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6. 정정진(正精進, sammā vāyāma, 삼마- 와-야-마) (20081113)

담마마-마까
2021-07-13
조회수 73

https://youtu.be/2KMBs327La4

 자, 시작해 봅시다.

‘삼마-와야마(sammā vāyāma)’ 부분입니다. 교재에는 ‘와야마’가 ‘노력’을 뜻한다고 그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정진’이란 뜻이죠?

 

혹시 여러분들 ‘바라밀’이라고 압니까? 6바라밀은 대승불교 말하는 ‘6바라밀’이고, 남방 상좌부 불교(테라와다 불교)에서는 ‘10바라밀(dasa pārami)’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이생에서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과거 전생부터 꾸준하게 쌓아왔던 10가지 바라밀을 성취하셔가지고 이생에서 부처님이 되셨다 하는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일대기를 자세하게 서술한 책들을 보면 반드시 부처님 탄생부터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 전생의 10가지 바라밀부터 먼저 예를 들고 그다음에 부처님 탄생으로 넘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하고는 조금 다르죠?

 

그 10가지 바라밀 중에서 ‘노력을 성취하는 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위리야 바라밀(viriyapāramī)’ 그러죠? ‘정진 바라밀’인데 바라밀을 성취하려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정진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 바라밀을 성취해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바라밀이라든지 아니면 계를 잘 지키는 바라밀이라든지 어떤 것들을 성취하려고 하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는 거라.

 

그러니까 어떤 바라밀이든지 그 10가지 바라밀은 다 같이 이 ‘위리야 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위리야 바라밀’을 성취했을 때의 상태하고 그렇지 않을 때의 상태는 조금 차이가 나겠죠? 여러분들도 노력하는 힘들이 강한 사람들은 문제에 부딪치더라도 그냥 그 문제를 헤쳐나가고 뚫고 나가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그냥 포기해 버린다는 거라. 그렇죠? 사람들 마다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이 ‘위리야, 노력, 정진’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처음 법을 설할 때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열반에 드실 때까지 끊임없이 얘기했던 부분입니다. ‘노력하라! 게을러지지 말고, 나태해지지 말고, 방일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라! 그러면 너희들은 열반을 성취할 것이다!’ 하고 끊임없이 얘기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재산 중에서 가장 크게 우리들에게 물려준 재산 하나가 뭐냐 하면 이 ‘노력’이라는 덕목입니다. 그 정도로 소중한 것들입니다.

 

한번 봅시다. ‘위리야(viriya)’라고 하는 것! 여기에는 용어가 ‘와야마(vāyāma)’ 라고 되어있죠. 노력이라는 단어에는 ‘위리야, 와야마, 압빠마다’ 이런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의미는 다릅니다. ‘위리야(viriya)’ 같은 경우에는 통상적인 ‘노력, 정진, 힘, 원력’ 이런 의미가 강하고, ‘와야마(vāyāma)’ 같은 경우에는 ‘고군분투하다’는 그런 뜻이 강합니다. 힘써서 어려운 중에서 헤쳐나간다는 그런 의미가 강하죠. 그러니까 ‘위리야’ 보다는 조금 더 강한 인상을 줍니다.

 

그다음 ‘압빠마다(appāmada)’라고 하는 것은 수행 쪽에 아무래도 조금 더 가깝죠. ‘주의 깊다’라고 해서 ‘주의 깊게 열심히’ ‘진지하게’ 그다음에 ‘방일하지 않고 알아차린다’는 그런 의미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단어들은 대부분이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다’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게 됩니다.

 

노력이라는 단어가 어디 어디에 들어갑니까? 37조도품 중에 7가지 깨달음의 길이라고 하는 칠각지에 노력이 있습니까? 있죠! 그다음 지금 여러분들 배우고 있는 8정도에 노력이 있죠! 그다음에 37조도품에 또 뭐가 있습니까? 4여의지(4여의족)라고 하는 것이 있죠! 4가지 의지해서 노력하는 것들 그것도 있고. 그다음에 또 바라밀 중에서도 노력이라는 것이 있고. 그다음에 수행 중에서 만나는 5가지 장애에서 나태와 게으름을 극복하는 것을 뭐라고 그랬습니까? 노력이죠! 노력이 없기 때문에 나태와 게으름에 빠지는 거라.

 

그래서 어떤 것에도 노력이 빠지는 경우는 참 드뭅니다. 그마만큼 노력이라는 의미를 불교에서는 많이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대부분이 나태와 게으름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냥 안주해버리는 거라.

예를 들어 만약에 100원을 벌었다고 하면 100원을 번 것에 안주를 한다는 것입니다. 200원을 벌 수 있는데 200원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라. 이것이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거라.

 

그래서 방일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해야 만이 완성한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완성하게끔 된다. 그래서 노력들을 잘해서 그것들을 어느 정도 몸에 익힌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성급하게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마만큼 해놔 놓고 결과는 이마만큼 되는 거를 이미 바라고 앉아있다는 거라. 그런 것들을 안 한다는 거라. 왜? 끊임없이 한발 한발 노력만 해나가는 사람들의 성품들이 뭐냐면 성급하게 그 결과를 생각하고 따먹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라. 어떤 면에서는 그런 사람들은 굉장히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노력한 만큼 결과는 나타나게 되어있는 것인데 노력은 요만큼 해 놓고 이미 큰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지. 오늘 수능일인데 시험공부는 요마만큼 해 놓고 결과는 이마만한 결과를 바라는 거와 마찬가지라는 거라. 요행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극히 드물게 밖에는 안 된다는 거라. 그래서 노력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은 일단은 바라지 않는다는 거라.

 

그다음에 또 뭐가 있냐면 한 번 한 노력에 대한 대가로써 일확천금, 이마만한 것들을 바라지 않는다는 거라. 저기 서해 바닷속에 유물이 있다고 하면 그걸 열심히 노력해가지고 그걸 건져냈다. 적어도 노력을 열심히 하고 그걸 생활화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은 바라지 않는다는 거라. 한 번에 확 하는 이런 것들을 바라지 않는다는 거라.

 

또 그것도 열심히 노력해가지고 매번 정성을 들여가지고 한 번에 큰 몫을 차지한다. 적어도 그런 것들은 안 바란다는 거라. 내가 한만큼의 대가를 바라게 되어있는 것이지 큰 일확천금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거라. 일확천금 오면 좋지마는 안 오면 어떡할 거라? 쫄라당 망하는 거라. 나도 그런 사람 몇 봤거든. 서해안 개발한다고 돈 한두푼 드는 것도 아닌데 하지마라 하지마라 해도 말 안 듣는 거라. 결국 모든 재산 다 탕진하고 나서야 ‘아이고, 이게 헛된 꿈이구나.’ 그때서야 알고 그때서야 뉘우치면 뭐 할 거라? 그런 것은 바른 노력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거라. 바른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런 것들은 바라지 않는다는 거라.

 

대가 없이 공짜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는 것이지 대가 없 이 그냥 공짜로 굴러오는 것들은 바라지를 않는다는 거라. 설혹 그런 것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눠줘 버린다는 거라. 살아가다 보면 열심히 노력하고 이럴 거 같으면, 이상한 데서 그냥 아무 대가도 없이 주기도 한다는 거라. 그런데 그것을 안 받는다는 거라. 어쩔 수 없이 받았더라도 나눠줘 버린다는 거라.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들이 그런 것들입니다. 대가 없이 들어오는 것들, 특히 정치인들이나 아니면 기업들이나 공무원들이나 이런 분들이거든.

근데 노력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안 받는다는 거라. 바라지도 않고. 설혹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정확하게 되돌려줘 버리기 때문에, 환원을 해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질 않는다는 거라.

 

그다음 이제 여러분들에게 해당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그런 신앙형태는 벗어난다는 거라. 신에 매달린다든지 아니면 부처님에게 매달리든지 뭐 문제가 안 풀리면 사람들이 이런단 말이라. 그런 거를 하지 않는다는 거라.

경전에서는 그것을 기복적인 신앙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기복적인 것 보다는 그런 특정한 대상에 매달리는 거라. 수능이다 그러면 아들에게 싹 올인 해가지고 있는 거라. 그것도 기복적인 거라. 매달려야 될 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닌데 다른 것은 다 신경을 안 쓰게 된다는 거라. 일이 잘 풀리면 괜찮은데 잘 안 풀릴 경우에는 큰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는 거라. 문제들이 다른 곳에서 발생을 하기 때문에.

 

물론 열심히 노력은 하지만은 전적으로 그것에 매달려서 그것으로 인해가지고 문제해결을 할려고 하질 않는다는 거라. 여러분들도 아마 마찬가지일 겁니다. 여기 와서 스님 따라 부처님에 대한 찬탄도 하고 뭐 이렇게 하더라도 그것만이 다인 줄 알고 그것만 전적으로 매달리지는 않는다는 거라. 또 수행이 다다 해가지고 수행 그것에만 매달리는 건 아니다 라는 거라. 한쪽으로 치우치질 않는다는 거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종류들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들을 가지게 된다는 거라. 그리하니까 마음에서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거라. 교만한 생각은 남을 파멸시킬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보면 적어도 허풍쟁이는 없어. 말부터 앞세우지를 않으니까. 될 것만 말을 하는 것이지, 안 될 것까지 다 얘기해가지고, 실제로 그렇게 안 되면 나 몰라라 허풍 치는, 그런 것들은 하지 않는다는 거라. 말을 앞세우지를 않는다는 거라. 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고 직접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지는 않는다는 거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망상피우지 않는다는 거라. 쓸데없는 생각을 해가면서 그것으로 인해서 망상들을 피우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위리야 와야마’라고 하는 ‘삼마-와야마’를 수행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마만큼 ‘정정진’이라고 하는 ‘노력’은 반드시 바르게 해야 되고, 또 그마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거라. 그래서 그 밑에 보면 게송을 아무리 많이 외우고 있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뽓띨라 장로’와 마찬가지로 ‘골빈 사람’이라는 거라. 

하나를 알더라도 그 게송 하나가 마음을 닦고 수행으로 인해서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고 할 것 같으면 하나의 게송이 천개의 게송보다도 더 위대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쭐라 빤다까’ 같이 ‘밀고 닦자!’ 이 한 게송만을 외웠는데도 그것 가지고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빗질을 할 때 ‘당김, 당김!’ 이 하나만 하더라도 천천히 그것만을 관찰하고 있더라도 천 개의 게송을 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이익이 있다는 거라. 적어도 청소할 때 바르게 하고 먼지도 안 날리고, 또 하면서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또 하는 동작을 면밀하게 알아차리면서 그 속에서 진리들을 체험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게송 하나가 훨씬 더 낫다는 거라. 그렇게 실천하지 않는 것들은 아무리 많은 게송을 외웠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노력이라는 것이 그런 것들입니다.

 

어떤 노력을 해야 되겠어요? 바른 노력이라고 해서 네 가지 노력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게 뭡니까?

전에 했던 적이 없는 것들이라도 나쁜 것들, 나쁜 것이라고 판단될 것 같으면 아예 일어나지 않게끔 만드는 노력!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나쁜 것들은 다시는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지금 하고 있는 좋은 것들은 더욱 더 일어나게끔 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일어나야 될 더 좋은 것들은 일어나도록 더욱더 노력하게 되는 것! 이 네 가지를 바른 노력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선업을 쌓는 것이면 지금 현재 하는 것이든 아니면 앞으로 그것이 선업이 될 것이든, 현재이든 미래이든 그것은 더욱더 자꾸 하려고 노력을 하라! 불선업을 쌓는 것들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든 아니면 앞으로 불선업을 쌓을 가능성이 있는 그런 나쁜 것이든 그런 것들은 아예 방어하고 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해야 될 것하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들! 이것들을 ‘바른 노력’이라고 합니다.

 

여기 용환이 같은 경우에는 어떤 것이 해야 될 것이고 하지 말아야 될 거라?

(문답)

어쨌든 여러분들이 이렇게 해야 될 것하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분명하게 구분을 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구분할 수가 없을 것 같으면 그것은 바른 견해를 지닌 자가 되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이제 아란야님이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천 개의 게송을 알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거라. 그걸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의 게송보다도 못한 결과가 되어버리는 거라.

 

그 ‘마하 자나까’라고 하는 분이 있었는데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난파될 위기에 몰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는데, 이분은 배가 난파되고 나면 어떻게든 바다 위에 떠있어야 되겠다고 그것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침착하게, 옷가지나 이런 것들을 둘둘둘둘~ 말아가지고 거기에다 기름을 붓습니다. 기름은 물에 뜨거든. 기름이 많이 묻은 것들을 갖다가 뭐로 싸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 그것은 바다에 둥둥 뜨게 되어있으니까 설혹 물이 들어오더라도 그 기름 성분이 옷이나 솜 같은 데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에는 그것은 뜨게 되어있다는 거라. 판자도 있고 물론 그런 여러 가지가 있지만은 그것은 난파가 돼서 내가 잡는다고는 보장을 못하는 거라.

근데 내가 지금 몸에 지닌 것들, 이것으로 인해가지고 물에 뜰 수 있게끔 잡도리를 한 거라. 그러고 나서 이 배가 난파가 됐어. 어떤 사람은 물에 바로 빠져 죽고 어떤 사람은 나무판자라도 잡고 그렇게 했겠지. 이 양반은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의지해 가지고 바다에 떠있는 거라. 그런데 워낙 깊은 바다에서 침몰이 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다 죽어버렸어. 근데 이 ‘마하 자나까’라는 분은 일주일간 그래도 끊임없이 헤엄을 쳐가지고 가는 거라.

 

경전에는 천상에 있는 천신이 내려와가지고 ‘마하 자나까’하고 대화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요즘 우리말로 할 것 같으면 자기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거라. ‘아, 여기서 포기할까 말까’ 그러고 ‘왜 일주일간 이렇게 끊임없이 헤엄을 쳐 가느냐? 목표물이 보이지도 않고 섬이나 그런 것들이 보일 것 같으면 희망이라도 품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데 그런 것도 전혀 보이지 않는데 내가 왜 팔다리를 젓고 나아가야 되느냐?’ 스스로에게 반문했다고 봐야 되는 거라.

 

그러면 만약에 내가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을 것 같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것은 답이 정해져 있다는 거라. 죽는 수밖에 없어. 다른 도리가 없는 거라. 근데 적어도 목표물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없는 것은 아닐 거라는 거라.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앞으로 나아갈 것 같으면 언젠가는 육지에 닿아있다는 희망은 있다는 거라.

 

언젠가는 내가 해탈에 이를 것이다, 내가 지금 해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끊임없이 노력할 것 같으면 해탈에 이르게 된다는 거라. 끝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아도 그냥 노력하는 거라. 끊임없이! 그런데 일주일이 아니라 앞으로 일주일을 더 가야 된다고 하더라도 또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어쨌든 지금 내가 해야 될 것은 다른 것이 없다는 거라. 끊임없이 팔다리를 움직여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거라. 내가 어디로 가야 되는지, 방향이 어떤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안 된다는 거라. 안 될 때에는 어떻게 해? 그냥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 다른 도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나아갔을 경우에 죽을 수도 있다, 결국 내가 섬을 찾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거라. 그럴 경우에는 네가 후회하지 않겠느냐? 만약에 여러분들은 그렇게 됐을 경우 후회하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노력한 사람들은 후회를 안 한답니다. 그렇게 노력 안 한 사람들이 ‘아이고, 가볼걸’하고 후회를 하지. 그래도 설혹 가다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노력을 끝까지 한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후회를 안 한답니다. 앞으로 계속 더한다고 하더라도 설혹 내가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냐? 확신해 보니까 후회는 안 할 것 같거든. 그러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게 없다는 거라. 끊임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거라.

 

경전에 그런 구절들이 자주 등장을 합니다. 그걸 뭐라고 그러느냐면 부처님은 ‘노력’ 이라고 얘기합니다. 노력은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그것이 바른 것이다 할 것 같으면 그냥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들!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 노력이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부처님이 지적을 해놓았습니다.

 

태국에 스님 중에 ‘와지라 냐나와로 라사’ 스님인데, 지금 이분은 출가를 해가지고 태국의 두 가지 종파 중에서 하나인 ‘담마 윳디까’라고 하는 종파를 창종하신 그런 분입니다. 아주 유명합니다. 태국에는 지금 종파가 두 개입니다. 같은 테라와다 불교권인데, ‘시암 니까야(Siam Nikāya)’ 하고 ‘담마 윳디까"(Dhammayuttika Nikāya)’ 라고 하는 두 개인데, ‘담마 윳디까’가 이 스님이 창종한 종파인데, 한 200년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그래도 무소유와 정진하는 데에는 다른 종파들이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아주 극심하게 정진들을 많이 하는 종파로써 알려져 있습니다.

 

이 스님이 적어놓았던 것이 뭐냐면, 프린트물에 있는 거 한번 읽어보십시오. ‘바른 노력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끝까지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지혜가 높은 사람이다.’ 지혜가 높은 사람도 바른 노력을 한다는 거라. 그다음에 ‘지혜가 어중간한 중간인 사람도 자신의 나약한 것들을 줄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을 하게끔 되어 있다.’ ‘당연히 지혜가 적은 사람은 더욱더 바른 노력을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적어놓았습니다.

 

지혜가 적은 사람이든 중간인 사람이든 많은 사람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다들 바른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라. 지혜가 많은 사람은 바른 노력을 힘들이지 않게끔 하는 것이고, 중간인 사람은 조금 더 열심히 해야 되는 것이고 지혜가 적은 사람은 죽을동살동 해가지고 바른 노력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원하는 것들에 이를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는 거라.

그래서 노력을 의미하는 단어가 ‘와야마’ ‘위리야’ 외에도 ‘아라따 위리야’ ‘위리야-람바’라고 하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그 의미를 적어놨던 내용은 뭐냐면, 노력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아주 용감하게 하는 것들을 노력이라고 하며 그런 의미를 지닌다’고 하는 겁니다.

 

왜 노력을 합니까? 노력을 해가지고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에. 바다를 건널 때에도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하는데, ‘낄레사 오가(kilesa ogha)’ ‘번뇌의 격류’는 더 힘드는 거라. 바다는 적어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없는데 이 ‘낄레사’라고 하는 번뇌는 거슬러 가야 돼. 더 훨씬 어렵다는 거라. 그런 것들은 진짜 피나는 노력이 아니면 못 올라간다는 거라. 이게 뭐 우리들에게만 그렇게 하라고 했겠어요?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에서 몸의 네 가지 성품이 뭐가 있습니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물의 요소, 땅의 요소. 그중에 불의 요소를 뭐라 그래요? ‘따뽀’라 그러죠? 그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열이 날 정도로 노력하는 걸 갖다가 ‘따빠’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 정도로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된다 하는 그런 의밉니다.

그 밑에 보면 ‘빠이 따또’라고 하는 용어를 적어놓았습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죽을 만큼 노력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놓치지 않고 노력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내 몸의 살과 피가 마르고 근육과 뼈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서지 않겠다!’ 그래서 그걸 ‘금강보좌’다 얘기한다고 그랬죠? 금강으로 높은 자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 금강보좌가 아니고 그런 굳은 결심, 금강과 같은 결심을 해서 앉은 자리라고 해서 금강보좌가 되는 겁니다.

 

살이 다 마르고 뼈가 다 가루가 되어 부서지고 근육도 없어지고 피도 다 말라버린다고 하더라도, 쉽게 말해서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여기에서 완전하게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못 이루면 여기에서 죽겠다는 얘기입니다. 그게 노력이라는 의미입니다.

 

밑에 쭉 적어놓았는데 한번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밑에는 예로써 적어놨습니다. 수행에서 게으름 피우고 하는 스님이 나쁜 생각을 가집니다. ‘에고, 나는 깨달음하고는 도저히 거리가 멀다. 도저히 나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겠다’해서 결국 수행하는 곳을 박차고 나와서 부처님한테 갔을 때 ‘아니다. 너는 그래도 과거 전생에 끊임없이 노력했던 사람이다. 물을 마시기 위해서 웅덩이를 팔 때 다른 사람들은 다 포기했는데 너는 망치를 가지고 그 바위덩어리를 쪼개가지고 물을 솟아오르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네가 노력을 안 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까 너는 지금 네가 수행에서 진전이 없다 해서 그만두지 말아라. 불굴의 노력을 해라! 끊임없이 노력을 해라! 그러면 너도 이익이 있고 다른 사람들도 네 모습을 보고 환희심을 일으켜가지고 또 수행을 하게 되기 때문에 큰 이익들이 있는 것이다!’ 하면서 그 수행자를 다독거려서 보냈다고 합니다.

 

진짜로 자기도 그렇게 불굴의 노력을 해보니 결국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거라. 깨달음에 이르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얘기합니다. ‘깨달음에 못 이른 것은 다른 이유 없다. 네가 노력 안 한 것밖에는 없다! 네가 지금 이런 상태가 됐다. 남 탓하지 말아라!’ ‘왜 우리 부모님은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놔놓았나?’ 다른 사람들은 이만큼 노력했는데 이마만큼 잘 사는데 나는 와 이것밖에 안 되느냐? 남 탓 하지마라는 거라! 네가 그마만큼 노력 못 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고 더 하라는 거라. 그럴 것 같으면 반드시 목표를 성취한다는 거라.

그런 얘기로써 적어놓았습니다.

 

자, 오늘은 노력에 대한 얘기를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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