못하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 정신적인 가르침에 관한 이해를 갖지 않는 사람. 게으르고 알아차림이 없는 사람. 지혜가 빠져 있는 사람.」 이렇듯이 나쁜 친구를 선택해 버린 결과,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자타를 해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여, 슬픔과 괴로움을 만납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속하여, 「그것과 대조적으로, 선한 사람은 담마를 잘 배우고, 마음을 경작하는 것에 노력하여 알아차림이 있고, 지혜를 갖추고 있는 사람을 친구로 선택합니다. 그러한 선우의 힘을 조언자로서 안내인으로서 빌리는 선한 사람은 이들 선우와 같은 자질을 스스로의 이상으로 해서 추구하여 스스로의 성질 안에 흡수합니다. 이와 같이 해서 스스로의 해방에 가까워지는 된 선한 사람은 이번에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의 등대가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직도 어두운 곳에서 앞도 못보고 방황하고 있는 사람을 고무해서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은 자신이 조언이나 안내를 하는 차례가 됩니다.」


길상경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부처님의 첫 번째 대답은 「어리석은 자와 어울리지 마라!」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빨리어로 발라(bāla)라고 합니다. 발라는 「연하의 사람」이라는 의미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연상·연하, 손윗사람·아랫사람은 연령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 뛰어난지 아닌지, 선악의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라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인격이 뛰어난 지혜가 있는 사람은 비록 7살이어도 연상인 것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누구와 교제해야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은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구와라도 교제해 닥치는 대로 영향을 받아 어찌할 바를 몰라 할 것이 아니라, 친구를 제대로 선택해야 합니다. 나쁜 친구와는 교제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며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람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쭉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환경, 주위의 사회를 언제나 좋은 인간으로 둘러싸이도록 해 두면 행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낸다.」라는 것은 조금 무리한 이야기입니다. 이상주의 같지만 실행은 어렵습니다. 「누구와도 싱글벙글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지나치게 노력하다보면, 결정적일 때 기분이 나빠지고 낙담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이 필요합니다. 보통 인간에게는 그만큼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24시간 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 사람과 교제하는 시간은 또 한정되어 버리기에, 가능한 한 사람을 선택해 교제하게 됩니다.


■2종류의 나쁜 친구■

나쁜 친구라는 것은 2가지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속적인 나쁜 친구. 이른바 불친절한 친구,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친구입니다. 뒤돌아서서 욕을 하거나, 쓸데없는 일을 해서 방해를 하거나 하는 사람은 교제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 경우는 스스로도 「싫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과는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어울리든지, 전혀 어울리지 않든지 해야 합니다.


두 번째의 불교에서 말하는 「나쁜 친구」라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불교적으로 「나쁜 친구」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자신에게 데미지를 주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진심으로 친절하게 해 주는 사람이라도, 나쁠 방향으로, 죄의 방향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친구는 나쁜 친구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어느 친구가 당신에게 마약을 권하고 마약을 들이마시는 패거리가 되려고 한다면, 그리고 「만약 들키면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너는 감싸 줄게」라고 진심으로 말해 주었다고 합시다. 세상에서는 나쁜 일을 들키면 상대에게 죄를 씌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사람이 설령 「내가 당신의 죄도 뒤집어 써 줄게」라고 말해 준다고 해도, 권하는 것이 마약이라면 미안하지만 「당신과 사이좋게 지내면, 나는 반드시 나빠진다.」라고 판단하여 어울리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친구는 죄의 안내인■

인간은 죄를 범하지 말고, 선행을 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를 범해 타락 해 버리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확실히 불행하게 됩니다.


약간의 돈을 손해 보았다고 해도 불행하게는 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당했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임들어도 다른 일을 찾으면 됩니다. 정말로 불행하게 되는 것은 죄를 범했을 때입니다. 죄를 범해 버리면 아무리 돈이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를 범해선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뚜렷합니다. 선행을 하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인정받아도 인정받지 못해도 정말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뚜렷합니다.


경전에는 술을 권하는 사람, 내기(도박)를 권하는 사람, 밤놀이를 권하는 사람, 살생이나 도둑질 등의 불선행을 권하는 사람, 이러한 4종류의 사람들이 나쁜 친구라고 써져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이 되거나,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에 걸리거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되거나, 간사한 인간이 되거나, 사기꾼과 같은 인간이 되거나, 변변한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나쁜 친구가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을 나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라고 자르는 것이 좋습니다.


〈싫은 사람〉과〈나쁜 친구〉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이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쁜 친구〉라고는 한정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이 마음에 든다고 해도〈선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쁜 친구는 의외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많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나쁘게 물들어 자신도 나쁜 친구가 되어 버립니다.


「부모님은 싫다」 「선생님은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선우입니다. 선우와 나쁜 친구를 구별할 때에는 결코 감정적인 좋고 싫음을 규준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마음에 들거나 싫어지거나 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입니다. 이성에 근거한 결론은 아닙니다. 감정이기 때문에 싫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일도,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일도 감정이 바뀌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친구를 선택할 때는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라는 주관적인 감정은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야 할 것인가, 어울려야 할 것인가」라고 이성에 근거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어울리지는 않는다.」 「싫은 사람이지만, 다양하게 가르쳐 주거나 이끌어 주므로 자주 어울린다.」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무리하게 없애는 것보다, 이렇게 실행하기는 쉽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면 스트레스가 쌓여 괴로워지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하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또한 좋은 친구와 어울리고 있으면 상대가 자신을 진실로 걱정해 준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므로 싫은 기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짧은 인생을 감정에 좌지우지되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 빠져 불행하게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비록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악에 유혹된다면, 죄를 범하려고 한다면, 그런 것에서 멀어지도록 힘써 노력해야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더 이상 인연을 짓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어울리고 있던 사람들과 싸움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를 짜면 어떻게든 됩니다. 사회적인 입장에서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에 있다면 제대로 분별해서 어울리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지 않게 하면 좋습니다. 「사회적인 입장에서는 아는 사람이지만, 마음의 선우와는 다르다」라고 결정합니다. 마음의 맑고 깨끗함, 마음의 평안이야말로 지켜야 할 자신의 프라이버시인 것입니다.


불교를 이해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 몸에 익혀집니다. 자신의 몸을 분명하게 지킬 수가 있습니다. 얼떨결에 악에 유혹되어 버리는 것은 자신 안에 제대로 된 이성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유혹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완고함이 아닙니다. 이성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유부단함이 없는 것입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지혜에 따라 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2. Paṇḍitasevana 현명한 자와 친하게 지낸다.


부처님께서 어느 제자에게 현명한 자에 대한 적절한 대답으로 담마빠다에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결점을 지적하고 비판해 주는 사람을 찾아내면, 그러한 현명한 명민한 상담자를, 숨겨진 보물에의 안내인으로 하여 따라야 하는 것이다」라고.


현자와 어울리는 것은 정신적인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성스러운 마음을 가진 상담자의 비유나 충고는 우리의 마음에 있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선함을 눈뜨게 해서 증장시키는데 있어서 때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경작되어지지 않은 마음은 자기 본위, 이기주의와 공격성이 강하지만, 잘 경작되어진 마음은 현명함, 자기희생이나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연민까지 개발되어집니다.


우리가 직면한 일은 진리(담마)에 따르는 것으로서의 깨달음, 해탈, 그리고 청정으로 이끄는 자질, 선의 경향성을 성장시키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향은 성숙하지 못하고, 공허한 것에 기울기 쉽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광범위한 환경의 끊임없는 영향을 받습니다. 그 영향 가운데에서 가장 힘이 있는 것은 우리가 스승으로서, 조언자로서, 벗을 삼아 존경하는 현명한 동행자입니다.


■행복은 친구 나름■

인간은 다른 사람과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주위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기에 누구와 어울리는가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와 사이좋게 지내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무책임하게 하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서 어떤 결과가 오는지 모르게 됩니다. 「장래는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라는 삶의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한 무책임한 삶의 방법은 타성적인 삶의 방법입니다. 수행해도 지혜가 나타나기 어렵습니다. 장래는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떻게 바뀌어도 나쁘게는 안 되게 계획적으로 사는 것이 불교적입니다.

그래서 어울리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은 사는데 있어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소중한 일입니다.


주위의 영향으로 자신의 인격이 바뀝니다. 자신의 행복도, 불행도, 주위의 환경에 좌우됩니다.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을 관찰해 보면 자신의 장래가 보입니다.


■어떻게 되어도 자신의 책임■

스님은 자주 「다른 이의 탓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의 불행도 고민도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니다. 자신의 탓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와 위에 말한 이야기는 모순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순은 아닙니다. 행복도 불행도 극단적으로 자신만의 책임도 아니고,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만의 책임도 아니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되는 방법에 의해 결과가 일어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되는가 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 됩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자신이 철저하게 노력해도, 자신의 주위의 인간관계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적어집니다. 반대로 주위의 사람들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철저하게 노력해도, 자신에게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경우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인생의 행불행은〈자신의 접근방식〉과〈주위의 인간관계〉, 그 양쪽 모두가 원인이 됩니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개인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의 마음의 관리는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자기책임을 중시하는 것으로 불교에서 말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겨울에 눈길을 걷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밖의 추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겨울의 추위를 바꾸는 일도 불가능합니다. 겨울에 거리를 걷는 사람은 방한복을 몸에 걸치고 안전하게 눈길을 걷습니다. 그처럼 자신을 관리하는 것으로 환경에 대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관리를 한다고 해도, 주위의 사회로부터의 영향은 거대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사막이라고 하는 환경을 선택했다면 물이나 음식도 재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농사짓는데 프로라도 환경을 북극으로 선택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이좋게 어울리는 상대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우는 전부이다■

친구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로 부처님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경전에 설해져 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다존자가,

Upaddhaṁ idaṁ bhante brahmacariyassa yad idaṁ kalyānamittatā klyānasahāyatā kalyānasampavankatā.

「선우가 있는 것, 선우와 함께 있는 것, 선우와 어울리는 것으로 불도의 절반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Mā hevaṁ, ānanda, mā hevaṁ, ānanda.

Sakalaṁ eva hidaṁ, ānanda, brahmacariyaṁ yadidaṁ kalyānamittatā

kalyānasahāyatā kalyānasampavankatā. (상응부 경전 5,2)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선우가 있는것, 선우와 함께 있는 것, 선우와 어울리는 것으로 불도의 절반이 아니라 불도의 모든 것을 완성하는 것이다.」


또 다른 부분에 지혜제일인 사리뿟따 존자께서,「선우가 있는 것이야말로 불도의 전부입니다」라고 부처님에게 보고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완전히 그대로입니다」라고 동의하셨습니다. (상응부 경전 5,3) 


또 다른 부분에서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팔정도를 실천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이 무엇인가 말한다면, 그것은 선우가 있는 것뿐으로, 그것밖에 없습니다.」

(상응부 경전 5,35)


또 어느 날 꼬살라국 왕이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와 같이 부처님에게 말했습니다.

「존귀하신 분, 부처님의 가르침은 완전하게 설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도 선우와 관련될 때에만 한정됩니다. 나쁜 친구와 어울릴 때가 아닙니다.」

부처님은「그대로이다」라고 동의하시면서, 선우와 사귀는 것에 대하여 설법하셨습니다. (상응부 경전 1,87)


좋은 친구는 자신을 제대로 이끌어 주고 좋은 영향을 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인격을 완성시키기 위한 단지 하나의 조건인 것입니다.


어쨌든 천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천한 인간이 됩니다. 뛰어난 사람들과 어울리면 뛰어난 인간이 됩니다.

누군가와 사이좋게 지낸 결과, 자신의 도덕, 자신의 지혜, 자신의 견실한 삶의 방법이 위험해진다면, 그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닙니다.

반대로 어느 친구와 어울리면, 자신의 야무지지 못한 삶이 바뀌게 되고, 확실히 인격이 향상된다면, 그 친구와는 결코 멀어지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요술 망치를 버려도 선우를 잃지 말라■

사람에게 있어서 선우가 얼마나 소중한 것으로 가르쳐 준 구절이 있습니다.


  Sace labhetha nipakaṁ sahāyaṁ

  Saddhiṁ caraṁ sādhu vihāri dhīraṁ

  abhibhuyya sabbāni parissayāni

  careyya tenattamano satīmā  (숫따니빠따 45, 담마빠다 328번 게송)

  만약 〈선하고 현명하여 함께 지낼만한 올바른 동반자〉를 얻었다면,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알아차림을 지녀서, 그와 함께 걸어가라.

  

이 게송에 나오는 「위험의 극복」이란 선우, 선한 일과 함께 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 재산, 일 등이 방해가 되어 선행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경우는 가족이나 재산 등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의 장벽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 지식인이 되는 것, 유명인이 되는 것, 기록 보관 유지자가 되는 것 등이 사는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아무리 있어도 아주 쉽게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는 모두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보통은 사람이 하려고도 하지 않는 선행을 하는 것, 헌신적으로 되는 것,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 그리고 일체의 집착을 끊어 생을 탈출하는 것(해탈), 그러한 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


선우에 둘러싸여 어울릴 수 있다면 이 사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습니다.

선우에 둘러싸여 어울린다면 재산을 지키는 것이나 명예가 높아지는 것 등의 속세의 가치 등은 쓰레기와 같이 버리게 되어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 사람을 선택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있을까요?

함께 있어면 즐거워서, 취미가 맞아서, 돈이 있어서, 유명인이라서, 권력자라서, 미남 미녀라서 등으로 선택하지는 않나요?

「인간은 서로 서로 영향을 주며 성장하는 것이다」를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인격을 위탁해야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 자신의 동료 중에서 성품이 나빠서 어울리고 싶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인연을 자르는 것은 좀처럼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신세를 져 왔다. 일의 동료다. 같은 아파트단지의 사람이다. 선원의 식구다」등의 이유로 멀어지기 어렵습니다.

자신 스스로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결정했을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은 살아가는데 별로 쓸모가 없다.」라고 말하는 일도 있습니다.

혹은 주위로부터 「아무도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누구나 하고 있는 것을 하세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들 모든 일이 위의 게송에서 말하는 parissaya(위험)인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버려야 한다.」라는 입장입니다.

부처님도 아무 주저없이 왕위를 버렸습니다.

「선우와 만나 어울린다면 무엇을 버려도 괜찮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확대 해석해서 극단적으로 달려선 안 됩니다.

지금까지 사이좋게 지내 온 사람들이 자신을 방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비록 자신을 성장시켜 줄 수 없는 사람들이라도 자신의 성장을 응원해 준다면 「위험」이 되지 않습니다.

수행을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사회를 등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하게 성공도 하면서 위험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면 친구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정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현명하여 올바른 길로 이끄는 선우인지, 누가 어리석어 나쁜 방향으로 이끄는 친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악인이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이따금 그런 것을 말했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장난치는 것뿐입니다.

우리도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선우인지 나쁜 친구인지 모릅니다.

0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중부권) 031-475-9171  (남부권) 052-260-2841

            (PHONE)  010-8848-3468/010-7360-9171

E-MAIL: theravada2008@kakao.com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ALL RIGHTS RESERVED.


CONTACT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중부권) 031-475-9171

            (남부권) 052-260-2841

           010-8848-3468/010-7360-9171

E-MAIL: theravada2008@kakao.com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

ALL RIGHTS RESERVED.




© BYULZZI Corp.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byulz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