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6)/이사장 빤냐와로스님

관리자
2021-04-21
조회수 170

작성일 : 14-03-12 08:56 


그러나 선정을 얻은 사람은 선정에서 나오면 퇴보할 수 있지만, 성스러운 도와 과를 얻은 사람의 도과의 진행 정도가 퇴보하는 일은 없습니다.

결코 소멸할 수가 없는 닙바나의 행복을 깨달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도와 과의 법, 도와 과의 행복을 아깔리까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결코 소멸할 수가 없는 행복은 닙바나의 행복입니다.
닙바나의 행복은 무엇으로도 절대로 망가질 수가 없습니다.

영구히 계속된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깊게 생각해 보면, 닙바나의 행복만큼 바라는 것에 적합한 행복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닙바나의 행복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코 소멸할 수가 없는 닙바나의 행복을 위해서 실천하고 있는 위빳사나 수행은 아깔리까의 일입니다.
위빳사나와 함께 행하는 보시, 지계, 선정의 일도 닙바나를 목표로 한다면 아깔리까의 일입니다.


소멸하는 행복을 위해서 하는 일은 우리의 본업이 아닙니다.
소멸하지 않는 행복을 위해서 하는 일이 본업입니다.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죽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이 죽는 성질, 소멸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죽는 성질의 것, 소멸하는 성질의 것만을 찾아 구한다면, 그것은 비천하고 낮은 단계의 것만을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넘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죽는 성질, 소멸하는 성질이 있어도,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는 성질, 소멸로부터 멀어지는 성질을 찾아 구한다면, 그것은 고귀하고 높은 단계의 것을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넘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죽어 버리고 싶다」 「빨리 죽을 수 있다면 편할 것이다」 등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정말로 죽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하는 이익이 있다면, 모두 그것을 갖고 싶어 할 것입니다.
죽는 것이 무서운 사람들을 위해서 결코 죽지 않는 방법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죽고 싶지 않으면 호흡하십시오!」입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호흡하십시오!」라는 말은 이 육체를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호흡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생명, 이 육체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결코 죽지 않기 위해, 죽는 성질의 것을 손에 넣지 않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완전하게 해방되도록 하기위해 호흡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코 죽지 않는 경지는 닙바나입니다.
완전하게 깨달아 닙바나에 이르면, 이제 결코 죽지 않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생명과 육체가 있기 때문에 죽습니다.

닙바나에는 생명도 육체도 결코 없습니다. 다만 이생에서의 육체적인 소멸만이 있을 뿐입니다.
더 이상의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는 행복만큼 행복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으로부터 멀어진 닙바나는 세상을 뛰어넘은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닙바나 인간을 초월한 법입니다(uttarimanussa dhamma).
모든 행복의 정점, 비교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지혜가 아직 부족한 사람들은 「생명과 육체가 없으면 행복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지만, 육체가 있는 행복보다 육체가 없는 행복 쪽이 몇 십 배 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상하고 강력합니다.

몸과 마음이란 5온은 괴로움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 모든 몸과 마음이란 5온의 끝은 죽음인 것을 깊게 이해하고 있다면 닙바나란 불사의 행복을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닙바나라고 하는 불사의 행복을 얻고 싶다면, 죽고 싶지 않다면,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은 호흡하는 줄을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집중해서, 알아차림을 가지고, 분명하게 알면서 하는 호흡, 노력을 동반한 호흡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은 「알아차림과 지혜를 지니고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알아차리며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심해서 주의 깊게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주의 깊게 알아차리며 호흡한다는 것은,
호흡할 때 콧구멍의 앞, 혹은 윗입술의 인중부분 숨이 닿는 곳에 알아차림을 두고, 들이쉬면 「들이쉼」, 내쉬면 「내~쉼」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숨이 들어올 때는 코끝을 접촉하며 들어옵니다.
접촉하는 장소에 마음을 두고, 「들이쉼」이라고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안에 들어온 숨의 뒤를 쫓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가면 마음은 헤매어 버립니다.
숨이 나올 때는 코끝을 접촉하며 나옵니다.
접촉하는 장소에 마음을 두고, 「내~쉼」이라고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밖에 나온 숨의 뒤를 쫓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가면 마음은 헤매어 버립니다.


숨이 들어올 때도, 나올 때도, 숨이 닿는 한 장소에만 마음을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숨을 따라 뱃속이나 허공으로 마음을 따라 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콧구멍 앞의 인중 한 지점에만 마음을 두고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올바르게 주시하며 알아차리는 방법입니다.

「들이쉬는 숨은 들어오는 대로 코끝에 접촉하기에 이를 주의 깊게 알아차리며 들이쉰다고 분명하게 안다. 내쉬는 숨은 나오는 대로 코끝에 접촉하기에 이를 주의 깊게 알아차리며 내쉰다고 분명하게 안다.」

이것이 수행법의 요점입니다. 


사띠(알아차림)를 가지고 호흡하는 것이 아-나-빠-나·사띠빳타-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나」는 들이쉬는 숨, 「아빠-나」는 내쉬는 숨, 이런 들숨과 날숨을 「사띠(알아차림)」를 가지고 호흡하는 수행을 아나빠나사띠 수행이라고 부릅니다.


호흡은 앉아 있을 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걷거나 서거나 누워 있거나 할 경우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나빠나 수행은 앉아있으면서 실천하는 것과 같이, 걸으면서, 서있으면서, 누워있으면서도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수행시간을 만들어 수행한다면, 고요히 앉아 들이쉬면 「들이쉼」, 내쉬면 「내~쉼」이라고 분명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걸으면서, 일하면서, 말하면서, 먹고 마시면서 수행할 때는, 그 행위를 대상으로 「왼발」「오른발」, 또는「구부림」「폄」, 또는「말함」「먹음」이라고 알아차려야 하기에, 「들이쉼」「내~쉼」등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코끝에 닿는 느낌만을 알아차리고 있다면 충분합니다.
항상 하고 있는 호흡을 항상 알아차리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호흡하고 있기에 숨을 쉴 때마다 알아차림을 유지하면서 호흡한다면, 호흡을 하고 있는 동안 마음의 행복과 고요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호흡의 알아차림을 지속해나가면 특별하고 고귀한 법을 손에 넣게 되어 죽음을 완전하게 넘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죽고 싶지 않으면 호흡하십시오.
행복하게 되고 싶으면 호흡하십시오.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고 싶으면 호흡하십시오.
세상의 행복을 완벽하게 누리고 싶으면 호흡하십시오.

닙바나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이 세상에서 빠른 시간에 깨닫고 싶으면 호흡하십시오. 


아나빠나 수행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양면을 가지는 수행법입니다.
들고나는 호흡만을 알아차리면 사마타 수행이 되고, 들고나는 호흡의 고유한 특성을 알아차리면 위빳사나 수행이 됩니다.

호흡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여 니밋타라는 모양·형태를 알아차리면 사마타가 됩니다.

호흡을 끝까지 따라 가지 않고, 호흡이 접촉하는 코끝의 한 지점에 마음을 두고, 접촉하며 일어나는 느낌들인 흔들림, 반발력, 움직임이라는 여러 느낌들에서 무상·고·무아의 특상을 분명히 알아차리면 위빳사나가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닦고 익히면 사념처가 원만해지고, 사념처 수행을 닦고 익히면 칠각지가 원만해지고, 칠각지가 원만해지면 아라한과에 도달할 수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으로 아라한까지 이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선인들은 호흡수행은 닙바나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스승님은 호흡수행을 「절대왕정적인 수행」이라고까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아나빠나 호흡수행은 정자각자의 붓다들이 항상 좋아한 수행법입니다.
어떤 붓다들도 호흡수행을 주요한 수행법으로서 힘써서 붓다가 되었습니다.


다른 수행법으로 깨달은 붓다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과거에도 없었고, 현대에도 없고, 미래에도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호흡수행이 얼마나 고귀하고 우수한가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들이쉰 숨이 다시 나오지 않을 때, 내쉰 숨이 다시 들어오지 않을 때라고 하는 것은 죽어 있을 때입니다.
몸과 마음인 5온이 생존,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호흡은 중요합니다.

숨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므로, 그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는 수행자에게는 「대동맥과 같은 불가결의 수행법」입니다.


호흡에서 몸과 마음의 성질을 파악할 수 있다면, 모든 몸과 마음의 성질도 알게 되므로, 호흡수행을 「고찰이 가능한 수행법」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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