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4. 희각지(喜覺支)-탈세간에 성공하는 점검법 (20180317. 서울)

담마마-마까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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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nmY9wL6Nlb8


4. 희각지(喜覺支)-탈세간에 성공하는 점검법 (20180317. 서울)


오늘은 칠각지 중에 네 번째 부분, 삐띠 삼보장가(pīti sambojjhaṅga) 희각지(喜覺支)입니다.

 

희각지, 삐띠는 여러분들이 잘 알죠? 보통 삐띠 경험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어요? 경험해본 사람 한번 얘기해 봐요.

어떤 경험들을 했어요? (수행자 대답)

몸이 부르르 떨린다든지, 또 누구 얘기할 사람? (수행자 대답)

온몸의 모공이 다 열리듯이 희열이 차는 것, 그때는 희열이라고 안 합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삐띠는 다섯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보통 앞에 세 가지 부분은 '빠못자(pāmojja)'라고 해가지고 그것은 풀이를 하면 '희열'에 속하는데, 뒤의 두 가지 부분, 온 몸의 세포가 다 열리는 것은 그냥 '삐띠'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빠못자(pāmojja)는 삐띠의 전제조건으로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어를 쓸 때 삐띠삼보장가를 '희열'이라고 번역을 해버리면 안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삐띠"는 어디 영역에 속해요? 느낌의 영역에 속해요? 아니죠!

삐띠는 "정신적인 산냐"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런데 희열이라고 하는 것은, 맛있는 걸 먹었을 때 맛있다고 하는 것은 느낌으로 아는 거죠? 마음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느낌으로 인해서 마음으로 안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열'이라고 쓸 거 같으면 그것은 '느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 '산냐'의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용어를 선택할 때는 잘 선택해야 됩니다. 그래서 희열이라고 하면 안되고, 온 몸의 세포가 열린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내가 마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삐띠"라고 바로 쓰든지 하고,

 

스님은 되도록이면 "삐띠"라고 그냥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냥 "기쁨"이라고 하면 됩니다. '기쁨'은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이 다 합해진 용어'이기 때문에 그냥 기쁨이라고 쓰는 것이 그래도 맞는 것 같습니다.

 

또 누가 느껴본 사람? (수행자 대답...)

··· 자랑은 아니죠? 좌선하고 앉아있는데도 뭔가 몸이 붕 떠있는 느낌이라든지, 걸어가는데도 땅을 디디는 게 아니고 구름 위에 둥둥둥둥 떠가듯이 발이 나아가는 것들

자! 여기서 하나 문제 드릴게요. 조금 전에 자랑하는 건 아니죠 하고 얘기했죠?

남에게 나타내보이고 싶든가요? 아니면 아! 이걸 빨리 스님한테 얘기해야 되겠다고 마음이 들든가요? (수행자 이런 것들은 다 삐띠의 영역에는 속합니다.

대답)

말하고 싶은 거 하고 자랑하고 싶은 것은 조금 틀린 거고, 이게 뭔가 해서 궁금해가지고 그걸 알려고 하는 것은 있죠?

 

삐띠의 영역에는 엄밀하게 따지면 '자만', '아만'이라고 그러죠? '고만' 고만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대신에 이게 뭔가 하고 얘기를 할려고 할 것 같으면 경험한 것을 추론은 해야 되죠? 실제로 경험한 것보다는 경험한 것에다가 추론을 더해야만이 사실은 가능한 영역이죠.

그래서 삐띠를 경험하는 상태에 있을 때는 엄밀하게 얘기하면 아직은 완전하게 추론하는 영역이 떠나지 않은 영역에 속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실재하는 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할 거 같으면 깨달음 하고는 거리가 멀겠죠? 단지 남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했다는 것 때문에 '음, 인제 나는 니하고는 틀려' 하는 그런 마음은 들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스님이 태국에서 딱 부딪친게 딱 요 부분에서 부딪쳤어요. 열심히 노력하는데 삐띠가 안 일어나는 거라. 이게 일어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건데, 대상은 분명히 알고는 있는데 그것이 변하는 것은 보이는데, 삐띠가 안 일어나는 거라. 스승님은 아주 엄격하게 콘트롤하면서 가르치고 했는데도 그게 안 일어나는 거라.

그러니까 여러분들 실정으로 얘기하면 '나는 정직하게 뼈빠지게 일했는데 먹고 살기 힘들어' 하는 거하고 꼭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뼈빠지게 일했으면 다른 사람 같으면 좀 여유있게 살아가져야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거라.

 

그런데 그때 그걸 타개했던 게 새벽녘에 스승이 저쪽에서 탁발하기 위해서 바리때를 들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문득 깨달은 게 있습니다. 그때 삐띠가 일어나더라고. 스승을 보면서. 그런데 그 스승이 원인이라기 보다는, 어! 내가 열심히 해왔다는 어떤 생각, 그리고 내가 일개월 전이나 이개월 전이나 돌아보니까 어! 내가 많이 발전을 해있었거든. 그래도 알아차리는 것이 적어도 대상을 놓치지는 않고 쭉 이어온 게 보이더라고. 그것 때문에 그 스승이 원인이 돼가지고 마음에서 삐띠가 확 일어나지더라고. 그러고 나선 다른 삐띠들로 계속 넘어가지고 대상들을 겪었는데, 가르치면서도 그런 것들이 많아요.

 

특히 우리 부산이나 대구 같은 경우에는 수행이 있어도 수행비를 별도로 받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회비가 있어도 회비가 얼마라는 것도 없습니다. 자기가 내고 싶은 만큼 그것도 직접 선원에서 받는 게 아니고 통장번호 있으니까 자기가 적어가가지고 통장으로 넣으면 돼. 그래서 일체 선원에서 그걸 안 하고 있거든.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이 와서 “스님, 지금 돈이 없습니다.” 그럽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 돈가져와서 수행하라고 했나? 그거 걱정하지 말고 그냥 수행해라” 그랬거든. 그런데 이분이 발전돼나가는 게 보니까 다른 사람보다 눈에 띠게 빨리 발전이 돼가는 게 보여요. 그러면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탁 도달을 한 게 보이더라고.

그 모습을 보면서, 수행비 만원 냈다고 수행도 하지 말고 가라고 했으면 어떻게 되겠어? 나도 남에게 선한 마음을 내서, 나도 남한테 베푸는 것으로 인해가지고 삐띠가 일어나는 것들을 느꼈거든.

삐띠 종류는 아마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것들일 겁니다.

 

여기서 또 하나 문제 드릴게요.

여기 삐띠 삼보장가의 영역에서 삐띠는 어떤 삐띠일까요?

들뜸이 있는 삐띠일까, 아니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삐띠일까?

절대 들떠서는 안됩니다! 마음이 들뜨는 상태가 될 거 같으면 이미 삐띠가 아니고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버리게 됩니다. 삐띠가 지속이 될려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고요한 상태에서 명쾌하게, 오히려 대상이 더욱 더 명쾌하게 되면서 그것들이 일어나는 것들이 보여집니다.

물론 상황은 이런 현상에서 저런 현상으로 바뀌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음은, 그때의 마음은 보면 그냥 고요하고 깨끗한 상태가 되어있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지금 현재 삐띠가 일어났는데 이게 정확하게 염각지부터 해서 택법각지 정진각지를 거쳐가지고 이 희각지로 넘어온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됩니다.

 

또 하나 물어볼게요. 어떻게 다음으로 넘어가지게 됐을까?

다음으로 넘어가진 사람은 어떻게 다음으로 넘어갔어요? 삐띠가 일어나는데 삐띠에서 다음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빳삿디로 넘어가든지 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수카로 넘어가든지 아니면 우뻭카로 넘어가든지 뭔가로 넘어가지게 되는데 어떻게 넘어가지게 됐어요? (수행자 대답)

 

여기에서 조심해야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함몰돼가지고, 그것이 삐띠가 증장되는 상태에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되는데, 대부분은 보면 증장이 안되고 감소돼가지고 그냥 삐띠가 사라져버리는 상태, 그렇게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 사실은 수행하는 사람들은 조심을 해야 됩니다.

 

여기서 싸이클이 있습니다. 처음에 여러분들이 알아차릴 때 어떻게 알아차렸어요? 대상을 그냥 있는 그대로 사띠하면서 알아차렸죠! 사띠를 하고 알아차리는데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들이쉬는 숨의 물질적인 현상과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그것들을 아는 것이 있는 동안에는 아, 그래도 번뇌도 없고 또 망상도 안 생기고 잘 수행이 되기 때문에 더욱 더 노력도 하게 되고, 그리하다가 점점 더 세분화되는 것을 보면서 삐띠가 틀림없이 일어났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삐띠가 일어났는데 그다음 단계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는 거라. 삐띠가 강화되지 않고 삐띠가 사라진다고 할 거 같으면, 이렇게 보면 됩니다.

왜 지금 마음이 삐띠에 가 있어요? 분명히 조금 전에는 호흡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에 마음이 가 있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삐띠에 가 있거든. 이거(호흡)보다 이게(삐띠) 크다는 얘기죠? 크기 때문에 여기(삐띠)에 머물러 있는 거라.

그런데 이게(삐띠) 작아질 때는 어떻게 해야 돼? 그럼 재빨리 마음을 내가지고 호흡으로 들아와야 됩니다. 주대상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빨리 하고, 배로 들아와야만이 계속적으로 정진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럼 다음 삐띠가 다른 현상들이나 다르게 나타날 수가 있는데 이걸 결국은 안 하게 되는 거라.

 

삐띠가 주대상이 돼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다고만 알고 그것에 함몰돼버리는 거라.

이것에 대해서 집착하는 마음으로부터 떠나야만이 삐띠는 증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삐띠가 이 현상에서 다음 현상으로 계속해서 발전을 해나갈 때도 앞에 것을 놓아버려야 만이 그다음 단계의 삐띠가 일어나게 됩니다.

 

(수행자 질문 : 스님! 그 사이에 약간의 마음은 굉장히 고요하고 그런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지탱하기가 조금 힘들게 될 때 그 순간쯤에 약간 권태감이 조금씩 올라오는 게 정상인가요?)

아닙니다. 그거는 이미, 어떠한 경우든지 삐띠가 일어날 때는 다섯 가지 장애가 거의 일어나지 않은 상태가 돼야만이 삐띠가 일어나는데, 지금 삐띠가 아니고 다섯 가지 장애가 새롭게 마음을 점령을 하는 상태가 된 겁니다.

 

(수행자 질문 : 일선정에 있던 게 일으킨 생각을 기반으로 거기 집중이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삐띠가 있고, 그걸 기반으로 수카 그다음에 우뻭카 이런 식으로 단계적으로 가는 겁니까? 아니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거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틀림없는 사실은 초선정이 무르익어서, 지금 선정에서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 얘기하는 것은 사마타적인 선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위빳사나 자나'를 얘기하는 겁니다.

위빳사나 선정을 얘기하는 겁니다.

초선정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만이 쉽게 말하면 위딱까, 위짜라에 대한 것들이 분명해야만이 그래서 아주 그게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계속적으로 어느 정도 진행이 되는 상태에서 그다음에는 두 번째 위빳사나 자나에 들어가지게 됩니다. 그때 삐띠들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초선정 없이 2선정을 간다? 그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사마타 수행에서도 초선정에서 2선정으로 가는 것은 참 수월합니다.

단지 어려운 게 2선정에서 3선정으로 넘어갈 때가 참 어렵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 스님이 우유를 마시고 있다. 만약에 이 우유를 젖소의 젖을 짜가지고 가져왔다. 나는 이걸 지금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것은, 송아지가 태어나가지고 그것을 먹이는 송아지의 젖이 송아지가 안 먹고 나야만이 그 젖을 짜가지고 내가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 송아지가 계속 물고 있을 거 같으면 나는 이걸 먹을 수가 없는 거라.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2선정의 상태에서 2선정이 떨어져 나가야만이 3선정으로 넘어가지게 됩니다.


언제 사마타 수행에서 다섯 가지 자재에 대한 걸 프린트물로 내준 적이 있습니다. 그거 혹시 받은 사람 있습니까? 1선정부터 4선정까지? 다음에 한번 찾아보십시오.

거기에도 적어놓았듯이 그것이 무르익어 가지고 자유자재롭게 되었을 때 그다음 선정으로 넘어가집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2선정에 들어서 어떤 상태에서 2선정에서 빠져나오겠다 하는 것들을 명시해놨을 때 그 선정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되고, 또는 일정한 시간 동안 내가 2선정에 머물겠다 하고 마음먹었을 때 2선정에 머물다가 그다음 빠져나오게 되고,

빠져나올 때 어떠한 상태로 빠져나오겠다 하는 것을 분명히 아딧타나라고 해서 결정심을 냈을 때 그때 빠져나오게 되고, 하는 다섯 가지 자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자재할 정도로 그 선정이 무르익어야만이 그다음 선정으로 넘어가기가 수월할 뿐 아니라, 그다음 선정으로 넘어갈 때에도 큰 무리가 없어져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선정이라 하면 초선정에서 부처님 열반에 들듯이 4선정까지 후르르르륵 간다고 생각을 해버리기 때문에, 이게 그 선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구분을 못하게 되는 상태가 될 수가 있습니다.

아까 질문했듯이 초선정이 분명하게 돼야만이, 그러니까 대상에 대해서 위딱까 위짜라가 분명해지고, 그 위딱까 위짜라를 하는 동안에 번뇌가 없이 마음이 깨끗한 상태가 일정 정도 유지가 돼야만이 그다음에 삐띠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지 대상 없이 무조건 삐띠가 일어난다? 그것은 웨다나의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맛있는 거 먹으면 맛있다 하고 기뻐하는 것과 꼭 마찬가집니다. 그것은 선정이 필요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든지 삐띠는 웨다나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을 해야 됩니다.

 

정신적으로 대상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차리고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것들이 지속돼나갈 때 그것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데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면서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고, 대상이 빨리 변하는 것이 보이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고 대상을 알아차리는데 그냥 명료하고 깨끗한데 크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이 수행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사띠부터 시작해가지고 삐띠까지가 올라왔으면 삐띠에서는 다시 사띠까지 내려와집니다. 이게 계속 반복되게 됩니다. 일정한 동안에.

그대신에 일정하게 반복이 안 될 때는 사띠부분에서 막히는 경우들입니다.

삐띠는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일어나죠? 이건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자연스럽게 일어나집니다. 정진각지도 내가 열심히 하다보면 정진할려는 마음들이 계속적으로 생겨납니다. 왜? 대상을 알아차리는 힘들이 있을 거 같으면 북받쳐주는 힘들은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크게 노력을 안해도 정진이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면 또다시 떨어지지만 어쨌든 일정 부분은 그게 가능합니다.

택법각지도 대상이 분명하게 보여져옵니다.

 

그런데 사띠는, 대상은 어떻게 될까? 지금의 상태에서?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을 대상에 기울여지지 않으면 사띠는 달아나버립니다.

그래서 대부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멈추는 부분이 어디냐 하면은 사띠 삼보장가에서 딱 멈추어버립니다.

내가 현상이 일어났다. '어? 이게 뭐지' 하고 알아차리면서 노력하는 힘들이 있는데, 그걸 알아차리면서 그걸 사띠해야 된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이게 뭐지?' 하면서 머리로만 자꾸 사고로 굴릴려고 합니다. 실재하는 것들을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들이 존재를 해야되는데 그게 안되니까 사띠 부분에서 다시 택법각지로 넘어가지거나 그다음 단계의 사띠를 지속해나가는 힘들이 떨어져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스승들이 항상 강조를 하는 것이 "사띠하라!" "사띠하라!"

택법각지든 정진각지든 삐띠든 어떠한 경우든지 거기에는 다 사띠가 있습니다. 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사띠가 없으면 그것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띠하고 있는 것들이 힘이 약해져버리면 이 시스템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시스템이 무너져버리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스님이 항상 강조를 하는 것이 뭐냐하면, 설혹 삐띠가 안 일어나도 좋다. 설혹 그것이 택법각지인지 아닌지 몰라도 좋다. 그대신에 대상을 놓치지는 말아라. 앉아있든 걸어가든 밥 먹든 뭘 하든 간에, 좌선을 하든 뭘 하든 간에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습관들을 자꾸 길러야만이 사띠가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삐띠 삼보장가를 경험했다고 해가지고 그 사람이 사띠가 계속 존재한다고는 얘기를 못 합니다.

그래서 사띠하는 습관들을 자꾸 가지도록 해줘야 됩니다.

 

이제 교재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행을 잘 할려면 '세 가지 위베까(viveka)' 부분에 대한 것들을 자꾸 마음에 두어야 됩니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몸이 있다. 코끝이든 배든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럼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고 있는데, 배라는 생각은 관념이죠?

배를 관찰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해야 됩니다. 배가 불러올 때 팽창하는 느낌들, 배가 꺼질 때 물렁하는 느낌, 수축하는 느낌,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일차적으로 그게 먼저 돼야 됩니다.

그걸 몸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얘기합니다. 몸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명칭이나 형태에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수행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그겁니다. 몸으로부터 벗어날 것!

 

그다음에 두 번째, 마음으로부터 벗어날 것!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아는 것은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알아차리는 마음에 붙잡혀버리면 대상이 바뀌질 않습니다. 배가 불러오고 꺼지고 하는데 오토매틱화 돼가지고 분명히 알고는 있는데, 오토매틱화 돼가지고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든지, 아니면 불러오고 꺼지고는 아는데, 그냥 알기는 아는데 내가 이거 왜 하고 있지 할 정도로 의미없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마음에서 마음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마음은 항상 바뀐다는 생각을 수시로 해야 됩니다. 그래서 똑같은 마음은 찰나간에도 없다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를 해야 됩니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어!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 거 같으면 그 생각할 때의 마음하고 그다음에 또 마음이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이 바뀌는 것이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대상으로부터 벗어나있는 상태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관찰하고 있는 상태로 먼저 만들어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적인 현상으로부터는 벗어날지 몰라도 마음이 벗어나지 못하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항상 선행되고 나서 이 두 가지가 조합이 잘 맞을 때 그럴 때 여러분들에게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것들이 각각의 장애들, 그 장애로부터 벗어나는 상태가 되게 됩니다.

수행하면서 장애들도 없어야 되고, 장애들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대상으로서만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될 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끔 됩니다.

 

이 세 가지는 수행에서 반드시 '위베까(viveka) 벗어나져 있어야 되는 상태'에서 수행을 해야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을 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자! 희각지 부분인데, 어렵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이게 어렵게 느껴지면 수행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렵지 않게 느껴지면 '어, 그래도 내가 수행을 조금은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어렵지 않게 느껴질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자 질문 : 사마타 수행에서의 선정과 위빳사나 수행에서의 선정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초선정과 2선정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3선정과 4선정은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사마타 수행은 그 선정에 들면 선정이 끝날 때까지는 그 대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내가 대상이 여러 가지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명료하게 깨어있기 때문에 어떨 때는 수카가 내 대상이 될 수가 있고, 어떨 때는 호흡이 내 대상이 될 수도 있고, 호흡을 하면서도 행복감은 항상 느낄 수가 있습니다.

 

행복한 것들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그것은 3선정의 영역에 속하는 겁니다.

그렇게 행복감이 일어날려고 할 거 같으면 삐띠도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경안도 있어야 되고, 경안 다음에는 다시 또 수카가 일어나는 것들도 있어야 되는 거고, 그것이 무르익었을 때 그다음 것으로 넘어가지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3선정과 4선정의 경우에 봤을 때는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많이 다른 것은 틀림없습니다. 단지 어떤 선정이든 대상을 분명하게 '아는 마음'은 있습니다. '대상이 없이 그냥 한 시간 동안 삼매에 푹 들었다가 나왔다.' 그거는 삼매가 아닙니다. 그렇게 판단하시면 됩니다. 대상이 없으면 그거는 삼매가 아닙니다.

 

(수행자 질문 : 그러면 3, 4선정에서 수행자가 내가 사마타수행을 3, 4선정으로 끝마치고 그다음에 위빳사나 수행을 해야 되겠다고 할 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인가요?)

그거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본인이 그 선정을 계속 닦아나가는 사마타 수행자로 살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보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다섯 가지 자재가 잘 되는 수행자들은 대부분 그다음 단계에서는 위빳사나 수행으로 넘어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사마타 수행만으로써 끝내고 위빳사나로 전환 안 하는 경우도 가끔씩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반드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안 넘어가는 경우들은 그것이 자재하지 않을 때 그렇게 됩니다.

 

한 번 경험을 그런 적이 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고 스승이 부르면 나는 일어나리라 하고 마음을 강하게 먹고 수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스승이 진짜 불렀는데 내가 안 일어났었어요. 다른 때 같았으면 일어나졌는데 안 일어나지는 거라. 이게 너무 좋기 때문에. 그래서 일어날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 거라. 그런데 이게 나중에 지나다 보니까 조그만한 소리라도 스승의 소리와 다른 사람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거라.

선정의 상태에서 마음이 깨어있지 못하면, 대상은 오롯하지만 마음이 깨어있지 못하면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마타든 위빳사나든 대상은 분명하다는 것, 그거 하나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차이가 나는 것이 뭐냐 하면 신통이 열리고 안 열리고 하는 부분들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위빳사나에서의 선정부분에서는 신통이 열리는 것이 참 드뭅니다. 사마타 수행에서는 신통이 열릴 수가 있습니다. 대상을 전환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합니다. 마음이 오롯하게 계속 한 곳에 있다, 그러면 집중하는 힘이 강해질 거 같으면 그 부분에 대한 것들이 더욱더 개발되게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은 여기서 스님 소리를 들을 수 있죠? 부산이나 대구에서 스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신통이 있으면 들립니다. 그럴려면 일반적인 음파로는 들을 수가 없죠? 그런데 동물 중에서도 여기서 내는 소리를 저기서 들을 수 있는 상태에 있는 동물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마만큼 예리하게 되었을 거 같으면 거기에 관한 신통이 열립니다.

단지 그런 신통은 수행에는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스님 개인적으로는 "하지 마라!" 하고 얘기합니다. 몸을 망친다는 거라. 그래서 하지 마라 라고 그럽니다. 그대신에 남한테 좀 더 높은 사람이나 아니면 대접을 받고 싶다고 할 거 같으면 그걸 해도 괜찮겠죠. 그런데 그게 목적이 아닐 것 같으면 안 하는 것이 맞습니다. 됐습니까? (예)

 

희각지가 여기 제목에 적어놨듯이 「탈세간에 성공하는 점검법」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세상적인 것은 어디에 마음을 많이 두고 있습니까? 감각적인 것, 나한테 칭찬하면 기분 좋은 것, 비난하면 기분 나쁜 것, 그러니까 탐·진·치가 항상 마음에서는 일어나게끔 됩니다.

 

그런데 탐·진·치의 영역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갖가지 장애들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아도, 그것들이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역이 정각지도 아니고 택법각지도 아닙니다. 바로 이 희각지부터 입니다.

희각지부터는 희각지가 일어나려면 어떠한 경우든지 선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서 장애들이 없는 상태가 되야만이 희각지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본인이 삐띠를 경험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것은,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갈 거 같으면 열반을 체험해봤느냐 안 했느냐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그마만큼 희각지는 중요한 영역에 속한다 하는 것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처음에 태국 갔을 때 저녁을 안 먹으니까 죽겠더라고. 20년간 저녁을 먹던 습관에서 저녁을 안 먹으니까 몸이 아주 힘들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몸도 '어! 이제 밥이 안 들어오는 갑다' 해가지고 아예 거기에 맞게끔 조절이 되는 거라. 그래서 배고프다는 느낌이 일어나지를 않아. 그런데 그 단계가 지나니까 그 시간에도 아래 기관이 아무것도 작동을 안 하고 있으니까, 마음은 더욱더 활발하게 대상을 알아차리는 힘들이 생기는 거라. 너무나 수행이 잘되는 거라. 오히려 아침 시간보다도 저녁 시간에가 훨씬 더 잘 되는 거라. 그렇게 바뀌어져 나가게 됩니다.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떠난 것의 이익이, 그것으로 인해서 오는 행복이 더 크다는 걸 알고 있는 거라. 그러니까 맛있는 걸 먹었을 때는 먹을 때는 좋지만 먹고 나서는 힘이 들거든.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떠나있는 때에는 더더욱 큰 행복이 있다는 걸 아는 거라. 그걸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뭐냐면 여러분들 안이비설신의 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떠나있을 때 느끼는 행복을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희각지라는 겁니다.

 

가끔씩 여러분들도 그것으로부터 떠나는 훈련들을 평상시 때도 자꾸 해볼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소리 들을 때도 들을 때는 듣는 것만 자꾸 마음을 써야되는 것이지 스님을 자꾸 볼려고 한다든지 아니면 생각을 굴릴려고 한다든지, 이럴 것 같으면 감각적인 것으로 계속적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지 말고 훈련을 자꾸 하라는 겁니다.

들을 때는 듣는 것만 하라는 거라 이번 때는 들을 때 마음이 저기 가서 듣지 말고 내 귀에 마음을 둬가지고 귀에서 들리는 소리만 알아차릴려고 해보고, 그게 된다 할 거 같으면 마음이 밖에 안 뺏겨도 되거든. 그럼 그거 들을 동안에 마음이 그것으로 인해서 그렇게 산란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느 정도는 산란하더라도.

 

그러다가 다시 그 소리가 가슴에서 들리는지 한번 보자. 그러니까 마음에서 들리는 겁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가슴에다가 대상을 두고 그 소리가 들릴 때 일어나는 느낌들을 가만히 한번 본다든지,

그렇게 해보니까 귀에서 듣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안정이 되고, 여러 가지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들이, 그리고 그 소리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 보이거든. 그것으로 인해서 저 소리들로 인해서 무상한 성품들을 탁 알 수가 있게 되는 거고.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세간으로부터도 벗어나는 거고, 무상한 성품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는 거라.

 

그렇게 발전이 되나가야 되는 것이지, 들으면서 보고, 말은 또 하고, 뭘 하고 이렇게 해버리면은 발전이 안 돼나가는 거라. 세간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만 분명하게 그것을 알아차려나가는데 그 대상은 어떠한 경우든지 집착하는 것이 없이 무상·고·무아의 성품이 있어야 됩니다. 그 성품들을 빨리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세간으로부터 탈출하게 되는 거고, 그래서 거기서 오는 행복이 훨씬 크다는 걸 알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그냥 한번 쭉 읽어보십시오.

 

삐띠가 일어나는 것들이 지속적으로, '아! 나는 삐띠를 경험 해보고 싶다' 하는 그런 사람들은, 고통스런 느낌을 하나 만들어보십시오.

예를 들면 다리를 가부좌하고 두 시간 이상 동안 앉아있는다 든지, 아니면 꿇어앉아가지고 있는다 든지, 스님은 몸을 묶어놓고 일주일 있어 본 적이 있어요. 그 삐띠 경험 해볼라고. 그런데 실패했어요 그때는. 그런데 그대신에 그 원리는 압니다.

괴로운 느낌이 강해서 그 괴로운 느낌이 주대상이 됐을 때, 지금 호흡하는 것이 주대상이 아니고 괴로운 느낌이 주대상이 돼가지고, 그 괴로운 느낌이 빠르게 변하게 됐을 때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 때, 그때 삐띠는 일어나집니다. 그때 일어나지는 삐띠는 오래갑니다. 그리고 다른 것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그래서 삐띠를 꼭 경험해보겠다 하는 분들은 몸을 통해서 삐띠를 경험해보는 것들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경전에 띳사라고 하는 스님도 그런 경우입니다. 띳사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목을 잘라가지고 자결하면서 아라한에 이르르고 하는 것들을 아마 여러 경전에서 들었을 겁니다. 왜 아라한에 이르는지 알아요?

띳사 스님도 그랬거든. 전후에 얘기는 다 빼먹고, 내가 도망 안 가는 걸 증명해주겠다 하면서 자기 다리를 분질러버립니다. 그러고 나서 하루나 이틀만 나에게 시간을 다오. 그러고 나서 나를 죽여도 좋다 하고 얘기합니다. 도망갈 수 있으니까 죽일려고 하는 걸, 내가 다리 분질러버렸으니까 내가 도망을 못 가니까 이틀만 기다려다오 하면서. 이틀간의 여유가 있어요. 아주 긴박한 상황입니다. 그거 지나고 나면 다시 또 윤회해야 됩니다.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면.

 

그때 이 띳사 스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 뭐냐 하면 호흡을 관찰하는 것에서 주대상이 이 아픔, 아픔도 어떻게 오는지 아십니까? 그냥 '아픔' 아니면 '통증' '통증' 해가지고는 절대 이걸 못 알아차립니다. 여기서 오는 느낌들이 있습니다.

쑤심이면 '쑤심', 아니면 뭔가 누르는 느낌이면 '누르는 느낌', 아니면 따가우면 '따가움', 각각의 느낌들이 다 다릅니다. 그 느낌들도 여기에 있다가 또 그것이 사라지고 나면 또 다른 데에 다른 것들이 생겨나고 하는 것들이 분명하게 보여집니다. 그걸 분명하게 따라갈 줄 알아야 되는 거라. 이 대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을 따라가기가 수월해진다는 거라.

 

그러면 그것들이 분명하게 사라지는 것이 지금까지는 대상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보이다가, 이게 나중에는 대상이 그것을 알아차리기만하면 호로록 사라지는 게 보입니다. 그 상태까지 이르르게 되면 그러고 나서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 삐띠 입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삐띠들은 굉장히 강합니다.

 

여기에 삐띠의 종류를 다섯 가지를 얘기했는데, 그냥 조그만한 놀라고 기쁨의 현상이 아니라 그것이 몸 전체를 뒤덮게 되고 그리고 그것들이 지속하게 되나가는 형태들로서 바뀌어나가는 것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여기 다섯 가지의 삐띠의 종류들을 적어놨으니까 자기가 어느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나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 띳사 스님도 그 통증에 대해서 무상·고·무아로써 분명하게 보게 됐을 때 삐띠들이 일어나고, 그 삐띠들도 주관찰 대상에서 그것을 관찰하면서 마음이 다시 평온한 상태에 이르르게 되고, 그 상태조차도 놓아버리게 됨으로 인해서 열반을 경험하게 됩니다.

길은 딱 정해져 있습니다. 다른 길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그 길을 가도록 되게 돼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주석서에서는 "삐띠를 기르기 위한 열한 가지 방법"이 되어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68페이지 입니다.

「지혜가 있는 주의력이 삐띠를 가져온다.」 부분입니다.

주석서의 열한 가지를 참고하기 전에, 이미 경에서는 "삐띠를 기르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 그 알아차리면서 기쁨이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 그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먼저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대로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열한 가지 방법 쭉 적어놨으니까 그것들을 보면서 삐띠를 일으킬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왜 삐띠를 일으켜야 될까? 그게 수행의 끝도 아닌데.

수행을 계속하기 위한 겁니다. 이게 안 일어나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수행을 못합니다. 계속하기가 힘이 듭니다. 뭔가 나에게도 새로운 것들이 탁 일어나지고 던져줘야 만이 그게 먹이가 돼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삐띠는 수행의 대상이면서도 꼭 일으켜야만 하는 겁니다. 수행을 계속하기 위해서 일으켜야 되는 것이다 하는 마음을 먹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대신에 그것에 빠져있지는 말아라 하는 겁니다. 별 의미는 없습니다. 나중에 지나고 나면.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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