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 『망갈라 숫따』 (20140715)
1. Bālāsevana 어리석은 자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경전 「보름날 밤의 설법」에서 부처님께서는 나쁜 사람과의 교제와 선한 사람과의 교제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쁜 사람은 친구나 동행자로서 다음과 같은 사람을 선택합니다. 신뢰가 없는 사람. 행동에 대해 수치스러움을 알지 못하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 정신적인 가르침에 관한 이해를 갖지 않는 사람. 게으르고 알아차림이 없는 사람. 지혜가 빠져 있는 사람.」 이렇듯이 나쁜 친구를 선택해 버린 결과,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자타를 해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여, 슬픔과 괴로움을 만납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속하여, 「그것과 대조적으로, 선한 사람은 담마를 잘 배우고, 마음을 경작하는 것에 노력하여 알아차림이 있고, 지혜를 갖추고 있는 사람을 친구로 선택합니다. 그러한 선우의 힘을 조언자로서 안내인으로서 빌리는 선한 사람은 이들 선우와 같은 자질을 스스로의 이상으로 해서 추구하여 스스로의 성질 안에 흡수합니다. 이와 같이 해서 스스로의 해방에 가까워지게 된 선한 사람은 이번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의 등대가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직도 어두운 곳에서 앞도 못보고 방황하고 있는 사람을 고무해서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은 자신이 조언이나 안내를 하는 차례가 됩니다.」
길상경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부처님의 첫 번째 대답은 「어리석은 자와 어울리지 마라!」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빨리어로 발라(bāla)라고 합니다. 발라는 「연하의 사람」이라는 의미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연상·연하, 손윗사람·아랫사람은 연령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 뛰어난지 아닌지, 선악의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라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인격이 뛰어난 지혜가 있는 사람은 비록 7살이어도 연상인 것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누구와 교제해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은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구와라도 교제해 닥치는 대로 영향을 받아 어찌할 바를 몰라 할 것이 아니라, 친구를 제대로 선택해야 합니다. 나쁜 친구와는 교제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며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람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쭉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환경, 주위의 사회를 언제나 좋은 인간으로 둘러싸이도록 해 두면 행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낸다.」라는 것은 조금 무리한 이야기입니다. 이상주의 같지만 실행은 어렵습니다. 「누구와도 싱글벙글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지나치게 노력하다 보면, 결정적일 때 기분이 나빠지고 낙담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이 필요합니다. 보통 인간에게는 그만큼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24시간 밖에 없습니다. 그중에 사람과 교제하는 시간은 또 한정되어 버리기에, 가능한 한 사람을 선택해 교제하게 됩니다.
■2종류의 나쁜 친구■
나쁜 친구라는 것은 2가지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속적인 나쁜 친구. 이른바 불친절한 친구,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친구입니다. 뒤돌아서서 욕을 하거나, 쓸데없는 일을 해서 방해를 하거나 하는 사람은 교제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 경우는 스스로도 「싫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과는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어울리든지, 전혀 어울리지 않든지 해야 합니다.
두 번째의 불교에서 말하는 「나쁜 친구」라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불교적으로 「나쁜 친구」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자신에게 데미지를 주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진심으로 친절하게 해 주는 사람이라도, 나쁜 방향으로, 죄의 방향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친구는 나쁜 친구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어느 친구가 당신에게 마약을 권하고 마약을 들이마시는 패거리가 되라고 한다면, 그리고 「만약 들키면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너는 감싸 줄게」라고 진심으로 말해 주었다고 합시다. 세상에서는 나쁜 일을 들키면 상대에게 죄를 씌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사람이 설령 「내가 당신의 죄도 뒤집어 써 줄게」라고 말해 준다고 해도, 권하는 것이 마약이라면 미안하지만 「당신과 사이좋게 지내면, 나는 반드시 나빠진다.」라고 판단하여 어울리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친구는 죄의 안내인■
인간은 죄를 범하지 말고, 선행을 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를 범해 타락해 버리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확실히 불행하게 됩니다.
약간의 돈을 손해 보았다고 해도 불행하게는 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당했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힘들어도 다른 일을 찾으면 됩니다. 정말로 불행하게 되는 것은 죄를 범했을 때입니다. 죄를 범해 버리면 아무리 돈이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를 범해선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뚜렷합니다. 선행을 하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인정받아도 인정받지 못해도 정말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뚜렷합니다.
경전에는 술을 권하는 사람, 내기(도박)를 권하는 사람, 밤놀이를 권하는 사람, 살생이나 도둑질 등의 불선행을 권하는 사람, 이러한 4종류의 사람들이 나쁜 친구라고 써져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이 되거나,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에 걸리거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되거나, 간사한 인간이 되거나, 사기꾼과 같은 인간이 되거나, 변변한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나쁜 친구가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을 나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라고 자르는 것이 좋습니다.
〈싫은 사람〉과 〈나쁜 친구〉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이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쁜 친구〉라고는 한정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이 마음에 든다고 해도 〈선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쁜 친구는 의외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많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나쁘게 물들어 자신도 나쁜 친구가 되어 버립니다.
「부모님은 싫다」 「선생님은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선우입니다. 선우와 나쁜 친구를 구별할 때에는 결코 감정적인 좋고 싫음을 규준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마음에 들거나 싫어지거나 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입니다. 이성에 근거한 결론은 아닙니다. 감정이기 때문에 싫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일도,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일도 감정이 바뀌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친구를 선택할 때는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라는 주관적인 감정은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야 할 것인가, 어울려야 할 것인가」라고 이성에 근거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어울리지는 않는다.」 「싫은 사람이지만, 다양하게 가르쳐 주거나 이끌어 주므로 자주 어울린다.」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무리하게 없애는 것보다, 이렇게 실행하기는 쉽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면 스트레스가 쌓여 괴로워지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하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또한 좋은 친구와 어울리고 있으면 상대가 자신을 진실로 걱정해 준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므로 싫은 기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짧은 인생을 감정에 좌지우지되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 빠져 불행하게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비록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악에 유혹된다면, 죄를 범하려고 한다면, 그런 것에서 멀어지도록 힘써 노력해야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더 이상 인연을 짓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어울리고 있던 사람들과 싸움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를 짜면 어떻게든 됩니다. 사회적인 입장에서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에 있다면 제대로 분별해서 어울리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지 않게 하면 좋습니다. 「사회적인 입장에서는 아는 사람이지만, 마음의 선우와는 다르다」라고 결정합니다. 마음의 맑고 깨끗함, 마음의 평안이야말로 지켜야 할 자신의 프라이버시인 것입니다.
불교를 이해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 몸에 익혀집니다. 자신의 몸을 분명하게 지킬 수가 있습니다. 얼떨결에 악에 유혹되어 버리는 것은 자신 안에 제대로 된 이성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유혹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완고함이 아닙니다. 이성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유부단함이 없는 것입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지혜에 따라 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2. Paṇḍitasevana 현명한 자와 친하게 지낸다.
부처님께서 어느 제자에게 현명한 자에 대한 적절한 대답으로 담마빠다에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결점을 지적하고 비판해 주는 사람을 찾아내면, 그러한 현명한 명민한 상담자를, 숨겨진 보물에의 안내인으로 하여 따라야 하는 것이다」라고.
현자와 어울리는 것은 정신적인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성스러운 마음을 가진 상담자의 비유나 충고는 우리의 마음에 있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선함을 눈뜨게 해서 증장시키는데 있어서 때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경작되어지지 않은 마음은 자기 본위, 이기주의와 공격성이 강하지만, 잘 경작되어진 마음은 현명함, 자기희생이나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연민까지 개발되어집니다.
우리가 직면한 일은 진리(담마)에 따르는 것으로서의 깨달음, 해탈, 그리고 청정으로 이끄는 자질, 선의 경향성을 성장시키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향은 성숙하지 못하고, 공허한 것에 기울기 쉽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광범위한 환경의 끊임없는 영향을 받습니다. 그 영향 가운데에서 가장 힘이 있는 것은 우리가 스승으로서, 조언자로서, 벗을 삼아 존경하는 현명한 동행자입니다.
■행복은 친구 나름■
인간은 다른 사람과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주위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기에 누구와 어울리는가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와 사이좋게 지내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무책임하게 하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서 어떤 결과가 오는지 모르게 됩니다. 「장래는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라는 삶의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한 무책임한 삶의 방법은 타성적인 삶의 방법입니다. 수행해도 지혜가 나타나기 어렵습니다. 장래는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떻게 바뀌어도 나쁘게는 안 되게 계획적으로 사는 것이 불교적입니다. 그래서 어울리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은 사는데 있어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소중한 일입니다.
주위의 영향으로 자신의 인격이 바뀝니다. 자신의 행복도, 불행도, 주위의 환경에 좌우됩니다.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을 관찰해보면 자신의 장래가 보입니다.
■어떻게 되어도 자신의 책임■
스님은 자주 「다른 이의 탓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의 불행도 고민도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니다. 자신의 탓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와 위에 말한 이야기는 모순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순은 아닙니다. 행복도 불행도 극단적으로 자신만의 책임도 아니고,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만의 책임도 아니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되는 방법에 의해 결과가 일어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되는가 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 됩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자신이 철저하게 노력해도, 자신의 주위의 인간관계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적어집니다. 반대로 주위의 사람들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철저하게 노력해도, 자신에게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경우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인생의 행불행은〈자신의 접근방식〉과 〈주위의 인간관계〉, 그 양쪽 모두가 원인이 됩니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개인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의 마음의 관리는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자기책임을 중시하는 것으로 불교에서 말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겨울에 눈길을 걷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밖의 추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겨울의 추위를 바꾸는 일도 불가능합니다. 겨울에 거리를 걷는 사람은 방한복을 몸에 걸치고 안전하게 눈길을 걷습니다. 그처럼 자신을 관리하는 것으로 환경에 대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관리를 한다고 해도, 주위의 사회로부터의 영향은 거대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사막이라고 하는 환경을 선택했다면 물이나 음식도 제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농사짓는데 프로라도 환경을 북극으로 선택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이좋게 어울리는 상대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우는 전부이다■
친구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로 부처님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경전에 설해져 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다존자가,
Upaddhaṁ idaṁ bhante brahmacariyassa yad idaṁ kalyānamittatā klyānasahāyatā kalyānasampavankatā.
「선우가 있는 것, 선우와 함께 있는 것, 선우와 어울리는 것으로 불도의 절반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Mā hevaṁ, ānanda, mā hevaṁ, ānanda.
Sakalaṁ eva hidaṁ, ānanda, brahmacariyaṁ yadidaṁ kalyānamittatā
kalyānasahāyatā kalyānasampavankatā. (상응부 경전 5,2)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선우가 있는것, 선우와 함께 있는 것, 선우와 어울리는 것으로 불도의 절반이 아니라 불도의 모든 것을 완성하는 것이다.」
또 다른 부분에 지혜제일인 사리뿟따 존자께서, 「선우가 있는 것이야말로 불도의 전부입니다」라고 부처님에게 보고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히 그대로입니다」라고 동의하셨습니다. (상응부 경전 5,3)
또 다른 부분에서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팔정도를 실천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이 무엇인가 말한다면, 그것은 선우가 있는 것뿐으로, 그것밖에 없습니다.」
(상응부 경전 5,35)
또 어느 날 꼬살라국 왕이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와 같이 부처님에게 말했습니다.
「존귀하신 분, 부처님의 가르침은 완전하게 설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도 선우와 관련될 때에만 한정됩니다. 나쁜 친구와 어울릴 때가 아닙니다.」
부처님은「그대로이다」라고 동의하시면서, 선우와 사귀는 것에 대하여 설법하셨습니다. (상응부 경전 1,87)
좋은 친구는 자신을 제대로 이끌어 주고 좋은 영향을 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인격을 완성시키기 위한 단지 하나의 조건인 것입니다.
어쨌든 천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천한 인간이 됩니다. 뛰어난 사람들과 어울리면 뛰어난 인간이 됩니다. 누군가와 사이좋게 지낸 결과, 자신의 도덕, 자신의 지혜, 자신의 견실한 삶의 방법이 위험해진다면, 그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닙니다. 반대로 어느 친구와 어울리면, 자신의 야무지지 못한 삶이 바뀌게 되고, 확실히 인격이 향상된다면, 그 친구와는 결코 멀어지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요술 망치를 버려도 선우를 잃지 말라■
사람에게 있어서 선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가르쳐 준 구절이 있습니다.
Sace labhetha nipakaṁ sahāyaṁ
Saddhiṁ caraṁ sādhu vihāri dhīraṁ
abhibhuyya sabbāni parissayāni
careyya tenattamano satīmā (숫따니빠따 45, 담마빠다 328번 게송)
만약 〈선하고 현명하여 함께 지낼만한 올바른 동반자〉를 얻었다면,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알아차림을 지녀서, 그와 함께 걸어가라.
이 게송에 나오는 「위험의 극복」이란 선우, 선한 일과 함께 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 재산, 일 등이 방해가 되어 선행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경우는 가족이나 재산 등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의 장벽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 지식인이 되는 것, 유명인이 되는 것, 기록 보관 유지자가 되는 것 등이 사는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아무리 있어도 아주 쉽게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는 모두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보통은 사람이 하려고도 하지 않는 선행을 하는 것, 헌신적으로 되는 것,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 그리고 일체의 집착을 끊어 생을 탈출하는 것(해탈), 그러한 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
선우에 둘러싸여 어울릴 수 있다면 이 사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습니다.
선우에 둘러싸여 어울린다면 재산을 지키는 것이나 명예가 높아지는 것 등의 속세의 가치 등은 쓰레기와 같이 버리게 되어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 사람을 선택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있을까요? 함께 있으면 즐거워서, 취미가 맞아서, 돈이 있어서, 유명인이라서, 권력자라서, 미남 미녀라서 등으로 선택하지는 않나요?
「인간은 서로서로 영향을 주며 성장하는 것이다」를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인격을 위탁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 자신의 동료 중에서 성품이 나빠서 어울리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인연을 자르는 것은 좀처럼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신세를 져 왔다. 일의 동료다. 같은 아파트단지의 사람이다. 선원의 식구다」 등의 이유로 멀어지기 어렵습니다.
자신 스스로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결정했을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은 살아가는데 별로 쓸모가 없다.」라고 말하는 일도 있습니다. 혹은 주위로부터 「아무도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누구나 하고 있는 것을 하세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들 모든 일이 위의 게송에서 말하는 parissaya(위험)인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버려야 한다.」라는 입장입니다.
부처님도 아무 주저없이 왕위를 버렸습니다.
「선우와 만나 어울린다면 무엇을 버려도 괜찮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확대 해석해서 극단적으로 달려선 안 됩니다. 지금까지 사이좋게 지내 온 사람들이 자신을 방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비록 자신을 성장시켜 줄 수 없는 사람들이라도 자신의 성장을 응원해 준다면 「위험」이 되지 않습니다. 수행을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사회를 등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하게 성공도 하면서 위험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면 친구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정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현명하여 올바른 길로 이끄는 선우인지, 누가 어리석어 나쁜 방향으로 이끄는 친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악인이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따금 그런 것을 말했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장난치는 것뿐입니다.
우리도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선우인지 나쁜 친구인지 모릅니다.
3.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분별법
■판단 착오가 불행을 부른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선우와 나쁜 친구를 구별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판단 착오로 악인을 선우라고 생각해 버리면, 우리의 인생 그 자체가 파멸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우·나쁜 친구의 판단은 결코 간단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해탈에 이르는 일도 선우의 지도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한 선우를 만난 적이 없다」고 수행을 뒷전으로 한다고 해도, 결코 일순간도 뒷전에 둘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이 세상, 인간의 사회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은 행복하고 밝게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날의 생활 속에서도 올바른 선우와 나쁜 친구를 구별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판단 착오를 범해 버립니다. 그래서 그만큼 고생하지 않아도, 고민하지 않아도 좋은 인생인데, 필요 이상으로 괴로워하거나, 고민하거나 하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나쁜 친구는 지갑에 구멍을 뚫는다■
노력하여 모은 재산을 구멍이 뚫린 물통과 같이 쓸데없이 새어 사라져 버리는 원인의 한 가지는 나쁜 친구와 어울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당시의 사회에서 볼 수 있던 나쁜 친구들을 예로 들어 친절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도박꾼(dhuttā),
방종자(soṇḍā:이성·음식·술 등 무엇에라도 쉽게 빠져 버리는 심약한 성격자),
술꾼(pipāsā : <한잔하고 싶은> 갈증, 갈망이 많은 자),
사기꾼(nekatikā :상대가 눈치채지 않게 교묘하게 속이는 자),
기만자(vañcanikā:어긋나게 허위로 속이는 자),
폭력자(sāhasikā)라고 하는 6종류의 나쁜 인간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자신의 재산은 구멍 뚫린 항아리로부터 물이 새듯이 사라져 버립니다.」
나쁜 친구를 구별하여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설명으로는 부족하다고 부처님은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누구와 사이좋게 지낼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진지하게 임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한층 더 자세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친구처럼 보여도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오히려 나쁜 친구라고 봐야 할 사람들이 4종류가 있습니다. 상대에게 악의를 갖고 있는데도 친절한 척 가면을 써서 상대를 불행에 빠뜨리는 사람들인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입니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에 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전에 말한 6종류의 나쁜 친구는 선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난폭한 사람이면 곧바로 알 수 있으니까 관계를 끊는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제일 질이 나쁜 것은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입니다.
지금부터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4종류의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을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3-1. 네 종류의 Mittapaṭirūpaka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
■①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Aññadatthuhara (안냐닷투하라)■
「재가의 젊은이여!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의 첫 번째는 「눈앞의 이익을 탐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는 다음의 4가지 특징으로부터 알아야 한다.
첫 번째의 특징은 aññadatthuharo hoti(어떤 것이든 얻어서 돌아간다. 단지 남의 것을 얻을 뿐이다)
두 번째는 appenabahumicchati(조금 주고 바라는 것은 많다)
세 번째는 bhayassakiccaṃkaroti(자신에게 위험이 생기면 비굴한 노예와 같이 상대에게 능글맞게 친하게 지낸다)
네 번째는 sevati atthakāraṇā(자신에게 무엇인가 이익이 있을 때에만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이 4가지의 특징으로부터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나쁜 친구라고 구별하여 판단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의 특징인 「안냐닷투하라」의 의미인데, aññadatthu는 「어찌되었던, 반드시」, hara는 「가지고 돌아간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남의 것을 얻을 뿐인 사람,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라고 의역할 수 있습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매우 칭찬해 주지만, 이 칭찬하는 방법이 조금 다릅니다. 「나도 갖고 싶다, 내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어서 유감스럽다, 부럽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칭찬합니다. 듣고 있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그것을 주지 않으면 기분 나쁜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버립니다. 「이 사람이 이것을 받으면 몹시 기쁠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해서, 그것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준 사람도 별로 손해 본 기분은 들지 않지만 횟수가 거듭되면 상당한 손해가 됩니다. 오래도록 미량의 독을 맛있는 음식에 섞어 천천히 죽이는 것과 같은 사람입니다. 손해 보는 측은 「상대는 친구니까」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친구에게 친절하게 하는 사람의 훌륭한 감정을 악용해서 희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두 번째의 특징인 「조금 주고 바라는 것은 많다」라고 것은 알기 쉬운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나쁜 친구라고 하는 자는 쉽게 정체가 발각될 만큼 얼간이가 아닙니다. 나쁜 친구를 간단하게 간파할 수가 있다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이 상식적인 기브 앤 테이크의 인간관계를 능숙하게 연기합니다. 친구 관계의 기브 앤 테이크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집에서 응급환자가 생겼다고 합시다. 자신에게는 돌볼 아이가 있는데, 철야로 간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친구가 와서, 「너는 간병하는데 신경 쓰라. 아이는 우리 집에 데려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이고, 놀아도 주고, 목욕도 시켜서 재울게. 내일 학교에 잘 보내 줄 테니 걱정말고 나에게 맡겨라」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아이 한 사람을 돌봐 주는 것이 그 친구에게 있어서는 아무 일도 아닌 오히려 즐거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제안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일입니다. 「하루 아이를 돌보면 얼마 정도의 답례를 하면 좋은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피차일반인 것입니다.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이 도와주면 좋습니다. 도와주는 측에서는 별일 아니지만 도움받는 측에서는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 돕는 올바른 인간관계는 이러한 것입니다. 친구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할 때는 상대에게 있어서 부담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이 법칙은 없습니다. 주는 경우도 받는 측에게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을 줍니다. 처치 곤란한 것 등을 억지로 줍니다. 혹은 정말로 시시한 것에 불필요한 부가가치를 붙입니다.
예를 들어 「이 무거운 것을 강원도에서 직접 내가 캐서 보따리에 넣어 가져 왔다」라고 말하며 1킬로 정도의 고구마를 줍니다. 받는 측은 거절하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필요 없는 고구마를 받아야 하는 상태가 됩니다. 거기에서 문제는 끝나지 않습니다. 상대는 기브 앤 테이크의 감정에 편승해서 상당한 답례를 요구합니다.
세 번째의 특징은 「자신에게 걱정거리가 생기거나 위험을 당하면 비굴하게 노예와 같이 뭐든지 해 준다.」 그러나 상대의 힘으로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했을 때에는 노예는커녕 연락마저도 없습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만 얼굴을 내미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는 즐거운 일인데 이러한 사람과 어울리는 경우는 언제나 도와주는 것뿐으로 손해만 볼 뿐,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네 번째의 특징은 알기 쉽습니다. 자신의 용무가 있을 때, 자신에게 이익이 있을 때만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보통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닙니다. 내 쪽에서 용무가 있을 경우에는 변명을 하며 잘 도망칩니다. 만나주지 않습니다.
이 4가지의 특징으로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라고 하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선우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나쁜 친구」라고 하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의 첫 번째는 언제라도 자신의 형편밖에 생각하지 않는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②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Vacīparama(와찌-빠라마)■
Vacī는 「말」, parama는 「최상의」. vacīparama는 「언설이 뛰어난 자, 최상의 말을 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즉,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입만 살아있어 능숙하게 다 할 듯이 말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는 「수다쟁이」라고 명명해 둡시다.
이런 자들은 다음의 4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첫 번째의 특징은 atītena paṭisantharati(과거 자신의 공로에 대한 말로 대응한다)
두 번째의 특징은 anāgatena paṭisantharati(장래 자신의 역할에 대한 말로 대응한다)
세 번째의 특징은 niratthakena saṅgaṇhāti(그냥 무의미한 말(빈말, 공허한 선의)로 대응한다)
네 번째의 특징은 paccuppannesu kiccesu byasanaṁ dasseti(도와주고 해야 할 일이 닥치면, 형편이 나쁘다고 변명한다)
이것들을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알기 쉽게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특징을 예로 들면,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친구로부터 빌리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지난달에 부탁했다면 그 두 배도 빌려줄 수 있었는데 유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지난주라면 좋았는데, 어제라면 좋았는데」 등 무언가 과거의 일을 말합니다. 빌리려고 한 친구는 자신의 부탁을 딱 거절당했다고 단정 짓지 못합니다. 정말로 좋은 친구라고 착각하며 맨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다음 달이라면, 내년이라면」이라고 장래의 일을 말하며, 친구를 돕지 않고 도망칩니다.
세 번째의 무의미한 말로 대응하는 예를 들겠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겨 「내가 기르는 개를 잠시 맡아주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합시다.
친구라면 「좋아」라고 기분 좋게 돌봐 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쁜 친구는 무의미한 말로 「친절」하게만 대응합니다. 「개라는 것은 주인에게 큰 변화가 생겨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정신적으로 곤경에 빠져 나중에 통제하기 힘들게 된다. 그것은 잘 알지요? 그래서 개가 우울증에 빠지면 주인을 신뢰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다른 사람이 먹이를 주면 전혀 먹지 않는 개도 있다. 그래도 나는 책임 못 진다」라고 친절을 가장한 공허한 말을 합니다.
친구는 「친절하게 좋은 충고를 해 주었다」라고 착각하며 돌아갑니다. 결과적으로는 개를 맡아 달라고 두 번 다시 부탁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친구다」라는 전도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네 번째의 특징은 이와 같이 이해합시다.
여름휴가에 친구들이 모여 바비큐 요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곳에서는 모두 협력해서 자신이 맡은 바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중에는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양파를 벗겨 주세요.」라고 말하면 「나는 양파를 까면 눈물이 나오는 알레르기 반응이 있기 때문에 집에서도 다른 사람이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구마 다듬는 것을 부탁하면 「당신은 프로같이 재빠르고 능숙한데, 내가 하면 하루 종일 걸릴지도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모두가 도와서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그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주변이 좋아서 그가 일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않게 합니다. 모두들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이 중간에 있으면서 재미있는 말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라는 착각으로 끝납니다.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은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 」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어울려도 그들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친구다」라는 기분을 잘 유지시켜 주므로, 이쪽에서는 친구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을 뭐든지 해 주는 처지가 됩니다. 서로 돕는 친구는 아니라, 일방적으로 도와줄 뿐인 사람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③ 아첨하는 사람:Anuppiyabhāṇī (아눕삐야바-니-)■
Piya는 「마음에 드는, 기뻐하는」이라는 의미이고, anu는 「~에 따라서」라는 의미입니다. Bhāṇī는 「말하는 사람」입니다. 즉, Anuppiyabhāṇī가 되면 「상대의 마음에 들도록 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은 〈입을 맞추는〉 성격입니다. 언제라도 그 사람에 맞추어, 반대하는 일 없이 뭐든지 「네, 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잘못 알면 친절한 사람같이 들리겠지만, 사실은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입니다. 그런 자는 「아첨꾼」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아첨하는 사람」이란 나쁜 친구를 알기 위한 특징이 4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의 특징은 pāpakaṁpissa anujānāti(악행에도 찬성한다)
두 번째의 특징은 kalyāṇaṁpissa anujānāti(선행에도 찬성한다)
세 번째의 특징은 sammukhāssa vaṇṇaṁ bhāsati(눈앞에서는 칭찬하며 말한다)
네 번째의 특징은 parammukhāssa avaṇṇaṁ bhāsati(뒤돌아서는 비난하며 말한다)
이것들을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나쁜 일,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제 회사 돈을 횡령하지 않으면 월급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하면, 이 사람은 주위를 엿보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찬성한다. 「들키지 않으면 아무 일 없을 거다. 회사도 우리들을 실컷 일하게 해 돈을 벌고 있는데, 상여금도 새 발의 피같이 준다. 그 정도의 돈은 회사에 어떤 손해도 없다」라고 말하며 찬성하고 아군이 됩니다.
다음은 좋은 일, 예를 들어 「이번 일요일에 자원봉사로 공원을 청소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혹은 양로원에 도와주러 간다.」라고 좋은 일을 말했다고 하면, 그것도 기분 좋게 찬성한다.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아무쪼록 노력해라」라고 응원합니다. 이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특징입니다. 이와 같이 선이든지 악이든지, 무분별하게 양손을 들어 찬성한다고 하는, 상대에게 영합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성향의 사람은 친구와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만은 그 친구를 좋게 칭찬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없는 곳에서는 욕을 하거나 비판하거나 합니다. 이것은 세 번째와 네 번째의 특징입니다. 친구가 좋은 행위를 해도 뒤돌아서는 「내가 열심히 도와주고 응원해주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나쁜 일의 경우는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쁜 짓을 한다. 주의를 줘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다 잘못되면 우리들까지 피해를 준다.」 등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네, 네」라고 아첨하며 입을 맞추어 주어도, 결국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정치가들도 보좌관 등을 「아첨하는 사람」을 선택하면 부패 정치가 되어 정치 생명도 끊어지게 되어 버립니다. 그때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나쁜 행위까지도 공공연히 증언합니다. 「아첨하는 사람」에게 잡아 홀리면, 어떤 훌륭한 사람이라도 불행에 빠집니다.
친구라면, 무슨 일이 있으면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고 실제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첨하는 사람」도 친구에게 진지하게 가르쳐 주고 도와준다는 얼굴을 하며 교묘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남김없이 단순한 「네, 네」라는 결론으로 끝나서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만나고 있을 때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무엇을 해도 칭찬하는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주위에도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나쁜 친구에게 감쪽같이 속습니다. 나쁜 친구인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뒤돌아서 욕을 하는 사람이니까 신뢰성은 제로이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사람을 신뢰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어집니다.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자신의 아군이다」라는 착각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입을 모아 찬성하고 응원하지만, 실제로 하게 되면 아무것도 해주지 않습니다. 나쁜 일의 경우는 협력했다면 자신의 손도 더러워지기 때문에 혼자만 조심합니다. 좋은 일의 경우도 협력하지 않고 뒤돌아서서 「내가 말해주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덕으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대체로 꼬드기고, 아첨하고, 칭찬받는 것에 약합니다. 칭찬해 주자마자 본궤도에 오릅니다. 칭찬한 사람을 좋아하고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어집니다. 이 약점을 갖고 있는 한은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안심하고 살 수 없습니다. 칭찬하는 사람은 칭찬하는 것만으로 끝나지만, 그 사람을 친구로 둔 사람은 자신이 모든 일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첨하는 사람」도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만 손해 볼 뿐입니다. 손해뿐 아니라, 인생이 완전하게 파괴되어 버릴 수도 충분히 있습니다.
■④ 지옥으로 불러들이는 사람:Apāyasahāya(아빠-야사하-야)■
Apāya는 「지옥」, sahāya는 「동료」입니다. 고통스런 세계로 떨어트리는 사람,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쁜 친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도 4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의 특징은 surāmeraya majjappamādaṭṭhānānuyoge sahāyo hoti(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이나 약물들을 같이 하기 위해 동료가 된다)
두 번째의 특징은 vikāla visikhā cariyānuyoge sahāyo hoti(외출해선 안 되는 시간에 밤놀이를 위해서 동료가 된다)
세 번째의 특징은 samajjābhicaraṇe sahāyo hoti(음악·춤·축제 등에 빠지기 위해서 동료가 된다)
네 번째의 특징은 jūtappamādaṭṭhānānuyoge sahāyo hoti(방일의 원인이 되는 도박에 빠지기 위해서 동료가 된다)
나쁜 일을 하는 동료는 만들기 쉽습니다. 타락하는 길이면 친구는 많이 있습니다. 이 4개의 항목을 읽은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술친구라는 것은 술을 마실 때에만 어울려 주는 사람입니다. 다른 일이 있을 때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다. 「오늘 밤 함께 한잔할까?」라고 권하면 「네, 만납시다!」라고 기꺼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가족문제의 상담이나 회사일의 상담 등에는 응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하고는 관계없다. 그런 일은 모른다」라는 태도로 도망쳐 버립니다.
우리는 「술 정도는 괜찮다. 왜 나쁘냐?」라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술은 사람을 빠지게 한다.」라는 것도 또한 사실인 것입니다. 「한 방울의 술도 마셔선 안 된다」라는 것은 불교도의 계율입니다. 술을 금지한 것은 인류에게 술이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술은 사람을 의존시키는 것입니다. 머리를 혼란시키고, 뇌세포에 악영향을 줍니다. 사람이 흉악한 범죄 등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경우는 술의 힘을 빌립니다. 평상시는 점잖은 사람인데 술에 취하면 죄를 짓는 일도 있습니다.
밤놀이도, 도박도 의존증을 일으킵니다. 음악 공연·영화·춤·축제 등도 적당함을 모르면 위험합니다. 그러한 즐길 거리는 얼마든지 있으므로 의존증에 걸립니다.
나쁜 것에는 아주 간단하게 동반할 수 있습니다. 나쁜 친구들의 경우 동료의식이 단단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천상으로의 안내인이 아니라, 지옥으로 불러들이는 나쁜 친구입니다. 절대로 피해야 할 인간인 것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므로, 나쁜 친구인 줄 알아차리지 못하고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위험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나쁜 친구의 성격이다」라고 알아도, 그 사람에게 화를 내서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조심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영향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것이기에, 자신이 나쁜 영향을 받지 않게 경우에 따라서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나쁜 친구가 화내며 멀어져 갔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손해도 없습니다. 그것은 더 바랄 나위 없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선우를 잃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대단한 손실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 선우는 어떤 사람들인지, 진정한 친구는 어떠한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3-2. 네 종류의 Suhadamitta 「선심을 지닌 친구들」
■① 형(오빠, 아버지)과 같은 친구(도움을 주는 친구):Upakāra(우빠까-라)■
Upakāra는 「잘 도와준다.」라는 의미입니다. 친구가 곤란했을 때에 손을 뻗쳐 지켜 주는 성격의 사람입니다. 언제나 걱정해주고, 불행하게 안 되게, 실패하지 않게, 잘 인도해 주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성격의 관계라고 이해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누구와라도 어울릴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성격적으로 나태한 사람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쁜 친구에 대한 설명도, 선우에 대한 설명도 달리 말하면 사람의 성격을 배우는 것입니다.
친구들을 지켜주고 싶어 하고, 친구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찮게 간섭한다.」고 생각해 그러한 사람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떤 인간이라도 혼자서 완벽하게 온전히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하고 잘 사는 것보다 야무지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아버지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으면 인생은 곤란을 당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삽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위없는 재산입니다.
이와 같은 친구는 아래의 특징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 첫 번째 pamattaṁ rakkhanti(친구가 무기력할 때에 지켜준다)
· 두 번째 pamattassa sāpateyyaṁ rakkhanti(친구가 무기력하게 되었을 때에 그 재산을 지켜준다)
· 세 번째 bhītassa saraṇaṁ honti(친구가 무서워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안심시켜준다)
· 네 번째 āpadāsu na vijahanti(친구가 곤란한 일이 있을 때에는 자신에게 일이 있어도 몇 배의 힘으로 도와준다)
· 다섯 번째 apara-pajaṁ ca pissa paṭipūjenti(친구의 가족, 자식까지도 걱정해주고 친절하게 대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무기력」이라고 하는 말은 빨리어의 pamatta(빠맛따, 방일)를 쉽게 번역한 것입니다. 매순간 자신의 행위를 알아차리고 제대로 생활하는 것이 appamatta(압빠맛따, 불방일)인 것입니다. 위빳사나 수행으로 알아차림(sati)을 실천하는 일도 불방일의 삶의 방법입니다.
방일한 경우란 순간순간의 행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정에 휩쓸려 그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방일(pamatta)과 불방일(appamatta)의 의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이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그처럼 엄밀한 의미는 가지지 않습니다. 「야무지지 못하게 된, 흥분해 버린, 신이 난, 몹시 취해 버린」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더하여 병에 굴복하여 판단 능력이 약해졌을 때에도 사용합니다. 그래서 빠맛따(pamatta)의 의미는 「방일」이지만, 여기서의 경우는 「무기력」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때 무기력하게 됩니까? 술에 취하면 깜빡하여 지갑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택시를 타도 행선지마저 운전기사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취해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걱정하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자신의 몸도 재산도 지켜줍니다. 아이가 두들겨 맞았다든지, 회사에서 해고당했다든지, 정신적으로 낙담해 버리는 일이 가끔 있는데, 그럴 때에 정신적 충격이나 우울함으로 판단 능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걱정하는 「아버지 역할」이 있다면, 나쁜 일 등으로 인해 불행해지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갑자기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돌아가신다면 정신적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친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의 친구가 무서워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안심시켜 준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공포감에 습격당하는 일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변 친구가 천재지변을 당하거나, 도둑을 맞거나, 옛날에 저지른 나쁜 일등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협박당하거나, 부정이 발각되거나 할 경우에는 공포감에 습격당합니다. 그럴 때에 친한 친구가 아니면 「무관심」으로 도망쳐 버립니다. 「아버지 역할」의 친구는 화를 내면서도 도와줍니다. 친구를 단념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는 사람은 자신의 용무가 있으면 친구가 곤란한 일이 있어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네 번째의 사람은 친구가 곤란한 일이 있을 때에는 자신에게 일이 있어도 무시하지 않고 몇 배의 힘으로 도와줍니다. 장사를 한다면 자금지원만이 아니라 잘되도록 조언까지 합니다.
다섯 번째는 친구의 가족이나 후손까지도 존중하고 걱정해주며 친절하게 대하는 친구를 말합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무엇인가 해 줄 일이 있으면 흔쾌히 행합니다. 친구에 대한 신뢰나 애정은 친구와 서로 관련되어있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널리 퍼집니다. 「당신은 좋지만 당신의 아이는 싫다」라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재혼했는데 상대방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학대하고, 쫓아버리는 경우가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상대를 정말로 사랑해 결혼했다면 상대의 아이까지도 사랑할 것입니다. 친구는 그와 같이 가족들이나 관계자들까지도 자신의 친구와 똑같이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에게 있어 「아버지 같다!」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는 진정한 선우이고, 이와 같은 것들은 친구의 친절을 돌려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② 쌍둥이와 같은 친구(즐거움과 괴로움을 나누는 친구):Samāna sukhadukkha(사마-나 수카둑카)■
Samāna는 「같다」. Sukhadukkha는 「즐거움과 괴로움」. 즐거울 때도 괴로울 때도 변함없이 친구로 있어 주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의 가계가 손해 보면 마치 자신이 손해 본 것 같은 느낌으로 매우 진지해지고, 친구의 장사가 잘되어 가면 자기 자신이 이득을 본 것처럼 기뻐합니다. 그처럼 일심동체와 같은 관계입니다.
이러한 선우도 4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 첫 번째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 두 번째는 상대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고 끝까지 지킨다.
· 세 번째는 곤란에 빠졌을 때에도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
· 네 번째는 친구를 위해서 생명마저도 버릴 수 있다는 마음이다.
만약 아는 사람이 우리에게 자신의 비밀을 아무 주저 없이 털어놓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철저하게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경우에 자신은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면, 상대는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데 자신은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서로의 비밀을 지키는 관계는 일심동체의 관계인 것입니다. 비밀의 교환을 할 수 있다면, 단단한 인연을 가진 친구 관계는 쉽게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외로 많은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말할 수 없는 것, 아내에게 말할 수 없는 것,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것, 알려지면 곤란한 것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협력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도 있기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혼자 고민하는 처지가 됩니다. 그 경우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친구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행복합니다.
일심동체와 같은 친구가 있으면 자신이 불행한 일을 당해도 마음의 괴로움은 간단하게 사라집니다. 친구도 자기 자신의 불행처럼 생각해 주므로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어 해결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네 번째의 「친구를 위해서 생명마저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과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사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과 고난도 아끼지 않는다.」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한 현상은 부모와 자식 관계, 친척 관계에서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③ 선배와 같은 친구(충고를 해주는 친구):Atthakkhāyī(앗탁카-이-)■
Attha는 「의미가 있는 것, 도움이 되는 것」, khāyī는 「가르쳐 준다」. 언제라도 잘 상담에 응해주고 충고해 주는, 의미 있고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일을 가르쳐 주는 친구입니다.
인간은 모두 완벽하지 않고 본래 불완전한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외면적으로만 멀쩡한 것처럼 보이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누가 언제라도 무엇을 가르쳐 주는 고문과 같은 친구가 필요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이런 좋지 않은 일을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상담하면 다양하게 가르쳐 주고 도와주는 그러한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정신적 발전을 돕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선우도 4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 첫 번째는 악을 그만두게 한다.
· 두 번째는 선을 짓게 한다.
· 세 번째는 모르는 것을 가르쳐준다.
· 네 번째는 천상에 이르는 길을 말해준다.
이것들 4가지의 특징을 보면, 이 친구는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은 아니고, 자신이 존경해야 할 손윗사람과 같습니다. 우리가 은사라고 우러러보는 분들은 이런 친구의 범주에 들어갈 것입니다. 불교는 「생명은 평등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수직 관계도 논리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불교도에게 있어서 이 손윗사람의 존재입니다. 「붓다는 모든 생명보다 뛰어나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나는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선우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조차도 「구름 위의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서 「선우」라는 입장을 취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좋은 친구라는 것은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과 손윗사람의 친척, 교사들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선배와 같은 친구(atthakkhāyī)가 아니면 안 됩니다. 「아버지는 무섭고, 어머니는 잔소리꾼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귀찮고, 선생님은 싫다」라는 태도는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모두 자신의 선우입니다. 「이 세상에 신뢰할 수 있는 선우는 있을 리도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의 일로 애를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반드시 「선배 친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기를 바랍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출가한 스님들도 재가자에게는 「선배 친구」의 입장인 것입니다. 스님들이라고 모두 우러러볼 수 있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러러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출가자는 재가자의 「선배 친구」인 것입니다. 불교도에게 있어서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재가자들이 서로서로 돕게 인도하고, 걱정거리가 있으면 들어주고 불교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보시를 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나쁜 행위에 대해서는 엄하게 야단치기도 합니다. 재가에서 성공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사후는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선행도 하시오」라고 충고합니다. 또한 자기 보다 인생 경험도 많고, 지식도 넘치는 손윗사람들과 어울리면, 아직도 모르는 것을 많이 가르쳐 줍니다.
출가자도 「선우」라는 느낌으로 만나면 보통은 알 수 없는 방법도, 진리도 가르쳐 줍니다. 「선배 친구」가 있으면 누구라도 모든 면에서 성장합니다. 나쁜 일을 멈추게 해 주므로 결코 타락할 일이 없습니다.
「선우를 만난 행운이 있으면, 불도를 완성해 완전한 해탈도 얻을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④ 언니(누나)와 같은 친구(마음에 맞는 친구):Anukampaka(아누깜빠까)■
Anukampaka는 「걱정하는, 연민히 여기는, 동정하는」이라는 의미입니다. 친구가 불행하게 되면 자신이 불행하게 된 것처럼 함께 되어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편, 동료, 동아리」 등으로 다르게 나타낼 수 있는 인간관계입니다. 그처럼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어울리는 친구 관계입니다. 이러한 동지적 범주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좋은 친구, 고상한 친구 혹은 진심을 가진 친구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그런 친구는 인정이 많은 친구로서 자기 친구의 행복과 불행을 똑같은 분량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친구는 친구가 불행 속에 신음할 때 친구를 위로하고, 친구가 행운을 즐길 때 그와 함께 즐깁니다. 그리고 이런 친구는 자기 자신을 중상하는 자에 대해서 지켜주고, 친구에게 좋게 말하는 사람을 칭찬하여 줍니다.
이와 같이 이 선우도 4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 첫 번째는 친구의 치욕을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 두 번째는 친구의 번영을 진심으로 기뻐한다.
· 세 번째는 친구를 비난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
· 네 번째는 친구를 칭찬하는 것을 엄호하고 지원한다.
Anukampaka는 자신을 잘 이해해 주는 동료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혹은 자신의 안위만을 바라고 굽실거리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는 아닙니다. 선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친구를 비판할 때에도 진실한 친구는 자신의 친구를 변호합니다. 친구가 불행하게 되면 싫은 기분이 됩니다. 성공하면 「친구가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여기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이 친구와의 관계는 자신과 같은 수준인 것입니다.
「형(오빠)과 같은 친구」는 자신에 대해서 좋은 일을 열심히 하겠지요. 「쌍둥이와 같은 친구」는 일심동체 관계이기 때문에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의사는 들어주어 주지 않는 것도 있겠지요. 「선배 친구」는 경우에 따라서 꾸짖거나 야단치기도 하겠지요. 「언니(누나)와 같은 친구」는 주제넘게 참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친구」라고 하면 4번째의 친구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네 가지 중에서 일부분만을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고, 전부를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를 선택하는데 있어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의존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할 때 자기의 동료들에게 자신도 참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선우에는 4가지의 부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upakāra(형(오빠)과 같은 친구)의 성격만을 가진 사람이나, atthakkhāyī(선배와 같은 친구)의 성격만을 가진 사람만을 찾아내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또한 한 사람의 사람에게 upakāra의 특징 2가지와 atthakkhāyī의 특징이 한 가지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리해 말하면 「선우」란 마음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단념하지 않는, 서로 상대를 진실로 걱정하는 친구 관계입니다.
이제까지 선우를 소중히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설명했지만, 자신이 그러한 친구에 대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여기 부처님께서 그 대답을 하셨습니다.
■친구에 대해서 지켜야 할 조건이 5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dāna(다-나)-주는 것, 베푸는 것입니다.
Dāna는 「보시」라고 번역되는 말이지만, 이 경우는 「준다」라는 의미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여러 가지의 상호작용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일을 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겠습니까? 친구에게는 그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를 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두 번째는 peyyavajja(뻬이야왓자)-애어(愛語)입니다.
선우의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난폭한 말을 사용하지 않고, 부드러운 말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다지 상대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감정, 자신의 이기심을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이것은 듣는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행위입니다. 제멋대로 주관적인 감정을 드러내 버리면 상대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 됩니다. 누구에 대해서도 난폭한 말은 안 되는 것입니다. 선우와 어울릴 때 애어를 사용해 편안한 마음이 되도록 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사용법에 의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말을 실천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attha-cariyā(앗타 짜리야-)-친구를 이롭게 하는 것(利行)입니다.
유익한 일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선우에게 도움이 되도록 배려하며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되는 사람은 사회에 있어서도 보물인 것입니다.
네 번째는 samānattatā(사마-낫따따-) - 자신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同事)입니다.
상대가 「훌륭하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이 「훌륭하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콤플렉스가 됩니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해가 됩니다.
다섯 번째는 avisaṁvādanatā(아위상와-다나따-)-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고,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으로 친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여야 합니다.
■선우는 보물입니다■
「선우」는 불교 전문 용어입니다. 세상에서의 선우는 동료이지만, 불교에서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부처님이나 부처님 제자들도 모두 「선우」인 것입니다. 또한 「친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손윗사람이라도 생명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존재는 동년배보다 손윗사람에게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선우」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외면해 버립니다. 선우는 상대를 치켜세우지 않고 걱정하며 꾸짖거나 하므로 귀찮게 여겨버립니다. 그래서 「선우는 놓치기 쉬운 것」입니다.
누구든 선우가 없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우는 많지 않아도 됩니다. 진정한 선우는 한 사람만 있어도 최고로 행복합니다. 두 명, 세 명이면 너무나 충분할 정도입니다.
부처님도 제자들에게 「나는 여러분의 선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부처님과 나는 친구 사이다」 라고 생각하는 제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자들은 우리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이끌어 주는 부모로서 부처님을 존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제자들은 서로 몹시 친애하는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스승을 대하고 있었습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대체로 표면적인 관계로 맺어집니다. 회사의 모든 이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표면적인 사이의 좋은 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말하는 「친구」는 다만 함께 있는 동료라고 할 정도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깊은 관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만약 학교나 회사에서 동료나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했다고 해도 마음에 깊게 새기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정말로 인격에 영향을 받는 것은 선우로부터 뿐이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존중하며 선우를 대하면 잘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4종류의 선우를 진정한 친구라고 알아, 진심으로 그 친구에게 힘써라. 모친이 자신의 아이를 지키듯이, 그렇게 진지하고 소중하게 선우를 지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우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재산으로 보물입니다. 정말로 좋은 친구가 있다면 자신의 생명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나쁜 친구, 선우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한 성향을 이해해서 자신도 누군가의 선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선우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그 혜택을 다른 누군가에게 줍니다. 자신도 누군가의 선우가 되어 그 상대를 진실로 걱정하고 도움을 줍니다. 분명한 것은 혜택을 받을 뿐인 인생에서는 좋은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출처: https://cafe.naver.com/buddhayana1/1227
*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 『망갈라 숫따』 (20140715)
1. Bālāsevana 어리석은 자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경전 「보름날 밤의 설법」에서 부처님께서는 나쁜 사람과의 교제와 선한 사람과의 교제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쁜 사람은 친구나 동행자로서 다음과 같은 사람을 선택합니다. 신뢰가 없는 사람. 행동에 대해 수치스러움을 알지 못하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 정신적인 가르침에 관한 이해를 갖지 않는 사람. 게으르고 알아차림이 없는 사람. 지혜가 빠져 있는 사람.」 이렇듯이 나쁜 친구를 선택해 버린 결과,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자타를 해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여, 슬픔과 괴로움을 만납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속하여, 「그것과 대조적으로, 선한 사람은 담마를 잘 배우고, 마음을 경작하는 것에 노력하여 알아차림이 있고, 지혜를 갖추고 있는 사람을 친구로 선택합니다. 그러한 선우의 힘을 조언자로서 안내인으로서 빌리는 선한 사람은 이들 선우와 같은 자질을 스스로의 이상으로 해서 추구하여 스스로의 성질 안에 흡수합니다. 이와 같이 해서 스스로의 해방에 가까워지게 된 선한 사람은 이번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의 등대가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직도 어두운 곳에서 앞도 못보고 방황하고 있는 사람을 고무해서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은 자신이 조언이나 안내를 하는 차례가 됩니다.」
길상경에서 「인간이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부처님의 첫 번째 대답은 「어리석은 자와 어울리지 마라!」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빨리어로 발라(bāla)라고 합니다. 발라는 「연하의 사람」이라는 의미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연상·연하, 손윗사람·아랫사람은 연령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 뛰어난지 아닌지, 선악의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라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인격이 뛰어난 지혜가 있는 사람은 비록 7살이어도 연상인 것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누구와 교제해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은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구와라도 교제해 닥치는 대로 영향을 받아 어찌할 바를 몰라 할 것이 아니라, 친구를 제대로 선택해야 합니다. 나쁜 친구와는 교제하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며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람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쭉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환경, 주위의 사회를 언제나 좋은 인간으로 둘러싸이도록 해 두면 행복하게 될 수 있습니다.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낸다.」라는 것은 조금 무리한 이야기입니다. 이상주의 같지만 실행은 어렵습니다. 「누구와도 싱글벙글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지나치게 노력하다 보면, 결정적일 때 기분이 나빠지고 낙담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이 필요합니다. 보통 인간에게는 그만큼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24시간 밖에 없습니다. 그중에 사람과 교제하는 시간은 또 한정되어 버리기에, 가능한 한 사람을 선택해 교제하게 됩니다.
■2종류의 나쁜 친구■
나쁜 친구라는 것은 2가지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속적인 나쁜 친구. 이른바 불친절한 친구,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친구입니다. 뒤돌아서서 욕을 하거나, 쓸데없는 일을 해서 방해를 하거나 하는 사람은 교제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 경우는 스스로도 「싫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과는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어울리든지, 전혀 어울리지 않든지 해야 합니다.
두 번째의 불교에서 말하는 「나쁜 친구」라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불교적으로 「나쁜 친구」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자신에게 데미지를 주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진심으로 친절하게 해 주는 사람이라도, 나쁜 방향으로, 죄의 방향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친구는 나쁜 친구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어느 친구가 당신에게 마약을 권하고 마약을 들이마시는 패거리가 되라고 한다면, 그리고 「만약 들키면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고 너는 감싸 줄게」라고 진심으로 말해 주었다고 합시다. 세상에서는 나쁜 일을 들키면 상대에게 죄를 씌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사람이 설령 「내가 당신의 죄도 뒤집어 써 줄게」라고 말해 준다고 해도, 권하는 것이 마약이라면 미안하지만 「당신과 사이좋게 지내면, 나는 반드시 나빠진다.」라고 판단하여 어울리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친구는 죄의 안내인■
인간은 죄를 범하지 말고, 선행을 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를 범해 타락해 버리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확실히 불행하게 됩니다.
약간의 돈을 손해 보았다고 해도 불행하게는 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해고당했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힘들어도 다른 일을 찾으면 됩니다. 정말로 불행하게 되는 것은 죄를 범했을 때입니다. 죄를 범해 버리면 아무리 돈이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를 범해선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는 뚜렷합니다. 선행을 하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인정받아도 인정받지 못해도 정말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뚜렷합니다.
경전에는 술을 권하는 사람, 내기(도박)를 권하는 사람, 밤놀이를 권하는 사람, 살생이나 도둑질 등의 불선행을 권하는 사람, 이러한 4종류의 사람들이 나쁜 친구라고 써져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이 되거나,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에 걸리거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되거나, 간사한 인간이 되거나, 사기꾼과 같은 인간이 되거나, 변변한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나쁜 친구가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을 나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라고 자르는 것이 좋습니다.
〈싫은 사람〉과 〈나쁜 친구〉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이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쁜 친구〉라고는 한정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이 마음에 든다고 해도 〈선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쁜 친구는 의외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많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나쁘게 물들어 자신도 나쁜 친구가 되어 버립니다.
「부모님은 싫다」 「선생님은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선우입니다. 선우와 나쁜 친구를 구별할 때에는 결코 감정적인 좋고 싫음을 규준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마음에 들거나 싫어지거나 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입니다. 이성에 근거한 결론은 아닙니다. 감정이기 때문에 싫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일도,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일도 감정이 바뀌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친구를 선택할 때는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라는 주관적인 감정은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야 할 것인가, 어울려야 할 것인가」라고 이성에 근거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어울리지는 않는다.」 「싫은 사람이지만, 다양하게 가르쳐 주거나 이끌어 주므로 자주 어울린다.」라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무리하게 없애는 것보다, 이렇게 실행하기는 쉽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면 스트레스가 쌓여 괴로워지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하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또한 좋은 친구와 어울리고 있으면 상대가 자신을 진실로 걱정해 준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므로 싫은 기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짧은 인생을 감정에 좌지우지되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 빠져 불행하게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비록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악에 유혹된다면, 죄를 범하려고 한다면, 그런 것에서 멀어지도록 힘써 노력해야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더 이상 인연을 짓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어울리고 있던 사람들과 싸움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를 짜면 어떻게든 됩니다. 사회적인 입장에서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에 있다면 제대로 분별해서 어울리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지 않게 하면 좋습니다. 「사회적인 입장에서는 아는 사람이지만, 마음의 선우와는 다르다」라고 결정합니다. 마음의 맑고 깨끗함, 마음의 평안이야말로 지켜야 할 자신의 프라이버시인 것입니다.
불교를 이해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 몸에 익혀집니다. 자신의 몸을 분명하게 지킬 수가 있습니다. 얼떨결에 악에 유혹되어 버리는 것은 자신 안에 제대로 된 이성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유혹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완고함이 아닙니다. 이성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유부단함이 없는 것입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지혜에 따라 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2. Paṇḍitasevana 현명한 자와 친하게 지낸다.
부처님께서 어느 제자에게 현명한 자에 대한 적절한 대답으로 담마빠다에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결점을 지적하고 비판해 주는 사람을 찾아내면, 그러한 현명한 명민한 상담자를, 숨겨진 보물에의 안내인으로 하여 따라야 하는 것이다」라고.
현자와 어울리는 것은 정신적인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성스러운 마음을 가진 상담자의 비유나 충고는 우리의 마음에 있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선함을 눈뜨게 해서 증장시키는데 있어서 때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경작되어지지 않은 마음은 자기 본위, 이기주의와 공격성이 강하지만, 잘 경작되어진 마음은 현명함, 자기희생이나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연민까지 개발되어집니다.
우리가 직면한 일은 진리(담마)에 따르는 것으로서의 깨달음, 해탈, 그리고 청정으로 이끄는 자질, 선의 경향성을 성장시키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향은 성숙하지 못하고, 공허한 것에 기울기 쉽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광범위한 환경의 끊임없는 영향을 받습니다. 그 영향 가운데에서 가장 힘이 있는 것은 우리가 스승으로서, 조언자로서, 벗을 삼아 존경하는 현명한 동행자입니다.
■행복은 친구 나름■
인간은 다른 사람과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주위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기에 누구와 어울리는가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와 사이좋게 지내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무책임하게 하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서 어떤 결과가 오는지 모르게 됩니다. 「장래는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라는 삶의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한 무책임한 삶의 방법은 타성적인 삶의 방법입니다. 수행해도 지혜가 나타나기 어렵습니다. 장래는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떻게 바뀌어도 나쁘게는 안 되게 계획적으로 사는 것이 불교적입니다. 그래서 어울리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은 사는데 있어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소중한 일입니다.
주위의 영향으로 자신의 인격이 바뀝니다. 자신의 행복도, 불행도, 주위의 환경에 좌우됩니다.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을 관찰해보면 자신의 장래가 보입니다.
■어떻게 되어도 자신의 책임■
스님은 자주 「다른 이의 탓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의 불행도 고민도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니다. 자신의 탓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와 위에 말한 이야기는 모순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순은 아닙니다. 행복도 불행도 극단적으로 자신만의 책임도 아니고,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만의 책임도 아니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되는 방법에 의해 결과가 일어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되는가 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 됩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자신이 철저하게 노력해도, 자신의 주위의 인간관계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적어집니다. 반대로 주위의 사람들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철저하게 노력해도, 자신에게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경우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인생의 행불행은〈자신의 접근방식〉과 〈주위의 인간관계〉, 그 양쪽 모두가 원인이 됩니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개인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의 마음의 관리는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자기책임을 중시하는 것으로 불교에서 말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겨울에 눈길을 걷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밖의 추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겨울의 추위를 바꾸는 일도 불가능합니다. 겨울에 거리를 걷는 사람은 방한복을 몸에 걸치고 안전하게 눈길을 걷습니다. 그처럼 자신을 관리하는 것으로 환경에 대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관리를 한다고 해도, 주위의 사회로부터의 영향은 거대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사막이라고 하는 환경을 선택했다면 물이나 음식도 제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농사짓는데 프로라도 환경을 북극으로 선택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이좋게 어울리는 상대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우는 전부이다■
친구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로 부처님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경전에 설해져 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다존자가,
Upaddhaṁ idaṁ bhante brahmacariyassa yad idaṁ kalyānamittatā klyānasahāyatā kalyānasampavankatā.
「선우가 있는 것, 선우와 함께 있는 것, 선우와 어울리는 것으로 불도의 절반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Mā hevaṁ, ānanda, mā hevaṁ, ānanda.
Sakalaṁ eva hidaṁ, ānanda, brahmacariyaṁ yadidaṁ kalyānamittatā
kalyānasahāyatā kalyānasampavankatā. (상응부 경전 5,2)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선우가 있는것, 선우와 함께 있는 것, 선우와 어울리는 것으로 불도의 절반이 아니라 불도의 모든 것을 완성하는 것이다.」
또 다른 부분에 지혜제일인 사리뿟따 존자께서, 「선우가 있는 것이야말로 불도의 전부입니다」라고 부처님에게 보고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완전히 그대로입니다」라고 동의하셨습니다. (상응부 경전 5,3)
또 다른 부분에서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팔정도를 실천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이 무엇인가 말한다면, 그것은 선우가 있는 것뿐으로, 그것밖에 없습니다.」
(상응부 경전 5,35)
또 어느 날 꼬살라국 왕이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와 같이 부처님에게 말했습니다.
「존귀하신 분, 부처님의 가르침은 완전하게 설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도 선우와 관련될 때에만 한정됩니다. 나쁜 친구와 어울릴 때가 아닙니다.」
부처님은「그대로이다」라고 동의하시면서, 선우와 사귀는 것에 대하여 설법하셨습니다. (상응부 경전 1,87)
좋은 친구는 자신을 제대로 이끌어 주고 좋은 영향을 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인격을 완성시키기 위한 단지 하나의 조건인 것입니다.
어쨌든 천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천한 인간이 됩니다. 뛰어난 사람들과 어울리면 뛰어난 인간이 됩니다. 누군가와 사이좋게 지낸 결과, 자신의 도덕, 자신의 지혜, 자신의 견실한 삶의 방법이 위험해진다면, 그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닙니다. 반대로 어느 친구와 어울리면, 자신의 야무지지 못한 삶이 바뀌게 되고, 확실히 인격이 향상된다면, 그 친구와는 결코 멀어지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요술 망치를 버려도 선우를 잃지 말라■
사람에게 있어서 선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가르쳐 준 구절이 있습니다.
Sace labhetha nipakaṁ sahāyaṁ
Saddhiṁ caraṁ sādhu vihāri dhīraṁ
abhibhuyya sabbāni parissayāni
careyya tenattamano satīmā (숫따니빠따 45, 담마빠다 328번 게송)
만약 〈선하고 현명하여 함께 지낼만한 올바른 동반자〉를 얻었다면,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알아차림을 지녀서, 그와 함께 걸어가라.
이 게송에 나오는 「위험의 극복」이란 선우, 선한 일과 함께 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 재산, 일 등이 방해가 되어 선행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경우는 가족이나 재산 등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의 장벽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 지식인이 되는 것, 유명인이 되는 것, 기록 보관 유지자가 되는 것 등이 사는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아무리 있어도 아주 쉽게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는 모두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보통은 사람이 하려고도 하지 않는 선행을 하는 것, 헌신적으로 되는 것,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 그리고 일체의 집착을 끊어 생을 탈출하는 것(해탈), 그러한 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
선우에 둘러싸여 어울릴 수 있다면 이 사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습니다.
선우에 둘러싸여 어울린다면 재산을 지키는 것이나 명예가 높아지는 것 등의 속세의 가치 등은 쓰레기와 같이 버리게 되어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 사람을 선택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있을까요? 함께 있으면 즐거워서, 취미가 맞아서, 돈이 있어서, 유명인이라서, 권력자라서, 미남 미녀라서 등으로 선택하지는 않나요?
「인간은 서로서로 영향을 주며 성장하는 것이다」를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인격을 위탁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 자신의 동료 중에서 성품이 나빠서 어울리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인연을 자르는 것은 좀처럼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신세를 져 왔다. 일의 동료다. 같은 아파트단지의 사람이다. 선원의 식구다」 등의 이유로 멀어지기 어렵습니다.
자신 스스로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결정했을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은 살아가는데 별로 쓸모가 없다.」라고 말하는 일도 있습니다. 혹은 주위로부터 「아무도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누구나 하고 있는 것을 하세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들 모든 일이 위의 게송에서 말하는 parissaya(위험)인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버려야 한다.」라는 입장입니다.
부처님도 아무 주저없이 왕위를 버렸습니다.
「선우와 만나 어울린다면 무엇을 버려도 괜찮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확대 해석해서 극단적으로 달려선 안 됩니다. 지금까지 사이좋게 지내 온 사람들이 자신을 방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비록 자신을 성장시켜 줄 수 없는 사람들이라도 자신의 성장을 응원해 준다면 「위험」이 되지 않습니다. 수행을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사회를 등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하게 성공도 하면서 위험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면 친구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정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현명하여 올바른 길로 이끄는 선우인지, 누가 어리석어 나쁜 방향으로 이끄는 친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악인이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따금 그런 것을 말했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장난치는 것뿐입니다.
우리도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선우인지 나쁜 친구인지 모릅니다.
3.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분별법
■판단 착오가 불행을 부른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선우와 나쁜 친구를 구별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판단 착오로 악인을 선우라고 생각해 버리면, 우리의 인생 그 자체가 파멸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우·나쁜 친구의 판단은 결코 간단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해탈에 이르는 일도 선우의 지도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한 선우를 만난 적이 없다」고 수행을 뒷전으로 한다고 해도, 결코 일순간도 뒷전에 둘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이 세상, 인간의 사회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은 행복하고 밝게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날의 생활 속에서도 올바른 선우와 나쁜 친구를 구별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판단 착오를 범해 버립니다. 그래서 그만큼 고생하지 않아도, 고민하지 않아도 좋은 인생인데, 필요 이상으로 괴로워하거나, 고민하거나 하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나쁜 친구는 지갑에 구멍을 뚫는다■
노력하여 모은 재산을 구멍이 뚫린 물통과 같이 쓸데없이 새어 사라져 버리는 원인의 한 가지는 나쁜 친구와 어울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당시의 사회에서 볼 수 있던 나쁜 친구들을 예로 들어 친절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도박꾼(dhuttā),
방종자(soṇḍā:이성·음식·술 등 무엇에라도 쉽게 빠져 버리는 심약한 성격자),
술꾼(pipāsā : <한잔하고 싶은> 갈증, 갈망이 많은 자),
사기꾼(nekatikā :상대가 눈치채지 않게 교묘하게 속이는 자),
기만자(vañcanikā:어긋나게 허위로 속이는 자),
폭력자(sāhasikā)라고 하는 6종류의 나쁜 인간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자신의 재산은 구멍 뚫린 항아리로부터 물이 새듯이 사라져 버립니다.」
나쁜 친구를 구별하여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설명으로는 부족하다고 부처님은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누구와 사이좋게 지낼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진지하게 임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한층 더 자세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친구처럼 보여도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오히려 나쁜 친구라고 봐야 할 사람들이 4종류가 있습니다. 상대에게 악의를 갖고 있는데도 친절한 척 가면을 써서 상대를 불행에 빠뜨리는 사람들인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입니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에 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전에 말한 6종류의 나쁜 친구는 선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난폭한 사람이면 곧바로 알 수 있으니까 관계를 끊는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제일 질이 나쁜 것은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입니다.
지금부터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4종류의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을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3-1. 네 종류의 Mittapaṭirūpaka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
■①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Aññadatthuhara (안냐닷투하라)■
「재가의 젊은이여!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의 첫 번째는 「눈앞의 이익을 탐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는 다음의 4가지 특징으로부터 알아야 한다.
첫 번째의 특징은 aññadatthuharo hoti(어떤 것이든 얻어서 돌아간다. 단지 남의 것을 얻을 뿐이다)
두 번째는 appenabahumicchati(조금 주고 바라는 것은 많다)
세 번째는 bhayassakiccaṃkaroti(자신에게 위험이 생기면 비굴한 노예와 같이 상대에게 능글맞게 친하게 지낸다)
네 번째는 sevati atthakāraṇā(자신에게 무엇인가 이익이 있을 때에만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이 4가지의 특징으로부터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나쁜 친구라고 구별하여 판단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의 특징인 「안냐닷투하라」의 의미인데, aññadatthu는 「어찌되었던, 반드시」, hara는 「가지고 돌아간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남의 것을 얻을 뿐인 사람,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라고 의역할 수 있습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매우 칭찬해 주지만, 이 칭찬하는 방법이 조금 다릅니다. 「나도 갖고 싶다, 내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어서 유감스럽다, 부럽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칭찬합니다. 듣고 있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그것을 주지 않으면 기분 나쁜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버립니다. 「이 사람이 이것을 받으면 몹시 기쁠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해서, 그것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준 사람도 별로 손해 본 기분은 들지 않지만 횟수가 거듭되면 상당한 손해가 됩니다. 오래도록 미량의 독을 맛있는 음식에 섞어 천천히 죽이는 것과 같은 사람입니다. 손해 보는 측은 「상대는 친구니까」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친구에게 친절하게 하는 사람의 훌륭한 감정을 악용해서 희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두 번째의 특징인 「조금 주고 바라는 것은 많다」라고 것은 알기 쉬운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나쁜 친구라고 하는 자는 쉽게 정체가 발각될 만큼 얼간이가 아닙니다. 나쁜 친구를 간단하게 간파할 수가 있다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이 상식적인 기브 앤 테이크의 인간관계를 능숙하게 연기합니다. 친구 관계의 기브 앤 테이크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집에서 응급환자가 생겼다고 합시다. 자신에게는 돌볼 아이가 있는데, 철야로 간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친구가 와서, 「너는 간병하는데 신경 쓰라. 아이는 우리 집에 데려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이고, 놀아도 주고, 목욕도 시켜서 재울게. 내일 학교에 잘 보내 줄 테니 걱정말고 나에게 맡겨라」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아이 한 사람을 돌봐 주는 것이 그 친구에게 있어서는 아무 일도 아닌 오히려 즐거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제안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일입니다. 「하루 아이를 돌보면 얼마 정도의 답례를 하면 좋은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피차일반인 것입니다.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이 도와주면 좋습니다. 도와주는 측에서는 별일 아니지만 도움받는 측에서는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 돕는 올바른 인간관계는 이러한 것입니다. 친구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할 때는 상대에게 있어서 부담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이 법칙은 없습니다. 주는 경우도 받는 측에게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을 줍니다. 처치 곤란한 것 등을 억지로 줍니다. 혹은 정말로 시시한 것에 불필요한 부가가치를 붙입니다.
예를 들어 「이 무거운 것을 강원도에서 직접 내가 캐서 보따리에 넣어 가져 왔다」라고 말하며 1킬로 정도의 고구마를 줍니다. 받는 측은 거절하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필요 없는 고구마를 받아야 하는 상태가 됩니다. 거기에서 문제는 끝나지 않습니다. 상대는 기브 앤 테이크의 감정에 편승해서 상당한 답례를 요구합니다.
세 번째의 특징은 「자신에게 걱정거리가 생기거나 위험을 당하면 비굴하게 노예와 같이 뭐든지 해 준다.」 그러나 상대의 힘으로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했을 때에는 노예는커녕 연락마저도 없습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만 얼굴을 내미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는 즐거운 일인데 이러한 사람과 어울리는 경우는 언제나 도와주는 것뿐으로 손해만 볼 뿐,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네 번째의 특징은 알기 쉽습니다. 자신의 용무가 있을 때, 자신에게 이익이 있을 때만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보통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닙니다. 내 쪽에서 용무가 있을 경우에는 변명을 하며 잘 도망칩니다. 만나주지 않습니다.
이 4가지의 특징으로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라고 하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선우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나쁜 친구」라고 하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의 첫 번째는 언제라도 자신의 형편밖에 생각하지 않는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②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Vacīparama(와찌-빠라마)■
Vacī는 「말」, parama는 「최상의」. vacīparama는 「언설이 뛰어난 자, 최상의 말을 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즉,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입만 살아있어 능숙하게 다 할 듯이 말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선우를 가장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는 「수다쟁이」라고 명명해 둡시다.
이런 자들은 다음의 4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첫 번째의 특징은 atītena paṭisantharati(과거 자신의 공로에 대한 말로 대응한다)
두 번째의 특징은 anāgatena paṭisantharati(장래 자신의 역할에 대한 말로 대응한다)
세 번째의 특징은 niratthakena saṅgaṇhāti(그냥 무의미한 말(빈말, 공허한 선의)로 대응한다)
네 번째의 특징은 paccuppannesu kiccesu byasanaṁ dasseti(도와주고 해야 할 일이 닥치면, 형편이 나쁘다고 변명한다)
이것들을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알기 쉽게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특징을 예로 들면,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친구로부터 빌리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지난달에 부탁했다면 그 두 배도 빌려줄 수 있었는데 유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지난주라면 좋았는데, 어제라면 좋았는데」 등 무언가 과거의 일을 말합니다. 빌리려고 한 친구는 자신의 부탁을 딱 거절당했다고 단정 짓지 못합니다. 정말로 좋은 친구라고 착각하며 맨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다음 달이라면, 내년이라면」이라고 장래의 일을 말하며, 친구를 돕지 않고 도망칩니다.
세 번째의 무의미한 말로 대응하는 예를 들겠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겨 「내가 기르는 개를 잠시 맡아주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합시다.
친구라면 「좋아」라고 기분 좋게 돌봐 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쁜 친구는 무의미한 말로 「친절」하게만 대응합니다. 「개라는 것은 주인에게 큰 변화가 생겨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정신적으로 곤경에 빠져 나중에 통제하기 힘들게 된다. 그것은 잘 알지요? 그래서 개가 우울증에 빠지면 주인을 신뢰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다른 사람이 먹이를 주면 전혀 먹지 않는 개도 있다. 그래도 나는 책임 못 진다」라고 친절을 가장한 공허한 말을 합니다.
친구는 「친절하게 좋은 충고를 해 주었다」라고 착각하며 돌아갑니다. 결과적으로는 개를 맡아 달라고 두 번 다시 부탁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친구다」라는 전도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네 번째의 특징은 이와 같이 이해합시다.
여름휴가에 친구들이 모여 바비큐 요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곳에서는 모두 협력해서 자신이 맡은 바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중에는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양파를 벗겨 주세요.」라고 말하면 「나는 양파를 까면 눈물이 나오는 알레르기 반응이 있기 때문에 집에서도 다른 사람이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구마 다듬는 것을 부탁하면 「당신은 프로같이 재빠르고 능숙한데, 내가 하면 하루 종일 걸릴지도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어쨌든 모두가 도와서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그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주변이 좋아서 그가 일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않게 합니다. 모두들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이 중간에 있으면서 재미있는 말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라는 착각으로 끝납니다.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은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 」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어울려도 그들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친구다」라는 기분을 잘 유지시켜 주므로, 이쪽에서는 친구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을 뭐든지 해 주는 처지가 됩니다. 서로 돕는 친구는 아니라, 일방적으로 도와줄 뿐인 사람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말솜씨만 뛰어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③ 아첨하는 사람:Anuppiyabhāṇī (아눕삐야바-니-)■
Piya는 「마음에 드는, 기뻐하는」이라는 의미이고, anu는 「~에 따라서」라는 의미입니다. Bhāṇī는 「말하는 사람」입니다. 즉, Anuppiyabhāṇī가 되면 「상대의 마음에 들도록 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은 〈입을 맞추는〉 성격입니다. 언제라도 그 사람에 맞추어, 반대하는 일 없이 뭐든지 「네, 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잘못 알면 친절한 사람같이 들리겠지만, 사실은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입니다. 그런 자는 「아첨꾼」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아첨하는 사람」이란 나쁜 친구를 알기 위한 특징이 4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의 특징은 pāpakaṁpissa anujānāti(악행에도 찬성한다)
두 번째의 특징은 kalyāṇaṁpissa anujānāti(선행에도 찬성한다)
세 번째의 특징은 sammukhāssa vaṇṇaṁ bhāsati(눈앞에서는 칭찬하며 말한다)
네 번째의 특징은 parammukhāssa avaṇṇaṁ bhāsati(뒤돌아서는 비난하며 말한다)
이것들을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나쁜 일,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제 회사 돈을 횡령하지 않으면 월급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하면, 이 사람은 주위를 엿보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찬성한다. 「들키지 않으면 아무 일 없을 거다. 회사도 우리들을 실컷 일하게 해 돈을 벌고 있는데, 상여금도 새 발의 피같이 준다. 그 정도의 돈은 회사에 어떤 손해도 없다」라고 말하며 찬성하고 아군이 됩니다.
다음은 좋은 일, 예를 들어 「이번 일요일에 자원봉사로 공원을 청소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혹은 양로원에 도와주러 간다.」라고 좋은 일을 말했다고 하면, 그것도 기분 좋게 찬성한다.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아무쪼록 노력해라」라고 응원합니다. 이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특징입니다. 이와 같이 선이든지 악이든지, 무분별하게 양손을 들어 찬성한다고 하는, 상대에게 영합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성향의 사람은 친구와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만은 그 친구를 좋게 칭찬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없는 곳에서는 욕을 하거나 비판하거나 합니다. 이것은 세 번째와 네 번째의 특징입니다. 친구가 좋은 행위를 해도 뒤돌아서는 「내가 열심히 도와주고 응원해주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나쁜 일의 경우는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쁜 짓을 한다. 주의를 줘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다 잘못되면 우리들까지 피해를 준다.」 등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네, 네」라고 아첨하며 입을 맞추어 주어도, 결국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정치가들도 보좌관 등을 「아첨하는 사람」을 선택하면 부패 정치가 되어 정치 생명도 끊어지게 되어 버립니다. 그때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나쁜 행위까지도 공공연히 증언합니다. 「아첨하는 사람」에게 잡아 홀리면, 어떤 훌륭한 사람이라도 불행에 빠집니다.
친구라면, 무슨 일이 있으면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고 실제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첨하는 사람」도 친구에게 진지하게 가르쳐 주고 도와준다는 얼굴을 하며 교묘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남김없이 단순한 「네, 네」라는 결론으로 끝나서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만나고 있을 때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무엇을 해도 칭찬하는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주위에도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나쁜 친구에게 감쪽같이 속습니다. 나쁜 친구인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뒤돌아서 욕을 하는 사람이니까 신뢰성은 제로이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 사람을 신뢰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어집니다.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자신의 아군이다」라는 착각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입을 모아 찬성하고 응원하지만, 실제로 하게 되면 아무것도 해주지 않습니다. 나쁜 일의 경우는 협력했다면 자신의 손도 더러워지기 때문에 혼자만 조심합니다. 좋은 일의 경우도 협력하지 않고 뒤돌아서서 「내가 말해주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덕으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대체로 꼬드기고, 아첨하고, 칭찬받는 것에 약합니다. 칭찬해 주자마자 본궤도에 오릅니다. 칭찬한 사람을 좋아하고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어집니다. 이 약점을 갖고 있는 한은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안심하고 살 수 없습니다. 칭찬하는 사람은 칭찬하는 것만으로 끝나지만, 그 사람을 친구로 둔 사람은 자신이 모든 일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첨하는 사람」도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만 손해 볼 뿐입니다. 손해뿐 아니라, 인생이 완전하게 파괴되어 버릴 수도 충분히 있습니다.
■④ 지옥으로 불러들이는 사람:Apāyasahāya(아빠-야사하-야)■
Apāya는 「지옥」, sahāya는 「동료」입니다. 고통스런 세계로 떨어트리는 사람,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쁜 친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도 4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의 특징은 surāmeraya majjappamādaṭṭhānānuyoge sahāyo hoti(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이나 약물들을 같이 하기 위해 동료가 된다)
두 번째의 특징은 vikāla visikhā cariyānuyoge sahāyo hoti(외출해선 안 되는 시간에 밤놀이를 위해서 동료가 된다)
세 번째의 특징은 samajjābhicaraṇe sahāyo hoti(음악·춤·축제 등에 빠지기 위해서 동료가 된다)
네 번째의 특징은 jūtappamādaṭṭhānānuyoge sahāyo hoti(방일의 원인이 되는 도박에 빠지기 위해서 동료가 된다)
나쁜 일을 하는 동료는 만들기 쉽습니다. 타락하는 길이면 친구는 많이 있습니다. 이 4개의 항목을 읽은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술친구라는 것은 술을 마실 때에만 어울려 주는 사람입니다. 다른 일이 있을 때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다. 「오늘 밤 함께 한잔할까?」라고 권하면 「네, 만납시다!」라고 기꺼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가족문제의 상담이나 회사일의 상담 등에는 응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하고는 관계없다. 그런 일은 모른다」라는 태도로 도망쳐 버립니다.
우리는 「술 정도는 괜찮다. 왜 나쁘냐?」라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술은 사람을 빠지게 한다.」라는 것도 또한 사실인 것입니다. 「한 방울의 술도 마셔선 안 된다」라는 것은 불교도의 계율입니다. 술을 금지한 것은 인류에게 술이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술은 사람을 의존시키는 것입니다. 머리를 혼란시키고, 뇌세포에 악영향을 줍니다. 사람이 흉악한 범죄 등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경우는 술의 힘을 빌립니다. 평상시는 점잖은 사람인데 술에 취하면 죄를 짓는 일도 있습니다.
밤놀이도, 도박도 의존증을 일으킵니다. 음악 공연·영화·춤·축제 등도 적당함을 모르면 위험합니다. 그러한 즐길 거리는 얼마든지 있으므로 의존증에 걸립니다.
나쁜 것에는 아주 간단하게 동반할 수 있습니다. 나쁜 친구들의 경우 동료의식이 단단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천상으로의 안내인이 아니라, 지옥으로 불러들이는 나쁜 친구입니다. 절대로 피해야 할 인간인 것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므로, 나쁜 친구인 줄 알아차리지 못하고 「선우를 가장한 나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위험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나쁜 친구의 성격이다」라고 알아도, 그 사람에게 화를 내서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조심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영향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것이기에, 자신이 나쁜 영향을 받지 않게 경우에 따라서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나쁜 친구가 화내며 멀어져 갔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손해도 없습니다. 그것은 더 바랄 나위 없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선우를 잃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대단한 손실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 선우는 어떤 사람들인지, 진정한 친구는 어떠한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3-2. 네 종류의 Suhadamitta 「선심을 지닌 친구들」
■① 형(오빠, 아버지)과 같은 친구(도움을 주는 친구):Upakāra(우빠까-라)■
Upakāra는 「잘 도와준다.」라는 의미입니다. 친구가 곤란했을 때에 손을 뻗쳐 지켜 주는 성격의 사람입니다. 언제나 걱정해주고, 불행하게 안 되게, 실패하지 않게, 잘 인도해 주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성격의 관계라고 이해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누구와라도 어울릴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성격적으로 나태한 사람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쁜 친구에 대한 설명도, 선우에 대한 설명도 달리 말하면 사람의 성격을 배우는 것입니다.
친구들을 지켜주고 싶어 하고, 친구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찮게 간섭한다.」고 생각해 그러한 사람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떤 인간이라도 혼자서 완벽하게 온전히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하고 잘 사는 것보다 야무지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아버지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으면 인생은 곤란을 당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삽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위없는 재산입니다.
이와 같은 친구는 아래의 특징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 첫 번째 pamattaṁ rakkhanti(친구가 무기력할 때에 지켜준다)
· 두 번째 pamattassa sāpateyyaṁ rakkhanti(친구가 무기력하게 되었을 때에 그 재산을 지켜준다)
· 세 번째 bhītassa saraṇaṁ honti(친구가 무서워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안심시켜준다)
· 네 번째 āpadāsu na vijahanti(친구가 곤란한 일이 있을 때에는 자신에게 일이 있어도 몇 배의 힘으로 도와준다)
· 다섯 번째 apara-pajaṁ ca pissa paṭipūjenti(친구의 가족, 자식까지도 걱정해주고 친절하게 대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무기력」이라고 하는 말은 빨리어의 pamatta(빠맛따, 방일)를 쉽게 번역한 것입니다. 매순간 자신의 행위를 알아차리고 제대로 생활하는 것이 appamatta(압빠맛따, 불방일)인 것입니다. 위빳사나 수행으로 알아차림(sati)을 실천하는 일도 불방일의 삶의 방법입니다.
방일한 경우란 순간순간의 행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정에 휩쓸려 그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방일(pamatta)과 불방일(appamatta)의 의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이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그처럼 엄밀한 의미는 가지지 않습니다. 「야무지지 못하게 된, 흥분해 버린, 신이 난, 몹시 취해 버린」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더하여 병에 굴복하여 판단 능력이 약해졌을 때에도 사용합니다. 그래서 빠맛따(pamatta)의 의미는 「방일」이지만, 여기서의 경우는 「무기력」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때 무기력하게 됩니까? 술에 취하면 깜빡하여 지갑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택시를 타도 행선지마저 운전기사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취해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걱정하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자신의 몸도 재산도 지켜줍니다. 아이가 두들겨 맞았다든지, 회사에서 해고당했다든지, 정신적으로 낙담해 버리는 일이 가끔 있는데, 그럴 때에 정신적 충격이나 우울함으로 판단 능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걱정하는 「아버지 역할」이 있다면, 나쁜 일 등으로 인해 불행해지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갑자기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돌아가신다면 정신적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친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의 친구가 무서워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안심시켜 준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공포감에 습격당하는 일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변 친구가 천재지변을 당하거나, 도둑을 맞거나, 옛날에 저지른 나쁜 일등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협박당하거나, 부정이 발각되거나 할 경우에는 공포감에 습격당합니다. 그럴 때에 친한 친구가 아니면 「무관심」으로 도망쳐 버립니다. 「아버지 역할」의 친구는 화를 내면서도 도와줍니다. 친구를 단념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는 사람은 자신의 용무가 있으면 친구가 곤란한 일이 있어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네 번째의 사람은 친구가 곤란한 일이 있을 때에는 자신에게 일이 있어도 무시하지 않고 몇 배의 힘으로 도와줍니다. 장사를 한다면 자금지원만이 아니라 잘되도록 조언까지 합니다.
다섯 번째는 친구의 가족이나 후손까지도 존중하고 걱정해주며 친절하게 대하는 친구를 말합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무엇인가 해 줄 일이 있으면 흔쾌히 행합니다. 친구에 대한 신뢰나 애정은 친구와 서로 관련되어있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널리 퍼집니다. 「당신은 좋지만 당신의 아이는 싫다」라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재혼했는데 상대방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학대하고, 쫓아버리는 경우가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상대를 정말로 사랑해 결혼했다면 상대의 아이까지도 사랑할 것입니다. 친구는 그와 같이 가족들이나 관계자들까지도 자신의 친구와 똑같이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에게 있어 「아버지 같다!」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는 진정한 선우이고, 이와 같은 것들은 친구의 친절을 돌려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② 쌍둥이와 같은 친구(즐거움과 괴로움을 나누는 친구):Samāna sukhadukkha(사마-나 수카둑카)■
Samāna는 「같다」. Sukhadukkha는 「즐거움과 괴로움」. 즐거울 때도 괴로울 때도 변함없이 친구로 있어 주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의 가계가 손해 보면 마치 자신이 손해 본 것 같은 느낌으로 매우 진지해지고, 친구의 장사가 잘되어 가면 자기 자신이 이득을 본 것처럼 기뻐합니다. 그처럼 일심동체와 같은 관계입니다.
이러한 선우도 4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 첫 번째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 두 번째는 상대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고 끝까지 지킨다.
· 세 번째는 곤란에 빠졌을 때에도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
· 네 번째는 친구를 위해서 생명마저도 버릴 수 있다는 마음이다.
만약 아는 사람이 우리에게 자신의 비밀을 아무 주저 없이 털어놓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철저하게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경우에 자신은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면, 상대는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데 자신은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서로의 비밀을 지키는 관계는 일심동체의 관계인 것입니다. 비밀의 교환을 할 수 있다면, 단단한 인연을 가진 친구 관계는 쉽게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외로 많은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말할 수 없는 것, 아내에게 말할 수 없는 것,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것, 알려지면 곤란한 것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협력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도 있기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혼자 고민하는 처지가 됩니다. 그 경우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친구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행복합니다.
일심동체와 같은 친구가 있으면 자신이 불행한 일을 당해도 마음의 괴로움은 간단하게 사라집니다. 친구도 자기 자신의 불행처럼 생각해 주므로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어 해결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네 번째의 「친구를 위해서 생명마저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과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사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과 고난도 아끼지 않는다.」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한 현상은 부모와 자식 관계, 친척 관계에서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③ 선배와 같은 친구(충고를 해주는 친구):Atthakkhāyī(앗탁카-이-)■
Attha는 「의미가 있는 것, 도움이 되는 것」, khāyī는 「가르쳐 준다」. 언제라도 잘 상담에 응해주고 충고해 주는, 의미 있고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일을 가르쳐 주는 친구입니다.
인간은 모두 완벽하지 않고 본래 불완전한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외면적으로만 멀쩡한 것처럼 보이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누가 언제라도 무엇을 가르쳐 주는 고문과 같은 친구가 필요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이런 좋지 않은 일을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상담하면 다양하게 가르쳐 주고 도와주는 그러한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정신적 발전을 돕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선우도 4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 첫 번째는 악을 그만두게 한다.
· 두 번째는 선을 짓게 한다.
· 세 번째는 모르는 것을 가르쳐준다.
· 네 번째는 천상에 이르는 길을 말해준다.
이것들 4가지의 특징을 보면, 이 친구는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은 아니고, 자신이 존경해야 할 손윗사람과 같습니다. 우리가 은사라고 우러러보는 분들은 이런 친구의 범주에 들어갈 것입니다. 불교는 「생명은 평등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수직 관계도 논리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불교도에게 있어서 이 손윗사람의 존재입니다. 「붓다는 모든 생명보다 뛰어나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나는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선우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조차도 「구름 위의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서 「선우」라는 입장을 취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좋은 친구라는 것은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과 손윗사람의 친척, 교사들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선배와 같은 친구(atthakkhāyī)가 아니면 안 됩니다. 「아버지는 무섭고, 어머니는 잔소리꾼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귀찮고, 선생님은 싫다」라는 태도는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모두 자신의 선우입니다. 「이 세상에 신뢰할 수 있는 선우는 있을 리도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의 일로 애를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반드시 「선배 친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기를 바랍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출가한 스님들도 재가자에게는 「선배 친구」의 입장인 것입니다. 스님들이라고 모두 우러러볼 수 있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러러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출가자는 재가자의 「선배 친구」인 것입니다. 불교도에게 있어서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재가자들이 서로서로 돕게 인도하고, 걱정거리가 있으면 들어주고 불교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보시를 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나쁜 행위에 대해서는 엄하게 야단치기도 합니다. 재가에서 성공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사후는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선행도 하시오」라고 충고합니다. 또한 자기 보다 인생 경험도 많고, 지식도 넘치는 손윗사람들과 어울리면, 아직도 모르는 것을 많이 가르쳐 줍니다.
출가자도 「선우」라는 느낌으로 만나면 보통은 알 수 없는 방법도, 진리도 가르쳐 줍니다. 「선배 친구」가 있으면 누구라도 모든 면에서 성장합니다. 나쁜 일을 멈추게 해 주므로 결코 타락할 일이 없습니다.
「선우를 만난 행운이 있으면, 불도를 완성해 완전한 해탈도 얻을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④ 언니(누나)와 같은 친구(마음에 맞는 친구):Anukampaka(아누깜빠까)■
Anukampaka는 「걱정하는, 연민히 여기는, 동정하는」이라는 의미입니다. 친구가 불행하게 되면 자신이 불행하게 된 것처럼 함께 되어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편, 동료, 동아리」 등으로 다르게 나타낼 수 있는 인간관계입니다. 그처럼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어울리는 친구 관계입니다. 이러한 동지적 범주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좋은 친구, 고상한 친구 혹은 진심을 가진 친구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그런 친구는 인정이 많은 친구로서 자기 친구의 행복과 불행을 똑같은 분량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친구는 친구가 불행 속에 신음할 때 친구를 위로하고, 친구가 행운을 즐길 때 그와 함께 즐깁니다. 그리고 이런 친구는 자기 자신을 중상하는 자에 대해서 지켜주고, 친구에게 좋게 말하는 사람을 칭찬하여 줍니다.
이와 같이 이 선우도 4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 첫 번째는 친구의 치욕을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 두 번째는 친구의 번영을 진심으로 기뻐한다.
· 세 번째는 친구를 비난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
· 네 번째는 친구를 칭찬하는 것을 엄호하고 지원한다.
Anukampaka는 자신을 잘 이해해 주는 동료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혹은 자신의 안위만을 바라고 굽실거리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는 아닙니다. 선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친구를 비판할 때에도 진실한 친구는 자신의 친구를 변호합니다. 친구가 불행하게 되면 싫은 기분이 됩니다. 성공하면 「친구가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여기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이 친구와의 관계는 자신과 같은 수준인 것입니다.
「형(오빠)과 같은 친구」는 자신에 대해서 좋은 일을 열심히 하겠지요. 「쌍둥이와 같은 친구」는 일심동체 관계이기 때문에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의사는 들어주어 주지 않는 것도 있겠지요. 「선배 친구」는 경우에 따라서 꾸짖거나 야단치기도 하겠지요. 「언니(누나)와 같은 친구」는 주제넘게 참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친구」라고 하면 4번째의 친구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네 가지 중에서 일부분만을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고, 전부를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를 선택하는데 있어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의존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할 때 자기의 동료들에게 자신도 참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선우에는 4가지의 부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upakāra(형(오빠)과 같은 친구)의 성격만을 가진 사람이나, atthakkhāyī(선배와 같은 친구)의 성격만을 가진 사람만을 찾아내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또한 한 사람의 사람에게 upakāra의 특징 2가지와 atthakkhāyī의 특징이 한 가지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리해 말하면 「선우」란 마음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단념하지 않는, 서로 상대를 진실로 걱정하는 친구 관계입니다.
이제까지 선우를 소중히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설명했지만, 자신이 그러한 친구에 대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여기 부처님께서 그 대답을 하셨습니다.
■친구에 대해서 지켜야 할 조건이 5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dāna(다-나)-주는 것, 베푸는 것입니다.
Dāna는 「보시」라고 번역되는 말이지만, 이 경우는 「준다」라는 의미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여러 가지의 상호작용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일을 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겠습니까? 친구에게는 그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를 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두 번째는 peyyavajja(뻬이야왓자)-애어(愛語)입니다.
선우의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난폭한 말을 사용하지 않고, 부드러운 말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다지 상대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감정, 자신의 이기심을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이것은 듣는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행위입니다. 제멋대로 주관적인 감정을 드러내 버리면 상대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 됩니다. 누구에 대해서도 난폭한 말은 안 되는 것입니다. 선우와 어울릴 때 애어를 사용해 편안한 마음이 되도록 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사용법에 의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말을 실천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attha-cariyā(앗타 짜리야-)-친구를 이롭게 하는 것(利行)입니다.
유익한 일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선우에게 도움이 되도록 배려하며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되는 사람은 사회에 있어서도 보물인 것입니다.
네 번째는 samānattatā(사마-낫따따-) - 자신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同事)입니다.
상대가 「훌륭하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이 「훌륭하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콤플렉스가 됩니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해가 됩니다.
다섯 번째는 avisaṁvādanatā(아위상와-다나따-)-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고,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으로 친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여야 합니다.
■선우는 보물입니다■
「선우」는 불교 전문 용어입니다. 세상에서의 선우는 동료이지만, 불교에서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부처님이나 부처님 제자들도 모두 「선우」인 것입니다. 또한 「친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손윗사람이라도 생명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존재는 동년배보다 손윗사람에게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선우」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외면해 버립니다. 선우는 상대를 치켜세우지 않고 걱정하며 꾸짖거나 하므로 귀찮게 여겨버립니다. 그래서 「선우는 놓치기 쉬운 것」입니다.
누구든 선우가 없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우는 많지 않아도 됩니다. 진정한 선우는 한 사람만 있어도 최고로 행복합니다. 두 명, 세 명이면 너무나 충분할 정도입니다.
부처님도 제자들에게 「나는 여러분의 선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부처님과 나는 친구 사이다」 라고 생각하는 제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자들은 우리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이끌어 주는 부모로서 부처님을 존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제자들은 서로 몹시 친애하는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스승을 대하고 있었습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대체로 표면적인 관계로 맺어집니다. 회사의 모든 이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표면적인 사이의 좋은 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말하는 「친구」는 다만 함께 있는 동료라고 할 정도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깊은 관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만약 학교나 회사에서 동료나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했다고 해도 마음에 깊게 새기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정말로 인격에 영향을 받는 것은 선우로부터 뿐이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존중하며 선우를 대하면 잘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4종류의 선우를 진정한 친구라고 알아, 진심으로 그 친구에게 힘써라. 모친이 자신의 아이를 지키듯이, 그렇게 진지하고 소중하게 선우를 지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우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재산으로 보물입니다. 정말로 좋은 친구가 있다면 자신의 생명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나쁜 친구, 선우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한 성향을 이해해서 자신도 누군가의 선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선우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그 혜택을 다른 누군가에게 줍니다. 자신도 누군가의 선우가 되어 그 상대를 진실로 걱정하고 도움을 줍니다. 분명한 것은 혜택을 받을 뿐인 인생에서는 좋은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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