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에 대한 명상- 빤냐완따 스님

관리자
2022-06-17
조회수 23

오디가 떨어지는 시절입니다. 창문을 열면 툭,툭 오디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곳 초암 올라가는 길 옆엔 수령이 오래된 뽕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긴 가뭄 탓인지 올해는 떨어진 오디알들이 유난히 굵고 달짝합니다. 


이른 아침, 갓 잠에서 깨어난 산까치 물까치들이 나뭇가지를 옮겨다니며 오디알을 통째로 따 먹거나 참새떼들이 뽕잎 사이사이를 날으며 오디알을 쫗아 먹습니다. 새들의 즐거운 탄성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매년 이맘때면 뽕나무 밑에 비닐을 깔아놓습니다. 한 열흘 동안 비닐위로 새까만 오디알들이 무수히 떨어져 내립니다. 누군가 주워가고 매일 줍고 또 주워도 비닐 위에는 여전히 오디알들이 밟힐 정도로 굴러다닙니다.


하루에 서너 차례 뽕나무 밑을 지나갑니다. 왼발 오른발 혹은 들고 가고 놓음을 인식하며 지나갑니다. 어떤 때에는 호밋날이 땅에 닿는 감각이나 호밋자루를 쥐고 있는 손의 동작을 알아차림 하면서 풀을 매기도 합니다. 


왼손은 풀목을 잡고 있고, 오른손에 들린 호밋날이 점진적으로 하향하면서 땅에 닿습니다. 땅을 파고드는 감각이 호밋자루를 잡고 있는 손에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감각과 감각을 알아차림하는 마음이 한쌍이 되어 움직입니다.


몸의 자세나 동작ㆍ감각들을 전체적으로 알아차림할 때도 있지만, 일의 속도를 줄여서 좀더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풀을 쥐려는 마음이 생겨날 때 풀이 손에 쥐어집니다. 호밋자루를 움켜쥐려는 마음 때문에 손아귀에 힘이 들어갑니다.


이따금씩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집니다. 알아차림 의식이 분명할 때는 머리에 부딪히는 소리와 머리에 닿는 감각만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알아차림을 놓치고 있거나 불분명할 때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머리에 뭐가 떨어졌지? 오디알이 떨어졌나? 아니 새똥이네. 무슨 새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새는 간 곳 없고 푸른 뽕잎 사이로 새까만 오디알들만 매달려 있습니다. 아직도 저리 많이 달려 있네.


들고 있던 고개를 아래로 숙이자 풀 위에 떨어진 오디알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제법 굵은 것에 눈길이 갔고, 팔은 어느새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손끝이 오디에 닿는 순간 종적을 감추었던 알아차림 의식이 다시 생겨납니다.


오디알이라는 표상인식과 함께 그 오디알을 탐하고 있는 마음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지켜보았습니다. 몇 초 동안. 그것은 마치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같은 미세한 들뜸을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보는 마음이 명료해지자 미세한 들뜸과 함께 탐하는 마음이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머리 위에서 새소리가 들렸습니다. 새에게 쫗아 먹힌 듯한 오디알들이 눈 앞에 툭, 툭 떨어졌습니다. 문득 맛이나 한번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굵고 성한 것을 하나 골라 입으로 가져왔습니다. 입안에 넣고 깨물어 보았습니다. 달았습니다. 


물렁한 오디알이 으깨어지면서 입안 가득 번지는 단맛은 설탕에 절여놓은 듯 달았습니다. 하도 흔해서 요 며칠 관심도 두지 않았는데 그새 더 달아졌구나. 오랜 가뭄이 이 작은 열매로 하여금 이토록 단맛을 내게 하는구나. 


이처럼 오디에 대한 사념이 확산하고 있을 즈음 알아차림 의식이 다시 생겨납니다. 의도적으로 제법 굵은 오디알 하나를 집어 입안에 넣어봅니다. 단맛에 대한 감각을 제대로 관찰해보기 위함입니다. 


주의주시가 씹는 움직임에 오롯이 가 있을 때는 맛의 감각을 알지 못합니다. 맛의 감각 쪽으로 주의주시를 옮겨봅니다. 움직임이 멈추고 맛이 감수됩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맛, 혀는 단지 그 맛을 감수하고만 있습니다. 오디라는 인식, 달다는 개념 없이.


맛에 대한 감각, 그 감각에 대한 인식만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을 뿐, 거기에는 맛보고 있는 나, 맛을 아는 나, 감수작용하는 나, 관찰하고 있는 나란 없었습니다. 오직 감각과 감각의 소멸과 소멸인식에 대한 앎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종 주의가 산만한 채로 알아차림없이 오디를 먹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맛에 대한 다양한 감각과 그 인식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오디라는 인식, 오디가 몸에 좋다는 선입견, 오디맛에 대한 감각적 탐닉이 몸과 마음 전체를 압도합니다. 


이러한 표상인식, 선입견, 감각적 탐닉 속에는 반드시 자아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아라는 무명의 그림자가 언제 어디서나 따라 붙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앎에 의한 주의주시ㆍ알아차림이 없을 때 거기에는 반드시 맛을 보고 있는 나, 맛을 느끼는 나, 맛에 탐닉되어 있는 나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어떤 행동를 하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 어떤 것을 먹든 접촉 순간 순간에는 반드시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 느낌은 그 어떤 지적인 것과 연관된 것도 아니고 그 어떤 정서적인 것도 아닙니다. 6감각기관 가운데 어느 하나가 대상과 접촉하는 순간 생겨납니다.


느낌은 접촉하는 순간 과거경험 고정관념 선입견의 영향을 받으며 일어나는 원초적 정신작용입니다. 느낌은 여러 심리현상들 가운데 의식을 의지하여 맨 먼저 일어납니다. 맨 먼저 일어나기 때문에 느낌은 사건해결의 실마리, 큰불로 확산하기 이전의 작은 불씨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따마 붓다께서는 느낌에 대한 관찰을 강조하셨습니다. 느낌에 대한 관찰은 4가지 중요 관찰대상(몸ㆍ느낌ㆍ마음ㆍ법) 가운데 하나로서 물리적(몸) 관찰대상과 정신적(마음ㆍ법) 관찰대상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상과 처음 접촉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다음의 3가지 느낌 가운데 하나가 일어납니다. 즉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수행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 느낌들에 대해 어름어름 알거나 관념의 수준에서 이해할 뿐 그 생생한 느낌과 특성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 3가지 느낌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9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즉 물리적 접촉에 의한 3가지 느낌, 정신적 심리현상에 의한 3가지 느낌,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 느낌의 구분없이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가 없는 초심자의 경우) 하나로 뭉쳐서 보는 느낌 3가지.


고따마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삼매에 들어 (그 느낌) 분명히 알면서

알아차림하는 성스러운 제자는

느낌들을 알고 느낌들의 일어남을 알고

어디서 이들이 소멸하는 지를 알며

느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아느니라.

느낌의 멸진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갈애에서 풀려 완전한 평화를 얻노라."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마저도

그것이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그 어떤 느낌에 접하든 간에

이 모두를 괴로움으로 아나니

거짓되고 부서질 수밖에 없는 것,

그것들이 부딪히고 또 부딪쳐왔다가

사라져가는 양상을 지켜봄으로써

거기서 탐욕이 빛바래도다."


느낌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납니다. 조건을 따라 일어났다가 조건을 따라 사라집니다. 느낌은 이처럼 생기고 사라지는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한 현상으로서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지 못하면 느낌이 일어나는 순간 본능적으로 <갈애>가 느낌에 달라붙습니다. 


갈애는 괴로움입니다. 갈애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찰거머리같이 달린붙는 갈애 그 자체가 바로 괴로움입니다. 갈애는 느낌을 조건으로 생겨납니다. 느낌 자체가 갈애는 아니지만 갈애 자체가 느낌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반드시 갈애가 생겨납니다.


즐거운 느낌을 바르게 알아차리지 못하면 갈애가 생겨납니다. 괴로운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해도 괴로운 느낌에서 벗어나려는 갈애가 생겨납니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그 덤덤한 느낌과 평온한 느낌에 속아서 갈애가 생겨납니다. 


고따마 붓다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뒤 7일동안 좌정한 채로 해탈의 기쁨을 누리면서 일체중생들의 윤회와 해탈의 원리인 12연기법을 발생하는 데로, 소멸하는 데로 관하셨습니다. 그 12연기의 중심에 <느낌>이 있습니다. 


무명-행-식-명색-육입-접촉-<느낌>

-갈애-취착-존재-생-노사우비고뇌


고따마 붓다께서는 '경험되어진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느낌 그 자체가 괴로움은 아니지만 그 무상한 성품을 알지 못한 채 애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느낌을 경험하는 자에게 여래는 괴로움의 진실을 가르치고, 괴로움의 발생원인의 진리를 가르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고,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느니라."


고따마 붓다께서 깨달으신 <사성제>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바르게 실천하는 수행자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고 분명하게 깨달을수 있는 진리입니다. 몸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혹은 마음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고, 느낌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걸음 잠시 멈추고 저만치 우두커니 서있는 뽕나무를 바라봅니다. 시각인식과 함께 느낌이 생겨납니다. 매달린 오디알을 응시할 때도 느낌이 생겨납니다. 오디알을 따서 씹을 때도 느낌이 생겨납니다. 


잘익은 오디알을 깨물 때는 좋은 느낌이 생겨납니다. 좋은 느낌에 이끌려 맛을 즐깁니다. 간혹 덜익은 오디알을 깨물 때가 있습니다. 신맛과 함께 미세한 불쾌감이 생겨납니다. 알아차림 의식이 돌아왔을 때 비로소 단맛과 신맛의 느낌에 대한 갈애를 보게 됩니다.


즐거운 느낌과 함께 갈애가 생겨납니다. 불쾌한 느낌과 함께 갈애가 일어납니다. 갈애는 괴로움입니다. 갈애가 달라붙어 있는 즐거운 느낌은 괴로움입니다. 갈애가 달라붙어있는 불쾌한 느낌도 괴로움입니다. 무상한 것을 무상한 줄 모르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입니다.


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인식하면 갈애가 소멸합니다. 뽕나무에 대한 시각인식은 무상합니다. 오디알에 대한 맛의 감각은 무상합니다. 맛에 대한 좋은 느낌은 무상합니다. 맛에 대한 싫은 느낌도 무상합니다. 분명한 앎에 의한 알아차림이 함께할 때 모든 느낌은 무상하게 인식됩니다.


무상인식 속에는 자아의식이 없습니다. 그 어디에도 나란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누가 그 어떤 간섭도 할 없는 몸과 마음의 유기적 작용만이 현존할 뿐. 하루종일 온종일 한시도 쉬지 않는 인식작용. 끊임없는 생성과 변화와 소멸에 대한 인식작용만 있을 뿐. 


한 외도수행자가 고따마 붓다를 찾아가 여쭈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고. 붓다께서는 이렇게 되물으셨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나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

바른 법으로 인도되어 물질을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라고 여기지 않고, 자아 안에 물질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느니라 ... 느낌도 ... 인식도 ... 심리현상도 ... 의식도 그러하느니라."


뽕나무 위로 참새떼가 날아듭니다. 어둡기 전 마지막 식사라도 하려는 양 뽕잎 사이사이를 옮겨날며 열심히 오디알을 쫗습니다. 오디알을 쫗아 먹으면서 질러대는 소리에는 즐거움이 역력합니다. 그 어떤 알아차림도 없이, 당도가 오를 대로 오른 오디의 과즙을 탐닉하고 있습니다. 물똥까지 떨구면서.


                   *


  불멸 2565(6)년 6월 17

  천림산 기슭에서 

  메따와 함께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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