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칠각지의 실천 1)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20080417)

담마마-마까
2021-06-30
조회수 1261

https://youtu.be/i2jpB4sJWR0


◈ 칠각지의 실천 1)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20080417)

 

◇ 아-나-빠-나 사띠와 7각지

 

다리가 불편하면 조금 편하게 좀 기대가지고 계세요. 노보살님들은 몇 시간씩 계속할려면 좀 힘이 들 겁니다.

저번 시간에 칠각지에 대한 부분을 끝냈습니다.

오늘은 그 칠각지를 실천하는 것하고, 이어서 칠각지를 계발하는 부분, 사마타 수행에서 칠각지를 계발하는 것하고, 위빳사나에서 칠각지를 계발하는 것, 실제 수행편에 들어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덟 번째 「칠각지의 실천편」 보시기 바랍니다.

 

칠각지의 기본은 어디입니까? 사띠 삼봇장가죠! 사띠를 실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나머지 각지들은 당연히 사띠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으면 당연히 뒤따라 나타나게 됩니다.

"위빳사나 수행을 사띠 수행이다" 하고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거죠. 그 현상이라는 것들은 어떤 겁니까? 우리가 대상이 호흡이면 호흡, 느낌이면 느낌, 아니면 생각이면 생각, 마음이면 마음, 또 의도하는 것들, 그다음에 집중하는 것들, 이런 것들은 지혜를 얻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런 것들을, 현상을 바라봄으로 인해서 지혜롭게 되면 뭐가 알아집니까?

변하는 사실을 알죠! 한시도 멈추지 않고 변화하고 있구나.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 변화를 멈출 수 있는 재간이 없다는 거라. 어떤 방식을 쓰더라도 변화는 멈출 수 없다는 거라. 그것이 우리가 괴로움이다 하는 겁니다. 불만족스러운 것이고 괴로운 겁니다. 약간이라도 그 변화를 내가 마음대로 멈출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원하는데 그건 어디를 찾아봐도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는 거라.

 

그러니 그 속에서 '나'라고 하는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내 자신의 호흡이나 느낌이나 또 인식이나 생각으로부터 얻어지는 깨달음이라 하는 거라. 그것이 사띠 수행이라.

그래서 수행을 할 때는 항상 사띠 수행을 하죠? 좌선을 할 때도 사띠 수행이고, 경행을 할 때도 사띠 수행이고, 밥 먹을 때도 사띠 수행이고, 잠잘 때를 제외한 모든 행위에 사띠 수행을 해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아, 모든 것들이 어떤 것이든 다 무상하구나' 하는 사실을 알아차려 나가는 거라. 그렇게 칠각지를 계발을 해나갑니다.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그런데 이번 시간에 할려고 하는 것은 사마타 수행에서 칠각지를 계발하는 부분입니다. 그게 밑에 있는 「아나빠나 사띠와 칠각지」 부분입니다.

지금 칠각지를 실천할 때는 그것을 배우기 전 단계이기 때문에 위빳사나 수행으로 칠각지를 실천할 수 있도록 자꾸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 사띠를 놓치지 않으려고 자꾸 마음을 먹어야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두 번째 택법각지도 일어나게 되고 그렇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택법각지나 이런 것들은. '아, 내가 지금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다. 그 법문을 듣고 있는 마음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 음 변하는 거구나. 안 변하고 싶은가, 아니다 그렇게 안 되는구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변하는가? 어, 변한다.' 어떤 것이든 그렇게 가려서 아는 것들을 택법각지라고 그럽니다.

'이것이 바른 것인가 그른 것인가? 아, 바른 것이다. 그럼 바른 것이면 따라 해야 되는가? 또 실천하지 말아야 되는가, 실천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응용해서 가리는 것, 법에 맞게끔 법이 보호할 수 있게끔 하는 것들을 택법각지라고 그럽니다.

 

이런 식으로 일곱 개의 각각의 깨달음의 단계들을 밟아나가는 겁니다.

그리하다 보면 선정에도 들고 또 예류과에도 들고 또 아라한과에도 들고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저녁에 위빳사나 수행하시러 오시는 분들은 지금 「번뇌에 대해서 대응하는 방법」에 대한 것을 하는데 인터넷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그거를 할 때 「번뇌와 대결하는 첫 번째의 길」에 대한 것들을 설명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걸 참고자료로 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뭐냐면 수행을 통하지 않고도 예류과에 이를 수 있다 하는 부분입니다.

 

모든 현상들은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그 변해가는 현상을 사띠로써 뚫고 관찰을 하다 보면 '나'라고 하는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유신견이 어느 정도 사라지면 이때 사띠와 집중이 균형을 맞추게 됩니다. 그걸 보통 '아, 법에 따라서 법에 순응하게 된다'하고 얘기합니다. 사띠와 집중이 균형을 맞추게 되면 의식이나 이런 것들이 마음에 안 쓰입니다. 그래서 '의식으로 인해가지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도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수다원에 들었다 라고 얘기하게 됩니다.

 

수다원에 들면 떨어져 나가는 것 세 가지가 있죠! 의심하는 것, 유신견이라고 하는 것, 그다음에 계금취견이라고 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우선 먼저 떨어져 나갑니다.

이런 식으로 쭉 해나가다 보면 결국에는 마지막 아라한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칠각지는 최종적인 해탈을 달성하고 싶은 사람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수다원까지는 칠각지를 통하지 않더라도 도달할 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 이후부터는 칠각지를 통하지 않고는 완전하게 깨달음에 이를 수 없게 돼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칠각지를 계발하는 부분에서 여러분들이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마타 수행으로 칠각지를 계발하는 방법들에 대한 것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마타 수행에 대해서 가장 손쉽게, 이해하기 쉽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 놓은 것이 이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입니다.

그래서 아나빠나사띠와 칠각지 부분을 먼저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위빳사나 수행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전들을 공부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항상 사띠가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왜? 집착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선정삼매를 얻은 경우 하고, 그렇지 않고 그냥 선정삼매를 얻은 사람의 경우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아름답고 기쁘고 평화롭고 하는 그런데 집착을 하는 경우들은 통상적으로 보면 이 위빳사나 수행 없이 사마타 수행으로 했을 경우에는 그렇게 집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사띠의 대상을 놓치지 않고, 변해가는 대상을 놓치지 않고, 사띠를 바탕으로 해서 사마타를 계발했을 경우에는 쉽게 거기에서 빠져나옵니다. 그래서 그런 것도 하나의 대상이다 하는 사실을 반드시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왜 이 아나빠나 사띠를 보통 수행하시는 분들이 "필요할 경우는 해야 된다" 하고 얘기를 하느냐 하면 경우가 틀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수다원에 이르기 위해서 사마타 수행에서도 1선정에 이를 수 있고, 또 위빳사나 수행에서도 1선정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이 1선정에 이르는데 1선정에서 4선정에 넘어간다 그럴 경우에 순수하게 위빳사나 수행을 할 경우에는 상당히 시간이 좀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 사마타 수행을 할 경우에는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켜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데 특히 집중력과 사띠의 힘을 키워주는데 이 사마타 수행법을 응용을 해서 사마타의 힘이 키워졌을 때 위빳사나 수행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밑(교재)에 아나빠나 사띠(Ānāpānasati) 부분을 한번 보십시다.

아나빠나 사띠 그 경전은, 수행의 기초가 되는 경전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염처경)든,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출입식념경)든, 까야가따사띠(Kāyagatāsati, 염신경)든 어떤 것이든 간에 모든 것들은 호흡에 대한 사띠로부터 출발을 합니다.

 

호흡이 그마만큼 중요한 겁니다.

나중에 호흡을 관찰하는 법에 대해서 얘기를 하겠지만은 위빳사나 수행에서 호흡을 관찰하는 법하고, 사마타 수행에서 호흡을 관찰하는 법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반드시 이해를 해야 됩니다.

통상적으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마하시 방법입니다. 스님이 가르쳐주고 있는 방법이.

 

그런데 지금 배우고 있는 아나빠나 사띠의 시스템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마하시 방식에서는 어떻게 합니까?

배의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 주대상으로 하지만 어떤 대상이 나타나도 그 대상에 사띠를 둡니다. 느낌이 있으면 느낌에 사띠를 두고, 마음이 일어나면 마음에다 사띠를 두고,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나는데 사띠를 두고, 그래서 즉각 즉각 일어나는 현상에 사띠를 둡니다. 옮겨가면서.

 

똑같은 마하시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우 빤디따 스님이 하는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우 빤디따 스님 같은 경우에는, 되도록이면 큰 부분이 아닐 거 같으면 배를 관찰하라 그럽니다. 배만 줄기차게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하라고 그러지 뭐 조그만 생각이나 조그만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즉각즉각 관찰하라고는 안 합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그 부분은 다 쳐내버리라고 그럽니다.

다른 마하시 계통의 스님들은 경우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항상 일어난 대상을 바로 즉각 즉각 알아차려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리고 조금 다른 게 뭐냐면 명칭을 붙이는 것.

우 빤디따 스님 같은 경우에는 줄기차게 명칭을 붙이라고 그럽니다.

다른 사야도 같은 경우는 명칭 붙이는 걸 어느 단계까지 명칭을 붙일 것이냐 하는 것을 조금씩 다르게 합니다. 명칭을 사용하는 용도를 조금씩 다르게는 하는데,

 

마하시의 방식은 명칭을 사용해서 대상을 따라잡는 것이고, 또한 호흡에만 관찰의 포인트를 잡는 게 아니고 일어나는 어떤 대상이든 사띠를 두게끔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과 아나빠나 사띠는 조금 다릅니다.

어디까지나 숨에다 집중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나빠나사띠는 사마타 수행법으로 간주들을 합니다.

물론 아나빠나 사띠를 가지고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수행상에서 대상이 나타나면 호흡에서 다른 것으로 대상을 전환시켜줍니다. 또 호흡을 하면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관찰하도록, 사대요소에 대한 관찰들을 하도록 합니다. 호흡에서.

그런데 순수한 아나빠나 사띠에서는 일절 그런 것들을 못하게 합니다. 그냥 호흡만, 호흡만 관찰하도록 합니다. 그런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이 사마타 수행에서 아나빠나 사띠를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 하나가 뭐냐 하면 '숨이 닿는 포인트'입니다.

숨이 닿는 포인트를 먼저 딱 잡아야 됩니다. 숨을 한번 먼저 크게 '후우우욱' 내쉬어보십시오. 입을 다물고. 어디에 숨이 닿습니까? 숨이 스치는 부분이 어딥니까? (수행자 대답)

 

사람들은 코라고도 하고, 윗입술이라고도 얘기하고, 코안에 솜털 같은 그런 부분이라고도 얘기하고, 어떤 사람들 예리한 분들은 눈 가까이 있는 코 여기 이쪽 부분이라고도 하고 각각 조금씩 다릅니다. 코의 구조도 사람마다 다를 뿐 아니라 그 닿는 느낌을 관찰하는 포인트들도 조금씩 다릅니다. 확실히 다릅니까? 코가 막혀있을 때도 조금 다르겠죠.

 

가끔씩 스님이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선원이 난방장치가 없습니다. 올겨울을 지내는데 아마 추워 놔놓으니까 감기에 금방 들어. 그런데 감기 없이 넘어갔거든. 어떻게 넘어갔느냐 하면 몸이 외부기운으로 인해서 영향을 많이 받아서 다운이 될 정도가 되고 또 기온의 변화가 심할 경우에는 이 아나빠나 사띠를 조금 응용을 합니다.

숨을 관찰하는 걸 다른 대상들은 일체 버려버리고 자연스러운 호흡에서 숨만 약 한 시간 정도 앉아서 쭉 관찰할 것 같으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편해집니다. 그럴 것 같으면 이 감기 같은 것들을 예방을 하는 효과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마타 수행에서 아나빠나 사띠를 할 경우에는 몸의 건강을 유지해주는 역할들을 해주기도 합니다.

 

어쨌든 영어로는 배팅 포인트(batting point)라고 그러는데, 이 숨이 닿는 포인트, 숨이 닿는 포인트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숨이 닿는 포인트가 없으면 마음이 움직여버립니다. 포인트를 반드시 거기에다가 집중을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집중하는 포인트 잡았습니까?

 

밑에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들 보통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코 여기 이 부분을 어디(뭐)라고 그럽니까? 여기 요 부분, 왼쪽 코 들어가는 부분, 오른쪽 코 들어가는 이 부분, 아니면 양쪽 코 여기 마주치는 이 부분, 이 부분을 잡았을 경우에는 그건 좀 위험성이 있습니다.

왜? 호흡은 들어가고 나가고 하게 되는 겁니다. 들어가고 나오고.

그럴 경우에는 여기에 했을 경우는 자칫 잘못하면 호흡과 같이 의식이 따라 들어가 버립니다. 따라 들어가 버리면 어떻게 돼요? 호흡을 따라서 마음이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합니다.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할 거 같으면 안 될 거는 없겠지만 굉장히 마음이 산란해져버립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밑에다가 적어놨습니다.

 

숨을 따라서 들어가 버리게 되면, 숨에는 숨이라고 하는 것은 누르는 힘이 됩니다. 딱딱한 것을 내가 알아차리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딱딱하고 시원하고 하는 느낌들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을 하다 보면 긴장돼 버린다는 겁니다. 긴장돼 버리면 몸 전체가 긴장돼 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배팅 포인트에 마음을 딱 고정시켜 놔야 되는데 그러질 않고 움직여버린다는 거라.

그래서 되도록이면 호흡을 관찰하는 포인트를 이쪽으로 두지 않도록 하십시오.

 

되도록 어디를 포인트로 두느냐면 입술 끝부분 여기. 여길 보통 뭐라 그럽니까? (수행자 대답 : 인중) 인중이라 그럽니까? 예. 인중이 있는데. 여기 입술 위에 볼록 튀어나온 데, 이 부분을 되도록이면 포인트로 두도록 하는 것이 수행을 해나가는 데는 이롭습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이 뭐냐 하면 이 수행을 할 때 사대요소에 대한 관찰을 믹스(mix) 하지 마라. 거기 사대요소에 대한 것들을 쭉 적어놨습니다.

지(patavī-dhātu), 수(āpo-dhātu), 화(tejo-dhātu), 풍(vāyo-dhātu) 이라는 것.

 

불교에서 보면 존재하는 것들은 에너지의 흐름으로 돼 있습니다. 그 에너지의 흐름은 두 개의 에너지의 흐름이죠! 물질적인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하는 루빠(rūpa)라고 하는 것, 그다음에 정신적인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하는 나마(nāma) 라고 하는 것, 이 두 개의 흐름으로 돼 있습니다.

 

용환이는 잘 알겠지. 물질은 어떤 겁니까? 질량이라고 하는, 무게를 만드는 에너지라고 하는 중력이라는 것이 있고. 그다음에 서로 간에 잡아당기는 에너지를 인력이라고 그러죠! 인력이 있고. 그다음에 반대로 서로 떨어트리게 하는 갈라놓는 에너지, 반발력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하나는 뭡니까? 변화되는,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하는 것, 이것이 물질을 만드는 에너지입니다. 네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불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지·수·화·풍이라고 그럽니다. 그렇죠! 무게·질량은 무겁고 딱딱하고 하는 그런 것들로 지(地)의 요소, 그다음에 서로 잡아끄는 거는 물(水)의 요소, 그다음에 반대로 떨어트려 놓는 것은 가볍게 떨어트려 버리는 그거는 뭡니까? 불(火)의 요소, 그다음에 변하고 움직이는 바람(風)의 요소 그렇게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도, 과학에서도 물질은 이 네 개의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똑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이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러하더라도 물질의 기본은 뭡니까? 변화되는 거죠. 변화되는 것! 변화가 없을 거 같으면 그 물질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거 만들어 놨지만 아직 6개월도 안 됐지만 벌써 냄새들이 나고 변해나갑니다. 안 변할 수가 없습니다. 다이나마이트도 폭발하면 어떻게 됩니까? 무게에 부딪치면서 변해나가는 것들입니다. 그 어떤 것이든 다 마찬가집니다.

 

그러면 정신적인 에너지는 물질을 지배하고 있죠! 모든 것들이 마음으로 인해서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마음에 고민이 많고 이럴 거 같으면 어떻게 됩니까? 위장병에 많이 걸립니다. 물질을 변화시킨다는 거라. 위산이 나와가지고 물질인 이 몸을 변화시켜서 병이 들게 하고. 또 마음이 건강하고 밝을 거 같으면 몸도 자꾸자꾸 건강해지게 되는 거고. 그래서 '마음이 물질을 지배한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존재라고 할 거 같으면 물질적인 요소하고 정신적인 요소가 있는데, 물질적인 요소보다는 정신적인 요소가 더 강조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에서는 어떤 경우든지 이 정신적인 요소 부분을 다루는 것들을 많이 합니다.

 

아나빠나 사띠에서도 꼭 마찬가집니다. 정신적인 것들을 다룹니다.

물질적인 요소인 지수화풍은 따로 독립된 것으로 다룹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호흡을 관찰하더라도, 물질적인 호흡을 관찰하더라도 정신으로써 관찰하는 것이지, 그 호흡으로 인해 일어나는 지수화풍 요소를 관찰하라고는 얘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수화풍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떨쳐버리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만 유의할 것 같으면 아나빠나 사띠는 용이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배팅포인트(batting point)를 잡아라.

그다음에 그 호흡만 관찰하는 것이지 다른 것들을 일체 관찰하려고 하지 말아라. 느낌이라든지 사대요소에 대한 것이든지 아니면 변화되는 것이든 뭐든지 전혀 신경 쓰지 말아라. 그냥 호흡만 관찰하도록 하라. 그것을 먼저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사마타 수행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분석을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아, 이 호흡이 어떻게 변하는가, 이래서 호흡이 길어지는구나, 아니면 저래서 호흡이 짧아지는구나' 이런 분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라. 마음을 단지 그 호흡에만 두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리해야 이 수행을 좀 더 용이하게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자! 한번 봅시다. 수행을 할 때 먼저 배팅포인트를 잡았다.

그다음에 마음을 견고하게 해야 됩니다. 명상의 대상에 마음을 모아서 숨을 들이쉬고 또 숨을 내쉬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때 사띠로써 숨을 들이쉬고 사띠로써 숨을 내쉬어야 됩니다. 사띠를 가지고 항상 호흡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이 입술하고 코하고 사이에 여기 이 점에 호흡이 변화되는 것을 관찰해야 되는 거라. 딱 집중 포인트에만. 그렇게 하다 보면 집중력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집중력이 강해지면 반드시 이 '니밋따(nimitta)'가 일어나지게 됩니다.

그래서 4선정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이 사마타 수행에서 아나빠나 사띠를 하려고 할 거 같으면 호흡하고 조금 자연스러워지지 않으면 힘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호흡하고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씁니까?

수식관(數息觀)을 많이 씁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하나',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둘', 다시 들이쉬고 내쉬고 할 때 '셋',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호흡을 이 배팅포인트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사실만 알면서 하나, 둘, 셋, 넷 해서 여덟까지 갔다가 다시 또 1번으로 돌아갔다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호흡이 되도록 하면서 호흡하고 내 마음하고 자꾸 일치시켜 주는 훈련을 보통 해나갑니다.

 

어느 정도 호흡이 자연스러워지고 나면, 그러고 나면 호흡을 관찰해 나갑니다. 관찰하다 보면 긴 호흡도 있고 짧은 호흡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호흡을 의도적으로 길게 하고 의도적으로 짧게 하면 안 됩니다. 쉽게 피곤해지고 대상을 놓치기가 쉬워집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단지 그 호흡이 길구나, 짧구나 하는 거기서 딱 그쳐야 됩니다. 길기 때문에 왜 긴가 이런 거 알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 사실만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되도록 아나빠나 사띠를 할 때는 움직이는 것보다는 움직이지 않고 하는 것이 용이합니다. 그래서 좌선수행을 되도록 많이 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간혹 이것을 위빳사나 수행에서 응용을 하기도 합니다.

위빳사나 수행을 하다 대상이 빨리빨리 나타나면 못 따라잡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집중력을 좀 키워줘야 합니다.

그래서 대상을 전부 다 놓아버리고 나서 호흡, 여기에만 관찰을 합니다. 잠시 잠깐이라도 이 집중력으로 인해서 그것을 관찰해나가면 집중력이 배가됩니다. 집중이 배가 돼서 어떨 때는 짧은 삼매에 들기도 합니다.

짧은 삼매에 들다가 깨어나더라도 삼매에 들다 깨어날 때는 천천히 깨어납니다. 그 힘이, 영향력이 좀 지속이 됩니다. 그래서 그 지속되는 힘으로 사띠를 연결해나가는 수가 있습니다. 위빳사나로 전환 해가지고. 그럴 때는 대상을 빨리빨리 따라잡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잘 안 돼 나갈 때는 사마타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위빳사나 수행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여러분들은 그것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되도록이면 많이 앉아있도록 하고, 많이 앉아있더라도 이 대상에서 마음이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그 배팅포인트에서 절대 마음이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벗어나면 이게 왜 벗어났는가 하고 그걸 관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잡아 끄집어 들어오면 됩니다. 다시 이대로. 나가면 끄잡아 들이고, 나가면 끄잡아 들이고 해서 계속적으로 이걸 관찰하도록 해나가야 합니다.

 

경행을 한다. 경행을 할 때도 꼭 마찬가집니다.

경행을 할 때 걸음을 옮길 때 '왼발' '오른발' 하면서 어떤 느낌들을 관찰하고, 움직임을 관찰하고, 사대요소를 관찰하고 이걸 하는 것이 아니고, 경행을 하더라도 마음은 여기에 두고 있어야 됩니다.

한번 실제로 경행 할 때 해보십시오. 그냥 순수 위빳사나를 하는 초보자들 같은 경우에는 뒤뚱뒤뚱하고 난리입니다.

왜? 마음이, 그마만큼 내가 못 따라간다는 거라. 일어나는 대상들을.

그런데 초보자라 하더라도 마음을 여기에다 딱 두고 경행을 할 경우에는 적어도 뒤뚱거리는 것은 없습니다. 왜 마음이 여기에 붙잡혀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다시 재빨리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느낌의 변화를 관찰하는 위빳사나 수행으로 전환시키면 또 잘 됩니다.

수행이 안 될 때는 이 방법을 응용할 수도 있습니다.

 

항상 어떤 경우든지 여기가 포인트다 하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이걸 놓치지 않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반드시 배팅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그 배팅포인트를 관찰하는데 다른 것을 섞지 말아라.

그다음에 단순하게 하라. 어떤 것이 일어나더라도 무시해버리고 배팅포인트로 돌아오라. 이 포인트 하나만 딱 하고.

 

그다음에 네 번째로 주의해야 될 것이 뭐냐 하면,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라.

 

인위적으로 이 사마타 수행에서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호흡을 짧게 쉬고 길게 쉬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마타 수행만 할 경우에는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런데 위빳사나 수행을 할 경우 반드시 주의해야 될 거는 자연스러운 호흡입니다! 인위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건 여러분들이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라.

 

이 네 가지를 주의를 하도록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기대하지도 않든 '니밋따(nimitta)'들이 생겨납니다.

여러분들 '니밋따'들 많이 경험했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다 보면 관세음보살이 환하게 나타나고, 그런 것들이 '니밋따'입니다. 그런 것들은 금방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니밋따' 부분에 대한 설명들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에서 한 일주일 동안 줄기차게 한번 연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 아-나-빠-나 사띠 (담마스쿨 법문교재 내용)

 

7각지에 대해 수행하고 싶으면 우선 자-나(선정) 수행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우선 아-나-빠-나 명상에 의해 들어가는 선정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수행의 기초가 되는 경전은 출입식념경, 염처경, 염신경, 대념처경 등인데 모두 호흡에 대한 사띠에서 시작합니다. 다른 경전의 가르침은 좌선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행위에도 적용되는 반면, 출입식념경(아-나-빠-나사띠 숫따)의 수행은 주로 앉아서 하는 수행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출입식념의 설명을 하겠습니다.

 

a. 먼저 집중 포인트를 결정한다.  

우선 결정할 것은 숨이 닿는 포인트입니다. 호흡이 와 닿는 곳을 찾으십시오. 코끝일 수도 있고, 콧구멍 가장자리일 수도 있고, 입술 위, 또는 두 눈 사이에 있는 콧구멍 안일 수도 있습니다. 코의 생김새에 따라 호흡이 와 닿는 곳이 달라집니다.

보통은 코의 입구, 윗입술의 외관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숨은 바람의 흐름이므로 의식이 바람으로 흐르게 되어 의식도 코안으로 들어와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숨의 누르는 힘이 강조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누르는 힘은 딱딱함을 의식시킵니다. 그러면 굳혀가는 힘이 의식되어 갑니다. 이것들이 강조되어 버리는 것에 의해 긴장이 강해집니다. 그러면 얼굴 전체가 긴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행을 해나갈 때 제일 중요한 일은 방법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4대 요소의 관찰 수행을 믹스하는 것은 위험하니 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4대 요소란 땅과 물과 불과 바람입니다. 각각의 특징이 있습니다. 누르는 힘은 바람의 요소, 딱딱함은 땅의 요소, 굳히는 힘은 물의 요소인데 4대 요소의 관찰 수행은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의 4가지 요소를 알아차려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사대 요소에 대한 분별관으로 아-나-빠-나 수행 때에는 볼 필요가 없고 봐서도 안 됩니다. 아-나-빠-나 수행 때는 숨만을 알아차려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뒤죽박죽하지 않기 위해 아-나-빠-나란 무엇이고 사대요소에 대한 관찰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아-나-빠-나'라고 하는 것은 다만 호흡을 보는 것인데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에 대해 사대요소에 대한 관찰은 각각의 특징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땅의 요소라면 딱딱함, 엉성함, 무거움, 그 반대인 부드러움, 매끄러움, 그리고 가벼움입니다. 물의 요소라면 흐르는 요소, 반대로 굳어지는 요소입니다. 불의 요소라면 뜨거움, 차가움입니다. 바람의 요소라면 누르는 힘과 반대의 지지하는 힘입니다. 12가지 특징은 사대 분별관찰로 알아차립니다. 그 12가지 특징을 아-나-빠-나에서는 관찰하며 수행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집중 포인트를 우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포인트에서 호흡을 관찰하지만 호흡을 다만 호흡으로 보고 관찰하면 되는 것이지 <호흡이란 무엇인가> 라고 분석하며 수행할 필요는 전혀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은 꽤 어렵기 때문에 호흡을 세어 가는 수식관이 이용됩니다.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1. 들이마시고 내쉴 때, 2. 그러한 식으로 호흡을 세어가면서 8까지 진행시켜 나가다가 8이 되면 다시 1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침착해지므로 호흡에 의식을 집중시켜가는 것을 용이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호흡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 이것을 길게 5분간, 10분간 지속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 때 중요한 것은 결의입니다. 「이것을 하고 있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한곳으로 집중하겠다.」라는 결의가 중요합니다.  

 

결의를 어떻게 하는가 하면 좌선하여 몸을 정돈한 후「이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30분간 자신의 집중이 계속되도록 하겠다」라고 결의합니다. 그리고 40분간, 다음날은 50분간으로 점점 길게 자신의 집중이 계속되도록 그러한 결의를 하고 아-나-빠-나를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점점 1시간 동안 호흡에 집중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만큼 할 수 있게 되면 이미 수를 셀 필요는 없기 때문에 멈추어도 괜찮습니다.

 

b. 숨의 전체를 응시한다.

그것이 생기면 이번에는 숨의 전체를 응시한다고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즉 숨의 시작, 중간, 마지막입니다. 숨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의 흐름이므로 흐르게 되어 있는데 코안으로 의식이 들어가는 것이 없게 해야 합니다.  

숨의 전체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면 자신이 숨을 어떻게 들이마시고 있는지 보여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는 일이 있습니다. 천천히라는 것은 긴 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긴 숨의 전체,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때로는 숨을 빨리 들이마시지만 그때는 짧은 숨이 됩니다. 그때도 짧은 숨의 전체를 알아차려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 말한 짧은 호흡, 긴 호흡, 전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 명칭을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알아차리면 됩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들이마시고 있음」이든지 「내쉬고 있음」이라고 명칭을 붙여도 좋습니다. 호흡이 길든 짧든 빠르든 느리든 절대로 그것을 의식적으로 컨트롤하지 말고 알아차리기만 하십시오. 스스로 컨트롤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호흡한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집중이 깊어져 가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숨은 희미해져 옵니다. 진심으로 하면 관찰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때는 이것은 숨 전체가 길고 희미하다, 전체가 짧고 희미한 숨이다, 라는 식으로 알아차려 주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 말하는 것처럼 숨이 매우 희미하게 되면 보기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아-나-빠-나인데 숨이 안 보인다고 하는 패닉이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숨을 쉬는 것으로 호흡을 확실히 하려고 하는 일이 있지만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그처럼 호흡이 희미할 때 확실히 하려고 하면 7각지 중에 정진, 노력이라고 하는 요소가 과잉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노력이 과잉이 되면 결과적으로 마음이 초조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선정상태로부터 멀어지므로 그런 것을 해선 안 됩니다.

숨이 매우 희미하게 되고 있기 때문에 그 희미한 숨을 알아차려 가기 위해서는 굉장히 날카로운 기분으로 분명한 이해가 아무래도 필요하게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대상이 매우 세세해지므로 매우 보기 어려워집니다.

 

c. 니밋따가 나타난다.

희미한 숨의 전체를 볼 수가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이해가 있으면 우리의 집중은 점점 깊어져 옵니다. 그러한 집중을 1시간, 2시간으로 계속해 유지할 수가 있으면 니밋따라는 것이 나타납니다.  

그럼 니밋따란 무엇인가? 그것은 요컨대 "표시"입니다. 집중의 "표시"인 것입니다. 마음이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니밋따가 나타납니다. 실제 수행에서 니밋따에 집중해 나가는 것으로 한층 더 집중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는 것입니다. 집중이 깊어지면 니밋따가 나타나고 니밋따가 나타나면 집중이 깊어집니다. 

 

수행자의 경험은 2가지가 있습니다. 니밋따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사람과 빛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니밋따와 빛의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혜의 빛은 몸을 싸는 것 같은 모습으로 빛이 나타납니다.  

그에 대해 니밋따라고 하는 것은 출입식의 코 입구에 1개의 형태가 되어 나타납니다. 코의 입구의 집중 포인트에 나타나는 것이 니밋따이고, 그렇지 않고 중심을 가지지 않고 머리와 몸을 싸는 것 같은 형태로 나타나 오는 것이 지혜의 빛입니다. 니밋따는 집중의 대상이 되지만 빛은 집중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빛이 나타나도 그에 대한 집중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니밋따가 나타날 때 처음은 회색입니다. 초심자의 경우 아직 집중하는 자신이 불안정한 상황이기 때문에 니밋따 그 자체도 매우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니밋따는 최종적으로는 집중의 대상이 되지만 갑자기 니밋따에 집중해 나가면 사라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호흡에 대해 집중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호흡에 대해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니밋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흡에 대한 집중이 깨지면 집중이 없어져 니밋따도 없어져 버립니다. 실제 수행에서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니밋따가 나타나도 곧바로 그쪽으로 집중하지 마십시오.

 

d. 니밋따가 나타나도 거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호흡에 대한 집중이 니밋따를 낳으므로 니밋따가 나타나도 곧바로 그쪽으로 달려들지 말고 호흡에 대한 집중을 계속해 주십시오. 그것을 계속해 가는 것으로 호흡에 대한 집중이 강해져서 니밋따가 분명히 강한 빛이 되어 나타나면 니밋따 그 자체가 매우 안정되고 쓸모 있게 됩니다.

니밋따가 강한 송곳같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지면, 다음 대상을 호흡으로부터 니밋따로 이행합니다. 그렇게 다음 대상인 니밋따에 집중하면 그 니밋따 안에 들어가는 상황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니밋따라고 하는 것이 점점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니밋따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1시간, 2시간으로 늘어나면 회색이었던 색이 순면 같은 흰색이 되어집니다. 그것을 한층 더 집중해 나가면 집중력이 한층 더 깊어져 흰색으로부터 다시 투명하고 깨끗한 빛이 되어집니다. 이렇게 니밋따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집중에 따라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e. 선정에 들어간다.

그렇게 니밋따가 매우 투명한 빛이 되어지고 그에 대해 몇 시간씩 집중 상태를 계속해 가면 호수 안에 돌을 던지면 가라앉듯이 니밋따 안에 마음이 스윽 가라앉아 가는 것 같은 상태가 되어집니다. 그러면 완전한 몰입 상태가 되어 자나(jhāna), 선정이라고 하는 마음 상태가 되어집니다.

그러한 식으로 해서 선정에 들어가지만, 그것이 몇 시간째 계속되어 갔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는 7각지가 선정의 몰입 상태와 결합하게 됩니다.

 

*** 7각지

 

7각지는 첫 번째가 사띠인 염각지. 두 번째가 법을 선택하고 조사해 가는 것인 택법각지. 세 번째가 노력인 정진각지. 네 번째가 삐띠, 기쁨인 희각지. 다섯 번째가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상태인 경안각지. 다음 여섯 번째가 사마디인 선정각지. 마지막 일곱 번째가 우펙카인 사각지입니다.

 

각지라고 하는 것은 원래 보디앙가(bodhi aṅga)입니다. 보디(bodhi)는 깨달음, 앙가(aṅga)는 그것을 구성하는 것. 닙바나를 구성하는 7개의 것으로 그것을 각지라고 해서 출세간적인 것입니다.

삼보-디라고 칭송받는 사람은 깨달음을 구하여 정진해서 지식과 지혜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그것을 2개로 나누면 세상적인 것과 출세간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후자는 닙바나를 대상으로 한 7각지입니다. 세상적인 것은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개는 자나(선정)를 대상으로 한 7각지, 또 하나는 위빳사나를 대상으로 한 7각지입니다.

 

* 세속적인 7각지와 출세간적인 7각지

 

무상, 고, 무아라는 3가지에 집중해 나가는 것이 위빳사나 통찰수행이고, 호흡에 집중해나가는 것이 아나빠나 사마타 선정수행입니다. 그러한 위빳사나와 사마타 수행하는 것을 세속적인 7각지라고 부릅니다.

선정과 통찰수행의 세속적인 7각지를 해나가면 결국 도와 과라고 하는 최종적인 깨달음을 이룹니다. 그것이 닙바나를 대상으로 한 것이며 그 닙바나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 마음속에 있는 7각지를 출세간적인 7각지라고 합니다.

 

*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관계에 대해

 

예를 들어 아나빠나 수행을 해나가면 최종적으로는 선정에 들어가고 거기에 들어간 마음속에 7각지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위빳사나 수행을 해나갈 때 궁극적인 정신과 물질성 및 인과관계를 알아 본질인 무상, 고, 무아를 철견하고 그 위빳사나를 수행하고 있는 마음속에 7각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관계는 사마타, 즉 깊은 선정상태에 들어간 것을 기본으로 해서 위빳사나에 들어가 궁극적인 정신성, 물질성을 관찰해 나갑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선정에 들어간 상태는 삼법인이라는 진리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에 의하면 우리의 육체는 깔라빠라고 하는 미세한 것에 의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원자보다 작기 때문에 보는 것이 어렵습니다. 정말 깊은 집중 상태에 들어가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4개의 요소에 대해 관찰해 나가는 것으로 깔라빠를 보는 것으로 들어갑니다.

 

깔라빠라는 것은 완전한 궁극적인 물질이 아닙니다. 깔라빠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 8개의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지, 수, 화, 풍, 색깔(외형), 향기, 맛, 영양소의 8가지인데 그것들 8가지가 궁극적인 물질성입니다. 그것들을 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집중이 필요하게 됩니다.

선정을 깊게 해가는 것에 의해 이 사대요소의 분별 관찰이 가능하게 되어 궁극의 물질성을 보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 들어간 마음에는 7각지가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한 선정상태에 들어간 마음에서 선정으로부터 나오면 궁극적인 정신성과 물질성의 그러한 인과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빳사나로 관찰하여 무상, 고, 무아를 압니다. 무상, 생겼다가 곧바로 소멸해 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항상 압박되고 있고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만족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불만족, 둑카입니다. 그중에서 무언가 실체적인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것도 실체가 없기 때문에 무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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