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5. 경안각지-고요한 마음에 도달하는 감동의 길 (20180504. 대구)

담마마-마까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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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owncSNU0o


5. 경안각지-고요한 마음에 도달하는 감동의 길 (20180504. 대구)

 

저번 달 서울 법회 때 나눠주었던 빳삿디 삼보장가-경안각지 부분입니다.

조금 더 보충해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쁨의 각지가 일어나고 나면 그다음에는 고요함이라고 하는 경안각지가 일어나집니다. 수행하다가 기쁨들 많이 일어나죠? 그거는 다시 일으킬 수가 있죠?

(수행자 대답 : 욕심이 있으니까 안 되든데예.)

욕심이 있으면 당연히 안 되죠. 똑같은 걸 경함할려고 하는 것보다는 그냥 다시 또 수행을 하면 또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지게 됩니다.

 

신비적인 체험하고 차이가 나는 게 뭐냐면, 기쁨의 각지들은 언제든지 내가 일으키고 싶으면 재현이 가능하도록 돼야 됩니다.

그래서 수행하면 항상 기쁨이 일어나는 형태들이 되도록 하고, 그 기쁨들이 점점 더 충만되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통제가능하도록 되는 것, 그렇게 돼야만이 기쁨의 각지들이 어느 정도 완성이 돼나갑니다.

 

‘아! 인제 내가 수행 제대로 하고 있구나’ 하는 것 때문에 기쁨이 일어나는데, 그거는 마음이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수행하는 것으로 인해서 대상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기쁨이 일어났는데, 그 뒤에는 마음이 ‘아! 내가 수행 잘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 기쁨이 한참 동안 고정돼서 있게끔 됩니다.

 

이게 내가 인제는 뭔가에 도달했다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일어나기는 하는데 빠져나오기는 쉽죠? 안 쉽든가요? (수행자 : 예)

기쁨이 일어나면 괴로운 건 없죠? (수행자 : 통증은 그대로 있든데예.)

통증이 있으면 아직 기쁨의 상태는 아닌 겁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괴로움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괴로움도 없이 항상 기쁨이 일어나는 상태가 되어야 됩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의 기쁨일 경우들이 그렇고. 기쁨이 어느 정도 충만이 되고 나면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서 뭔가 대상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기쁨이 일어나지고 해서 그 상태가 계속됩니다.

 

자칫 착각을 하면 ‘아, 이게 고의 소멸이 아닐까? 괴로움의 소멸이 아닐까?’ 하고 착각을 하는 경우들이 생겨납니다. 그런 상태까지는 사실은 도달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기쁨이 일어나더라도 그냥 그것들에 묻혀가지고 ‘아! 좋다’ 하는 생각을 일으켜버리면 기쁨은 깨지기도 하고, 또는 그 기쁨이 실재적인 것이 아니고 관념적으로 자꾸 해서 스스로 만족감에 취해서 있다 보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통증이라든지 여러 가지 생각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동시에 일어나게 되고 그렇게 됩니다.

 

그럴 때는 아직 내가 기쁨이 완성이 안됐구나 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더욱더 수행 대상을 알아차리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아, 이게 진짜 괴로움의 소멸이 아닐까?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음이 들 때까지는 계속적으로 수행을 해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적으로 하다가 보면 그냥 그 상태에서 머물려고 하게 됩니다. 이게 수행의 끝이라는 생각도 일어나기도 하고,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는데 더 이상 뭐가 필요하냐 하는 생각들도 일어나게 되고.

그럴 때 마음을 ‘아, 이게 수행의 끝이 아니구나. 내가 지금 고의 소멸이 된 상태에서 항상 기쁨이 일어나고 즐겁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가지고 나에게 뭐가 달라진 것이 있는가’ 하는 것들을 가지고 자신이 돌아봐야 됩니다.

욕심내는 것이 없어져버렸는가? 아니면 성내는 것들이 없어졌는가? 아니면 게으름 부리는 습성이 없어졌는가?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할 것 같으면 ‘아, 이게 끝이 아니구나’ 하는 것에 정신이 번쩍 들어야 됩니다. 그때 이 희각지가 일어나지게 겁니다.

 

그때 기쁨이 잠잠해지면서 평온한 상태가 됩니다.

‘아, 이게 끝이 아니구나. 내가 할 일은 오롯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평온한 상태에서, 좋고 싫음을 떠난 상태에서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구나’ 하고 알게끔 됩니다.

사실은 기쁨에 대한 각지가 일어났을 때 빨리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빨리 경안각지를 일으키는 것이 좋은데, 경안각지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방법입니다. 이게 수행의 끝은 아니구나. 나에게 달라진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면은 그 기쁨에 동요되지를 않게 되는 거라.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동요를 안 하듯이, 좋은 것이 일어날 때도 동요하지 않은 상태가 되게 됩니다. 대상을 그냥 오로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그냥 끊임없이 알아차리는 것뿐이구나 하는 걸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럴 때 이 빳삿디 삼보장가라는 것이 나타납니다.

차이점이 뭘까? 기쁨이 일어났으면 마음속에 약간의 들뜸이 있습니다. 또 마음속에 불안함도 있습니다. 이게 깨지면 어떻게 할까? 또는 마음속에서 그냥 이 상태에 머물고 싶다는 게으름도 틀림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싹 없어질려고 할 거 같으면 경안각지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없어진다는 거라. 아무리 기쁨이 온몸에 충만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놓아버리지 않을 거 같으면 경안각지는 안 일어난다는 거라. 그 점을 분명하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즐겁고 기쁘고 하는 것이 최고인 줄 알겠지만, 수행에서는 그것을 놓아버렸을 때 오히려 더 큰 즐거움 더 큰 행복이 온다는 것들을 수행을 통해서 경험을 해야 됩니다.

희각지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고통들이나 힘든 과정들을 겪어서 그걸 넘지 못하면 희각지가 일어나지 않듯이, 희각지에 대한 것들도 놓아버리지 않으면은 경안각지로 넘어가기가 힘들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가장 좋은 거는 수행을 통해서 이것들을 확인해나가는 방법입니다.

기쁨이 일어났을 때 내가 어느 정도의 집중을 하니까 이런 기쁨이 일어나는구나, 또 집중력이 더 강해지니까 어떤 기쁨들이 일어나는구나 하는 걸 스스로 알게 될 때 이 기쁨의 각지들을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대상은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 지혜들은 분명하게 열리는 것 같은데, 또 집중력에는 차이가 많이 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아까도 얘기했죠? 기쁨이 있는데도 통증이 있다. 그건 아직 집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마음이 통증이 일어나는 데로 가 있다는 거라. 쉽게 마음이 다른 데로 가버리는 상태라는 거라. 그건 아직은 이 기쁨의 각지가 완성되지 않았고 무르익지 않았다는 뜻이라.

더 강해지면은 괴로움으로 넘어가지질 않습니다. 그냥 그 기쁨의 상태에서만 계속 머물려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쁨이 점점 더 강해지고 더 퍼져나가는 형태들을 띠게 됩니다.

 

그게 인제 집중력의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집중력에도 이렇게 차이가 있구나 하는 걸 분명하게 알게 되면은 아, 아직 내가 집중하는 힘이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걸 알게 됩니다.

사실은 집중하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여러분들에게는 사띠하는 힘들도 강해집니다.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 힘들도 강해집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자꾸 집중하는 훈련들을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호흡을 단순하게 사마타 수행을 통해서 대상에 집중하는 힘을 키우든지, 그렇지 않으면 경행하면서 알아차리는 대상을 단순화하면서 집중하는 힘을 키우든지, 뭔가 하나의 일을 할 거 같으면 그게 잘 변하는 대상이 아닐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걸 줄기차게 그걸 알아차릴려고 하는 마음들을 유지한다든지, 이렇게 집중하는 힘들을 평상시 때 자꾸 키워주면 희각지가 일어나더라도 금방 이 기쁨이 빨리 성장하는 것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게 평상시 때 집중력을 키워주는 것과 아닌 것과의 차이입니다.

 

평상시 때 집중력을 키워주지 않았으면은 빨리 일어났다가 빨리 사라져버리고 그리고 그 강도가 크지는 않습니다.

온몸을 휘어감는 듯이 또는 내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되는 상태, 그리고 나중에는 그것들을 언제든지 제어할 수 있고, 언제든지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는 기쁨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상태를 분명하게 집중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들을 이해하면은 그 기쁨의 물결에 빠져들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얼마 전에 울산 선원에 여러분들 도움으로 바람막이 공사를 했거든요. 천막이 아니라 유리 비슷한 강화유리 같은 그걸 이렇게 했거든요. 바람이 워낙 세거든. 바람이 셀 때는 그쪽에 있는 흙먼지고 뭐고 다 와 닿습니다. 그런데 그걸 탁 함으로 인해서 그 안쪽은 굉장히 고요합니다. 굉장히 고요합니다. 기쁨의 각지와 경안각지의 차이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인제 그 안에서는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게 머물 수가 있게끔 되는 거라.

똑같은 대상인데도 그 대상을 맞는데 물결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 거라. 어떨 때는 강하게 바람이 와 닿기도 하고, 어떨 때는 작게 와 닿기도 하고, 그런데 막을 하나 탁 씌움으로 인해가지고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내가 대상을 맞이하게 되는 거라.

그 바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내가 호흡을 관찰하고 있으면 호흡을 그냥 그대로 아무 방해없이 관찰 할 수가 있고, 뭔가 경행을 하고 있으면 아주 자연스럽게 경행을 할 수 있는 상태라는 거라.

 

어떤 것이 더 평온하고 좋을까? (수행자 : 칸막이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칸막이가 있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배를 띄울라고 하더라도 풍랑이 심하면 못 띄웁니다. 잠잠해져야 만이 배를 띄울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해탈로 나아가는 길은 배를 띄워서 나아가야 되는 겁니다. 계속적으로 나아가는데 고요하지 않으면 다시 또 그것에서 멈춰있어야 되는 거라. 또 그마만큼 힘이 많이 들고.

 

그런데 경안각지는 그러한 것들이 제거된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쁨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장애입니다. 나중에는 경안이라고 하는 것도 이 고요함이라고 하는 것도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장애가 됩니다. 그거는 사마타를 통해서 장애를 제거해나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기쁨은 경안을 통해서 제거를 해나가게 됩니다.

어쨌든 기쁨보다도 경안이 훨씬 더 수승한 것이고 훨씬 더 해탈로 한 발짝 나아가는 것들이기 때문에 빨리 경안각지로 전환시켜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경안각지에 이르르면 어떤 특징들이 있을까?

우선 본인 자신이 불안한 것이 없습니다.

국가 보험은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에 태어났으면 국가 보험은 들어져있습니다. 스님도 그 보험은 들어져있습니다. 외국에 있을 때는 그것조차도 정지돼 있는 상태였는데, 한국에 오니까 어쩔 수 없이 그건 들어져 있습니다. 그거 말고 다른 보험은 들어진 게 없습니다. 뭐라고 그러지? 실비보험이라고 그러나? 실비보험 치과보험 무슨 보험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디 만약에 병원에 간다. 그럼 의료보험 혜택 받을 수 있는 것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경비가 많이 듭니다. 그런데도 그 보험 들 생각을 전혀 안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거 들어라. 한 달에 얼마씩만 내면 편안하게 그걸 적용을 받고 할 건데...”

 

그런데 그거 뭣 때문에 드는데? 지금 죽어도 괜찮고 또 십년 후에 죽어도 괜찮고, 또 많이 아파도 괜찮고 그런 불안함이 없기 때문에 그걸 들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라. 물론 다른 사람들은 경비가 많이 들지 않느냐. 뭐 그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별 걱정을 안 해. 없으면 없는 대로 안 가면 되는 거고, 있으면 있는 대로 또 하면 되는 거지, 그것 가지고 불안함을 새로 만들 이유는 전혀 없다는 거라.

 

경안각지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불안함이 없다는 겁니다.

지금 선원 사람이 안 오면 어떡하나, 안 오면 안 오는 거지 뭐, 어떡할 거라?

또 문 닫으면 어떡할 건데, 문 닫으면 문 닫는 거지 뭐 그게 뭐라고.

내가 할 일은 그게 아니라는 거라.

물론 이런 특징을 가진 스님을 시봉하고 하는 일반 재가자들은 되게 힘들지.

힘들어도 그건 내 할 일이 아닌 거라.

 

보통 일반적으로 빨리어의 단어를 공부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네 가지로 보통 구분합니다.

그것의 특징이 무엇이냐,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느냐, 또 그것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가, 또 그것이 일어나는 가장 가까운 원인이 무엇이냐, 이렇게 보통 네 가지로 구분해가지고 합니다. 어떤 빨리어를 공부하든 이 방식대로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이해를 하고 나면 그 빨리어 단어에 대해서 또 그 상태에 대해서 분명하게 본인이 이해하고 알게끔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빳삿디의 특징은 그런 불안함이 없다는 거라.

적어도 여러분들에게 기쁨이 있든 아니면 아, 이게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아닌가 하더라도 자신에게 한번 마음을 들여다보십시오. 어? 긴가, 아닌가? 뭔가 불안하다? 아직 확신을 못하고 있다? 그럴 것 같으면 아직은 경안각지에 가지 못한 겁니다.

경안각지에 이르렀을 때는 보통 다섯 가지 장애는, 경안각지 특징이 고요하고 가볍고 하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런 특징들로 인해가지고 다섯 가지 장애들은 다 제거가 됩니다. 일어나지 않은 상태가 됩니다. 당연히 불안함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또 불안해하면 뭐할 거라? 불안하고 하는 것들이 없을 뿐 아니라,

요즘은 스님이 하는 일이 좀 많습니다. 그래서 손이 좀 많이 거칠어요. 하여튼 뭐 고칠 게 많은지, 뭐 할 게 많은지, 되게 많아요. 재가자들은 “스님, 우리가 와서 하면 되죠” 일주일에 한번 꼴라당 오면서, 그거를 일주일 동안 내내 부서진 상태로 두라는 얘긴데 그거는 아닌 거 같거든. 그러니까 내가 보이면 내가 그냥 해야 되는 거라.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떨 때는 몸이 굉장히 피곤해지는 때들이 있습니다. 피곤하더라도 잠시 쉬고 나면 그 피곤함이 금방 가셔집니다.

몸이 피곤하더라도 마음은 피곤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한번 싹 돌이켜버리면 그 피곤함은 가셔져버리는 거라. 몸이 도저히 받쳐주지 못할 상태가 된다고 할 거 같으면 그때는 몸을 쉬어줘야 되는 건데, 그렇다고 해가지고 마음이 괴롭고 피곤한 것은 없다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몸은 힘들지 몰라도 몸은 고요해진 상태가 돼버립니다. 당연히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몸도 고요해지는 거라.

 

경안각지를 잘못 이해하면 가벼움 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몸이 가벼워지는 거라. 그런데 가벼워지기 전에 먼저 뭐가 되느냐면 고요함이 먼저 찾아옵니다. 몸과 마음이 항상 먼저 고요해진 상태가 되는 거라.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떤 대상을 만나더라도 고요한 상태는 그냥 그대로 유지를 해나갑니다.

그게 보통 경안각지의 특징들입니다.

 

그렇게 고요해지면 어떻게 될까?

보통 수행들을 한참 하다 보면 사람들이 상기가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머리깍고 있는 스님들의 머리를 보면 머리 뒤쪽이나 이런 데를 보면 상기돼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자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아직 경안각지 부분이 완벽하지 못하니까 그런 거라. 경안각지가 일어나면 그게 하는 기능들이 뭐냐면 눌러버리는 기능을 합니다.

 

경전의 주석서에는 뭐라고 돼있느냐면 큰 코끼리가 탁 밟고 가면 풀이 착 눕죠? 열을 그렇게 팍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는 거라. 팍 눕혀주는 거라.

그래서 마음에서 들뜨는 것들이 없고 몸도 열이 일어나는 현상(상기)들이 없어지는 상태가 됩니다. 마음에 번잡하게 활동할려고 하는 것들이 없어져버립니다. 뭐 하고 싶다는 게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대부분은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살아라고 할 거 같으면 못삽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을 바삐 움직이려고 합니다. 뭔가를 자꾸 하려고 하고.

 

그런데 경안각지에 이르면 마음에서 그런 작용들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49일 동안 이곳 저곳을 일주일씩 머물렀다는 걸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해서 머물렀을까? 뭔가 할려는 것이 있을 것 같으면 일주일 동안 앉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에서도 그러한 작용들이 없다는 거라. 그냥 내가 이룬 도와 과, 과의 법열에 젖어서 머물러 있게 되는 거라. 거기에 일주일 동안 그렇게 머물고 있는 거라.

 

그런데 몸의 활동이라는 거는 여러분들이 삼매에 들어본 사람들은 이해가 될 겁니다. 아무리 적정한 온도라고 하더라도 일주일을 넘길 수가 없습니다. 삼매 상태에서.

왜 그러냐면 삼매 상태에서는 거의 호흡도 멈춰버린 상태고, 지각 활동들도 멈춰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몸의 체온이 서서히 떨어집니다. 다른 기운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래서 보통 한 2도 정도 차이가 나진다고 그럽니다. 온도를 측정을 해보니까.

 

그런데 몸은 2도 정도 차이나는 것은 굉장한 차이입니다. 인도 같은 경우에는 2도 3도 어떨 때는 5도 떨어지더라도 얼어 죽는 사람이 생겨요. 왜 그러냐면 몸은 그 정도 차이가 날 것 같으면, 그정도 높아지든지 낮아질 것 같으면 몸이 견딜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나는 겁니다.

보통 36.5도죠! 여러분들 감기 걸렸을 때 몇도 돼요? 39도 됩니다. 39도만 돼도 열이 나가지고 난리가 납니다. 보통 2.5도나 2도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그러니까 38.5도만 되더라도 몸이 견딜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서 이미 병이 들어있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2도 떨어져도 꼭 마찬가지라.

그래서 몸이 병이 없이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온도변화가 없을 경우에는 보통 2도 정도 차이가 난다고 그럽니다. 그게 일주일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일주일 후에 부처님이 일어나서 또 다른 장소로 움직이면서 몸의 체온을 유지를 하고 또 다른 곳에서 일주일을 지냅니다. 그게 이 경안각지가 일어나게 되면 가능한 거라.

몸과 마음이 뭔가 번잡해지고 소란해지고 동요를 일으키고 할 거 같으면 일주일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삼매에 들어있을 재간도 없고. 삼매를 받쳐주는 것은 이 경안각지가 있기 때문에 삼매를 받쳐주게 되는 거라.

 

그게 경안각지의 기능들입니다.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시원하게 해줄 뿐 아니라 마음의 요소도 그와 같이 가라앉혀버리는 역할들을 하게끔 됩니다.

 

그다음에 경안각지가 나타나는 것은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외부적인 자극 그리고 내부적으로 일으키는 것들, 그런 것 어떤 것에도 동요하는 것들이 없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들이 없다는 거라. 그냥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뿐이라. 그리고 마음은 오히려 더 차분해지고 침착해지게 됩니다. '아띠바와'라고 그럽니다. 더 침착해진 상태. 오히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저럴 수 있나’ 할 정도가 됩니다.


실제 스님도 스리랑카에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차가 가는데 차의 이쪽에는 차가 주차를 해야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운전자가 요쪽 방향을 못 봤어요. 스리랑카는 오른쪽이 운전석입니다. 이걸 충분하게 저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건너오는 사람을 봐야 되는데 못 봤어요. 나는 지금의 한국식으로 할것 같으면 운전석에 있기 때문에 이쪽 왼쪽에서 오는 사람이 더 안 보이거든. 차가 길을 쭉 막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자전거 앞바퀴가 탁 나오는 게 내 눈에는 보여요. 그런데 운전자는 미리 봐야 되는데 그걸 못 봤어요. 그러니까 운전자가 그냥 사람이 자전거를 몰고 나오는 걸 그냥 탁 쳤어요. 사람이 저 뒤로 가서 떨어져버리게 됩니다.

나는 그 자전거가 나오는 게 그대로 보이고, 사람이 착 나오는 모습이 보이고, 탁 부딪치는 모습이 보이고, 뒤로 싹 넘어가는 것까지 다 보여요. 똑 비디오를 돌리듯이. 그런데 운전하는 분은 갑작스럽게 하니까 그냥 "아악!" 하면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데 뭘 해야 될지를 모르는 상태라.

나는 그걸 그대로 보아왔기 때문에 그다음에 해야 될 것이 탁 보입니다. 침착하게 문을 열고 나가서 사람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또 어떻게 조치해야 되는지 한참 조치해가지고 다 하고 났을 때까지도 그 운전사는 그냥 그 핸들에 머리 박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상태라.

 

그게 뭐냐면 침착함이 없을 때는 급작스럽게 뭔가 일을 당했을 때 그러한 상황에 부딪치게 되는 거라. 경안각지는 이렇게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런 차분하고 침착하고 동요하는 것이 없는 것들은 그대로 유지를 하게끔 됩니다.

그마만큼 경안각지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냥 단순히 삐띠라고 하는 기쁨이 일어나는 것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거라.

 

경전에 칠각지 부분의 경전이 세 개 정도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깟사빠 존자의 칠각지가 있습니다. 깟사빠 존자가 칠각지를 읽으면서 병으로부터 나았다든지 한 것은 뭐냐면 기쁨을 통해서 경안각지가 일어났을 때 대부분 그렇게 돼버립니다.

몸 안에 보통 소화기 계통들은 이 경안각지 때 많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게 많이 경감되게 됩니다.

또 정신적으로 동요하고 하는 것들도 경안각지에서 없어지게 됩니다. 기쁨으로 인해서 어느 정도 성숙되고 나서 이 경안각지에 이르르게 될 때, 거기에는 이 각지에 대해서 들으면서 경안각지를 일으키는 것으로 인해가지고 이미 병으로부터 벗어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삼매를 통하고 그다음에 고요한 마음을 통해서 아, 내가 이러한 상태에 완전하게 도달했구나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게끔 되는 거라.

 

실제적으로는 경안각지가 굉장히 많은 이익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찌 보면 수행에서 가장 최소한이 경안각지에 이를 때까지는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경안각지가 일상생활에서 쓰인다고 하더라도 동요함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불안함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고 또 어떠한 조건이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데도 마음이 항상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려고 하는 것들, 그 상태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사실은 여러분들 1차 적인 목표입니다.

 

여러 가지 선한 행위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할려고 하더라도 삐띠가 아니라 경안각지가 됐을 때 선한 것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노력들도 균형을 맞춰지게 됩니다.

수행할 때 노력이 어떤 게 균형이 맞는 건지 알아요?

내가 뭔가에 도달하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올바른 노력은 아닙니다.

내가 지은 행위는 내가 받는다는 것. 그것이 좋은 행위이든 나쁜 행위이든 그 결과는 반드시 내가 받게 돼있다는 것. 업과 업의 결과에 대해서 분명하게 받아들여서 그것만이 나의 재산이다 하는 생각에 탁 이르게 됐을 때 노력은 균형을 딱 맞춰지게 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대상을 알아차릴 때 노력이 정확하게 균형이 맞습니다.

 

대상을 알아차려야지? 또는 가볍게 이 대상을 알아차려야지? 균형이 어떤 게 맞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는 보면 나의 재산이 되는 것은 업밖에 없다는 생각에 탁 미치면 대상을 알아차릴 때 균형이 맞춰지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게 경안각지일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거라.

수행에서도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가끔씩 옛날 일들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따뜻해질 때들이 있습니다. 언제냐 하면 사람들이 경안각지를 일상적으로 자꾸 얻을려고 노력하는 부분에서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

특히 내가 있었던 치앙마이에서도 또 들어간 지역 같은 곳에는 참 못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절을 짓는데 어떤 사람은 돈으로 보시를 하고, 어떤 사람은 직접와서 요즘 말로 하면 벽돌, 벽돌을 직접 굽습니다. 그러고 나서 건물을 짓기 위해서 쌓고 세멘을 직접하고 청소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은 자애송을 하든지 뭘 하든지 하면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 게송을 하는 것들을 봅니다. 몸은 그 더운 데서 땀이 뻘뻘뻘뻘 흐르는 데도 기쁜 마음으로 그걸 하고 있는 거라. 행복해하면서.

그게 뭐냐면 경안각지를 실제 생활에서 그걸 할려고 하는 노력들을 자꾸 하고 있다는 거라.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은 굉장히 따뜻해지는 거라.

 

그러한 일들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는 것들은 뭐가 토대가 돼서 가능하냐 하면 기쁨과 경안이라고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토대가 되기 때문에 행복함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빳삿디의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나타나는 것들은 그러한 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다음에 경안각지를 일으키는 가장 가까운 원인들은 뭐가 있을까?

몸과 마음에 대해서 관찰을 함으로 인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분명하게 보는 지혜에 이르렀을 때, 그것이 경안각지를 일으키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으로 자꾸 볼려고 해야 됩니다. 물질적인 현상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고, 그것을 관찰하는 정신적인 현상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고. 그래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들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한순간도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될 때, 집착하는 것들이 없어져 버리는 거라.

지맘대로 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거는 자연스러운 법칙에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들이라는 생각에 미치면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들이 없어져 버리는 거라. 그럼 몸과 마음은 아주 고요해지고 가벼워지게 되는 거라.

 

여러분들 것이 아니라고 할 거 같으면, 보통 사람들은 그거 자기 거라고 생각 안 합니다. 그냥 남의 거 보듯이 편안하게 그걸 본다는 거라. 그런데 그것에 집착하는 순간에 저걸 내 것으로 만든다든지 아니면 다른 작용들을 하게끔 되는 거라. 경안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어떠한 대상이든 대상에 대해서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현상들을 분명하게 보게 됐을 때 경안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주석서에는 뒤에 일곱 가지 방법으로 써놓은 겁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음식. 여러분들은 음식에 집착은 안 하겠죠? 맛있는 거 먹고 그러진 않죠?

음식을 먹을 때 항상 기준점을 두는 게 필요성과 적합성입니다. 이 두 개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됩니다. 내가 지금 이게 꼭 필요한 것인지, 그냥 관습적으로 아침 점심 저녁 먹으니까 저녁을 먹어야 되는 건지, 필요성이 있는 건지를 분명하게 한번 보십시오. 그게 여러분들이 부처님 말씀대로 따르고 수행해나가는데 필요한 건지,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부족한 것들은 보충을 해주어야 됩니다.

 

지금 스님은 적합한 거와 적합하지 않은 것을 압니다.

맵고 짜고 하는 것들을 먹으면 안에서 이상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럼 몸이 굉장히 안 좋아집니다. 그래서 누가 맵고 짠 것을 주더라도 아예 안 먹지는 못하니까 한 점만 먹고 맙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맵고 짠 것이 아니고, 거의 소금기가 안 되어 있고 그리고 기름기 없는 것들이 나한테 적합하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들이 고기 종류를 스님한테 많이 드시라고 줍니다. 솔직히 스님은 부담스럽거든. 그래서 고기는 한 점밖에 못 먹어. 그냥 야채 주는 게 가장 좋아. 거의 간을 안 한 것. 그게 적합성이라. 자기한테 적합한 게 뭔지를 분명하게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는 거라.

 

필요성과 적합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확립이 됐을 때 적절한 음식을 자기가 섭취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 하더라도 적어도 음식에 대한 집착하는 것들은 많이 떨어져 나가고, 음식으로 인해서 마음은 편안하고 고요해지게 되는 거라. 몸도 평안하고 고요해지게끔 되는 거고.

 

그런 방식으로 일곱 가지를 쭉 적어놨습니다. 여러분들이 읽어보면 크게 이해를 못하는 부분들은 없을 겁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여러분들은 경안각지를 자꾸 개발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경안각지에 오래 머무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차라리 삐띠라고 하는 희각지는 어느 정도 개발하고 나서 그것을 버려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데, 경안각지는 완전하게 성숙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1분 1초 단지 사띠할 대상이다 하고만 마음을 먹으면 됩니다.

찰나찰나 간에 무상·고·무아가 그 속에 있다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들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오늘은 경안각지 저번에 서울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것들을 보충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경안각지에는 반드시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경안각지를 이해하면 선한 마음에서 함께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됩니다. 아! 이게 몸의 가벼움이고 이게 마음의 가벼움이고, 이게 적합한 것이고 아니고 하는 것들, 이런 여러 가지들을 분명하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경안각지 속에 이게 다 포함이 돼있습니다.

 

선한 마음이 함께 일어나는 요소들에 대한 것을 분명하게 이해할려고 할 거 같으면,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선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계속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안각지에 이르려고 노력하라는 겁니다. 그점을 분명하게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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