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관 수행법] · 15
《 무상관을 습관처럼 》
“비구들이여, 비구가 형성된 것[行, saṅkhāra]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영원하다고 관찰하면서도 [교법에] 적합한 지혜를 구족한 자가 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교법에] 적합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고서도 올바름과 확실함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올바름과 확실함에 들어가지 못하고서도 예류과나 일래과나 불한과나 아라한과를 실현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형성된 것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무상하다고 관찰할 때 [교법에] 적합한 지혜를 구족한 자가 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교법에] 적합한 지혜를 구족하여 올바름과 확실함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올바름과 확실함에 들어가서 예류과나 일래과나 불한과나 아라한과를 실현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무상(無常) 경,
Anicca-sutta>(A6:98)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결국 인생을 바꾼다’
[일체의 현상은 무상(비항상)한 것이다.
무상(비항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며,
거기에 ‘나’라는 실체는 본래 없는 법]
이러한 인식을 스스로에게 틈날 때마다
세뇌시키듯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반복적 인식 행위에 의해서
[오온은 혐오스럽고, 덧없는 것이며,
오온에 대한 집착은 위험한 것이다]
라는 인식이 차츰차츰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알아차림은 더욱 명료해지며, 결국
무상(비항상)의 실제적인 통찰로 나아가게 됩니다.
<죽음관> <부정관> <자애관> 역시 관념수행이기는
합니다만 그 같은 수행만으로도
마음의 평온을 이룰 수 있고, 어느 정도
탐욕과 분노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실제적인
통찰로 나아가기 위한 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수행을 처음 접하는 수행자나
초심자에게 있어 무상관의 시작단계는
관념수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무상경>들의 내용을 온전하게 숙지하고 나면
아직 관념이기는 합니다만 마음 깊은 곳에서
무상(비항상)에 대한 인식의 싹이 올라옵니다.
그때 무상관 수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상관 수행은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서 하는 수행이 아닙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전천후 수행입니다. ‘무상관’을
좌선하듯이 눈감고 앉아서만 하면
그야말로 관념에 빠지기 십상이지만,
매 순간 순간 접촉이 일어날 때마다
6근(六根, 눈·귀·코·혀·몸·마음)이
6경(六境, 모양·소리·냄새·맛·감촉·마음대상)을 만나
6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心識)을 일으킬 때마다
“이것은 무상(비항상)한 것이다, 언젠가는 혹은
곧 소멸될 것이다, 이 상황 · 이 조건 · 이 느낌 ·
이 생각은 반드시 변한다” 라고 일념으로 관념하면서
대상과 접촉하다보면 들뜸·산란·탐욕·성냄 등이
점차로 가라앉고 편안해지며, 우울하거나
나태했던 마음은 다시 안정을 되찾게 됩니다.
심리적인 안정과 함께 통찰지가 생겨나면서
제행(諸行)의 무상(비항상)함을, 그 무너져 내림을
온몸(6감각기관)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관> <부정관> <자애관> 등은
아침·저녁 혹은 때에 따라서
한정된 시간동안만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무상관’은 매일 매순간 시간을 한정짓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무상관’은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을 위해
간곡하게 설해주신 불교의 핵심 수행법이며,
출·재가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반듯이
실천 수행해야 하는 필수 수행법입니다.
모든 현상들은 연기성(상대성)을 띠면서 존재하기
때문에 본래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아무리 고운 것도 밉다 밉다 하면
실제로 미워지고, 싫어했던 대상이지만 괜찮아
괜찮아 좋아 좋아 하면 정말로 좋아 보입니다.
<부정관>을 해보면 제아무리 고운 대상도
보는 즉시 흉물로 보이거나 해골로 보이기도 합니다.
<죽음관>을 하면 생의 덧없음 생존의 두려움을 느끼면서 감각적 집착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나태한 마음이
사라지면서 분발심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알아차림(삼마-사띠)수행도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힘을 들여 하게 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특별히 힘을 들이지 않아도
알아차림이 저절로 따라 다닙니다.
마치 자석에 쇳가루 달라붙듯이.
이와 같이 8정도 수행을 통해서 현상을
무상(비항상)으로 통찰하는 힘이 한번 생겨나면,
그때부터는 매 순간 순간 저절로 무상관이 됩니다.
그야말로 일출 속에서 일몰을 볼 수 있고
화려한 개화 속에서 낙화를 보게 됩니다.
[무상관 수행법] · 15
《 무상관을 습관처럼 》
“비구들이여, 비구가 형성된 것[行, saṅkhāra]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영원하다고 관찰하면서도 [교법에] 적합한 지혜를 구족한 자가 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교법에] 적합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고서도 올바름과 확실함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올바름과 확실함에 들어가지 못하고서도 예류과나 일래과나 불한과나 아라한과를 실현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형성된 것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무상하다고 관찰할 때 [교법에] 적합한 지혜를 구족한 자가 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교법에] 적합한 지혜를 구족하여 올바름과 확실함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올바름과 확실함에 들어가서 예류과나 일래과나 불한과나 아라한과를 실현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
<무상(無常) 경,
Anicca-sutta>(A6:98)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결국 인생을 바꾼다’
[일체의 현상은 무상(비항상)한 것이다.
무상(비항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며,
거기에 ‘나’라는 실체는 본래 없는 법]
이러한 인식을 스스로에게 틈날 때마다
세뇌시키듯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반복적 인식 행위에 의해서
[오온은 혐오스럽고, 덧없는 것이며,
오온에 대한 집착은 위험한 것이다]
라는 인식이 차츰차츰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로 인해 알아차림은 더욱 명료해지며, 결국
무상(비항상)의 실제적인 통찰로 나아가게 됩니다.
<죽음관> <부정관> <자애관> 역시 관념수행이기는
합니다만 그 같은 수행만으로도
마음의 평온을 이룰 수 있고, 어느 정도
탐욕과 분노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실제적인
통찰로 나아가기 위한 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수행을 처음 접하는 수행자나
초심자에게 있어 무상관의 시작단계는
관념수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무상경>들의 내용을 온전하게 숙지하고 나면
아직 관념이기는 합니다만 마음 깊은 곳에서
무상(비항상)에 대한 인식의 싹이 올라옵니다.
그때 무상관 수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상관 수행은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서 하는 수행이 아닙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전천후 수행입니다. ‘무상관’을
좌선하듯이 눈감고 앉아서만 하면
그야말로 관념에 빠지기 십상이지만,
매 순간 순간 접촉이 일어날 때마다
6근(六根, 눈·귀·코·혀·몸·마음)이
6경(六境, 모양·소리·냄새·맛·감촉·마음대상)을 만나
6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心識)을 일으킬 때마다
“이것은 무상(비항상)한 것이다, 언젠가는 혹은
곧 소멸될 것이다, 이 상황 · 이 조건 · 이 느낌 ·
이 생각은 반드시 변한다” 라고 일념으로 관념하면서
대상과 접촉하다보면 들뜸·산란·탐욕·성냄 등이
점차로 가라앉고 편안해지며, 우울하거나
나태했던 마음은 다시 안정을 되찾게 됩니다.
심리적인 안정과 함께 통찰지가 생겨나면서
제행(諸行)의 무상(비항상)함을, 그 무너져 내림을
온몸(6감각기관)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관> <부정관> <자애관> 등은
아침·저녁 혹은 때에 따라서
한정된 시간동안만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무상관’은 매일 매순간 시간을 한정짓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무상관’은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을 위해
간곡하게 설해주신 불교의 핵심 수행법이며,
출·재가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반듯이
실천 수행해야 하는 필수 수행법입니다.
모든 현상들은 연기성(상대성)을 띠면서 존재하기
때문에 본래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아무리 고운 것도 밉다 밉다 하면
실제로 미워지고, 싫어했던 대상이지만 괜찮아
괜찮아 좋아 좋아 하면 정말로 좋아 보입니다.
<부정관>을 해보면 제아무리 고운 대상도
보는 즉시 흉물로 보이거나 해골로 보이기도 합니다.
<죽음관>을 하면 생의 덧없음 생존의 두려움을 느끼면서 감각적 집착으로부터 멀어지거나 나태한 마음이
사라지면서 분발심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알아차림(삼마-사띠)수행도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힘을 들여 하게 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특별히 힘을 들이지 않아도
알아차림이 저절로 따라 다닙니다.
마치 자석에 쇳가루 달라붙듯이.
이와 같이 8정도 수행을 통해서 현상을
무상(비항상)으로 통찰하는 힘이 한번 생겨나면,
그때부터는 매 순간 순간 저절로 무상관이 됩니다.
그야말로 일출 속에서 일몰을 볼 수 있고
화려한 개화 속에서 낙화를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