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걷는 수행>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6)

관리자
2021-04-24
조회수 502

게시자 Co-Admin Mahānāma

Mahānāma Pariyatti, patipatti, pativedha

Feb 28, 2021, 12:00 AM

한국테라와다불교《빤냐완따》이사장 스님의 금요법문 

Feb 26, 2021, 9:1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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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수행>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

《6》

초기불전에 나타난 <걷는 수행>의 양상·Ⅲ


(『법구경』과 율장 대품『마하박가』에는 비구 앗사지의 탁발 모습을 보고 감동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Caṅkama(경행)라고 하는 단어는 실제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앗사지 비구가 <걸음걸이> 또는 그 밖의 모든 신체 동작에 대해서 마음을 집중시켜 주의 깊게 행위하지 않았다면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앗사지 비구로부터 그토록 위의 있고 단아한 수행자다운 풍모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탁발할 때 앗사지 비구의 걸음걸이는 단순한 발걸음이 아닌 <걷는수행> 혹은<경행수행>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때 부처님의 최초의 다섯 제자 다섯 사람(5빅쿠) 가운데 막내 격인 앗사지 빅쿠는 부처님과 여행을 같이 하면서 웰루와나 수도원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고 아침 일찍이 라자가하 시내로 탁발을 나갔다. 바로 이때 우빠띳사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암자에서 수행하는 수행자들을 찾아보기 위하여 라자가하 시내를 걷다가 앗사지 빅쿠를 만나게 되었다. 우빠띳사는 앗사지 빅쿠가 탁발을 하기 위해 점잖고 위엄 있게, 자신의 정신을 ‘’걸음걸이’에 잘 집중 밀착시키면서 흔들림 없는 태도로 ‘’걸어가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아직까지 저렇게 단아하고, 번뇌 없는 태도로, 다만 걸을 뿐 아무런 잡념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우빠띳사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아직껏 이같이 진정한 수행자다운 태도를 지닌 이를 만난 적이 없다. 이런 수행자라면 틀림없이 아라핫따 팔라를 성취한 성자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도 아라핫따 막가에 있는 분일 것이라.”
【법구경 게송11·12 배경담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테라 이야기>】


앗사지((Assaji) 비구가 아침에 법의를 입고 발우를 들고서 라자가하로 걸식하러 갔다. 그는 ‘나아가고’ ‘물러서고’, 앞을 보고 뒤를 보고, 굽히고 펴는 것이 의젓하였고, 눈은 땅을 향하여 훌륭한 몸가짐을 갖추고 있었다.
사리풋타가 라자가하에서 걸식하는 앗사지 비구를 보았다. 그는 ‘나아가고’ ‘물러서고’, 앞을 보고 뒤를 보고, 굽히고 펴는 것이 의젓하였고, 눈은 땅을 향하여 훌륭한 몸가짐을 갖추고 있었다.
사리풋타는 생각했다.
‘세상에 아라한이 있다면, 아라한의 도(道)를 갖춘 자가 있다면, 저 비구야말로 그들 중 한 분이다. 저 비구에게 가서 물어 봐야겠다. 그는 누구에게 출가하였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는가를.’
【Vinaya Pitaka(律藏) 『Mahāvagga(大品)』,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출가’ 부분】

빅쿠 생활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던 빅쿠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그렇다고 다시 세속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차라리 목숨을 끊으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한번은 독사가 들러 있는 항아리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독사는 전생에 빅쿠의 하인이었으므로 전생의 주인을 물지 않았다. 이 일 때문에 그는 뱀의 주인이라는 뜻의 삽빠다사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뒤에, 그는 또 이번에는 날카로운 면도칼로 자기 목을 찔러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날카로운 면도날이 자기 목에 닿는 순간 자기가 일생 동안 청정하게 빅쿠 생활을 해온 것에 대한 환희와 만족감이 전신에 넘쳐 흐르는 것을 느끼고 크나큰 행복감에 몸을 떨었다. 그는 환희를 체험하고 나서 그는 마음을 자기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에 집중시켰다. 그리하여 그 관찰력에 의해 삼매를 이룰 수 있었고, 곧 아라핫따 팔라에 도달하였다. 그는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
“처음에 나는 이 칼로 내목을 자르려고 했었소. 그러나 나는 내적 관찰의 지혜라는 칼로써 모든 번뇌를 끊어버렸소.”
그러나 빅쿠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빅쿠들은 부처님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이 빅쿠는 생명을 끊으려고 목에 칼을 대었다가 아라핫따 팔라를 성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짧은 순간에도 아라핫따 팔라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빅쿠들이여, 그러하니라, 그것은 가능한 일이니라. 어느 누구라도 용맹스럽게 마음을 다잡아 고요하게 하여 내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을 예리하게 관찰한다면 그는 어느 한순간에 아라핫따 팔라를 성취하게 되느니라. 예를 들어 어떤 빅쿠가 ‘’걷는 행위’에 마음을 집중시킨다고 할 때 그가 발을 들어 올렸다가 그 발을 다시 땅에 닿기 전에 아라한을 이룰 수도 있느니라.
【법구경 게송112 배경담 <삽빠다사 테라 이야기>】

경행의 일주일(Caṅkama Sattāha)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은 후 7주 동안 보리수 주변에서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반조하며 열반의 기쁨을 누리며 보내십니다. ·····
성도 후 셋째 주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보리좌와 그 보리좌를 응시하신 곳 사이에 천신들이 마련해 준 보배 ‘경행대’ 위를 ‘경행’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곳에서 법에 대해 반조하고 과에 입정하면서 일주일을 보내셨습니다.

【빨리어 성전을 통해 본
부처님의 생애 『부처님을 만나다』】

그렇게 태자에게 매우 뜨거운 열이 생겨났을 때, 그는 ‘경행대’에서 기절하여 굴러 넘어졌다. 보기에 흉하도록 굴러서 쓰러진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이 크신 분답게 ‘경행’하다가 주저앉게 되고 그리고 옆으로 굴러진 것이다. 그렇게 태자가 기절하여서 굴러 넘어지자 ‘경행대’ 근처에 있던 천인들이 서로 각기 의견이 세 가지로 갈라졌다.
어떤 천인들은“오, 수행자 고따마가 죽었구나.” 라고 했다. 어떤 천인들은 “수행자 고따마가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 죽고 있는 중이다.”라고 했다. 어떤 천인들은 수행자 고따마가 죽은 것도 아니고 죽고 있는 중도 아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아라한이 된 것이다. 지금 저렇게 있는 모습은 아라한이 지내는 모습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세 종류의 천인들 가운데 ‘죽었다’라고 말하는 천인들이 숟도다나 대왕에게 가서 알려드렸다.
“오! 대왕이시여, 당신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나의 아들이 붓다가 된 다음에 죽었는가? 붓다가 되기 전에 죽었는가?”
숟도다나 대왕이 물었을 때 그 천인들이 대답하기를
“당신 아들이 붓다가 되지 못하고 기본 수행을 하고 있는 ‘경행대’ 마당에서 굴러 넘어져서 죽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숟도다나 대왕은 확신있게 대답하였다.
“나는 당신들이 하는 말을 조그만치도 믿지 않는다.
나의 아들이 삽빈뉴따 냐나를 얻지 못하고,
붓다가 되지 못한 채 죽음이란 법은 있을 수 없다.”
【『Mahā Buddhavaṃsa』 중에서】

(『Mahā Buddhavaṃsa』는 미얀마의 삼장법사 밍곤 사야도가 빨리어 3장을 근거로 하여 엮은 부처님의 일대기입니다.)


7일이 지나자‘마하테라께서 왕궁에서 지내는 것은 그 분에게 고통이다.’라고 생각이 든 까까윈나띠사 대왕이 꾸란따까(Kurantaka) 동굴로 모셔드렸다. 그 동굴에 돌아가셔서 밤중에 ‘경행대’에 오르셔서 조용히 ‘경행’을 하시며 집중 관찰하셨다. 강고 나무에 살던 목신이 횃불을 들고 와서 밝혀 드렸다.
그 때 마하테라께서‘왠일인가? 나에게 오늘 수행이 매우 분명하고 깨끗하게 드러나는구나’하고 생각되자 매우 큰 기쁨이 솟았습니다. 한밤중이 되자 온 산천을 일시에 진동케하며‘아라한 과’에 이르셨다.
【『Visuddhi-magga(淸淨道論)』
<Sīla-niddesa>중에서】


두 형제분 마하테라 중에 한 분께서 보름날 포살(빠띠목카)을 마치고 스님들을 모두 데리고 자기가 지내던 장소로 가서 ‘경행대’에 서서 달빛을 바라보다가 자기의 수명을(Āyusankharā)을 생각해보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스님들! 어떠한 모습으로 빠리 닙바나(몸과 마음이 완전한 닙바나)에 드는 비구들을 본 적이 있는가?” 하고 스님들에게 물으셨다.
“자리에 앉아서 빠리 닙바나에 드시는 것을 제자가 본 적이 있습니다.”
“하늘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빠리 닙바나에 드시는 것을 제자가 본 적이 있습니다.”라고 여러 가지로 대답하자 그 때 아라한 마하테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경행하면서’ 빠리 닙바나에 드는 것을 보여주겠다.”
그리고 ‘경행대’에 오르시고 나서 땅바닥에 금을 긋고
“내거 저쪽 ‘경행대’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여기까지 이르면 빠리 닙바나에 들리라.”그리고 천천히 ‘경행하면서’ 저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한 발로 그 금을 밟는 순간에 빠리 닙바나에 드셨다.
【『Visuddhi-magga(淸淨道論)』
<Anussati kammaṭṭhāna-niddesa>중에서】


부처님의 오랜 시자였던 아난존자는 부처님 생존 당시 오직 수다원과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다음 가섭존자에 의해 오백(五百) 아라한을 모아 부처님의 경전을 결집토록 하였다. 그러나 아난존자는 경의 결집 전날까지 아라한이 아니었기에 결집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난존자가 참석하지 못하면 경전의 외워냄이 불가능하여 경이 결집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아난존자는 아라한과의 성취를 결심하고 정진 노력 중이었으나 경전 결집 전날 밤에 이르도록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경행’ 정진인 까야가타-사띠(Kayaghatta-sati, 일정한 장소에서 마음을 걷는데 집중시키며 왔다 갔다 하는 것)를 계속하는데 경전 결집날의 먼동이 터오고, 이때 스스로 느끼기를 ‘정진에는 행주좌와에 균형을 지켜야 하는데 나는 너무 걷기만 했구나,이제 처소에 들어가 누워서 허리를 쉬며 정진하겠다.’라고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며 마음집중을 시켜 자리에 들었다. 몸의 동작을 예리하게 정확히 관찰하면서 눕기 시작하여 베개가 머리에 채 닿기 전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모든 부담과 무거웠던 짐을 일시에 내려버린 듯 가벼운 몸이 되고,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롭게 됐으며 법에 대한 의심이 없어져 마침내 부처님의 경전을 결집하는 데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Vinaya Pitaka Khandaka(律藏 犍度)『Culavagg(小品)』에 나오는 제1차 경전 결집에 대한 내용 중에서 아난다 존자의 경행과 관련된 부분을 요약·정리했습니다.『깨달음의 길』 (아마라야노 엮음, 1989)에서 인용.》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는 대로 잘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집에서는 원만하고 청정한, 진주처럼 빛나는 범행을 닦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친 뒤 출가하고 싶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를 출가시켜 주십시오.”
그리하여 소나는 세존께 허락을 받아 구족계를 받았다. 그런 뒤 소나는 시타 숲에서 지냈다.
그런데 그는 지나치게 정진하여 ‘경행(經行)’하던 발이 터졌다. 그가 ‘경행’하던 곳은 피로 덮여 마치 도살장 같았다. ·····
세존께서는 수많은 비구들과 함께 앉고 눕는 장소들을 거쳐서 소나가 경행하는 곳으로 가셨다. 세존께서는 소나가 ‘경행’하는 곳이 피로 덮여 있는 것을 보셨다. 그리하여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여기는 누가 ‘경행’하던 곳인데 피로 덮여 있느냐? 마치 도살장과 같구나.”
“세존이시여, 소나 비구가 지나치게 열심히 정진하여 ‘경행’하던 발이 터져 벼렸습니다. 여기는 그가 ‘경행’하던 곳인데 피로 덮여 도살장같이 되었습니다. ·····”
“소나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세속에 있을 때 비나를 잘 연주하였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나의 줄이 팽팽하면 비나의 소리가 제대로 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나의 줄이 느슨하면 비나의 소리가 제대로 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나의 줄이 팽팽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을 때 비나의 소리가 제대로 나더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소나야, 지나치게 열심히 정진하면 흥분 속에 들끓게 된다. 또한 지나지게 느슨히 정진하면 나태함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소나야, 너는 정진하는 데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라. 그리고 여러 감관들에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라. 그리고 그것에서의 모습을 파악해라.“
“예, 세존이시여.”·····
그후 소나는 정진하는 데 균형을 유지하고 감관에 균형을 유지하며 그곳에서의 모습을 파악하였다. 소나는 이렇게 홀로 떨어져 게으르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올바로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위없는 범행을 이루어 잘 알고 얻어서 모두 갖추게 되었다. 여기서 소나는 다음과 같이 잘 알게 되었다.

나의 괴로운 삶은 끝났다.
청정한 범행을 완성하였다.
해야 할 바를 다 하였다.
다시는 재생의 괴로움을 받지 않는다.
마침내 소나 장로는 아라한(阿羅漢)
중의 한 명이 된 것이다.

【Vinaya Pitaka(律藏) 『Mahāvagga』
(大品) ‘소나 콜리비사의 출가’ 중에서】


불멸 2565(2021). 2.28
천림산 기슭에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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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 이야기·Ⅱ
(스리랑카 편)


인도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왕(BC 234~310)은 목갈리뿟따 띳사 장로비구가 이끄는 제3차 빨리어 3장 결집을 적극 후원하였고, 결집된 팔리어 3장을 이웃 국가(스리랑카·미얀마·태국)에 전하기 위해 친교사절단을 파견하였는데 그 첫 번째 국가가 바로 스리랑카입니다.

아쇼카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는 5비구와 함께 당시 스리랑카의 수도인 아누라다뿌라 근교에 도착했고, 마침 그곳으로 사냥 나왔던 데와남삐야 띳사왕이 마힌다 장로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스리랑카는 빨리어 3장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인도 붓다가야에서 가져온 해탈 보리수 묘목을 수도 중심부에 기념 식수하게 되니 이것이 빨리어 3장과 함께하는 스리랑카의 테라와다불교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BC 1세기 인도 남부 촐라국(흰두교 신봉국가)의 침략으로 왕은 수도를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고, 때마침 발생한 극심한 기근으로 대부분의 스님들은 승단을 떠나거나 굶어죽어 갔습니다. 이렇게 7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불교를 후원하던 왕도 민중도 없는 가운데 암송전승 되어오던 빨리어 3장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이에 마지막 남은 승단은 7년여에 걸쳐 빨리어 3장을 야자수 잎(패엽)에 문자로 기록하는 제4차 결집을 결행하게 됩니다.

수도 아누라다뿌라를 중심으로 하는 스리랑카(싱할리족)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전국 각지에 불탑(Dagaba, Cetiya)이 조성되고 해탈 보리수의 묘목이 식재되면서 불탑신앙과 스리랑카 특유의 보리수 신앙이 보편화 됩니다. 이렇게 꽃피웠던 1천 년간의 찬란한 불교문화는 AC 10세기 인도 촐라국의 재침입으로 인해 황폐화 됩니다. 테라와다 비구니 승단이 이때 사라집니다. 미얀마도 태국도 이미 비구니 계맥이 끊긴 상태에서 비구니 승단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테라와다불교는 그 끊어진 계맥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아직까지 못 찾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누라다뿌라를 중심으로 한 싱할리 왕국의 마지막 왕인 위자야바후 1세는 인도 촐라국의 군대를 피해 스리랑카 폴론나루와(스리랑카 북동부)로 수도를 천도(AC 993년)하여 국가를 재정비하니 이때부터 비로소 테라와다불교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 스리랑카 불교는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하였고, 한때 포르투칼군과 연합한 꼿떼 왕국의 카톨릭 개종으로 말미암아 테라와다 비구 승단마저 소멸(1721)되었다가 1753년 스리랑카를 방문한 태국 비구들에 의해 비구승단이 다시 복원(1753)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래 불탑 사진 자료들 중에서 코끼리가 하얀 불탑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은 수도 콜롬보에 있는 강가라마 사원(일명 코끼리 사원, 2001년)에서 찍은 것이며, 하얀 불탑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두 스님 사진은 스리랑카 남부 엘레칸다 수행처에서의 한 장면입니다. 스리랑카 불탑 유적의 대부분은 폴로나루와(스리랑카 북동부) 지역에 남아 있고, 또 일부가 아누라다뿌라(스리랑카 북서부) 지역에 세계 최고령 해탈 보리수와 함께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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