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7. 평정각지(平定覺支) (20180804. 붓다의 길따라 선원)

담마마-마까
2023-03-20
조회수 227

https://youtu.be/CRW5GoaIPNU


7. 평정각지(平定覺支) (20180804. 붓다의 길따라 선원)

 

평정각지 부분은 필요한 사람들이 꽤 있을 겁니다. 내용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숙지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고요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어떻게 알아야 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것들이기 때문에 몇 번 반복해서 계속 읽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은 어떠한 경우든지 발란스가 잘 잡혀야 됩니다. 발란스가 잘 잡혀있을 때 아주 깨끗하면서 고요한 상태에 들어가지게 되는데, 그때 자칫 잘못하면 그 발란스가 깨지면서 그냥 고요한 상태로 쭉 빠져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대상이 없어져버립니다. 그럴 때는 빨리 빠져나와야 되는 거라.

 

또 수행하면서 잡념이나 장애들은 일어나지 않는데, 대상도 분명하게 보이기는 하는데, 그냥 대상만 자꾸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만 보이지 그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안 보이게 될 때도 어떻게 조절해야 되는가 하는 것들에 대한 것들이, 평정각지를 이해하면 본인이 발란스 어디가 무너졌는가 하는 것들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노력하는 힘을 더 기울여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분하는 능력들을 키워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대상에 그냥 집중하는 힘들을 키워야 되는 것인지, 또는 내가 너무 분별하는 능력이 자꾸 있다 보니까 '이게 뭔고' 하는 생각이 자꾸 일어나면서 그냥 무조건 믿고 '지금 내가 할 일은 오로지 사띠 뿐이다' 하는 생각으로 쭉 나가야 되는 것인지, 그런 발란스를 잡아주는 것들이 바로 이 '우뻭카 삼보장가(upekkhā-sambojjhaṅgā)'라고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것들이 분명한 이해들이 있도록 자꾸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씩 문답하러 오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부분에서는 크게 문제가 안되는데, 이 우뻭카가 일어났을 경우에 이것을 본인은 그것이 고요함의 상태라고 판단하면서 머물러버리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그럴 때는 이것이 어떤 힘이 강하고 어떤 힘이 약해가지고 이렇게 되는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어가지고, 그것을 빨리 수행으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법문할려고 하는 내용도 그런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가 '감비라빤냐(gambhīra paññā)'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지혜는 성숙돼 나가는 것'입니다. 깊이가 있어지게 되는 것이지 똑같은 패턴으로는 절대 그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대상이 분명하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그것도 하나의 지혜입니다. 대상을 보면 분명하게 일어나는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 또 그것이 사라지는 모습까지도 보았다. 그럼 그다음 단계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조금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든지, 또 그다음 단계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전체가 보이는 것이 아니고 계속 사라짐만 보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일어난다든지, 지혜는 항상 단계 단계별로 자꾸 깊어지게 돼있습니다.

 

그렇게 깊어지지 않을 거 같으면 그것은 그 지혜에서 머물르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지금 본인이 사띠를 하고 있는데 어느 지혜의 단계에서 지금 그것이 좋아가지고 거기에 머무르고 있는가 하는 것들을 자꾸 간파를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성자가 되기 위해서나 아니면 내가 좀 더 수행에서 깊이있게 넘어가기 위해서 지혜의 단계들을 반드시 밟아나가야 됩니다.

1단계부터 단계를 쭉 밟아나가서 점점 더 이게 끝나고 나니까 그다음 단계가 또 나타나고 그다음 단계가 끝나니까 또 다음 단계가 나타나고, 그래서 이 다음에는 어떤 단계가 나타날까 하는 궁금증도 일어나고,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본인이 자꾸 변해나가는 것들을 보면서 더욱더 수행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일으킬 수가 있게 되는 거라.

 

그렇게 되지 못하면 정체돼버릴 것 같으면 정체되는 것도 한두 해지 그게 햇수가 자꾸 깊어지고 많아지면 대부분 수행을 그냥 형식적으로 자꾸 하게끔 됩니다. 하라니까 하는 거고, 어쨌든 자꾸 알아차릴려고 해야만이 알아차리게 되는 거고, 그렇지 않은 일상생활에서는 그냥 알아차림을 다 놓쳐버리게 되고, 그래서 겨우 선원에나 와야 수행 좀 몇시간이라도 하고 가게 되고, 그러고 나서 돌아가고 나면 또다시 일상으로 그냥 돌아가버리게 되고, 외부적인 자극이 오면 바로 그냥 욕심이나 성냄이나 이런 것들이 바로 일어나게끔 되고,

그렇게 바뀌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에 지혜의 단계 본인이 어느 단계에 머물렀다고 하더라도 그 단계가 오래가지 않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한 단계 한 단계씩 자꾸 깊어질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됩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감비라(gambhīra)'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이 되야 되는 것이지 그냥 대상을 알아차리고 또 대상이 변해가는 것들이 보인다 해가지고 거기에 만족해가지고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자연스럽게 사띠가 되는 사람이든지, 그렇지 않고 일부러 마음을 기울여가지고 사띠를 해야되는 사람이든 그것에 관계없이 어떠한 경우든지 사띠를 놓치지 않을려고 해야됩니다.

 

자동적으로 되는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강한 자극이 올 거 같으면 사띠를 놓치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또 아주 강한 괴로운 현상들이나 아니면 아주 강한 신비스러운 것들이 나타나면 사띠를 딱 놓쳐버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끄달려들어가서 본인은 분명히 사띠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보면 탐·진·치로 인해서 사띠하는 경우들이 허다하게 보여집니다.

신통에 끌려버린다든지, 아니면 불교를 배우면 배울수록 뭔가 신비적인 것들을 자꾸 체험하고 그걸 바라게 되고, 뭔가를 할 거 같으면 뭔가 어떤 소원이나 어떤 것들이 이루어질 거라고 자꾸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자꾸 발전을 해버리는 것들입니다.

 

지혜가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깊어질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노력을 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들의 발란스를 잘 맞춰야 됩니다.

수행하는 중간중간에 휴식시간이 있다고 할 거 같으면 그 휴식시간에 지금 내가 한 시간 좌선 한 시간 경행하면서 뭐가 부족해가지고 계속해서 똑같은 현상들만 반복적으로 일어날까 하는 것을 자꾸 돌아봐야 됩니다.

그게 첫 번째입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가장 좋은데, 지혜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대상을 그대로 아는 것은 참 힘이 듭니다.

스님이 이거 탁발을 받았지만 스님에게는 이게 아주 맛있는 음식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게 맛이 없어. 탁발 받고나서 한참 지나고나서 공양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음식들이나 밥이나 이런 것들이 식어있기 때문에 맛이 있다고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거라.

 

또 인간과 동물이, 인간과 천상세계가 먹는 음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부류들은 그 부류들에서 맞는 음식들이 다 따로 있습니다.

다시 말해가지고 여러분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렸다고 하는 것은 지금 현재의 상태에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지, 그 단계를 뛰어넘은 상태에서는 또 다르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게끔 되는 것들입니다.

 

지금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알아차리는 것이 대상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 단계를 뛰어넘은 사람은 대상이 그렇게 안 보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고 그냥 벽을 치듯이 치는 모습들만 보이는 경우들도 있을 거고, 아니면 아주 예리해져가지고 그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끊어지고 하는 것들이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들도 지금의 단계, 각각의 단계에 따라서 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라.

 

하물며 실재하는 것들을 보는 것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들이 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주관적인 것들이 개입돼버리고 아니면 개념화돼버릴 것 같으면 너무나 많이 법하고는 벗어나버리게 됩니다.

 

수행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모든 것들은 아닙니다.

일체를 알고 있다는 생각은 지금의 자기 상태에서는 버려버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단지 이것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닌지만 자꾸 판단할려고 해야 됩니다.

아! 내가 수행을 관념적으로 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냥 형식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수행을 하는데 실재하는 것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사띠를 하고 있는 건지, 실재하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명칭을 거기에 맞게끔 붙이고 있는 건지 아닌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려고 해야 됩니다.

 

경전에는 수행을 거듭하다가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안다' 하는 것이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 되어서 내가 그다음에 해야 될 것이 뭔가 하는 걸 분명하게 안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걸 '메-다-위-(medhāvī)' 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빨리어 용어로써는 그걸 '현명하다'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여러분은 앞날을 알 수 있습니까? 언제 죽을지 그리고 언제 어떤 상황에 바뀔지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이걸 잘못 해석을 하면 남의 일을 앞날을 예측을 한다든지 아니면 신통을 부린다든지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메다위'라고 하는 것은 그런 걸 현명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게 되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수행을 하면 여러분은 반드시 진리를 체험해야 됩니다.

사회적인 것들을 그대로 가져와가지고 이 선원에서 그것을 쓰기 위해서 여기에 오지는 않았을 거라. 부처님 가르침을 그냥 그대로 듣고 실천하고 수행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다는 거라. 여러분이 여기에 와서 조금 더 현명한 일들은 진리를 알기 위해서 실천하는 것이 여러분들에게는 가장 현명한 일이라는 거라. 진리 따라서 행하는 것이 아닐 거 같으면 버려버리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부처님 당시 때 어떤 비구들이 항상 불만을 가진 분들이 있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님! 부처님 가르침을 들려주십시오! 하면 사리뿟따 존자가 아주 자세하게 얘기를 해줍니다. 그러면 그 스님들은 너무 장황하게 길게 한다는 거라.

또 아난다 존자한테 가서 법을 청하면 아난다 존자는 아주 핵심되는 요약만 딱 몇 글자만 해가지고 얘기합니다. 그럼 또 뭐라고 하느냐면 그렇게 짧게 얘기해가지고 어떻게 진리를 이해하느냐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또 레와따 존자 같은 분한테 갈 거 같으면 법을 설해주는 대신에 그대로 그냥 몸소 보여줍니다. 걸어갈 때는 이렇게 걸어가시오. 앉아서 수행할 때는 이렇게 수행하시오. 그럼 그분들은 그럽니다. 법을 설해달라고 했지 수행하는 거 보여주라고 얘기한 거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진리를 체험하고 알지 못했을 경우에는 항상 그런 위험성이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고 또 화를 내고, 나쁜 행위를 할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거라. 그건 어리석은 일인 거라. 본인이 행한 행위들은 본인이 그대로 받게 돼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했으면 선한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고 악한 행위를 했으면 악한 과보를 받게 돼있습니다. 멀리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즉시 악한 말을 하고 나서 본인의 가슴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금방 가슴에서 과보를 받고 있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선한 일을 하고 나서 본인의 가슴의 느낌을 한번 보십시오. 아! 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따뜻해집니다.

어리석음이 계속 넘쳐나는 것들을 행해서는 안 되고, 진리를 빨리 찾아서 그것을 체험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한 자들을 현명한 자라고 그럽니다.

 

그러한 자는 오늘 해야 할 일도 알고, 또 내일 해야 할 일도 압니다.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뭘 해야 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걸 '메다위'라고 그럽니다. 그러한 것들을 '내일을 아는 현명한 자'라고 그럽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를 자꾸 체험할 수 있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특히 이런 안거철에는 본인이 단계 단계를 자꾸 밟아나가야 되는 것이고, 하나의 단계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는 것보다는 이 진리를 체험하고 나면 그다음 진리를 체험할려고 해야 되는 거고, 그리고 그다음 단계의 진리를 체험할려고 더욱더 노력하게 되는 거고, 그러한 시간들을 자꾸 만들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막가 아막갓사 꼬-위다(maggāmaggassa kovida)' 라고 그렇게 합니다.

도와 도가 아닌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하라 하는 뜻입니다.

윤회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해탈로 나아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도(道)는 해탈로 나아가는 길이고, 비도(非道)-도가 아닌 것들은 윤회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본인이 수행을 통해서 해탈로 나아가는 길로 나아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신구의(身口意)를 통해서 해탈로 나아갈 수 있는 것들을 자꾸 닦도록 하고 그것이 습관화되도록 만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가장 좋은 것은 어떠한 일을 행하든지 사띠를 놓치지 않을려고 할 때, 가끔씩은 내가 윤회로 나아가는 길로 가다가도 바로 즉시에 해탈의 길로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려는 노력을 가지게 될 때는 해탈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상을 자꾸 놓쳐버린다? 또는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더라도 사띠하면서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탐진치로써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다? 그러면은 그것은 윤회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거라.

 

이것이 해탈로 나아가는 길인지 해탈로 나아가는 길이 아닌지 아는 것은, 바른 견해가 분명하게 서야만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아!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내가 따라가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내가 해야 되는 것이다. 아니면 이것이 중요한 일이다 하는 것들이 분명하게 확립되어 있을 때 본인은 도(道)의 길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하는 거라.

 

이 세 가지가 여러분들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조금 더 부처님이 얘기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그 길을 나아가야 됩니다. 지금 현재의 상태에서 자꾸 머무를려고 하지 마십시오. 지혜는 점점 더 성숙해지게 돼있습니다.

성숙되지 않은 지혜는 반드시 자신이 돌아봐야 됩니다.

반조해 봐서 어! 내가 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빨리 보충하고 메꿀려고 해야 되는 것이고, 또 지금 내가 행하고 있는 것들이 바르게 행하고 현명한 길로 가는 것인지 현명하게 행하고 있는 것인지 하는 걸 자꾸 돌아봐야 됩니다.

지금 내가 신구의를 통해서 행하고 있는 것들이 해탈로 나아가는 것인지 윤회로 나아가는 것인지 하는 걸 자꾸 돌아볼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이렇게 세 가지들이 자꾸 돌아봐지고 해서 또 바로잡고 바로잡고 하게 됐을 때 본인은 점점 더 부처님 가르침에 다가가는 그런 사람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랬을 때 그 사람은 바르게 균형을 맞출 수가 있게 되고, 균형이 맞아지면 수행은 성숙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을 자꾸 갈 수 있는 그런 제자가 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문답]

수행자 질문 : 스님! 지금 법문하신 내용들이 아직 저희들이 이르기에는 좀 어려운 거 아닙니까? 도비도 정도에 이르르려면...

 

스님 답변 :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걸 자꾸 경전의 수행상에서만 해석할려고 하지 말고, 본인이 말을 하나 행하더라도 남을 아프게 했을 경우에는 그거는 비도의 길입니다. 남에게 자애가 생기도록 만들었을 거 같으면 그거는 도의 길입니다. 그렇게 자꾸 판단을 해야 되는 것이지, 수행에서 자꾸 경전을 근거해가지고 이것은 도다, 이것은 비도다 하는 구분만 지을 거 같으면, 상카루뻭카냐나에 이르지 못했으면은 아예 아무것도 못하게 됩니다. 언제 할려고 그러는 거라?

실제 행하는 것들이 지금 현재 좀 더 현명하게 되도록 하고, 조금 더 해탈로 나아가도록 되고,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자꾸 머무를려고 하지 않게 될 때, 그럴 때 수행이 그것을 뒷받침을 해주게 됩니다.

그걸 지금 자꾸 수행상에서만 견주어가지고 지금 이 상태에 못 이르렀기 때문에 저 법문은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을 할 거 같으면 아무것도 실천할 것이 없어져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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