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걷는 수행>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11)

관리자
2021-04-24
조회수 497

게시자 Co-Admin Mahānāma

Mahānāma Pariyatti, patipatti, pativedha

Mar 12, 2021, 12:00 AM

한국테라와다불교《빤냐완따》이사장 스님의 금요법문

Read by 



<걷는 수행>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

《11》

‘마음’은 <걷는수행>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Ⅱ)


1시간의 좌선을 마치고 <걷는수행>을 하기 위해 눈을 뜨려는 순간이었습니다. 눈을 뜨려는 의도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시 생겨나면서 눈꺼풀은 천천히 위로 올라갔고,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자마자 눈에 이상한 현상이 목격되었습니다. 명상홀 10m 전방은 하얀 벽면이었는데. 그 벽면과 함께 어떤 물체 하나가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그것은 벽시계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그 벽시계는 이 승이 늘상 보아오던 그 벽시계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계는 찰라지간 퍼즐 조각처럼 맞추어지면서 시계의 모양이 되었고, 시간을 인식하는 과정 역시 순간적으로 부품조립 과정을 거치면서 로봇이 완성되는 것과 같았습니다., 부분 부분 촬영된 슬라이드 사진을 한 컷 한 컷 보는 것과 같이 초침 분침 시침이 분리된 채 각각 순차적으로 시각인식 되면서 시간의 개념을 형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을 정확히 인식한 다음 시계를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바라보니, 툭,툭 거리는 초침의 떨림과 함께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분침의 미세한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수행을 하다 보니 별 것이 다 보이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날은 눈을 감았다 뜨기만 하면 시각 대상들이 아직 개념화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 보였고, 이따금씩 뒤이어서 개념(표상인식, 혹은 명칭)의 형성과정이 펼쳐졌습니다. 우리가 법당에서 부처님을 올려다 볼 때, 부처님 상호가 순간적으로 한꺼번에 시각인식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독특하고 두드러진 부분부터 순차적으로 눈에 인식됩니다. 가령, 코, 눈, 입, 이마 등이 순차적으로 시각인식 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부처님의 전체 상호와 부처님이라는 개념이 형성됩니다.

이와 같은 인식현상은 시각 대상뿐만 아니라 청각 대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창문 너머 밀림 속에는 온갖 새들이 살고 있었는데, 좌선하는 도중에 그 새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습니다. 앉아서 안(들숨과 날숨의 감각, 몸의 느낌, 혹은 심리현상 등)을 들여다보는데 열중하다 보면 대체로 밖을 향한 5감각기관의 인식기능은 멈추거나 미세하게 작동합니다. 집중력이 약해지거나 혹은 의식을 의도적으로 밖을 향하게 하면 5감각기관이 제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밀림속의 새소리 역시 그랬습니다. 새들은 온종일 밀림 속에서 끊임없이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이 승의 귀에는 들릴 때도 있었고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들릴 때는 단지 음의 파동으로만 들릴 때가 있었고, ‘귀에 소리가 들리는구나’ 정도로 인식될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단지 새소리로만 들릴 때가 있었고, 또 어떤 때에는 ‘까마귀들이 떼지어 소리를 내는구나’ 하고 인식할 때도 있었습니다.

귀는 청각대상을 단지 음의 파동으로만 인식하거나 혹은 소리로, 새소리로, 까마귀 소리로 알아듣곤 하였습니다. 간혹 까마귀 소리에 알아차림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까마귀라는 개념(이미지, 명칭)이 사라지고 새소리라는 개념, 소리라는 관념마저 사라지면서 오직 음의 파동만 인지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음의 파동에 분명한 앎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다보면 그 음의 파동 역시 생겨났다 사라짐,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변화를 거듭하고 있었으며, 이따금씩 그 음의 파동마저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그날 이후 한동안은, 6감각기관에 지각되는 모든 것들이 예전에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성질의 것으로 인식되어 졌습니다. 어떤 때는 해체되었다가 형성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형성된 것이 해체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인식하고 있는) 이 세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개의 얼굴, 두 개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즉, 개념·관념에 의해 형성된 세계와 개념화되기 이전의 실재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걷는수행>의 위력을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걷는수행>은 <좌선수행>과 <일상생활수행>의 중간 지점에 놓여 있는 행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정적이지 않으면서도 너무 동적이지도 않은 수행. <걷는수행>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알아차림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줄 뿐만 아니라 <좌선수행>에서의 집중력과 통찰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줍니다. 사실 <좌선수행>이 산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재된 의식의 뿌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행법이기는 합니다만, <좌선>의 집중력을 가지고 일상으로 나아갔을 때 그 집중력은 쉽게 깨어집니다. <좌선수행>에서의 고요와 <걷는수행>에서의 활성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좌선수행>은 <걷는수행>을 돕고, <걷는수행>은 <좌선수행>을 돕는 상호보완 속에서 더 깊은 통찰로 나아갑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언제, 어디서나 일상의 모든 행위들이 <팔정도수행>의 대상이 될 때, 비로소 ‘삶과 수행은 둘이 아니라’는 바른 견해(正見, Sammā-diṭṭhi)와 함께 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이 일어납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무상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마침내 사성제를 깨달아 번뇌의 온전한 소멸에 이를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오늘도 직립보행 하면서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의 직립보행이 무심코 걷는 걸음이 아닌 정념정지(正念正知) 즉, 올바른 앎에 의한 알아차림이 함께 하는 <걸음>으로 바뀐다면, 그것은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증오와 슬픔과 번민 속을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윤회열차에서 내려 열반행 열차로 갈아타는 것입니다.

11회에 걸친 ‘<걷는수행>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법문 연재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미처 설명드리지 못했던 ‘<걷는수행>의 구체적인 수행방법’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해놓은 것이 있느니, 모래 3월 14일자 일요일 법문에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무심히 걷지 마십시오.
무심히 걷는 당신의 발걸음이 훗날 당신을
생사윤회(生死輪廻)의 밤길로 이끌 것입니다.

<걷는수행>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바른 노력과 올바른 알아차림이 함께 하는
당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훗날 당신을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부지런히 정진하십시오.
<걷는수행>과 함께하는
팔정도(八正道)를 실천수행하여
부디, 대자유인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불멸 2565(2021). 3.12
천림산 기슭에서 합장


+++++++++++++++++++++++




부처님의 존상(불상) 이야기·Ⅱ
<한국 편>

불교경전을 한국문학의 보물창고라고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대유물의 상당수가 불교역사의 산물들입니다. 한국의 유형·무형의 전통문화는 불교를 떠나서는 결코 온전히 이해되거나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조형예술을 보면 많은 작품들이 불교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불상(佛像), 즉 부처님의 존상은 불탑과 더불어 조형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기 372년 이 땅(고구려)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이래 불교의 조형문화 역시 시대에 따라 혹은 그 지역의 특색에 맞춰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습니다. 특히 불탑이나 부처님 존상은 불교인들에게 있어 예배·경배의 대상이기 때문에 제작에 한층 더 심혈을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조형물보다도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보존하였습니다.

부처님 존상이 이 땅에 최초로 모셔진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으로서, ‘전진(前秦)시대 순도(順道)스님이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이 땅에 왔다’라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흥법(興法)조>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보다 12년 뒤인 서기 384년 서역에서 온 마라난타 스님에 의해 불교를 받아들인 백제를 살펴보면, 한산(漢山, 현재의 서울)의 뚝섬 지역에서 이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처님 상이 발견되었는데, 약 5cm 크기의 금동여래좌상으로서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부처님의 존상입니다. (자료사진 참조)


* * *


《일곱 살 때》

절에 갔었네, 일곱 살 무렵
할매 손 잡고 시오리 산길
금빛 부처님 집에 갔었네.

성철스님 열반할 땐 가야산으로
서옹스님 ‘할’을 할 땐 운문암으로
서역만리 버마 건너 실론섬으로

사념처(四念處) 닦으며 돌아다녔네.
몸과 마음 관(觀)을 하며 오늘은
가을빛 가사 감고 예경을 하네.

‘윤회계의 모든 존재들 행복하소서!’
아침엔 이렇게 축원을 하고 저녁엔
‘이 몸은 뼈와 살과 눈물과 핏물···’

절에 갔었네, 일곱 살 무렵
금빛 부처님 만나러 시오리 산길
인제는 가고 없는 할매 손 잡고 





  • 1

















  • 1



  • 1



  • 1





  • 1



  • 1



  • 1















  • 1



  • 1



  • 1


0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중부권) 031-475-9171  (남부권) 052-260-2841

            (PHONE)  010-8848-3468/010-7360-9171

E-MAIL: theravada2008@kakao.com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ALL RIGHTS RESERVED.


CONTACT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중부권) 031-475-9171

            (남부권) 052-260-2841

           010-8848-3468/010-7360-9171

E-MAIL: theravada2008@kakao.com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

ALL RIGHTS RESERVED.




© BYULZZI Corp.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byulz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