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10. 정정(正定, sammā samādhi, 삼마- 사마-디) (20081204)

담마마-마까
202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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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CUu24occRE


10. 정정(正定, sammā samādhi, 삼마- 사마-디) (20081204)

 

자! 시작해 봅시다.

오늘은 팔정도 마지막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 부분입니다.

수행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몸과 마음입니다. 그런 몸과 마음의 자연적인 성품에 대한 관찰이 수행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몸과 마음이라고 하는 대상이 아닌 것에 집중을 해서 삼매를 이루는 것은 쉽습니다. 어쩌면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 많은 대상을 관찰해야 되기 때문에 어려운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보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가지고 삼매를 어느 정도 계발하고 나서 위빳사나 수행을 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두 부류의 장단점이 있지만은 서로 응용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효율적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사마타 바와나'가 '위빳사나 바와나'와 틀림없이 다른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위빳사나 바와나'를 하면서도 '사마타 바와나'를 채용해서 좀 더 알아차리는데 높은 집중력으로 인해서 근본적인 몸과 마음의 것을 알아차리기 용이하듯이 '사마디 바와나'로 인해서 '빤냐 바와나'를 계발하기 용이해집니다. 그래서 지혜를 계발해서 바른 견해를 가지려고 할 것 같으면 또 '사마디'라고 하는 것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런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그렇지만 이 사마디로 인해가지고 완전한 깨달음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니까 이것은 한계성을 지닌다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삼마- 사마-디(sammā samādhi)'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마음집중이다'라고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보통 의심을 많이 하든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열심히 부처님을 믿든지 해서 그 믿음으로 인해서 이런 의심이나 자신감들이 부족한 것들을 콘트롤 해나갑니다.

또 일상생활이나 수행에서 나태와 게으름에 빠져있을 것 같으면 열심히 노력하는 '위리야(viriya)'로 인해가지고 그 부족한 것들을 통제를 또 해나갑니다.

또 무엇을 잘 깨먹고 부주의하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하는 사람들은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으로,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그런 것들을 많이 또 콘트롤 해나갑니다.

그런 것들은 어느 정도 콘트롤이 되는데 가장 하기 힘든 것들이 뭐냐 하면 '마음이 산란'한 것들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다 보면 하도 신경 쓸 일들이 많으니까 마음이 굉장히 많이 방황을 하고 산란해집니다. 그런 것들은 이 집중, 사마디라고 하는 것으로 인해서 콘트롤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또 어리석고 하는 것들은 조금 더 지혜로운 것으로써 콘트롤 해나가고 그럽니다.

이것을 부처님은 '오력'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다섯 가지의 균형을 맞춰라! 하고 얘기합니다.

수행에서도 이것들이 고루 계발이 되어 나가고 있도록 해야 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빤냐(paññā)'라고 하는 것은 '사마디'로 인해서 많이 계발이 되어 나갑니다.

마찬가지로 알아차림, '사띠'가 줄기차게 있으려고 할 것 같으면 '사마타'로 인해서 많이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게끔 됩니다. 그런 것들을 이해를 하고.

그래서 부처님도 '삼매를 충분히 계발하도록 하라!'라고 합니다. 충분하게 삼매가 계발되어 있으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가 있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사마타라고 하는 것은 강한 삼매를 일으킵니다. 위빳사나에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데 궁극적인 몸과 마음의 현상을 알아차릴려고 할 것 같으면 이런 강한 삼매가 없으면 안 됩니다.

강한 삼매로 인해서 물질을 쪼개고 쪼개고 해서 궁극적인 물질, 그다음에 마음도 쪼개고 쪼개고 해서 궁극적인 마음을 통찰할 수 있어야 만이, 이 궁극적인 물질과 정신이 변하는 속성이라든지, 그리고 만족하지 않는 속성이라든지, 그 속에 특정하게 '나'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속성이라든지 하는 그런 현상들을 바로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속성들을 분명하게 볼 수가 있게 됩니다.

 

사마타 수행을 하는데 가장 큰 이익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삼법인의 정확성을 가져오는 힘을 갖다가 키워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또 사마타는 어떤 이익이 있느냐 하면, 위빳사나는 알아차릴 대상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쉽게 사람들이 피곤해집니다. 계속 알아차리다 보면.

그런데 사마타는 하나의 대상에 몰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많이 피곤해졌을 때에는 사마타 수행을 해가지고 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수행에서 굉장히 피곤해질 때 많은 이익을 줍니다. 다시 추스르는 역할들을 해주게 됩니다.

 

사마디를 계발하면 보통 이런 이익들이 있습니다. 위빳사나 할 때 통찰하는 힘을 길러주고 또 계속적으로 수행을 해나갈 수 있게끔 피곤하지 않게끔 해주는 역할들을 해주고 합니다.

 

그래서 보통 '수행의 세계이다' 하고 얘기를 하면 사띠라고 하는 알아차림, 일반적으로 「'위빳사나라고 하는 정념'과 '정정이라고 하는 사마디'를 수행의 세계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정념’과 ‘정정’을 붙들고 가야 됩니다. 이것이 없으면 완전하게 통찰할 수가 없고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스님들의 생각입니다.

 

숨을 자연스럽게 쉬지 못하면 일반적으로 수행을 할 때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그러면 사마디를 수행할 때에도 마찬가지겠죠. 대상에 대해서 자연스러워지지 못할 것 같으면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어려워합니다.

숨도 여러분들이 수행을 해 봐서 알겠지만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서 가장 자연스럽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수행이 수월해지고 진척이 빨라집니다.

 

사마디를 계발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매라고 하는 것도 호흡과 같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사마디의 대상이 한 40가지가 되지만은 이 대상에 마음을 몰입할 때에도 자연스럽지 못하면 굉장히 방해를 받습니다. 마음을 주의 깊게 대상을 알아차리는 데에도 방해를 받고 또 그로 인해서 삼매도 일어나지를 않게 되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럴려면 우선 '삼마 사마디'를 하기 위해서 전제조건은 뭡니까?

자연스럽고, 몸과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에서 내가 이번에 이런 삼매를 체험해 봐야지 하는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라앉히지를 못하죠! 이 시간 동안에는 '전에 내가 초선정을 체험해 봤다, 이번에도 그런 것을 체험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 반드시 그것은 가라앉히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 것들을 먼저 버려야 만이 바른 사마디를 성취해 낼 수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집착이나 욕망이라고 하는 것들이 장애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버려버리고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혀서 대상을 들여다보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이 사마디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대상에 몰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인식하는 것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 버립니다.

 

예를 들면 위빳사나 수행을 할 경우 같으면 코끝을 관찰할 경우 코끝에서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그 호흡을 그대로 관찰합니다.

그래서 들이쉴 때 시원한 느낌이라든지 내쉴 때 텁텁한 느낌이라든지 이런 것이 일차적으로 알아차려지고, 조금 더 세분해 들어가면 들이쉴 때 그냥 한 번에 들이쉬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을 알고, 또 멈추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고, 이렇게 각각의 현상을 따라가면서 알아차려 나갑니다.

 

그런데 이 사마디라고 하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전부 다 무시해버린다는 겁니다. 무시해버리고 오직 코끝 한 점에다 알아차림을 딱 겨냥해서 집중해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원한 것이든 텁텁한 것이든 그런 거를 전부 무시를 해버린다는 겁니다. 무시해버리고 마음을 거기에다가 딱 고정을 해 놓습니다.

고정을 해놔서 거기에서 일어나는 현상만 줄기차게 자꾸 보려고 한다는 겁니다.

 

이 사마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이라고 하는 그런 정보로부터 그것을 취하려고 하는 욕망을 떨어뜨려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반드시 떨어져야 만이 한곳에 오롯하게 집중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집중을 해나가다 보면 마음에 기쁨이나 행복감이나 하는 것들이 일어나므로 자연스럽게 세속적으로 흥미를 가지는 것들, 그리고 집착하고 또 배척하려고 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흥미가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미련들을 떨쳐버릴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마음을 그런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욕구들을 먼저 제거를 한 상태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훈련들을 자꾸 해야 됩니다.

'사마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욕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필요불가결의 조건이다!' 하고 스님이 얘기를 했습니다. '위윗쩨와 까메히(vivicceva kāmehi)'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고요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40가지 수행의 대상 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아나빠나 사띠'를 한번 예를 들어 봅시다.

 

숨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숨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닌지 부터 관심을 가져야 뭘 할 거 아니라. 숨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아차림을 그 숨에다가 기울이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호흡에다가 딱 돌리는 것들을 먼저 해야 됩니다. 이것은 이 대상에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대상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삼매를 계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됩니다. 대상에다가.

 

그리고 그 대상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알아야 됩니다.

들이쉬고 있는지 내쉬고 있는지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라는 겁니다. 먼저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반드시 캐치를 해야 됩니다.

그 반응들을 알려면 마음을 호흡이라고 하는 데에다가 꼭 유지를 시켜줘야 반응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거기에다가 딱 주의를 기울여야 됩니다.

반응을 한 것을 알 것 같으면 그 반응이 있으면 마음이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서 자꾸 알려고 하는 주의력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그런 주의를 흐트러지지 않게끔 한 곳에다가만 계속 주의를 합니다. 그렇게 대상을 향해서 마음을 기울여야 됩니다.

 

기울이고 나서는 다시 마음을 '아, 내가 호흡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려나갑니다.

 

이 네 가지가 기본 포인트입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포인트가 되고 나면 인제는 대상에 오롯하게 몰입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나빠나 사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상에 몰입을 하다 보면 틀림없이 대상에서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집니다.

'위빳사나' 할 경우에는 변해가는 속성이 드러나지기도 할 것이고 또 '사마타 수행'을 할 경우에는 그 대상에서 뭔가가 일어나는 현상들을 발견해 나갑니다.

코끝이 몽글몽글몽글하게 구름이 핀다든지 아니면 색깔이 보인다든지 아니면 빛이 일어난다든지 하는 것들이 틀림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걸 보통 '니밋따'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절대 그 '니밋따'에 따라가 버리면 안 됩니다. 대상이 보일 때는 대상 그 자체도 이 앞에 있는 네 가지를 공통적으로 적용을 해주면 됩니다. 그대로 주의력만 집중해 주고 그것을 '아, 그것이구나!'하고 반조만 해주고.

 

이런 형태를 계속 유지를 해나가야지,

그 니밋따에 빠져버리면, 니밋따가 변해가는 것에 딸려들어가버리면 그것은 하나의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 안 돼버립니다. 그래서 사마디가 깨져버립니다.

 

왜? 위빳사나로 전환이 되었는데 위빳사나를 정확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대상에 끌려들어가버리는 거라.

 

아까도 얘기했지만 맨 처음에는 대상에 몰입하기 위해서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일단 다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은 전부다 물리쳐버려야 되는 거라. 물리쳐버려야 되는데 그런 대상에 끄달려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안 돼. 그래서 니밋따가 일어나더라도 일단 니밋따를 일어나는 대로 그냥 놔주고 계속 코끝을 관찰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부처님에 대해서 관찰을 대상으로 삼을 때에도 꼭 마찬가지고, 아니면 원반 위에 흙의 성분에 대해서 관찰하는 것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고, 아니면 '멧따 바와나'라고 해가지고 자애수행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경우든지 대상에서는 꼭 마찬가지입니다.

이 니밋따가 일어날 때 그것에 따라가지 않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주의를 돌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둬 버려야 됩니다.

내버려 두고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면 그 니밋따는 반드시 사라져버립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 니밋따가 점점 강해지고 니밋따가 변하지 않는 상태까지 됩니다. 니밋따도 항상 변해나갑니다. 색깔도 변해나가고 형태도 변해나가고 그리고 견고해지는 것들도 변해나가고 하다가,

이게 변하지 않고 고정될 때까지를 그냥 놔두고 있다가, 고정될 때 그때 마음을 거기에다가 일치시키도록 해야 됩니다.

 

그때에는 호흡하는 하나의 점에서 그 니밋따에다가 고정을 바로 해버립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니밋따를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이고.

니밋따가 고정이 될 때에는 마음을 완전하게 그 니밋따에다가 고정을 시켜버려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니밋따가 고정된 것이라 할 것 같으면, 그것이 멀리 느껴질 때는 그것에 따라가면 안됩니다. 가까이 코끝에서! 아나빠나 사띠를 할 때에는 코끝에서 거기에 딱 고정될 때에만이 거기에다가 마음을 고정해야 됩니다. 멀리 있을 때에는 그것을 또 따라가면 집중력이 흩어져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대부분 다 무시를 해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서 이 니밋따에다가 마음을 계속 고정해 나가면 또 이 니밋따가 고정된 것이 또 변해 나갑니다.

조금 더 색깔이 깨끗해지고 맑아지고 빛이 나고 하는 이 단계들이 보통 삼매의 초기 단계에 해당이 됩니다.

이때 사실은 위빳사나 수행을 시작을 하는 겁니다.

 

그때까지가 여러분들에게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까지는 사마타 수행을 하든 위빳사나 수행을 하든지 공통적으로 진행이 되는 부분들입니다.

 

여기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져 버립니다.

위빳사나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계속 그 대상을 관찰하게 되는 것인데, 변하는 속성들을!

그런데 사마타에서는 그것조차도 놓아버리고 하나의 대상에 그대로 몰입을 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 대상에 완전하게 몰입이 되어서 전체를 다 잊어버리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것도 물론 자꾸 변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어쨌든 여러분들이 이 방법을 동원해가지고 수행을 시작을 해나가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해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마음집중이라고 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집중력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들 집중 좀 잘하는 경우 어떤 경우에 집중 잘합니까? 고도리치면 집중 잘하죠! 밤새 해도 안 지겹죠! 그런데 수행하라고 집중하라고 할 것 같으면 금방 못하겠죠!

 

대상은 흥미로워야 됩니다.

대상은 자연스러워야 되는 거라.

그렇지 않으면 집중을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하는 위빳사나이든 아니면 사마타이든 대상 자체가 그래야 되는 거라. 대상은 그대로 놓아버린 상태에서 그것을 즐길 줄을 알아야 만이 그 대상을 갖다가 분명하게 파악을 해나가게 되는 것들입니다.

 

이 마음집중은 다른 도박이나 이런 것들하고 차이점이 뭐냐 하면 의존하는 것들이 없어져 버립니다.

마약이나 도박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빠져서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거라. 계속하게 되는데, 집중력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걸 놓아버린다 해가지고 그걸 마약이나 이런 것처럼 의존해가지고 완전히 빠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그걸 하고 나면 자기 자신이 그만큼 성장해 있는 것을 분명하게 압니다. 조금 더 마음이 자유로워져 있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집중하는 것에는 이렇게 바른 집중이 있고, 도박과 마약이나 이런 것들처럼 나쁜 집중이 있고, 또 수행에서 필요한 좋은 집중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삿된 정(定)인가? 아니면 바른 정(定)인가, 정정(正定)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른 것만을 '정정(正定)'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사마디의 대상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고도리라든지 마약이라든지 이런 것이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존증을 기르고 나를 파멸로 이끌기 때문에, 악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바른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바른 대상이라는 것은 '반드시 부처님이 얘기한 40가지 대상을 바른 대상이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 40가지에서 조금 전에 얘기했던 '아나빠나 사띠'라고 하는 것이 잘 알려져있는 것들이고.

 

통상적으로 '10가지 까시나(kasiṇa)' 수행대상이다 해서

흙, 물, 불, 바람이라고 하는 4대 요소에 대한 것들, 그리고 색깔에 대한 것들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 이런 4가지 색에 대한 것들, 그다음에 빛에 대한 것들 밝은 빛에 대한 것들, 그다음에 한정된 공간, 허공에 대한 것들 이렇게 해가지고 10가지 수행대상, 10가지 까시나이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 10가지 중에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들면 만약에 붉은색을 수행 대상으로 한다.

여러분들 몸에서 붉은색이 뭐가 있습니까? 피가 있죠. 피를 대상으로 하는 거라. 조그마한 30cm 원형 쟁반 위에 그 피가 있다고 상상을 해서 그 피를 그냥 피라고 보지 말고 붉은색으로 봅니다. 붉은색으로써 그대로 관찰을 해나가는 겁니다. 관찰을 해서 눈을 감고 있어도 그 붉은색이 그대로 드러나지도록. 하나의 대상에 쭉 집중하다 보면 그 집중으로 인해서 니밋따가 생겨나갑니다.

 

니밋따가 생겨나가더라도 니밋따에 집중하지 않고 그 대상에 대해서 집중하고, 그러면 니밋따가 변해나갑니다. 아까 '아나빠사 사띠'와 마찬가지로. 색깔도 변해 나가고 그 붉은색이 점점 더 엷어졌다가 회색으로 변했다가 흰색으로 변했다가, 또 형태들도 변해나가고, 또 견고한 것들도 변해나가고.

 

그것이 밝은 빛으로 돼서 나중에 고정될 때까지, 이렇게 변해나갈 동안까지도 거기에 집중하지 않고 붉은색이라고 하는 그 대상에다가 마음을 집중하고.

집중하고 있다가 니밋따가 강해져서 딱 변하지 않는 상태가 될 것 같으면 빨리 마음을 니밋따에다가 그 대상에다가 마음을 고정하게 되고.

그래서 니밋따를 관찰했을 때 그 니밋따가 다시 또 변해나가고 고정되는 상태가 될 때까지 관찰을 하고.

 

그렇게 되면 굉장한 집중력이 생겨나가고 그로 인해서 여러 가지 기쁨이나 희열이나 여러 가지 몸의 반응들도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지 마음을 돌리면 즉각 그것만 알아차리게 되고 또 마음을 이쪽으로 돌리면 그것을 즉각 알아차리게 되고, 이런 삼매의 초입에 들 때까지 쭉 그렇게 진행을 해나가게 됩니다. 이런 단계들을 겪어나가게 되는 거고.

 

마찬가지로 흙도 마찬가지 30cm 쟁반에 흙을 올려놨다고 치고 그 흙을 고정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것을 '10가지 까시나' 라고 하고 수행대상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10가지 부정관'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수바, asubha)

부정한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더러운 것들. 내가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 완전히 뼈와 살이 다 흩어질 때까지 그 변해가는 모습들, 그것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

죽고 나서 살이 썩어 가는 것을 대상으로 하고, 썩어 가는 것에서 고름이 나오는 것을 대상으로 하고, 고름이 나오는 것에서 구더기가 생기는 것을 대상으로 하고, 다시 침전물이 나오는 것을 대상으로 하고, 이렇게 해서 뼈가 남는 것을 대상으로 하고, 그 뼈도 가루가 되는 것을 대상으로 하고.

이렇게 10가지 부정관, 아주 더럽고 부정한 것들을 대상으로 해서 하는 그런 수행법이고.

 

그다음 '10가지 거듭거듭 알아차리는 것들' (아눗사띠, anussati, 隨念)

그러니까 부처님의 공덕에 대해서 만약에 한다. 그러면 부처님은

「이띠 삐 소- 바가와- 아라항, 삼마-삼붓도-,

윗자-짜라나 삼빤노-, 수가또-, 로-까위두-,

아눗따로- 뿌리사 담마사-라띠,

삿따- 데-와- 마눗사-낭, 붓도-, 바가와-.」 라고 하는 부처님 10대 명호가 있습니다.

그 10대 명호를 하나씩 하나씩 되돌려가지고 그것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입니다.(붓다눗사띠, Buddhānussati)

그다음 담마 할 것 같으면 담마에 대한 것들.(담마눗사띠, dhammānussati)

그다음 상가 할 것 같으면 상가에 대한 것들.(상가눗사띠, saṁghānussati)

여러분들 매일 그거 하죠! 붓다·담마·상가 경전 게송! 오늘 오전에도 했죠! 그걸 대상으로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 또 지계! 계를 지키고 계를 청정하게 지님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공덕들에 대해서 마음을 집중하는 것.(실라눗사띠, sīlānussati)

그다음에 천신들의 과보! 천신들은 어떻게 해서 저런 천신들의 몸으로 태어나는가 부터 해서 천신들이 내가 잘못한 것들은 틀림없이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돌이켜 보고 또 나쁜 행위들을 저지르지 않게끔 해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천신의 과보 공덕에 대해서 집중하는 방법.(데와따눗사띠, devatānussati)

그다음 죽음에 대해서 관찰하는 것! 누구든지 죽음에 이르게 되어있다는 것, 죽음에 대해서 관찰하는 것입니다.(마라나눗사띠, maraṇānussati)

 

그다음 몸의 부정한 것들! 몸에는 32가지 부정한 것들이 있습니다. 뼈, 머리털 피부, 고름 이런 32가지 부정한 것들이 있습니다. 몸의 부정한 것에 대해서 하나씩 하나씩 다 관찰하는 것입니다.(까야가따사띠, kāyagatāsati)

 

그다음에 보통 '수식관(數息觀)'이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숫자를 세 가지고 마음을 집중하는 것. 하나, 둘, 셋, 넷 해서 열까지 셌다가 다시 또 아홉 여덟 이렇게 쭉 내려오면서 숫자에 대해서 이렇게 하고.(아나빠나사띠, ānāpānasati)

 

그다음 열반의 이익, 열반의 공덕에 대해서 하는 것. 아, 열반은 이런 것이다! 부처님이 이룬 열반! 내가 또 이뤄야 될 열반! 이런 것에 대해서 마음을 거듭거듭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우빠사마눗사띠, upasamānussati)

※ 자신이 베푼 보시의 공덕을 거듭거듭 숙고하고 새기는 것.(짜가눗사띠, cāgānussati)

 

그래서 이런 것들이 '10가지 거듭거듭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지금까지 30가지 얘기했죠!


그다음에 '4가지 사무량심에 대한 것!' (압빠만냐, appamaññā)

멧따-에 대한 수행, 까루나-에 대한 수행, 무디따-에 대한 수행, 우빽카-에 대한 수행 그래서 자비희사 4가지 한량없는 마음에 대해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멧따-에 대한 것이다 하면,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괴로움이 없기를!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그것을 수행 대상으로 해서 하는 방법입니다.

 

그다음에 또 '4무색계선정' 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루빠, āruppa)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이렇게 4무색계선정이 있죠! 그 선정에 대해서 관찰하는 겁니다.

공무변처라고 할 것 같으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끝에는 항상 공간이 있습니다. 알아차려서 니밋따를 계발을 했다고 하더라도 선정이 이루어지고 나서 그것을 되돌아보는 상태에서 그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방법이고. 또 식무변처, 의식이 없는 상태에 되는 것에 대해서 관찰하는 것들. 그다음에 그런 의식조차도 자유로워져 버리는 상태에 대한 관찰하는 방법.

이런 무색계에 대한 4가지 방법이 있고.

 

그다음에 '음식에 대해서 혐오하는 수행'이 있습니다.(식염상, Āhāre paṭikūla-saññā)

음식은 뜨겁고 맵고, 짜고 하는 것들, 그리고 그 음식이 위에 들어갔을 때 변해나가서 더러워지고 마지막 항문을 통해서 나올 때까지 그 변해나가는 것에 대해서 관찰하면서 그것에 의해서 탐욕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집중하는 대상으로 삼는 방법이 있고.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4대를 구분하는 수행'이 있습니다.(Cat-dhātu-vavatthāna)

지수화풍이라고 하는 4대 요소에 대해서 명확하게 구분해서 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이 가르치신 수행법은 40가지'를 보통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수행주제를 굉장히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처님도 그랬지만 지금도 수행대상을 결정하기 어려울 때에는 통상적으로는 보면 '아나빠사 사띠'를 먼저 하게끔 합니다. 아나빠나 사띠!

그렇지 않으면 '사무량심'을 대상으로 하도록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대부분이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대상으로 합니다. 안 그러면 조금 더 마음이 예리하고 이런 사람은 '사대요소 지수화풍에 대한 것'들을 관찰하도록 합니다.

 

통상적으로 보면 이 세 가지를 수행 대상으로써 줍니다.

그래서 처음에 출가해가지고 수행대상을 받을 때에도 대부분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정해서 줍니다. 안 그러면 부정관 같은 그런 것들을 해주든지 이렇게 해줍니다. 40가지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보면 서너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이 사마디를 계발하는 것을 합니다.

그리하더라도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수행같이 보이지만 많은 노력과 지도하는 분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하기 어렵습니다.

 

밑에 여러 가지 수행방법에 대해서 간략하게 얘기를 했는데, 한 번 여러분들이 참조만 해주시고, 다음 시간에 스님이 해야 될 부분이 자기의 성격과 수행법의 연관성들에 대해서 한번 해야 될 것 같아서 성격과 수행의 관계에 대한 것들을 할 때 좀 더 깊이 있게 해줄겁니다.

 

교재를 한번 보십시오.

불교에서는 존재의 차원을 욕계와 색계 무색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욕계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자극에 의해서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보통 살아가는 세계죠! 그런데 선정을 닦고 선정이 이루어지면 마음은 이 욕계의 세계를 넘어서서 색계의 세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색계는 어떤 세계냐 하면 그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자극에 의지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띠로써, 알아차림만으로써 살아가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욕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색계의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체는 있지만 밖의 자극 그 자극에 끄달려들어가지 않고 그 자극을 내가 얻으려고도 할 필요가 없는 세계, 이걸 색계의 세계이다 하고, 무색계는 그것조차도 뛰어넘어버린 것, 신체마저도 없는 마음의 에너지만으로 살아가는 세계이다 하고.

 

자! 그런 것인데 그래서 수행을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일단 욕계를 뛰어넘어야 되거든! 그러면 수행의 대상은 색계 수행이 있고 무색계 수행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정에도 색계 사선정, 무색계 사선정하고 이렇게 나눕니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무색계 사선정은 무시를 해버립니다.

색계 사선정을 닦도록 그렇게 해줍니다. 색계 사선정을 닦는데,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삼매를 본삼매까지 계발을 하지 마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찰나 삼매로써 대상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려나가야 됩니다.

대상을 알아차릴려면, 대상을 알아차려야 되고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알아차리고 하는 힘이 있어야 되고 하는 이 두 가지가 항상 존재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위딱까(vitakka)'나 '위짜라(vicāra)'가 없으면 위빳사나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마디를 계발하는 사마타 수행은 그거하고는 다르다는 거라. 이것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거라. 그냥 대상에만 몰입을 해버리면 되는 거라. 그렇게 해서 대상에 깊이 있게 집중하면 이루어지는 그런 수행이다 하는 것만 아시면 되겠습니다.

 

그리하더라도 마음이 집중되고 마음이 침착해져있으면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것을 알아차려 나갑니다. 강한 집중력이 있기 때문에 무상·고·무아를 알아차려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 집중해서 알아차리는 집중력이 없을 것 같으면 무상·고·무아라고 하는 것들을 명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해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게 바른 집중과 바른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두 가지가 항상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이 정정에 대한 대략적인 겁니다.

언제 기초수행에서 스님이 이 정정에 대한 것을 한번 얘기했죠! 사마디에 대해서. 그래서 1선정부터 4선정까지에 대한 걸 자세하게 한번 해준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는 이걸 바탕으로 해서 성격과 수행방법에 대한 얘기를, 40가지 수행방법에 대한 얘기를 비교해서 한번 얘기를 해서 8정도에 대한 것들을 마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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