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3)/이사장 빤냐와로스님

관리자
2021-04-21
조회수 155

작성일 : 14-03-12 08:45 


수행하는 사람의 최대의 책임은 수행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생기게 노력하는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매순간 수행하려는 마음이 생기도록 노력합니다. 알아차림이 따르게 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당장이라도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다면, 그것과 동시에 현재의 뚜렷한 감각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아, 몸이 뚜렷하면 몸, 마음이 뚜렷하면 마음에 곧바로 알아차림이 따르게 됩니다.

적어도 호흡이 접촉하는 장소인 콧구멍이나 배의 한곳에 알아차림이 따르는 것은 확실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현재 걸어가고 있거나, 현재 행하는 것을 알기에 알아차림은 따를 것입니다.

1분 후에 죽어 버린다고 송곳과 같이 알고 있는 사람이 만약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려고 할까요? 오욕의 감각에 집중해서 그러한 욕구의 마음으로 행할까요? 악한 행위, 나쁜 마음에 집중할까요?

현재의 대상으로 일어나는 감각에 집중해서 수행하는 마음으로 있을까요?대답은 뚜렷합니다.
수행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유지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라는 죽음의 진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음을 항상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정말로 실천해야 할 일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이야기해야 할 말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생각해야 할 사유도 잊지 않습니다.
잊지 않는 것을 불방일(압빠마-다, appamāda)이라고 부릅니다.


불방일을 갖춘 사람은 인생의 행복과 불행에 인내하는 힘이 있습니다.
인생을 파괴하는 것을 억제할 수가 있습니다.
나쁜 마음, 뒤떨어진 마음을 피하고, 좋은 마음, 고귀한 마음만을 증장시킬 수가 있습니다.
수행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생기도록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죽음을 항상 생각하면 생에 대해서도 항상 주의 깊어집니다.
죽음을 잊지 않으면 생도 잊지 않습니다.


“maraṇasatiṁ anuyutto samaṇo. 마라나사띵 아누윳또- 사마노.”
“sātataṁ appamātto hoti. 사-따땅 압빠맛-또- 호-띠.”
“죽음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수행자는 언제나 실천 수행한다.”
"결코 방일하지 않아 알아차림을 잊지 않는다.” 


죽음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을 마라나사띠(maraṇasati, 死隨念)라고 부릅니다.
알아차림을 잊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불방일(appamāda)이라고 부릅니다.
닙바나는 죽음이 없으므로 불사(amata, 不死)라고 부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불방일로 채워집니다.
불방일로 채워진 사람은 불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불방일은 불사를 얻기 위한 하나의 요인입니다.
불사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사람은 불방일합니다.
불방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죽음을 반복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kālaṁ vohaṁ na jānami. 깔-랑 오-항 나 자-나미.”
「언제 죽을지 모른다.」
죽는 시기를 모른다는 것은 분명히 모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대체로 추측하여 그 나름대로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강 상태나, 영양분 등의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지 판단하여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는 모릅니다.


아직 죽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고 해도, 생각하지 못한 이유로 죽는 일도 있습니다. 아직 죽을 시기가 아닌 줄 알았는데, 사고나 화재 등으로 돌연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은 그 사람의 연령도 고려하지 않고, 모습이나 아름다움도 배려하지 않습니다.
잔혹해서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 의욕이 있는 동안에 수행한다면, 사는 일도 죽는 일도 좋은 일이 됩니다.
늙어서 수행하려고 젊었을 때 수행하지 않고 세상 오종 욕구의 행복으로 살든 사람이 나이를 먹을 때까지 살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면 손해겠지요.


실제로 수행은 젊었을 때 하는 편이 좋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체력, 지력, 기력이 다해 가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한 만큼 수행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의지도 약해지고, 몸도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수행에 힘을 낼 수 없습니다.

젊었을 때에 수행하면 체력, 지력, 기력도 날카롭기 때문에 나이를 먹고 나서의 수행보다 진보가 훨씬 빠릅니다. 그래서 특별한 법, 고귀한 법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20세부터 40세까지의 사이가 최상입니다. 조금 더 넓힌다면 10세부터 50세의 사이까지가 좋은 조건입니다. 50이 넘으면 너무 늦습니다.


수행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대상에 강력하게 집중할 힘이 있을 때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나기 어려운 불교를 만났는데, 세속적인 오욕락을 바라면서 수행은 뒷전으로 한다면 지혜가 적은 세계에 계속 머물지도 모릅니다.

미리 준비해 두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죽기 전에 생기는 후회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수행법을 알았을 때 세속의 일도 행하면서 동시에 수행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행법을 알았으면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는 시기는 미리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진실합니다.
알 수 없는 것은 시기만이 아닙니다.


죽음에 관련하여 파악할 수 없는 5가지가 있습니다.

(1) “jīvita. 지-위따.”
몇 살에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살아가는 생명체는 몇 살까지 살지, 몇 살이 되면 죽는다고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태내에서도 죽을 수 있고, 배아기, 해면기, 골격이 생기는 시기 등 여러 시기에 죽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태어나도, 1시간, 2시간, 며칠 만에, 1년, 몇 십년 등 어떤 연령에서도 죽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을 포함한 중생들은 자신이 몇 살에 죽는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2) “byādhi. 브야-디.”
어떤 병으로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생명은 어떤 병으로 죽는다고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눈병으로 죽는 일도 있고, 몸에 관한 병, 마음에 관한 병 등 여러 병으로 죽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의 병뿐만 아니라, 복수의 병으로 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각각 죽음에 이르는 병은 같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병으로 죽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람을 포함한 중생들은 자신이 어느 병으로 죽을지, 자신이 죽을 때는 어느 병에 걸릴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3) “kāla. 깔-라”죽는 시기를 알 수 없습니다.생명은 오전 중에 죽을지, 다른 시간에는 죽지 않는다고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오전 중에도 죽고, 오후, 저녁, 한밤중에도 죽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죽는 일도 있고, 물을 마시면서, 예배하면서, 신문을 읽으면서 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떤 시기에도 죽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포함한 중생들은 자신이 어느 시기에 죽는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4) “dehanikkhepana. 데-하닉케-빠나.”
죽은 후 자신의 시체가 어디에 버려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생명은 죽은 후의 시체를 어느 특정한 장소에 버릴 것이라고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수상에서 태어난 사람의 시체를 언덕 위에 버릴지, 언덕 위에서 태어난 사람의 시체를 물속에 버릴지,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의 시체를 마을에 버릴지,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의 시체를 숲에 버릴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죽은 몸을 죽고 나서 어느 장소에 버릴지 모릅니다.
어떤 장소, 어떤 묘지에도 시체는 버릴 수 있기에 사람을 포함한 중생들은 자신이 죽으면 시체를 어디에 버릴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5) “gati. 가띠.”
죽은 후 어느 세계로 다시 태어나는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생명은 죽은 후에 태어날 장소를 미리 한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도 있고, 천상에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지옥이나 아귀, 축생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천인이 죽으면 또 다시 천인으로 태어난다고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아라한 이외의 중생들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이라는 6 종류의 어딘가에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사람을 포함한 중생들은 죽은 후에 자신이 어느 세계로 다시 태어나는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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