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관 수행법_두려운 죽음과 가장 고귀한 죽음_빤냐완따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426-2
지난주에 다 뵀던 분들 그리고 새로운 분들도 계시고 하네요. 다들 편히 앉으시고, 나는 뭐든지 인식을 안 하면은 의식을 안 하면, 뭐든지 내가 이걸 해야지 혹은 법문 들어야지 수업 준비해야지 하면 어느샌가 몸이 이렇게 대상을 향해서 뭘 할려는 의도 때문에 몸에 긴장이 들어가요. 그래서 몸도 한번 항시 뭘 할 때는 살펴야 돼요. 아 이제부터 빤냐완따 스님 수행 법문 시간이 된 것 같다 하면 ‘아, 그렇지, 들어야지’ 하면서 ...없이 자기 몸을 한번 이렇게 바라봐야 돼요. 그게 수행 시작이에요. ‘잘 들어야지’ 딱 하면 벌써 자기 몸과 마음이 지겹지 않을 거에요. 하여튼 몸을 한번 보고 호흡 한번 바라보고 몸을 편하게 다 내려놓고 몸을 가지고 다 수행해야 돼요 ...
그러면 이 4시간을 앉아서 법문을 들어도 편안해요. 혈액순환이 잘 돼요. 그리고 이 스님이 경험했던 건데 제가 경주 마하보디 선원에 예전에 경주스님께서 외국에 출타하시고 비우셔서 저한테 이렇게 임무를 맡겨놓고 가셨는데. 서울에서 4시간 동안 차를 운전해서 가요. 그렇죠. 서울에서 일 마치고 내려가면은 “스님 피곤하신데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좀 쉬셔야 되는데” 이러는데 그게 아니라 쉬면서 내려가는 거에요.
운전하면서도 피로가 풀려요. 잘만 하면. 좀 뭐랄까 좀 수행적이랄까 마음을 다 저절로 잡아놓고 누가 말 거는 사람이 누가 있나? 차가 지가 스스로 알아서 가는데,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전체적인 알아차림 편안한 알아차림만 가지고, 집중적인 알아차림 하지 않고, 그래서 어느 순간 경주의 마하보디선원 팻말이 딱 보이는데 가면 피로가 다 풀려 있어요. 근데 사람들은 보통 운전을 뭐 4시간에서 5시간씩 하고 그러면 피로가 쌓여져 버리잖아요. 근데 뭐든지 공부도 수행도 다 마찬가지예요. 처음에 초심자들은 잘 안 되니까. 막 기가 쓰여지고 상기가 되고 힘이 들어서 그렇지, 차츰차츰 이제 리듬을 타기 시작하고 거기 한번 한걸음 발걸음 하나 들어가기 시작하면은 걷는 거는, 지혜랄까 이렇게 흐름이 저절로 그 흐름을 타게 돼 있어요. 차츰차츰 그렇게 되는 거고,
오늘 시간을 잘 봅시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제 마음속에서 말이에요. 노트를 1권씩 꺼내야 돼요. 노트를 하나 꺼내가지고 잘 메모를 해주세요. 펜으로 안 적어도 돼요. 대신에 오늘 이 스님이 시간 되는 한, 시간 그렇게 끌진 않고 적어도 40여 분 정도는 걸릴 것 같애요.
여러분들이 반드시 숙지해야 될 불교 수행, 중요한 불교 수행의 전반적인 걸 한번 짚어주고 싶어요.
불교 수행에는 보통 계정혜 그래가지고 기본 일상 도덕적인 일상생활, 그다음에 그것을 통한 마음의 안정, 그다음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선정수행, 그다음에 선정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 통찰 무상에 대한 깨달음 고집멸도 사성제에 대한 깨달음 고통의 진리 무아의 진리 그런 것들로 해가지고 마지막 최종의 정점을 찍잖아요. 그렇게 수행이라는 게.
근데 우리는 보통 위빳사나 수행은 대체적으로 많은 얘기를 많이 해서 알겠는데, 사마타 수행에 대해선 잘 몰라요. 여러분들 사마타 수행 뭐 특별한 거 그런 걸 배우시거나 하신 분들 계세요? 예 어떤 수행을 지도를 받았다든지 어떤 걸 하고 계신가요?
(수행자: 지금만 하는 게 아니고 한동안 집중 했었는데, 아나빠나사띠를 해서 집중돼나가는 그 지점을 관찰하면서 또 집중이 되면 ...)
그렇죠. 수행자처럼, 저분은 그래도 사마타 수행이라는 거를 법문을 듣고 또 하나 한 주제를 선택을 해가지고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의 한 지점에다가 마음을 집중시켜서 거기에서 떠오르는 니밋따라든지 감각이라든지 한 지점을 선택해가지고 하면은 이것도 사마타 수행의 한 부분에 들어가요.
그렇듯이 오늘은 전반적인 거를 과연 우리 부처님께서도 사마타 수행을 통해가지고 완전한 마음선정 가장 최고의 마음집중 상태까지 이루셨고, 그것만으로써는 완전히 해탈할 수 없다는 걸 깨달으시고 그야말로 사성제에 대한 무상 고 무아에 대한 위빳사나라고 하는 삼법인 통찰 수행을 통해가지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됐어요.
근데 이제 우리가 얘기하는 거는 완전한 무상에 대한 통찰 무아 고통에 대한 방법을 우리가 맨날 위빳사나를 가지고 정점을 얘기하고 있지만 부처님께서도 엄청 강조하시는 것이 뭐냐면은 마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다양한 수행법들을 말씀하고 계세요. 그게 부처님 그 이전부터도 있었고, 부처님 당시 때도 계속 개발되어진 것들도 있고,
그래서 이 스님이 한 몇십 분 동안 전반적인 것을 하면, ‘아 이런 것이 사마타 수행이로구나’ 하는 걸 한번 알고, 그다음에 단 한 가지 앞으로 요번 시간에는 그 사마타 수행 중에서 죽음에 관련된 부정관에 관련되어진 걸 집중력으로 할 거에요. 요거는 오늘 여러분들이 짧은 시간이지만 잘 들으면 마스터할 수 있어요. 그거 대단히 중요해요. 그리고 자애관 수행하고.
자애관과 죽음 부정관 양대산맥이에요.
탐심과 분노 욕망 같은 거를 제어할 수 있는 마음을 집중시켜서 이제 통찰 위빳사나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부처님께선 40가지의 그 사마타 수행을 말씀하시는데, 그중에서 양대 산맥이 자애관 수행하고 바로 부정관이나 죽음관이에요. 우리 이 테라와다 불교 가을 세미나 주제가 뭐냐 하면 주제 하나가 부정관이에요. 부정관하고, 저기 죽음관으로 나왔었는데 사수념이라 그래가지고. 근데 오늘 예비 공부라 생각하시고 예비공부가 아니고 스님의 실제 사진과 여러 가지 방법들을 짧은 시간 안에 여러분들 섭렵을 해드릴 테니까. 딱 한번만 들으시고 그걸 참고해가지고 우리 현대사회 일상 속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하시기 바래요.
오늘 제가 이번 시간에 하는 이 죽음에 관한 수행이라든지 다음 주가 될지 다다음 주에 될지 모르겠는데 자애관을 가르쳐드리면은 이거는 선택의 조건이 아니에요. 이건 필수예요. 필수. 그래야만이 일상 속에서 그런 걸 잘 활용해야만이 순조롭게 자기 수행 생활을 키워나갈 수가 있어요. 어렵지 않게 스님이, 스님도 그래서 공부를 해 왔어요. 스님이 지금까지 해온 이 죽음에 관한 수행인데 내가 하여온 배운 방법들하고 그다음에 이제 논서들을 보니까 좀 정리되어진 게 있더란 말이에요. 그걸 정리해가지고 여러분께 들려드릴테니까 오늘 한 가지를 잘 마음속에다가 메모를 해가지고 그렇게 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좀 활용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래요.
여러분들한테 내가 특별한 걸 하나 보여드릴 게 있어요. 자, 여기 한 분 나오셔야 되는데, 프린터물 하고 다음에 내가 오늘 법문할 자료가 자료가 많아요. 법정 스님의 번역서 법구경 그것도 필요하고 그다음에 요 교재도 필요하고 그다음에 이거는 오늘 스님이 법문해 줄 내용이고, 여기다 사진을 좀 붙일 테니까 우리 좀 도와주세요.
여기다가 뭐 이렇게 해가지고 지금 부정관 아수바눗사띠 하고 마라나눗사띠 죽음관에 대해서 이제 원래는 오늘은 죽음관 시도를 할 거예요. 근데 원래 죽음관하고 부정관하고 좀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명백히 틀려요. 하여튼간 죽음관 하면서 부정관을 같이 설명을 할 테니까. 죽음관에 대한 수행 방법 그 중요성 같은 것도 공부하면서 잘, 여기다가 내가 제목을 하나 써야 되니까. 여기다가 붙여봅시다. 여기 하나 붙일까요. 이게 지금 요 사진하고 관련된 거니까...
오늘 제가 제목을 하나 정해 놨어요.
오늘은 죽음과 죽음을 거듭거듭 생각하는 이 마라나눗사띠를 오늘 법문하는데 거기에 관련되어진 거라 여러분들이 좀 이해하기 쉽게 제목을 한번 정해봤어요.
「두려운 죽음과 가장 고귀한 죽음」
이렇게 제목을 해놓고, 이 스님이 잠시 후에 여러분들한테 질문 하나 할 테니까 그동안 생각을 해보세요 짬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죽음이 1가지가 있어요.
단 하나의 죽음만이 고귀하고 나머지는 다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이에요.
그리고 내가 여기 지금 사진을 다 붙여놓은 것들은 외국 남방 수행처를 제가 돌아다니면서 찍었던 것들이 있고, 제가 늘 방에 붙여놓고 이렇게 부정관 할 때 혹은 죽음관 할 때 늘 활용하는 사진들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따가 좀 가까이 와가지고 보세요. 보고서 자기 마음속에 담아두고 이런 걸 가지고 이걸 근거로 해가지고 부정관이나 죽음관을 키워나갈 수 있고, 다음 기회가 될 때 여러분들한테 제가 사진 원본을 가지고 있어요. 이거 다 가지고 있진 않은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러분들한테 이걸 수행에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출력해 드릴 수 있어요. 이따가 나오셔서 자세하게 보세요 한번.
이 사진은 스리랑카 저기 남쪽의 숲속 수행처에서 찍은 사진이고, 그리고 여기 어떤 남자와 여자의 두 해골이 안에 안치가 되어져 있고 늘 스님도 공양 하기 전에 하루 한번씩 봐요. 이렇게 공양간 앞마당에 수행처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있고, 그 앞에서 이 스님이 사진 찍었어요. 내 자신이 이 앞에 앉아가지고, 나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늘 하면서, 이 스님은 그걸 쓰는 거예요.
이거 이 한 무더기 해골 무더기는 스리랑카 저 섬에 있는 수행처에서 찍은 건데 이것도 선방 한가운데 놓고 늘, 실제 해골이에요 이거는 인조가 아니에요. 저 밖에 있는 것처럼 인조로 만든 것이 아니고 이거는 인도의 한 슬럼가에서의 어떤 지금 죽은 사람 실제 사람 썩어 가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고. 이런 걸 통해 가지고서도 죽음관 부정관 하기도 하고.
또 이 사진은 이거는 엄마 아빠 애기 같애. 이게 스리랑카가 아니고 태국 저 남쪽 수행처에 가면은 이 왓수안독이라는 수행처에요. 이걸 걸어놓고 여기서 법문도 듣고 여기서 공양도 맨날 밥도 먹고 늘 보면서 이걸 부정관으로 키우기도 하고 죽음관을 할 때 활용하기도 하고요.
이 마지막 사진은 인도 바라나시 사르나타의 그 무슨 강이에요. 거기가 인더스강 말고 갠지스강에 있는 시체가 떠다니는 모습들. 그래서 배 타고 건너가서 좋은 데 가라고 동전 하나 건네주고 사진 찍어 왔던 건데, 이런 걸 가지고 삼아서 자기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뭐랄까 그런 부정관을 하기도 하고 하여튼간 두려움으로써 발심하게 해서 빨리 이렇게 열심히 부처님 법 따라 빨리 내가 죽기 전에 깨달아야지, 정진력을 가지고 해탈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을 내도록 하는 중간으로 이어져 가는데, 하여튼간 기본적인 게 이런 게 있어요.
이런 게 있고, 우리 인생살이 중에 말이에요. 일생을 살면서 가장 큰 문제가 뭘까? 문제가? 인간으로서의 가장 뭐랄까 운명적인 숙명적인 그런 피할 수 없는 문제점, 인간사에 영원한 예술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수행자: 생사입니다.) 그렇죠.
첫 번째 삶과 죽음, 죽음이 먼저에요. 인간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게 피할 수 없는 죽음 죽음에 대한 고통.
또 하나가 있어요. (수행자: 괴로움) 다 괴로움이에요. 다 괴로움에 관련된 건데 부처님께서 딱 그걸 짚어주셨어요. 정확하게.
그게 현대사회에도 모든 예술 문화 역사 인간 정신 문화 사회 한치의 어김없이 적용되는 게 바로 이, 여러분들 보세요. 드라마를 보세요. 드라마를 보면은 다 사랑과 이별, 그다음에 죽음에 관련된 문제에요. 그러니까 인생살이에서 가장 큰 문제거리요 고통거리 2개가 사랑과 이별에 관련된 것, 연인이든지 부모자식 간의 사랑이든지 간에 사랑이 가장 인생살이에 가장 큰 괴로움과 슬픔과 기쁨으로 이렇게 다가오면서 고통을 주는 게 사랑의 문제예요. 모든 예술은 다 여기에 관련되어져 있고 또 두 번째가 죽음에 관련된 문제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고통의 진리를 말씀하실 때 사고팔고(四苦八苦) 말씀하셨잖아요. 처음이 바로 이 사랑의 문제란 말이에요. 애별리고 그 유명한 인간의 고통의 진리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죽음 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아픈가 봐요 그게. 그다음에 마지막이 뭐예요? 그러니까 저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원수와의 만남, 그다음에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그런 괴로움, 그다음에 이 몸과 마음의 이런 오온덩이에 집착하고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다라고 정신적인 괴로움을 4개(四苦)를 얘기하고,
그다음에 나머지 팔고(八苦)에서는 생노(生老) 태어남이 고통이요, 늙음이 고통이요, 병듦의 고통이요, 죽음의 고통이오 라고. 여러분들 오늘 1장 나눠드린 그게 그 죽음관 할 때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문구에요. 스님이 편집해서 하나 만들어 왔으니까, 그거 하나씩 이렇게 허술하게 버리지 마시고 늘 한번씩 읽어보면서, 오늘 죽음관에 관련된 수행법을 배우고서 나중에 활용을 해보시길 바래요. 그래서 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부처님께서 정확하게 애증에 관련되어진 문제와 마지막 생로병사에서 죽음으로 끝나는 이 죽음의 문제를 가지고 부처님께서 정확하게 고통의 진리 속에서 갈파하셨어요 그거를. 그렇다 보니까 부처님께서도 태어나셔가지고, 마야부인 생모시죠. 생모께서 돌아가신 슬픔 충격 아마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애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고통 고민 두려움 그런 것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걸 가지고 이제 마음속에서 담아두었던 것들이 결국 출가를 하게 되고 세속에서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이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결국은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거 아니에요. 결국은 6년 만에 모든 고리를 다 끊어버리고 결국은 죽음의 문제 사랑의 문제 그 죽음의 문제에 종지부를 찍게 돼요. 그러나 사람은 죽음의 문제를 그냥 해결되는 게 아니고 태어나면 죽고 죽으면 또 태어나기 때문에 태어나면 죽고 태어나면 죽고 우리가 죽고 죽고 죽고 계속 거듭되는 그 죽음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려요.
그래서 그것을 이름하여 이 세상에는 단 1가지의 고귀한 죽음이 있어요.
죽음은 크게 3가지로 나눠요. 3가지로 나누는데 자 밑에서부터 하나씩 내려갈게요.
일반적으로 이건 논서에, 붓다고사 스님께서 청정도론에 정리를 해놓으셨더라구요. 붓다고사 스님 대단히 위대하신 분이에요. 제가 요번에도 위숫디막가를 다시 한번 보면서 빨리어 3장에 나오는 모든 수행법들 다 정리해가지고, 그러니까 빨리어 3장을 보고서 우리는 전체적인 걸 딱 일목요연하게 볼 수는 없어요. 근데 붓다고사 스님께서 빨리어 삼장에 나오는 이 사마타 수행을 딱 40가지를 정해요. 다 정리해 보니까 한 40가지가 돼. 그래가지고 다 일목요연하게 해가지고 정리해 놨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제 죽음에 대한 명상이에요. 그 설명이 잘 되어 있더란 말이에요.
거기에 죽음은 보통 3가지가 있다고 얘기를 해요.
자 보통 여러분들 문자로 하나 써볼까요? 죽음에는 말이에요. 보통 일반 세속적인 죽음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냥 우리가 병들고 죽는 거 그거를 마라나라고, 죽음을 마라나라고 여러분들 단어 하나는 외워두셔야 돼요. 마라나(maraṇa) 죽음. 마라나 아눗사띠(maraṇa anussati) 이 죽음에 대한 수행을 가지고 마라나 아눗사띠라 그래요. 그래서 마라나는 죽음이요, 아누는 거듭거듭 계속 따라가면서 죽음을 거듭거듭거듭 사띠 하는 거예요.
떠오른 죽음에 대한 그런 두려운 마음이 있잖아요. 계속 이 순간순간 잊지 않는 것, 순간순간 그 떠오르는 이미지나 영상이나 혹은 그 떠오른 죽음에 대한 그런 마음들을 순간순간 계속 놓치지 않고 이어가는 걸 가지고 아누(anu)라고 그래요. 그걸 거듭 계속 지속시키는 걸 가지고 아누(anu)라고 하고, 그걸 가지고 놓치지 않고 잊지 않고 계속 그걸 이어가는 걸 가지고 사띠(sati)라고 해요. 그래서 마라나눗사띠(maraṇānussati) 그래서 죽음을 거듭 죽음에 대해서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 거듭거듭 관념하는 수행, 고 정도로 이렇게 풀이가 돼요.
이제 그런 수행이 있는데, 왜 이런 수행이 이렇게 사마타 수행 중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을 해드릴게요.
자 이 사마타 수행에는 경전에는 말이에요. 지금 여러 가지 뭐 영상에 대해서 이렇게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 아까 저기 불자님이 말씀하신 호흡에 대해서 집중하는 거, 호흡의 한 지점에 어떤 감각에 집중하는 혹은 호흡에 집중하다가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을 때 그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 혹은 물 불 바람 하얀 흰색,
여러분들 바람 아세요. 바람? 바람에 대한 수행하면 어떤 수행을 말하냐면은 여기 바람이 창문에서 이렇게 깃발이 펄럭펄럭 거려요 그러면 펄럭펄럭 거리는 거 그거,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펄럭임에 대한, 혹은 머리카락이 막 날려요. 그래서 그 날리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바람의 그 날리는 성질이 이미지가 박혀요 머릿속에. 그래서 눈을 감고서 계속 흔들림 날림 같은 것들을 계속 놓치지 않고 수행하는 게 이게 바람에 관련된 수행이에요.
하여튼 그랬듯이 뭐 색깔 바람 흙 물 해가지고 그런 것들이 경전에 나와 있어요.
그다음에 각각 도처에 죽음에 관련되어진 거, 자애에 관련되어진 거, 부정관에 관련되어진 것들이 도처에 나와있고 그래가지고 붓다고사 스님께서 다 정리해 봤더니 한 40가지가 되더라.
그래서 그 40가지가 어떤 것인가? 여러분들이 제목만 개괄적으로, 아 이게 그 사마타 수행의 전모로구나 정도 이해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애요. 자 40가지가 있는데, 이 40가지는 그 40가지를 말씀드리기 그 이전에 그걸 분류하기 이전에 사마타 수행은 말이에요. 40가지가 스님이 가만히 살펴보니까 딱 둘로 나눠져요. 2가지 성향으로. 그러니까 사마타 수행을 여러분들이 좀 이해하시라는 얘기예요. 사마타 수행은 반은 영상이에요.
이 40가지 주제 중에 그중에 마라나눗사띠 죽음을 거듭거듭 생각하는 이 사수관 이 마라나눗사띠가 들어가잖아요. 그죠. 마라나눗사띠는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은 하여튼 이 40가지 수행을 보니까 한 3분지 2는 다 이미지 영상을 떠올리는 거예요. 색깔 그러면 색깔을 눈으로 보다가 이제 눈을 딱 감으면은, 백색을 보고 있으면 처음에 백색을 딱 봐요. 칠판을 딱 본다면 이게 백색 아니에요. 그죠? 여기에 딱 가만히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은 이제 그럼 나중에 눈을 감아도 백색이 눈에 딱 이렇게 저장이 돼요. 근데 요걸 놓치지 않고 계속 아는 거예요. 백색에 대한 이미지를, 영상이란 말이에요 이게. 주로 백색 흑색 아까 바람 그다음에 쟁반에 있는 물 그다음에 그 한 바가지의 흙 그런 식으로 흙 물 바람 해가지고 그걸 카시나 수행이라고 하는데 그런 게 한 10가지가 있고, 다른 게 있는데,
하여튼간 대부분 3분의 2 정도는 다 이미지 영상을 떠올려가지고 마음을 집중시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완전한 선정 상태를 이루는 거에요. 그래서 언제든지 그 안에 마음 집중해가지고 그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아 이제 숙달되면 그렇게 된단 말이에요.
이렇게 영상을 통해서 하는 대단히 고도의 집중된 사마타 수련이 있고, 나머지는 보면은, 지금 하는 이 마라나눗사띠처럼, 마라나눗사띠 이거는 영상이 아니에요.
여기에 나오는 저기 해골에 관련된 저런 것들을 영상 이미지를 가지고 계속 간직하고서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부정관 할 때 하는 거고.
보통 시체 같은 거 저기 공동묘지에서 경전에 분명히 나와요 그게. 처음에 시체, 썩기 전에 시체, 그다음 부풀은 시체, 벌레 뜯어먹은 시체, 해가지고 열등분으로 나눠 가지고, 완전히 이제 뼈가 다 가루가루가 돼 가지고 다다 흩어지는 공동묘지에는 다양한 형태의 그런 시체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죠. 그래서 그런걸 10등분으로 나눠 가지고 이렇게 부정관할 때 그때는 어떤 죽음에 대한 관념과 이미지를 막 떠올리면서 이렇게 부정관하게 되는데,
하여튼간 이미지를 떠올리는 그런 수행이 있는가 하면은, 그냥 죽음 이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 사진을 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나는 곧 죽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죽음 죽음 이러든지 하여튼 여기에 보면 다양한 죽음에 대한 게송들이 나와요.
아까 지금 제가 나눠드렸던 "나는 끊임없이 늙음에 쫓기고 있네. 이를 저항할 자 아무도 없고 우리는 끊임없이 죽음에 쫓기고 있으며, 이를 저항할 자 아무도 없네. 사랑하는 모든 것들 다 내버려두고 나는 곧 떠나야 하네"라고 하듯이
저런 걸 가지고 마음속에 이렇게 관념이랄까 생각을 하면서 죽음을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는 거예요. 죽음의 모습을 떠올리는 게 아니고. 그러면서 이제 그런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어느 순간 고요해지고 집중이 되어져요. 그랬을 때 바로 통찰 수행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위빳사나라고 하는 그야말로.
그렇게 하는데 하여튼간 이렇게 관념을 생각을 하면서, 자애 같은 것도 여러분들이 영상인가요? 아니면 그거를 그냥 우리 생각에 대한 마음의 어떤 관념 상태인가요? 그게, 자애 관념이에요 관념. 그리고 지금 이 단어라는게 어휘라는게 이미지 영상도 사실은 관념이라고 하는 비슷하게 우리 한국어에서 쓰이긴 쓰이는데 그냥 우리가 사랑스러움 자애 같이기뻐함 나눔 그다음에 죽음 요런 것들은 이제 다 관념이라고 우리가 관념이란 단어를 쓰자고요 우리가. 쓰고 그 외 나머지는 다 영상을 떠올려요. 영상으로써 다가가는 이 저기 사마타 수행은 대단히 그 저기 선정력이 그 단계가 많이 높더라고요. 보니까 보통 뭐 4선정까지 가고 3선정까지 가고 막 그래요. 근데 관념하는 수행을 그렇게 높이 가진 않아요. 아까 죽음에 관련된 것 이것도 초기 선정이라 그래가지고 그러나 하여튼 여러분들은 초기선정이든지 일선정이든지 간에 그런 것 그 부분까지 알 거 없고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걸 가지고 자애관을 한다든지 이런 죽음에 관련된 수행을 하면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가라앉아요. 그러면서 통찰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역할이에요. 이런 것들이. 이제 그 정도로 아시고.
이 40가지는 어떤 것들이 있냐면 간단해요. 사마타 수행의 전부에요 이 40가지가.
근데 40가지 중에서 옛날엔 스승이 1가지를 선택해가지고 제자들한테 이렇게 부처님께서도 그러셨고 그다음에 스승도 제자들에게 권유해서 너는 자애관 해라, 너는 부정관을 해라, 너는 무슨 색깔에 대한 수행을 해라, 라고 그렇게 해가지고 선정력을 키워서 통찰수행으로 이어지도록 그렇게 지도를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해나가는데 보통 40가지에는 이런 것들이 있어요.
10가지가 아까 흙 물 바람도 아까 지수화풍 관련되어진 거하고, 그다음에 색깔 청색 황색 하여튼 백색 그런 거 해가지고 색깔하고, 그다음에 허공에 관련되어진 거하고, 그렇게 해 가지고 이제 그런 카시나 10가지가 있고.
공동묘지에서 시체가 썩어가는 상태에 따라 가지고 그걸 가지고 한꺼번에 단계적으로 다 하는 게 아니고 하나 정해서 완전히 저기 처음에 갓 버려진 시체를 하든지 아니면 또 이제 좀 흩어지는 시체를 하든지 완전히 백골이 된 걸 하든지 이렇게 해가지고 단계를 나눠가지고 하는 그런 부정관하는 게 한 10가지가 있고.
카시나 그 이미 영상 떠올린 거 10가지가 있죠. 시체 공동묘지에 가서 하는 그 10가지, 벌써 그렇게 20가지가 돼요.
그다음에 초보자 여러분 잘 아시는 자비희사 4가지가 있고.
그
다음에 또 왜 저기 좀 어려운 말이지만 무색계 선정이라 그래가지고 공무변처 식무변처 뭐 그런 게 있어요. 어렵지만 색계 선정 말고 무색계 선정 그것도 또 관하는 게 있대요. 무색계 선정 4개도 스님이 가만히 살펴보니까 이미지 영상을 떠올리는 게 있어요. 허공이라고 하는 이미지 영상과 같은 게 있어요.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아니면 두 번째 무색계 선정 두 번째는 식무변처인가 그래가지고 의식이 한없이 펼쳐지는 거, 그거는 이제 관념에 관련된 거고, 거기에도 보면은 관념과 영상이 나눠지더란 말이에요. 하여튼간 그 무색계 선정 4개.
그다음에 자비희사 4개 하니까 벌써 이래저래 해가지고,
거기다가 음식에 관련된 음식에 대한 혐오 1가지.
그다음에 실제적인 몸이 구성되어져 있는 이런 사대에 관련되어진 것(사대분별1)
아까처럼 이런 거는 흙에 관련되어진 거고, 그다음에 출렁이는 거는 물에 관련되어진 거고, 아까 저기 처음에 이미지 영상 떠올리는 거하고 틀려요. 물에 이렇게 보면은 물의 어떤 이미지 아까 혹은 바람 이미지하고 사진하고 틀려요. 여기서는.
실제 이 지수화풍의 어떤 성질을 관념하는 수행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그거하고 음식하고 다해가지고 거기에 30가지가 되고, 나머지가 이제 오늘 할 거 그중에 하나란 말이에요.
아눗사띠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될 건 아까 자애관하고, 그다음에 부정관 정도 하고, 지금 여기 10가지를 얘기할 거예요 스님이. 30가지 했고.
10가지 아눗사띠. 10가지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 중에 이 죽음을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이 있단 말이에요. 10가지는 뭐가 있냐면은 기본적으로 붓다눗사띠 붓다 아눗사띠 부처님에 대한 공덕을 거듭거듭 되새기고 우리가 회상하면서 마음을 집중시키고 신심을 키우는 걸 수행했고, 그다음에 담마눗사띠 담마의 공덕, 그다음 상가의 공덕 여러분 늘 예불하는 게 다 지금 그 아눗사띠 하고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네 번째가 짜가눗사띠 그래가지고 보시공덕에 대한 것, 그다음에 데와눗사띠 천상락을 내가 복을 잘 지어서 천상락에 태어났을 때 어떤 행복 평온함에 대한 그런 걸 가지고 이제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내가 선업 공덕을 짓고 이렇게 수행을 하는 거, 그래서 그 천상락에 대한 데와눗사띠가 있고, 그다음에 나오는 게 바로 이 마라나눗사띠란 말이에요. 그거는 우리가 집중적으로 이따가 해야 될 거고, 그거 말고는 이제 닙바나에 대한 공덕을 마음속으로 떠올리면서 몸과 마음이 조건이 다 끊어지고 정말 완전한 해탈 세계의 어떤 그런 닙바나의 공덕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죠. 아니면 해탈에 대한 걸 마음속으로 다 떠올리면은 정말 마음이 평온해지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도 열심히 수행할 것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이제 닙바나에 대한 공덕이 있고, 그다음에 까야빠띠라고 그래 가지고 몸을 32부문으로 나눠가지고 거 32부문으로 음 이걸 어떻게 돼야 되나, 몸에 대한 몸 신체에 대한 이것도 부정관하고 관련되어진 거예요. 이게 요게 아마 그 요것도 부정관하고 겹치는 부분인데 몸 신체들에 대한 뭐랄까 이런 것에 대한 영상이 돼야 되나. 몸 까야 까야가따사띠라고 그러는데 몸을 쫓아가면서 여기에 대해서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이 있어요.
그게 있고, 그다음에 중요한 거 아까 저 수행자가 얘기했던 아나빠나 아나빠나눗사띠 여러분들이 지금 위빳사나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사마타 수행을 하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지금 호흡에 대한 여러분들 왜 사념처 수행 중에서 왜 호흡에 대한 마음 집중 수행을 하고 있잖아요. 여러분들 그죠. 그게 40개의 사마타 수행 중에 하나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지금은 왜 그것이 여러분들 사마타 수행이 되냐면은 그것이 위빳사나 통찰수행과의 어떤 경계가 어떻게 되냐 하면 말이에요. 지금 이거는 10개의 아눗사띠 10개의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 중의 하나가 죽음에 관한 수행에 들어가고 지금 호흡에 대한 거듭거듭 거기에 대한 생각하는 수행이 들어간다고 했잖아요.
근데 이 호흡이라고 하는 게 여러분들이 이게 왜 사마타에 들어가냐 하면은, 대상을 의도적으로 선택을 하면은 지금 이거 다 여러분들 보세요. 이게 자연적으로 가만히 있는데, 자연적으로 통찰해가지고 하는 수행이 아니잖아요. 이게 의도적으로 대상을 좀 선택하고 있잖아. 그죠. 선택해서 거기다가 마음을 집중하는 거예요. 영상이든지 아니면 어떤 죽음이든지 자비든지. 그런데 이 호흡이라고 하는 것도 마음을 의도적으로 코라고 하는데 혹은 배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 타켓 초점을 맞췄잖아요 그죠? 맞춘 것 자체가 사마타의 마음집중 수행을 하러 가는 거예요 거기로. 수행 주제를 정했단 말이에요. 이 사마타 수행 주제를. 그래가지고 그 접촉하는 부분에서 이것이 끊임없이,
여러분들이 암만 잘해도 이게 완전한 환이 되기 전까지는 자연적인 성품이 드러나야만 여기서 무상한 성품이랄까 그런 자연적 삼법인의 성품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여러분들은 그냥 이 사마타 수행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그 자체가. 그래서 이 호흡에 대해서 여기를 떠나지 않고 거듭거듭 여기에 의식을 두고서 알아차림해나가는 수행 사띠해나가는 수행 요거는 뭐 우리가 이건 지금 이거는 관념하는 수행은 아니죠.
그래서 아나빠나사띠 요 수행 가지고는 예를 들자면 이게 완전한 집중 상태가 되면 사선정까지 들어간다고 주석서에는 설명이 돼 있어요.
죽음 선정 이런 것들은 해가지고 기본 초기 선정밖에 들어가질 못해요. 그러나 이 아나빠나사띠 아나빠나 아눗사띠 호흡에 대해서 거듭거듭 관찰하는 수행 요것만은 되게 깊은 선정까지 들어간다고 거기에 설명이 되어져 있어요. 실제적으로 수행을 해보면 또 그렇게 돼요.
그러나 이게 명칭을 붙이자면 이거는 계정혜 중에서 이게 선정수행에 들어가요. 그러나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집중력이 이어지면서 인제 차츰차츰 자연적으로 성품이 드러나면서 그때부터 위빳사나 수행이 시작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말로 기본적으로 선원에서 위빳사나 수행한다고 그러면 그냥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수행을 하잖아요 그죠.
그런데 그걸 이제 우리가 이름을 결국 최종적인 통찰 단계에 자연적인 성품을 보았을 때를 위빳사나 수행이라고 하고, 사실은 그 이전에 40개의 주제 중에 들어가는 수행 중에 하나에 들어가요 이게.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 아까 저기 이미지로 까시나 그거 10가지 했죠. 그다음에 공동묘지에서 부정관 하는 거 10가지 했죠. 자비희사 4개하고 무색계선정 4개인가 그거하고 음식하고 또 해가지고 또 10가지 했죠. 그렇게 다양한 수행 주제들을 불교에서는 설하고 있어요. 이렇게 있다고, 그래가지고 요 10가지 아눗사띠까지 해가지고 총 40가지라.
그럼 우리 현대사회에서 여러분들은 우리는 수행처에서 선원을 가가지고 그냥 정말 이 호흡에 대한 들숨날숨 이것도 기본적인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요한 사마타 선정 수행의 시작이 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냥 위빳사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호흡을 통해서 무상 고 무아를 본다든지 사성제에 대한 어떤 관념적인 이런 수행을 해나가고 있지만,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일상적으로 우리들이 행해야 할 수행들을 이걸 다 못해요 현대사회에서는.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이 스님이 짚어주고 제가 이 스님이 다른 외국의 스승님한테 배웠던 것들은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들, 특히 남방불교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바로 이게 부정관이나 요런 죽음관, 이걸 너무 깊이있게, 어려운 수행이 절대 아니에요. 요런 수행이라든지 자애관 같은 것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틀림없이 아침저녁 밥 먹듯이 해야 돼요. 밥 먹듯이 여러분들은. 그러니까 늘 그런 인식을 조금 가지고 계시는 게 좋아요.
그렇다면 여러분들 자애관 하는 것들은 조금씩 아시는 분들도 있고 기본적으로 우리가 자애관 자비경도 독송을 하고 하니까 조금 여러분들 들어서 알고 있는데,
죽음관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일까? 죽음에 대한 이 수행은 말이에요.
여기에 이 스님이 간략하게 정리해 놨으니까 요거 딱 들어보면은 예상외로 간단해요. 아주 간단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집에서든지 어디서든지 혼자서도 마음 놓고 하실 수가 있어요. 인제 그렇게 해서 방법을 좀 알려드릴께요. 여기에 적어둔 데로 말이에요.
오늘은 스님이 죽음 얘기하고 사마타 수행 40가지 얘기하고 하니까 좀 무겁고 부담스럽고 어려워요?
이 스님이 지금 짧은 시간 안에 사마타 수행의 전모를 가지고 전체적인 그림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있는 거예요. 언제 이런 기회 아니면 여러분들 언제 공부할 거야 이런 공부를. 이렇게 해놓고 그다음에 인제 여러분들이 꼭 필요한 핵심적인 중요한 것 몇 가지는 여러분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해 나가시란 말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여러분들한테 프린트물을 그렇게 하나씩 그걸 일상적으로 하실 수 있도록, 마라나눗사띠에 대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가장 기본적인 거에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어떻게 수행하는 걸 가르쳐드리고, 여기다 사진까지 붙여놓고 우리가 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오늘 얘기만 한 10여 분만 더 들으면 여러분들은 이 마라나눗사띠를 자연스럽게 부담 없이 아주 힘들지 않게 그것을 해나갈 수가 있어요.
우선 혹시 이제 착오가 없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혹시 여긴 녹음될지도 모르니까,
이 수행은 말이에요. 부정관을 해야 돼요. 부정관은 아수바라 그래가지고 아수바눗사띠라 그래 가지고, 아수바 몸에 대한 부정한 것을, 이것도 아눗사띠에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아수바는 아눗사띠에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이 공동묘지를 수행하는 이런 시체를 가지고 관하는 이 수행들은 그래서 직접 가서 하기도 하고 태국이나 스리랑카에 가면 병원에 가서 시체 해부하는 모습을 직접 봐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그 우리 한국의 테라와다 제 선배 스님들 다 실제적으로 수행하신 분들이에요. 실제 병원에 가가지고 병원하고 절하고 다 이게 네트웍이 다 돼 있어요. 돼 있어가지고 어떤 특정한 날짜에 수술을 하는 날짜 무슨 해부하는 날짜에 스님들이 가서 그걸 관람하는 게 있어요. 실제적으로 수술광경을 봐요.
그러면서 실제적으로 이 육체가 내 육체가 얼마나 이게 집착할 것이 못되고 부정하고 혐오스러운 것인가를 거기서 실질적으로 자기 관념을 통해서 봐요. 그래가지고 그런 이미지를 계속 이미지 영상을 떠올리기도 하고, 실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런 사진을 통해가지고 여러분들이 지금 간접적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이걸. 이렇게 하기도 하고 실제로 요런 모습 제가 선원에서 직접 본 것이란 말이에요. 이걸 가지고 선원에 해골무더기를 쌓아놓고서 이렇게 그걸 가지고 이렇게 직접 보면서 수행하기도 하고 하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해가지고 요런 시체나 아니면 공동묘지에서 수행이나 아니면 이런 해골무더기를 보면서 늘 이거에 대한 내 육신에 대한 깨끗하지 못한 부정한 것 싫어하는 마음을 계속 일으키는 거예요. 그래서 싫어하는 마음 부정한 마음속으로 가면 부정관이 되는 거고, 아수바 수행이라 해서 아수바(asubha), 수바(subha)는 깨끗한 거고, 아(a)는 부정하다는 뜻이니까 깨끗하지 않다는 얘기예요. 그래가지고 이것도 지금 이것을 실제 사람이 시신이 썩어가고 있는 모습이란 말이에요. 이게 한 보름 1달 정도 채 안 된 거예요.
이거는 인도에서 이제 강가에 돈이 없으니까 돈이 많은 부자들은 장작을 충분히 사 가지고 시체를 다 태우는데 가난한 사람은 시체를 태울 장작을 많이 못사요. 그러면 대충 타다 말아요. 혹은 몰래 버려요 몰래. 돈이 없으니 강가에다가. 그리고 떠내려 온게 저거에요. 그래서 우리 수행자들은 저런 것들을 그냥 ‘아이구 역겨워’ 하면서 그렇게 하기보다도 진정한 우리가 숭고한 마음으로 저런 걸 보면서 내 육신에 대한 허망함을 직접적으로 수행을 해요.
이런 수행을 하는데, 이런 것들이 부정하고 깨끗하지 못하고 싫어하는 게 거듭거듭 관해서 계속 그렇게 해서 관념을 하면서 이렇게 영상을 키워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걸 가지고 아수바 수행이라고 하고.
그다음에 이 해골 가지고도 말이에요. 해골 조각보면 해골이 하얗죠 그죠. 백골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거 가지고 백골 가지고도 아까 저기 까시나 10가지 영상 수행을 하게 돼요. 백골 가만히 보고 있으면 거기 흰색이 떠올라요. 흰색의 이미지를 취하는데 여기서 해골이라고 하는 관념과 흰색에 대한 이미지 수행이 동시에 되는 걸로 제가 이 스님이 아마 그렇게 추측이 돼요. 판단이 돼요. 그래가지고 그 흰색에 대한 까시나 수행 겸 그 부정관이랄까 그런 게 동시에 수행되는 것 같아요. 이 스님이 경험하고 예측하기로는 그래요. 제가 깊이 해보진 않았는데.
그렇게 해가지고 해골 가지고도 백색 카시나 오다따 까시나라 그래가지고 백색 까시나가 있어요. 그냥 요거 흰색만 보고서 흰색의 영상을 이미지를 떠올려 가지고 계속해서 그 선정력을 키워나가는 수행이 있는가 하면은, 하얀 백골을 보고서 흰색의 이미지 키워나가는 수행도 있어요. 이런 백골 가지고 부정관을 할 수도 있고 그런 흰색에 대한 까시나 집중수행을 해나갈 수도 있어요.
그다음에 하는 수행이 뭐냐면 바로 이 마라나눗사띠에요. 이걸 보고서 이 이미지를 가지고 영상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게 아니고, 영상을 집어넣으면 또 다른 부정관 쪽으로 가게 되고,
영상을 넣는 게 아니고 여기다가 이제 내 모습을 겹쳐 놓는 거예요. 이렇게 붙여놓고 이 스님이 해골 밑에 앉아 있듯이. 그래서 이 사진을 가만히 봐요. ‘나도 이렇게 되겠지’ 그러면서 이제 죽음에 대한 자기 죽음에 대한 끝 두려움 그런 것들을 자기 마음속에 담아놓아요. ‘나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지금부터 나갈 수행이 뭐냐 하면 여기다 그 영상을 계속 가져가시면 안 돼요 여러분들. 그러지 말고 여기에 대한 죽음 정도에 대한 이거 ‘나도 죽으면 이렇구나’라고 대입 정도 되는 정도만 마음을 딱 가지고,
그러면서 이제 조용히 따로 혼자 앉아서 저는 그렇게 해요. 사진 가만히 보고 나를 이렇게 클로즈업 하고 그러나 조용히 여기 앉아가지고, 혼자 그래서 여기에 죽음을 관하는 그 죽음을 수행하는 게송도 있고 여러 가지가 나와요. 이제 그런 것들 스님이 간략하게, 스님이 이걸 뭐 처음 해보는 법문이 돼가지고 이것도 스님이 지금 정리해가지고 제가 했던 것들을 그냥 여러분들한테 말로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설명이 좀 장황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가장 간략하게나마 마무리를 지어야 될 거 아니에요.
우선 기본적으로 말이에요.
여기 제목을 정했듯이 「두려운 죽음과 가장 고귀한 죽음」 고귀한 죽음 뭐라 그랬어요?
이 세상엔 단 하나의 고귀한 죽음이 있어요.
그걸 빨리어로 하면 사뭇체다마라나(samuccheda maraṇa). 마라나는 죽음이고 사뭇체다 라는 건 결박이 끊어졌다는 얘기예요. 이 나의 몸과 마음을 옭아매기 시작한 결박이 뭐가 있겠어요? 사람이 육신의 죽음은 문제가 아니에요. 여기에 탐심과 분노와 아만 무지 여러 가지 우리가 크게 말하면 10가지 결박이라고 하는데, 윤회하는 이 인간의 몸을 인간의 마음 정신을 결박하고 있는 10가지 번뇌가 있단 말이에요. 그 결박을 다 끊어버리고 마지막 이 몸과 마음이 육신의 정신의 기능이 멈추고 마지막 이제 마지막 죽음에 들어가는 거, 그거를 부처님께서는 빠리닙바나에 드셨다고 했고 한마디로 빠리닙바나예요.
오직 그 하나만이 사뭇체다 마라나 가장 고귀한 죽음이에요. 그 죽음 하나만이 우리는 가야할 길이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몸과 마음이 남김없이 끝나는 죽음, 아라한들이 빠리닙바나에 들은 그 몸과 마음이 윤회의 고통에서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남김없이 끊어진 죽음을 우리는 이 바로 사뭇체다 마라나라고 그래요.
우리는 다음 생에 올 금생에 수행이 부족해서 다음 생에 또 태어나더라도 그래도 언젠가는 이 사뭇체다 마라나 완전한 결박이 끊어진 죽음에 들 수 있도록 그런 원을 세우고 우리는 수행을 해야 돼요. 그런 가장 고귀한 죽음의 하나가 있고.
그다음에 여러분 카니까(khaṇika)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혹시? 순간적인 죽음!
여러분들은 그냥 일반적인 아까 얘기했듯이 늙고 병들어 죽는 거 있잖아요. 세속적인 죽음.
가장 고귀한 죽음하고 가장 두려운 죽음, 우리 이 세속적인 죽음이 가장 두려운 죽음이에요.
그런데 그냥 세속적인 죽음 여러분들이 이해하고 있는 거 말고, 이 수행자가 지혜의 눈이 없으면 카니까 마라나(khaṇika maraṇa)라고 그래가지고 순간적인 죽음을 이해하지 못 해요.
사람은 말이에요. 넓게 보면은 지난 겨울에 우리는 죽었어요. 지금 봄이 됐어요. 또 한 생이 태어나서 지금 또 봄을 살고 있어요. 또 조금 있으면은 이 남산에 꽃피는 호시절이 가면 또 뜨거운 여름철 또 와요. 그러면 약간의 지혜가 있는 분들은 아 나는 지금 이 여름을 또 살고 있구나라고 또 겨울이 오고, 그러면서 뭔가 이렇게 수행자들은 순간순간 뭐랄까 이거를 한 계절이 끝나는데도 자기 생멸 현상을 내가 한 생애가 끝나고 다시 또 태어났다는 걸 이해하게 돼요. 근데 이것이 조금 더 지혜가 생기면 말이에요. 하루로 가요 하루로.
어제 간밤에 말이에요. 잠자는 순간에 내가 아나빠나사띠 수행을 하든 무슨 수행을 하든지 간에 마지막 잠자는 순간 이걸 알아차림이 잘까말까 하다가 순간적으로 싹 인제 알아차림이 사라지면서 이제 잠이 들었단 말이에요. 아침에 순간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림 의식이 깨어나요. 그러면 조금 전에 간밤에 그런 절대 그거하고 지금 아침하고 나는 틀린 거예요. 죽은 삶이었고 그거는 전생이었고 새로운 생이 또 태어났다는 거를.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말하는 거는 개념 관념적인 말로 그렇다는 게 아니고 실제로 목숨이 끊어져서 죽은 것이 다시 새로운 목숨이 태어났단 얘기예요 새로. 그런 걸 실제로 느껴요 그런 거를.
근데 조금 더 나아가면은 말이에요. 이제는 어젯밤하고 오늘 말고, 이제 한 호흡으로 가요 호흡으로. 한 호흡이 3초라고 했죠. 들어오는 밖의 선선한 공기 기운이 쫙 들어와. 그런데 여기에 주의집중과 알아차림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이런 통찰은 안 생겨나요. 근데 들어오고 나가면서 자기 몸과 마음이 그때 숨 들어오기 전에 작용했던 의식 몸과 마음이 결합해서 작용했던 그것이, 그때 숨이 나오고 나서의 나하고 변화랄까 무상이랄까 여기서 그것이 하나의 죽음이고 또 이것이 새로운 태어남이라는 걸 이렇게 자각이랄까 그런 걸 하게 돼요 자각을.
근데 한 호흡 사이에서도 그런 생멸 현상을 본단 말이에요. 근데 이제 실제로 여러분들이 말이에요. 막 이렇게 수행을 하다 보면은 조금 더, 왜 위빳사나라 수행의 단계들이 있잖아요. 그런 단계를 거치든지 안 거치든지 간에, 그러나 어떤 이런 고도로 집중되어진 어느 정도 선정력이 갖추어지고 통찰력이 자꾸 생겨나가다 보면 정말 의식이 말이에요. 순간순간적으로 몸과 마음이 결합해서 여기서 아는 의식들이 사라지고 이런 것들이 순간순간 생멸하는 것들이 보여요. 피부로 절감을 한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이.
그러면서 그때서야 끊임없이 거기에서는 내가 계속 살아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끊임없이 그냥 죽어나가는 것, 죽어서 소멸돼 버리는 것, 그래서 이 카니까라는 거는 순간적이라는 의미인데 순간적인 죽음이죠. 순간적인 죽음. 그건 일반 세속적인 아까 저기 세속적인 죽음 보통의 죽음과는 달라요. 그것을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수행을 했어야만이 알 수 있는데, 그래서 사람이 죽음에는 말이에요. 여러분들 수행을 통해서 그런 지혜도 자꾸 생겨나야 돼요.
끊임없이 우리들이 계속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죽고 태어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최소한 이 순간은 아니더라도 간밤에 죽었다가 새로운 내 생이 다시 또 탄생해가지고 또 이 하루를 살고 있다고 하는 것들을 여러분들은 최소한 그 정도라도 이렇게 늘 마음속에 관념을 하고 사셔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순간적인 죽음들이 있어요. 순간적인 죽음들. 그래서 수행을 통하면 그런 순간적인 죽음도 이해하게 돼요.
그래서 죽음은 크게 3가지로 이렇게 나누는 거예요.
결박이 끊어진 가장 고귀한 죽음 하나가 있고, 순간순간 계속 조건적인 몸과 마음이 계속 순간적으로 여기서 조건지어져서 한번 작용했다가 사라지고 작용했다가 사라지고 계속 그런 것들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 순간적인 죽음이 있고, 그다음에 우리 일상적으로 늙고 병들어 죽은 이런 죽음이 있어요.
근데 이런 죽음들 중에서도 왜 그냥 객사라고 하죠. 자기 복을 다해서 사는 죽음, 시간적인 복을 다해서 죽는 죽음이 하나가 있고, 우리 일상적인 이 세상살이의 죽음이 말이에요. 우리 세속 사람들이 죽음은 그냥 천상락의 복을 다, 우리가 살다 인간의 몸을 받아서 살다가 명대로 다 살다가 죽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은, 어떤 악업에 의해가지고 금방 생전의 악업이든지 아니면 내가 전생에 악업이라든지 해가지고 살생업이라든지 그런 업에 의해 가지고요, 교통사고로 객사를 한다든지 순간적으로 무슨 사고를 당해서 급사한다든지 그런 죽음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죽음들 바탕 위에서 그런 죽음이 있다는 걸 아시고.
여러분들 이제 경전이나 논서에는 어떻게 죽음 수행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걸 한번 제가 읽어볼게요.
"이 마라나눗사띠를 수행하고자 하는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앉아서 마음을 안으로 모은다." 그래서 만약 이런 사진을 봤다면 여기에서 자신과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여기다 대입을 시켜요. 그리고 혹은 그런 게송들을 "나는 늙음에 쫓기고 있네" 게송 간단해요. 특별히 게송이 없어요. 고거 하고 지금 여기에 지금 여기에 지금 이 스님이 부교재를 쓰고 있는 요거 이 붓다의 마음 부처님의 마음길 여기에도 보면 죽음의 마라나눗사띠가 정확하게 들어 있어요 이 안에.
이게 우리 교단 테라와다 예불문 만들 때는 채택은 되지 않았을 거에요. 아마 이게. 내용이 조금 미얀마에서 주로 하던 스타일들인데, 그래서 교단에 공통적으로 사용하기가 조금 그래서 지금 예불문에 나와 있는 것하고 좀 틀릴 거예요. 하여튼간 요거 나와 있는 것도 참고해 보면 거기에 다양한 게송들이 나와요.
그 게송이나 지금 제가 써온 게송이나 고 정도의 게송들을 읽고서 거기에다가 자기 죽음을 가지고 이제 ‘아 나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마음을 좀 뭐랄까 조금 심각하달까 좀 진지하게 고요히 앉아서 짧게는 5분 10분 30분 길게는 몇 시간씩 해요. 이렇게 해가지고 이렇게 수행 해나가는데 보통 가장 간단한 수행은 이래요. 여러분 하나 적으실 분은 적으세요.
보통 뭐라고 나와 있냐면은 이거 빨리어랑 같이 하시면 더 좋아요. 빨리어랑. 근데 조용한 곳에 앉아서 마음이 준비가 됐단 말이에요. 그럼 내가 저런 사진을 봤던지 아니면 하여튼간 내 죽음을 한번 더 생각해 본 다음에 인제 조용한 곳에 앉아가지고
"마라낭 바윗사띠", "마라낭 바윗사띠", 딱 지금 저기 딱 3구절이 나올 텐데 마라낭 바윗사띠 해놓고, "언젠가는 죽는다" 에요 이게.
또 하나가 있어요 그다음에.
"지위띤드리양" "지위띤드리양" 그것은 "목숨이 끊어질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마라낭" "마라낭" "죽음" "죽음" 이에요.
보통 이게 가장 기본적인 문구예요. 간단하다니까요. 한글로만도 다 할 수 있어요.
첫 번째 마라낭 바윗사띠가 "아 언젠간 죽을 것이다. 이 생명이 끝날 것이다." 똑같은 말이에요. 뭐 언젠가 죽을 것이다. 생명이 끝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기가 요 비슷한 말을 만들어도 돼요. 언젠가는 끝나든지 반드시 죽는다든지 그렇게 단어가 바뀌어도 상관없어요. 이 "마라낭 바윗사띠, 마라낭 바윗사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이 생명이 끝날 것이다." 저는 그렇게 해요. 그렇게 하고
또 그다음에 "지위띤드리양 지위띤드리양, 이 목숨eh 반드시 끊어질 것이다. 끊어질 것이다."
또 세 번째 "마라낭 마라낭, 죽음 죽음" 하면서 나의 죽음을 그야말로 아주 실제적으로 한번 떠올려 보는 거예요. 죽은 모습을 떠올리는 게 아니고.
그렇게 해가지고 그냥 한글로만 할 수 있고 빨리어가 완전하게 익숙해지고, 아니면 빨리어만 가지고도 가능해요. 근데 이렇게 섞어서도 가능해요. 요게 간단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간편한 방법이에요. 그래서 요렇게 해가지고 저기 앉아가지고, 5분이고 10분이고 30분이고 하면서 계속 마라낭 마라낭 할 필요 없고 이거 처음에 하다가 중간쯤에선 멈출 수 있어요.
멈추면 자기 죽음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랄까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서, 나의 죽음을 가만히 그런 게송과 더불어서 죽음에 쫓기고 있는 나의 모습, 곧 죽을 나의 모습을 마음을, 저기 죽을 때의 그런 급박한 상황을, 그런 걸 가만히 마음속으로 이렇게 관념적으로 생각하면서 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집중이 생겨나고 어떤 두려운 마음 같은 것들이 좀 생겨나요, 죽음에 대한. 그럼 어떤 마음이 생기냐 하면 ‘아 수행을 해야지’ ‘내가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선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이 생긴단 말이에요. 그때 선정 마음이 보통 초기 선정이라 그래요.
그러나 위빳사나 수행 우리가 통찰 수행을 키워나간다면 최고의 높은 선정을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가장 그런 초기 기본적인 선정에서부터 우리는 이런 통찰 수행으로 진입해서 수행에 들어가는 거란 말이에요.
이제 그렇게 했으니까 여러분들이 만약에 죽음을 생각할 때 하지 말아야 될 게 있어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생각하면 안 된다. 연인이나 부모나 자식 같은 경우, 그러니까 나를 대입을 시키더라도 생각해보세요. 내가 사랑하는 자녀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나도 저렇게 될 것이다. 라고 하면은 잘못된 길로 갈 가능성이 있어요. 너무 사랑과 연민 슬픔 때문에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 자식이나 거기서는 그걸 그런 죽음을 대상으로 하지 말라.
그다음에 미워하는 이도 안 된다. 원수 아유 저 사람 정말로 날 일평생동안 괴롭혔던 사람이 죽으면 아이고 고소하다 그래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다들. 그래서 그런 마음이 생겨날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그다음에 여기에는 뭐라 하냐면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이의 죽음도 생각하면은 두려운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와 있어요. 근데 어찌 됐든지 간에 너무 무덤덤한 거 말고.
그런데 요것도 지혜롭게 생각하면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이런 것들도 여기에 지금 칠판을 붙여놨던 이런 것들은 남의 그림이지만 이런 것들을 나라고 생각해요. 나라고.
여기 죽음의 핵심 포인트는 뭐냐 하면 마라나눗사띠의 핵심포인트는 내 죽음을 거듭거듭 생각하는 거예요. 내 죽음을. 대신에 조금 요런 걸 활용을 하는 거죠 이렇게.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봤다 그러면 부정관을 하면서도 이렇게 죽음관으로 옮겨갈 수도 있어요. 마라나눗사띠로 옮겨갈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공동묘지에 있는 시체를 보면서 여기다 나도 이렇게 되겠지 하면서 여기선 관념 이미지를 가져오면 안되고, 여러분들 병원이나 장례식장에 가잖아요. 스님은 허다하게 가가지고 이렇게 테라와다 축원도 해주고 돌아가신 모습을 무수히 보거든요. 거기서 계속 끊임없는 부정관 수행 이런 마라나눗사띠를 무수히 해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수행자라면은 여러분들 지금 현재 사회 어디 가서 부정관 수행을 해요. 아니에요. 병원에 가면 많이 할 수 있어요. 염 하는데 가서 내 부모도 염하지만 내 부모 친구 이웃 염할 때 거기 경건한 마음으로 좋은 데 가기를, 공덕이 쌓여서 좋은 데 날 수 있기를 기원하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냉정한 마음으로 거기서 부정관해야 돼요. 여러분들은 마라나눗사띠 죽음관해야 돼요.
거기서 ‘나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그러면 삶의 자세가 틀려져요. 그리고 지혜로운 분들은 우리나라 이런 환경에서도 충분히 수행이 가능해요. 이런 사진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이런 것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기본적으로 해나가는 거란 말이에요.
근데 이렇게 아무렇게나 죽음을 당하니, 저절로 죽으니, 부귀호사를 갖추다가 호사를 갖춘 이의 죽음, 하여튼 억만장자가 살다가 죽었다, 대통령이 죽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걸 가지고 나의 죽음으로 환원시켜가지고 그런 걸 수행할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나도 언젠간 죽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죽을 것이다. 반드시 이 생명은 끝난다. 죽음 죽음' 그 정도가 가장 기본적으로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그 마라나눗사띠 할 때 수행이에요.
그렇게 해가지고 여러분들 만약에 이제 마음 집중 좀 잘 되고 하면은, 그 정도 선만, 늘 매시간 하라는 게 아니고 일상적으로 여러분들의 마음이 나태해지고 집중이 안 될 때 이런 수행을 하시란 말이에요. 그렇게 해서 해나가는데,
그래도 여기에 집중이 잘 안된다라고 하면은 이제 요 가르침에서 뭐라고 나와 있냐면 8가지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8가지의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에요. 이것도 거기가 거기니까 그걸 일러드릴 테니까 여러분들이 한번 이해를 해보세요.
제 2단계 지금부터는 죽음을 관하는 8가지 방법.
이것도 붓다고사 스님께서 정리해 놓으신 거예요. 제가 나중에 정리되면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법문자료실에 죽음과 연관돼가지고 정리해가지고 한번 올릴까 생각을 하는데 그럴 여가가 겨를이 될까는 모르겠어요. 근데 8가지 방법이 뭐냐면은, 이건 시간 관계상 합시다.
첫 번째는 아까 그런 식으로 하는 거하고 좀 비슷한데 그거보다 조금 더 확대된 거예요. 앞에서 말한 대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여튼 초기 선정이 이렇게 마음집중이 잘 안 되더라, 그러면은 다음을 좀 확산시켜 나가보란 얘기지.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죽음의 저승사자가 내 앞에 가까이 와서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 저승 사자가 지금 오라줄을 들고 나를 이렇게 묶어 매고 가든지 아니면 그야말로 저승의 사자가 칼날을 들고 내 목을 당장 칠 듯이, 여러분들 그거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쵸.
눈 감고서 정말 저 문 앞에 문만 열면 내가 지금 오늘 이 밥숟가락 먹고 문 앞으로 한 발짝만 나가면 저승사자 마라가 칼을 들고 지금 딱 서 있어요. 이렇게 문 밖에 큰 칼을 들고, 나오면 바로 그냥 죽음의 세계로 데려갈라고.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그걸 가지고 마음속으로 두려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죠. 그렇게 해서 저승사자한테 내 목이 바로 날아가는 모습을, 그런 죽음도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다는 얘기예요. 그게 하나 있고
두 번째는 그다음에 많이 부유하게 살던 사람들, 모든 명예를 다 누렸던 사람이 갑자기 무너져 가지고 죽는 거. 그런 죽음도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어요. 요번에 여러분들 아세요? 그 아이폰 만들었던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가 맞나요? 그분 같은 경우에도 모든 세계의 부를 다 만들고 이 세계에 21세기에 새로 혁명을 일으켰잖아요. 그분이 마지막 남기는 말 한마디가 이 스님은 참 처절하달까 좀 뭐랄까 인간에 대한 비애를 느끼게 하더라고요.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한마디가.
"나는 그래도 이 세상에 뭔가를 좀 남기고 뭔가 남고 싶었습니다."라고. 그래도 뭔가가 이 세상에 대한 선업이든지 뭐든지 간에 무언가로 존재하고 뭔가 남기고 싶고 남아야 되는 집착 같은 것들이 그 마지막 유언 한 구절에서, 인터넷에서 봤는데 무언가를 그래도 하나 다음 세대에 내가 죽어서라도 뭔가가 좋은 것이 남겨지기를 바라는, 그게 사실 남아있는 10가지 결박 중에 하나에 들어가는 하나거든요.
그러나 그걸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애착을 가지면서 무너져요 마지막에. 그랬듯이 다 갖춘 사람들 혹은 대통령도 뛰어내렸잖아요. 인간의 고통이에요 그게. 인간 보편적 고통이란 말이에요 이게. 그러면서 그런 걸 보면서 참 저렇게 다 가지고 있는데도 진시황제도 죽었는데 뭐. 록펠러드 98살에 100살 못 채우고 죽었거든요. 내가 2년만 더 살게 해준다면 내 전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 세계에다가 공고를 했어. 결국은 바로 돌아가셨지. 그래가지고 자기 시신을 영구 냉동보관 했잖아요. 지금도 아마 보관되어 있을 거예요. 돈이 워낙 많으니까. 그래서 어느 날 어느 훗날엔가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 나를 다시 살려라. 그럴 정도로. 그러나 사람은 무너지니까 암만 억만 장자라도 그랬듯이, 그런 죽음도 그 죽음을 내 죽음으로 이렇게 가져올 수가 있다는 얘기예요.
그다음에 이미 죽은 사람과 함께 자기의 죽음도 이렇게, 아까 그것과 비슷한 게 있고, 그다음에 추위와 더위에 조금만 더워도 우리는 열사병에 걸려 죽고 조금만 추워도 죽고 벌레한테 쪼금만 물려도 독충에 물려 죽고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이 몸, 이런 게 있고.
또 하나 또 생각할 게 여러분들 언제 죽을지 아세요? 죽음의 징조를 모른다. 내가 전생의 업으로 혹은 지난 악업으로 인해가지고 교통사고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진 몰라요.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날지 모르고, 이 문 열고 나가다가 이 건물이 다 폭삭 무너져서 죽을지도 몰라요. 사람은 내일을 알 수 없는 게 보통 일반적인 우리들의 죽음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들도 한번 생각해보는 게 방법에 들어가요. 그렇게 했고
그다음에는 하나만 더 합시다. 이런 것도 생각하셔야 돼요.
나는 오늘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경전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 논서에도 그렇고, 주석서에는 어떤 비구가 ‘난 오늘 이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데 오늘 이 남은 하루 마지막 내가 이 마라나눗사띠로서 수행을 해야지. 그래서 이제 통찰력 있는 수행으로 발전시켜서 내가 해탈해야지’ 라고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래서 하루, 하루 아니면은 한나절, 아니면 내가 오늘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 이 법문 마지막에 한 5분 정도 남았단 말이에요. 이 5분 남은 순간밖에, 내가 지금 마지막 밥 1숟갈 뜨고 있는 순간에 10초 15초, 요 마지막 밥 한 숟갈 떠서 입으로 가는 이 순간에 이 절박한 짧은 순간에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러면서 마라나눗사띠를 하라고 이렇게 이런 가르침들을 전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게 있고, 마지막 하나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마지막 하나 여덟 번째가, 살아있는 순간은 극히 짧다고 생각하라. 그래서 어느 정도 짧다고 생각하냐면은 여러분들이나 인생을 사실 살아보니까 짧죠 짧기는. 저기 설악산 밑에 있는 백담사에 계신 오현 스님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저 저물녘에 날고 있는 하루살이 때들은 아침에도 아침에 뜨는 해도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아서 이젠 더 이상 볼 것 없다고 원 없이 오래 살다 간다고 떠났는데, 이놈의 나는 머리 깎고 중이 됐는데도 이제 죽을 때가 다 됐는데도 하나도 산 것 같지가 않아. 만약 이렇다면 내가 천년이 나한테 주어졌다면 생명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우리가 과연 살았다고 하겠는가"
절대 만족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천년을 살아도 부족해요. 그리고 천년 후에는 ‘허이 벌써 언제 이 천년이 다 갔어?’ 그러고 산단 말이에요 여러분들. 똑같애요. 그러나 말이에요. 이렇게 100년 삶도 무상하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는데 지혜로운 자들은 순간순간적인 그 삶이 짧다는 걸 알아요. 순간순간 소멸해 간다는 걸 안단 말이에요.
여러분들 이 수레바퀴 마지막 그림자 밑에는 땅이에요. 땅이 있고 위에 수레바퀴가 있어요. 이렇게 해가지고 굴러가 이것이 여러분들은 나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살아있는 난 언제 순간이냐 하면 요거 요거 요거 딱 순간에 지면에 닿는 순간만 살아져요 여러분들이. 요 순간만 여러분들 뭐하겠어요?
이 수레바퀴에 지금도 잘 굴러가고 있어요. 굴러가고 있는데, 요 접촉한 순간만 이건 아주 큰 미세한 하나의 점에 불과해요. 그 닿는 순간에 뭐가 있냐면 몸과 마음이 연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여기 바퀴가 살짝 0.1미리만 굴러가도 또 뭐가 있냐면, 다음 마음이 이 마음은 죽은 게 아니라 바왕가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버려요 밑으로. 잠자서 죽은 마음이라고 그래요 그걸 가지고. 잠자는 마음이라고도 하고. 그럼 또 다음 마음이 조건을 만나서 몸과 마음이 작용하면 다음 마음이 또 생겨나요. 그래가지고 또 죽어요 그다음에.
계속 이런 죽음들이 삶과 죽음이 계속 끊임없이 쳇바퀴 돌면서 순간 순간 순간 아까 저기 카니까 마라나를 얘기했듯이 순간적 생명이 계속 지고 있다는 건데 여러분들은 그냥 일생도 이 번갯불같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라고 하는 것도 넓게는 아셔야 돼요. 이렇게. 참 인생은 정말 무상하다, 그런 것들을 관념하면서 그렇지 매 순간순간 우리가 지혜로써 이렇게 몸과 마음의 작용이 계속 소멸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여러분들은 인제 조금 차츰차츰 그렇게까지 관념할 수 있는 통찰력과 그런 힘이 좀 생기셔야 돼요.
이렇게 우리는 과거에는 우리가 살아 있었지만 현재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냐 말이에요. 절대 안 그래요 여러분들은. 요 순간만 살아있고 죽었단 말이에요.
앞으로도 여러분들 살 것도 아니고 과거에 그냥 살아왔던 건 맞아요. 어떻게 전생을 살았든지 어제 간밤에 살았든지 간에 작년에 살았든지 간에 살아왔던 건 사실인데, 지금 살고 있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앞으로 살 것도 아니고 그냥 과거에서 살았을 뿐이고, 오로지 지금 한 순간만이 땅에 접촉하는 이 수레바퀴가 굴러가면 땅에 접촉하는 한 순간순간만이 그냥 고 순간만 살아 있을 뿐이에요. 고거 지나가면 다음은 죽고 없는 거야.
근데 그렇게 순간 순간적인 죽음까지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그런 지혜가 생겨나도록 여러분들이 열심히 정진해야 되고, 인생은 그야말로 천년을 산다고 해도 우리는 다 살았다고 만족할 수 없는 무상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아까 지금 얘기했던 것들이 보면 이게 집에서 가만히 곰곰 생각해보면은 대충 그런 것도 생각이 떠오르실 거예요. 그래서 이런 떠오르는 것들을 가지고 이젠 처음에 간단하게 이렇게 "나는 죽을 것이다. 금방 내 목숨 끝날 것이다." 라면서 "마라낭 지위땅"하고 아까 "마라낭 마라낭" 그 정도로 기본적으로 하고 그런 게송 정도 하다가.
좀 더 확대할 거 같으면 아까 저기 우리 스님이 부교재로 주고 있는 요 책 안에도 보면 그런 게송이 많이 나와 있어요. 그 게송도 활용을 하고 그것도 활용을 하고, 그다음에 나중에 법구경을 잘 보세요. 법구경. 지금 몇 시예요. 시간이 6시가 다 됐죠.
오늘 스님이 숙제를 하나 내줄 테니까. 집에 혹시 법구경을 가지고 계신가요? 법구경 있으신 분? 없으신 분? 법구경 이 게송에 보면은 여기에 죽음관에 대한 정확한 수행 근거가 하나 나와요. 내가 게송 번호를 알려드릴 테니까. 서점에 가셔서라도 메모를 하세요. 메모라도. 게송만 알려드릴 테니까 이 4개의 게송 연달아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 사왓디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느 푸줏간 주인 아들한테 이 죽음에 대한 법문을 하세요. 그래서 이 푸줏간하는 분이 말이에요. 이제 고깃간 장사를 하면서가 평생 고기만 먹고 살아요 이 사람은. 고기 아니면 밥을 안 먹어요 이 사람은.
그런데 이제 마지막 보면 하루는 갑자기 다 팔고 고기 한덩이가 남겨졌는데, 내일 고기 새로 들어오고 그래서 오늘 요거 가지고 점심 식사를 딱 할려고 하는데, 인제 푸줏간 주인 그 남자분이 밖에 잠깐 볼일을 보러 잠깐 간 사이에 그 부인 되시는 분이 이걸 팔았다고 그럽니다. 부득이하게 절친한 친구가 와가지고 그냥 부득이하게 지금 내가 절대로 고기가 필요하니까 이걸 팔으라고, 당신 신랑은 이거 잠깐 안 먹어도 되고, 생각하니까 뒤에 또 금방 좋은 물건이 들어오니까 하여튼 막 사정사정을 하니까 그렇지 요거 1덩이 좀 팔면 어떨까 싶어가지고 그걸 팔았어요. 팔았는데 신랑이 와가지고 이제 없네. 난리가 났네. 그랬더니,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풀반찬을 해가지고 밥을 먹었는데 맨날 야들야들한 최고의 육질 얼마나 좋은 걸로 좋은 부위로 골라 먹었겠어요. 여러분들 그 육식 고기 저기 그런 특수한 부위 있잖아.
최고의 그런 부위 먹다가 갑자기 나물 반찬으로 바뀌니까 막 돌 씹는 것처럼 못먹겠대. 그래서 그만 그냥 상을 내동댕이쳐버리고 내 도저히 안 되겠다 해가지고 외양간에 가가지고 그냥 소인가 염소인가 해가지고 그 소 혀를 그걸 그대로 절단을 해가지고 그걸 가지고 섭취를 했어요.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바로 이 급작스러운 죽음을 만난 거예요. 그 얼마 후에 바로 그냥 급사를 해버렸어요. 급사하는데 이제 고통스럽게 아주 고통스럽게 죽죠. 그래 가지고 자기 부인이 그 모습을 보고서 자기 아들을 데리고 이사를 가요. 이제 뭐 푸줏간이니 뭐 다 때려치우고 교육 도시로 가가지고 아들을 교육을 시키면서 이제 그의 아들이 잘 성장해가지고 훌륭한 사람이 됐는데. 그 아들이 있는 그 지역이 불심이 강한 도시라서 거기가 마침 부처님이 계시고 하는 그 사왓티성이었어요.
거기가 기원정사 그 절이니까 당연히 불심이 세죠. 그래서 거기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늘 법문을 듣고 부처님의 재가불자로서 살아가는데 그때 이사 갔던 그 아버지는 죽고 푸줏간 주인은 죽고 그 아들네 손주란 말이에요 여기는. 저기 이사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그 사람이 아들을 낳아가지고, 손주 수집관이 그 고통스럽게 죽은 아비지옥에 떨어져 죽은 그 푸줏간 주인의 손주가 하여튼간 부처님한테 독실한 불자란 말이에요. 그 젊은 사람이.
하여튼간 이사 갔던 어머니도 죽고 하여튼 그 사왓티성에서 금 제련업을 하는데 그 양반이 불심도 없고 할아버지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고 그렇게, 이 불교에 대한 전혀 이해도 없고 그냥 헛사시는 거 보니까 삶에 만족하면서 늘 풍족하게 오욕락에 막 집착하면서 이렇게 사는 걸 보니까 그래도 아버님 삶이 저러면은 우리 옛날 할아버지 삶도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은데 이게 아니지라고 하면서 내가 언제 한번 부처님 법문을 한번 들려드려야겠다. 그러면서 인제 공양청을 해가지고 부처님을 모셔와요. 그래가지고 아버지한테. 그러니까 옛날 푸줏간에 손주가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법문을 듣게 해드려요. 그때 이 4개의 경을,
몇 번 게송이냐면 235번 게송일 거예요.
235에서 35 36 37 38 이게 정확한 이게 담마빠다 법구경 주석서에도 분명히 죽음관에 대한 수행하는 게 분명히 나와 있어요. 부처님께서 사람의 죽음에 당하는 게 얼마나 두려운 것이며 허망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이에요. 그래가지고 그 아버지가 부처님 법문을 듣고 바로 이 마라나눗사띠를 통해가지고 바로 통찰에 의해서 들어가죠. 그래가지고 바로 아나함 다시는 이 세계에 돌아오지 않은 성자의 계위까지 올라가요. 그 주석서에는 그렇게 기록되어져 있어요.
그래서 가장 핵심적인 이 스님이 찾아낸 경전이 마라나눗사띠에 대한 경전의 근거를 찾는다면 바로 이 부분 235번부터 238번까지 게송이에요. 거기에 게송에 나오니까 여러분들은 찾아서 읽어보시고 그걸 가지고 자기 수행 생활에 활용하시라구요. 아시겠죠.
※ 법문을 녹취하고 옮겨적는 과정에서 잘못 이해했거나 오타 등으로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죽음관 수행법_두려운 죽음과 가장 고귀한 죽음_빤냐완따 스님법문_담마스쿨_130426-2
지난주에 다 뵀던 분들 그리고 새로운 분들도 계시고 하네요. 다들 편히 앉으시고, 나는 뭐든지 인식을 안 하면은 의식을 안 하면, 뭐든지 내가 이걸 해야지 혹은 법문 들어야지 수업 준비해야지 하면 어느샌가 몸이 이렇게 대상을 향해서 뭘 할려는 의도 때문에 몸에 긴장이 들어가요. 그래서 몸도 한번 항시 뭘 할 때는 살펴야 돼요. 아 이제부터 빤냐완따 스님 수행 법문 시간이 된 것 같다 하면 ‘아, 그렇지, 들어야지’ 하면서 ...없이 자기 몸을 한번 이렇게 바라봐야 돼요. 그게 수행 시작이에요. ‘잘 들어야지’ 딱 하면 벌써 자기 몸과 마음이 지겹지 않을 거에요. 하여튼 몸을 한번 보고 호흡 한번 바라보고 몸을 편하게 다 내려놓고 몸을 가지고 다 수행해야 돼요 ...
그러면 이 4시간을 앉아서 법문을 들어도 편안해요. 혈액순환이 잘 돼요. 그리고 이 스님이 경험했던 건데 제가 경주 마하보디 선원에 예전에 경주스님께서 외국에 출타하시고 비우셔서 저한테 이렇게 임무를 맡겨놓고 가셨는데. 서울에서 4시간 동안 차를 운전해서 가요. 그렇죠. 서울에서 일 마치고 내려가면은 “스님 피곤하신데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좀 쉬셔야 되는데” 이러는데 그게 아니라 쉬면서 내려가는 거에요.
운전하면서도 피로가 풀려요. 잘만 하면. 좀 뭐랄까 좀 수행적이랄까 마음을 다 저절로 잡아놓고 누가 말 거는 사람이 누가 있나? 차가 지가 스스로 알아서 가는데,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전체적인 알아차림 편안한 알아차림만 가지고, 집중적인 알아차림 하지 않고, 그래서 어느 순간 경주의 마하보디선원 팻말이 딱 보이는데 가면 피로가 다 풀려 있어요. 근데 사람들은 보통 운전을 뭐 4시간에서 5시간씩 하고 그러면 피로가 쌓여져 버리잖아요. 근데 뭐든지 공부도 수행도 다 마찬가지예요. 처음에 초심자들은 잘 안 되니까. 막 기가 쓰여지고 상기가 되고 힘이 들어서 그렇지, 차츰차츰 이제 리듬을 타기 시작하고 거기 한번 한걸음 발걸음 하나 들어가기 시작하면은 걷는 거는, 지혜랄까 이렇게 흐름이 저절로 그 흐름을 타게 돼 있어요. 차츰차츰 그렇게 되는 거고,
오늘 시간을 잘 봅시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제 마음속에서 말이에요. 노트를 1권씩 꺼내야 돼요. 노트를 하나 꺼내가지고 잘 메모를 해주세요. 펜으로 안 적어도 돼요. 대신에 오늘 이 스님이 시간 되는 한, 시간 그렇게 끌진 않고 적어도 40여 분 정도는 걸릴 것 같애요.
여러분들이 반드시 숙지해야 될 불교 수행, 중요한 불교 수행의 전반적인 걸 한번 짚어주고 싶어요.
불교 수행에는 보통 계정혜 그래가지고 기본 일상 도덕적인 일상생활, 그다음에 그것을 통한 마음의 안정, 그다음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선정수행, 그다음에 선정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 통찰 무상에 대한 깨달음 고집멸도 사성제에 대한 깨달음 고통의 진리 무아의 진리 그런 것들로 해가지고 마지막 최종의 정점을 찍잖아요. 그렇게 수행이라는 게.
근데 우리는 보통 위빳사나 수행은 대체적으로 많은 얘기를 많이 해서 알겠는데, 사마타 수행에 대해선 잘 몰라요. 여러분들 사마타 수행 뭐 특별한 거 그런 걸 배우시거나 하신 분들 계세요? 예 어떤 수행을 지도를 받았다든지 어떤 걸 하고 계신가요?
(수행자: 지금만 하는 게 아니고 한동안 집중 했었는데, 아나빠나사띠를 해서 집중돼나가는 그 지점을 관찰하면서 또 집중이 되면 ...)
그렇죠. 수행자처럼, 저분은 그래도 사마타 수행이라는 거를 법문을 듣고 또 하나 한 주제를 선택을 해가지고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의 한 지점에다가 마음을 집중시켜서 거기에서 떠오르는 니밋따라든지 감각이라든지 한 지점을 선택해가지고 하면은 이것도 사마타 수행의 한 부분에 들어가요.
그렇듯이 오늘은 전반적인 거를 과연 우리 부처님께서도 사마타 수행을 통해가지고 완전한 마음선정 가장 최고의 마음집중 상태까지 이루셨고, 그것만으로써는 완전히 해탈할 수 없다는 걸 깨달으시고 그야말로 사성제에 대한 무상 고 무아에 대한 위빳사나라고 하는 삼법인 통찰 수행을 통해가지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됐어요.
근데 이제 우리가 얘기하는 거는 완전한 무상에 대한 통찰 무아 고통에 대한 방법을 우리가 맨날 위빳사나를 가지고 정점을 얘기하고 있지만 부처님께서도 엄청 강조하시는 것이 뭐냐면은 마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다양한 수행법들을 말씀하고 계세요. 그게 부처님 그 이전부터도 있었고, 부처님 당시 때도 계속 개발되어진 것들도 있고,
그래서 이 스님이 한 몇십 분 동안 전반적인 것을 하면, ‘아 이런 것이 사마타 수행이로구나’ 하는 걸 한번 알고, 그다음에 단 한 가지 앞으로 요번 시간에는 그 사마타 수행 중에서 죽음에 관련된 부정관에 관련되어진 걸 집중력으로 할 거에요. 요거는 오늘 여러분들이 짧은 시간이지만 잘 들으면 마스터할 수 있어요. 그거 대단히 중요해요. 그리고 자애관 수행하고.
자애관과 죽음 부정관 양대산맥이에요.
탐심과 분노 욕망 같은 거를 제어할 수 있는 마음을 집중시켜서 이제 통찰 위빳사나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부처님께선 40가지의 그 사마타 수행을 말씀하시는데, 그중에서 양대 산맥이 자애관 수행하고 바로 부정관이나 죽음관이에요. 우리 이 테라와다 불교 가을 세미나 주제가 뭐냐 하면 주제 하나가 부정관이에요. 부정관하고, 저기 죽음관으로 나왔었는데 사수념이라 그래가지고. 근데 오늘 예비 공부라 생각하시고 예비공부가 아니고 스님의 실제 사진과 여러 가지 방법들을 짧은 시간 안에 여러분들 섭렵을 해드릴 테니까. 딱 한번만 들으시고 그걸 참고해가지고 우리 현대사회 일상 속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하시기 바래요.
오늘 제가 이번 시간에 하는 이 죽음에 관한 수행이라든지 다음 주가 될지 다다음 주에 될지 모르겠는데 자애관을 가르쳐드리면은 이거는 선택의 조건이 아니에요. 이건 필수예요. 필수. 그래야만이 일상 속에서 그런 걸 잘 활용해야만이 순조롭게 자기 수행 생활을 키워나갈 수가 있어요. 어렵지 않게 스님이, 스님도 그래서 공부를 해 왔어요. 스님이 지금까지 해온 이 죽음에 관한 수행인데 내가 하여온 배운 방법들하고 그다음에 이제 논서들을 보니까 좀 정리되어진 게 있더란 말이에요. 그걸 정리해가지고 여러분께 들려드릴테니까 오늘 한 가지를 잘 마음속에다가 메모를 해가지고 그렇게 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좀 활용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래요.
여러분들한테 내가 특별한 걸 하나 보여드릴 게 있어요. 자, 여기 한 분 나오셔야 되는데, 프린터물 하고 다음에 내가 오늘 법문할 자료가 자료가 많아요. 법정 스님의 번역서 법구경 그것도 필요하고 그다음에 요 교재도 필요하고 그다음에 이거는 오늘 스님이 법문해 줄 내용이고, 여기다 사진을 좀 붙일 테니까 우리 좀 도와주세요.
여기다가 뭐 이렇게 해가지고 지금 부정관 아수바눗사띠 하고 마라나눗사띠 죽음관에 대해서 이제 원래는 오늘은 죽음관 시도를 할 거예요. 근데 원래 죽음관하고 부정관하고 좀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명백히 틀려요. 하여튼간 죽음관 하면서 부정관을 같이 설명을 할 테니까. 죽음관에 대한 수행 방법 그 중요성 같은 것도 공부하면서 잘, 여기다가 내가 제목을 하나 써야 되니까. 여기다가 붙여봅시다. 여기 하나 붙일까요. 이게 지금 요 사진하고 관련된 거니까...
오늘 제가 제목을 하나 정해 놨어요.
오늘은 죽음과 죽음을 거듭거듭 생각하는 이 마라나눗사띠를 오늘 법문하는데 거기에 관련되어진 거라 여러분들이 좀 이해하기 쉽게 제목을 한번 정해봤어요.
「두려운 죽음과 가장 고귀한 죽음」
이렇게 제목을 해놓고, 이 스님이 잠시 후에 여러분들한테 질문 하나 할 테니까 그동안 생각을 해보세요 짬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죽음이 1가지가 있어요.
단 하나의 죽음만이 고귀하고 나머지는 다 두렵고 고통스러운 죽음이에요.
그리고 내가 여기 지금 사진을 다 붙여놓은 것들은 외국 남방 수행처를 제가 돌아다니면서 찍었던 것들이 있고, 제가 늘 방에 붙여놓고 이렇게 부정관 할 때 혹은 죽음관 할 때 늘 활용하는 사진들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따가 좀 가까이 와가지고 보세요. 보고서 자기 마음속에 담아두고 이런 걸 가지고 이걸 근거로 해가지고 부정관이나 죽음관을 키워나갈 수 있고, 다음 기회가 될 때 여러분들한테 제가 사진 원본을 가지고 있어요. 이거 다 가지고 있진 않은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러분들한테 이걸 수행에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출력해 드릴 수 있어요. 이따가 나오셔서 자세하게 보세요 한번.
이 사진은 스리랑카 저기 남쪽의 숲속 수행처에서 찍은 사진이고, 그리고 여기 어떤 남자와 여자의 두 해골이 안에 안치가 되어져 있고 늘 스님도 공양 하기 전에 하루 한번씩 봐요. 이렇게 공양간 앞마당에 수행처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있고, 그 앞에서 이 스님이 사진 찍었어요. 내 자신이 이 앞에 앉아가지고, 나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늘 하면서, 이 스님은 그걸 쓰는 거예요.
이거 이 한 무더기 해골 무더기는 스리랑카 저 섬에 있는 수행처에서 찍은 건데 이것도 선방 한가운데 놓고 늘, 실제 해골이에요 이거는 인조가 아니에요. 저 밖에 있는 것처럼 인조로 만든 것이 아니고 이거는 인도의 한 슬럼가에서의 어떤 지금 죽은 사람 실제 사람 썩어 가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고. 이런 걸 통해 가지고서도 죽음관 부정관 하기도 하고.
또 이 사진은 이거는 엄마 아빠 애기 같애. 이게 스리랑카가 아니고 태국 저 남쪽 수행처에 가면은 이 왓수안독이라는 수행처에요. 이걸 걸어놓고 여기서 법문도 듣고 여기서 공양도 맨날 밥도 먹고 늘 보면서 이걸 부정관으로 키우기도 하고 죽음관을 할 때 활용하기도 하고요.
이 마지막 사진은 인도 바라나시 사르나타의 그 무슨 강이에요. 거기가 인더스강 말고 갠지스강에 있는 시체가 떠다니는 모습들. 그래서 배 타고 건너가서 좋은 데 가라고 동전 하나 건네주고 사진 찍어 왔던 건데, 이런 걸 가지고 삼아서 자기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뭐랄까 그런 부정관을 하기도 하고 하여튼간 두려움으로써 발심하게 해서 빨리 이렇게 열심히 부처님 법 따라 빨리 내가 죽기 전에 깨달아야지, 정진력을 가지고 해탈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을 내도록 하는 중간으로 이어져 가는데, 하여튼간 기본적인 게 이런 게 있어요.
이런 게 있고, 우리 인생살이 중에 말이에요. 일생을 살면서 가장 큰 문제가 뭘까? 문제가? 인간으로서의 가장 뭐랄까 운명적인 숙명적인 그런 피할 수 없는 문제점, 인간사에 영원한 예술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수행자: 생사입니다.) 그렇죠.
첫 번째 삶과 죽음, 죽음이 먼저에요. 인간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게 피할 수 없는 죽음 죽음에 대한 고통.
또 하나가 있어요. (수행자: 괴로움) 다 괴로움이에요. 다 괴로움에 관련된 건데 부처님께서 딱 그걸 짚어주셨어요. 정확하게.
그게 현대사회에도 모든 예술 문화 역사 인간 정신 문화 사회 한치의 어김없이 적용되는 게 바로 이, 여러분들 보세요. 드라마를 보세요. 드라마를 보면은 다 사랑과 이별, 그다음에 죽음에 관련된 문제에요. 그러니까 인생살이에서 가장 큰 문제거리요 고통거리 2개가 사랑과 이별에 관련된 것, 연인이든지 부모자식 간의 사랑이든지 간에 사랑이 가장 인생살이에 가장 큰 괴로움과 슬픔과 기쁨으로 이렇게 다가오면서 고통을 주는 게 사랑의 문제예요. 모든 예술은 다 여기에 관련되어져 있고 또 두 번째가 죽음에 관련된 문제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고통의 진리를 말씀하실 때 사고팔고(四苦八苦) 말씀하셨잖아요. 처음이 바로 이 사랑의 문제란 말이에요. 애별리고 그 유명한 인간의 고통의 진리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죽음 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아픈가 봐요 그게. 그다음에 마지막이 뭐예요? 그러니까 저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원수와의 만남, 그다음에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그런 괴로움, 그다음에 이 몸과 마음의 이런 오온덩이에 집착하고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다라고 정신적인 괴로움을 4개(四苦)를 얘기하고,
그다음에 나머지 팔고(八苦)에서는 생노(生老) 태어남이 고통이요, 늙음이 고통이요, 병듦의 고통이요, 죽음의 고통이오 라고. 여러분들 오늘 1장 나눠드린 그게 그 죽음관 할 때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문구에요. 스님이 편집해서 하나 만들어 왔으니까, 그거 하나씩 이렇게 허술하게 버리지 마시고 늘 한번씩 읽어보면서, 오늘 죽음관에 관련된 수행법을 배우고서 나중에 활용을 해보시길 바래요. 그래서 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부처님께서 정확하게 애증에 관련되어진 문제와 마지막 생로병사에서 죽음으로 끝나는 이 죽음의 문제를 가지고 부처님께서 정확하게 고통의 진리 속에서 갈파하셨어요 그거를. 그렇다 보니까 부처님께서도 태어나셔가지고, 마야부인 생모시죠. 생모께서 돌아가신 슬픔 충격 아마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애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고통 고민 두려움 그런 것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걸 가지고 이제 마음속에서 담아두었던 것들이 결국 출가를 하게 되고 세속에서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이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결국은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거 아니에요. 결국은 6년 만에 모든 고리를 다 끊어버리고 결국은 죽음의 문제 사랑의 문제 그 죽음의 문제에 종지부를 찍게 돼요. 그러나 사람은 죽음의 문제를 그냥 해결되는 게 아니고 태어나면 죽고 죽으면 또 태어나기 때문에 태어나면 죽고 태어나면 죽고 우리가 죽고 죽고 죽고 계속 거듭되는 그 죽음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려요.
그래서 그것을 이름하여 이 세상에는 단 1가지의 고귀한 죽음이 있어요.
죽음은 크게 3가지로 나눠요. 3가지로 나누는데 자 밑에서부터 하나씩 내려갈게요.
일반적으로 이건 논서에, 붓다고사 스님께서 청정도론에 정리를 해놓으셨더라구요. 붓다고사 스님 대단히 위대하신 분이에요. 제가 요번에도 위숫디막가를 다시 한번 보면서 빨리어 3장에 나오는 모든 수행법들 다 정리해가지고, 그러니까 빨리어 3장을 보고서 우리는 전체적인 걸 딱 일목요연하게 볼 수는 없어요. 근데 붓다고사 스님께서 빨리어 삼장에 나오는 이 사마타 수행을 딱 40가지를 정해요. 다 정리해 보니까 한 40가지가 돼. 그래가지고 다 일목요연하게 해가지고 정리해 놨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제 죽음에 대한 명상이에요. 그 설명이 잘 되어 있더란 말이에요.
거기에 죽음은 보통 3가지가 있다고 얘기를 해요.
자 보통 여러분들 문자로 하나 써볼까요? 죽음에는 말이에요. 보통 일반 세속적인 죽음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냥 우리가 병들고 죽는 거 그거를 마라나라고, 죽음을 마라나라고 여러분들 단어 하나는 외워두셔야 돼요. 마라나(maraṇa) 죽음. 마라나 아눗사띠(maraṇa anussati) 이 죽음에 대한 수행을 가지고 마라나 아눗사띠라 그래요. 그래서 마라나는 죽음이요, 아누는 거듭거듭 계속 따라가면서 죽음을 거듭거듭거듭 사띠 하는 거예요.
떠오른 죽음에 대한 그런 두려운 마음이 있잖아요. 계속 이 순간순간 잊지 않는 것, 순간순간 그 떠오르는 이미지나 영상이나 혹은 그 떠오른 죽음에 대한 그런 마음들을 순간순간 계속 놓치지 않고 이어가는 걸 가지고 아누(anu)라고 그래요. 그걸 거듭 계속 지속시키는 걸 가지고 아누(anu)라고 하고, 그걸 가지고 놓치지 않고 잊지 않고 계속 그걸 이어가는 걸 가지고 사띠(sati)라고 해요. 그래서 마라나눗사띠(maraṇānussati) 그래서 죽음을 거듭 죽음에 대해서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 거듭거듭 관념하는 수행, 고 정도로 이렇게 풀이가 돼요.
이제 그런 수행이 있는데, 왜 이런 수행이 이렇게 사마타 수행 중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을 해드릴게요.
자 이 사마타 수행에는 경전에는 말이에요. 지금 여러 가지 뭐 영상에 대해서 이렇게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 아까 저기 불자님이 말씀하신 호흡에 대해서 집중하는 거, 호흡의 한 지점에 어떤 감각에 집중하는 혹은 호흡에 집중하다가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을 때 그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 혹은 물 불 바람 하얀 흰색,
여러분들 바람 아세요. 바람? 바람에 대한 수행하면 어떤 수행을 말하냐면은 여기 바람이 창문에서 이렇게 깃발이 펄럭펄럭 거려요 그러면 펄럭펄럭 거리는 거 그거,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펄럭임에 대한, 혹은 머리카락이 막 날려요. 그래서 그 날리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바람의 그 날리는 성질이 이미지가 박혀요 머릿속에. 그래서 눈을 감고서 계속 흔들림 날림 같은 것들을 계속 놓치지 않고 수행하는 게 이게 바람에 관련된 수행이에요.
하여튼 그랬듯이 뭐 색깔 바람 흙 물 해가지고 그런 것들이 경전에 나와 있어요.
그다음에 각각 도처에 죽음에 관련되어진 거, 자애에 관련되어진 거, 부정관에 관련되어진 것들이 도처에 나와있고 그래가지고 붓다고사 스님께서 다 정리해 봤더니 한 40가지가 되더라.
그래서 그 40가지가 어떤 것인가? 여러분들이 제목만 개괄적으로, 아 이게 그 사마타 수행의 전모로구나 정도 이해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애요. 자 40가지가 있는데, 이 40가지는 그 40가지를 말씀드리기 그 이전에 그걸 분류하기 이전에 사마타 수행은 말이에요. 40가지가 스님이 가만히 살펴보니까 딱 둘로 나눠져요. 2가지 성향으로. 그러니까 사마타 수행을 여러분들이 좀 이해하시라는 얘기예요. 사마타 수행은 반은 영상이에요.
이 40가지 주제 중에 그중에 마라나눗사띠 죽음을 거듭거듭 생각하는 이 사수관 이 마라나눗사띠가 들어가잖아요. 그죠. 마라나눗사띠는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은 하여튼 이 40가지 수행을 보니까 한 3분지 2는 다 이미지 영상을 떠올리는 거예요. 색깔 그러면 색깔을 눈으로 보다가 이제 눈을 딱 감으면은, 백색을 보고 있으면 처음에 백색을 딱 봐요. 칠판을 딱 본다면 이게 백색 아니에요. 그죠? 여기에 딱 가만히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은 이제 그럼 나중에 눈을 감아도 백색이 눈에 딱 이렇게 저장이 돼요. 근데 요걸 놓치지 않고 계속 아는 거예요. 백색에 대한 이미지를, 영상이란 말이에요 이게. 주로 백색 흑색 아까 바람 그다음에 쟁반에 있는 물 그다음에 그 한 바가지의 흙 그런 식으로 흙 물 바람 해가지고 그걸 카시나 수행이라고 하는데 그런 게 한 10가지가 있고, 다른 게 있는데,
하여튼간 대부분 3분의 2 정도는 다 이미지 영상을 떠올려가지고 마음을 집중시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완전한 선정 상태를 이루는 거에요. 그래서 언제든지 그 안에 마음 집중해가지고 그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아 이제 숙달되면 그렇게 된단 말이에요.
이렇게 영상을 통해서 하는 대단히 고도의 집중된 사마타 수련이 있고, 나머지는 보면은, 지금 하는 이 마라나눗사띠처럼, 마라나눗사띠 이거는 영상이 아니에요.
여기에 나오는 저기 해골에 관련된 저런 것들을 영상 이미지를 가지고 계속 간직하고서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부정관 할 때 하는 거고.
보통 시체 같은 거 저기 공동묘지에서 경전에 분명히 나와요 그게. 처음에 시체, 썩기 전에 시체, 그다음 부풀은 시체, 벌레 뜯어먹은 시체, 해가지고 열등분으로 나눠 가지고, 완전히 이제 뼈가 다 가루가루가 돼 가지고 다다 흩어지는 공동묘지에는 다양한 형태의 그런 시체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죠. 그래서 그런걸 10등분으로 나눠 가지고 이렇게 부정관할 때 그때는 어떤 죽음에 대한 관념과 이미지를 막 떠올리면서 이렇게 부정관하게 되는데,
하여튼간 이미지를 떠올리는 그런 수행이 있는가 하면은, 그냥 죽음 이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 사진을 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나는 곧 죽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죽음 죽음 이러든지 하여튼 여기에 보면 다양한 죽음에 대한 게송들이 나와요.
아까 지금 제가 나눠드렸던 "나는 끊임없이 늙음에 쫓기고 있네. 이를 저항할 자 아무도 없고 우리는 끊임없이 죽음에 쫓기고 있으며, 이를 저항할 자 아무도 없네. 사랑하는 모든 것들 다 내버려두고 나는 곧 떠나야 하네"라고 하듯이
저런 걸 가지고 마음속에 이렇게 관념이랄까 생각을 하면서 죽음을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는 거예요. 죽음의 모습을 떠올리는 게 아니고. 그러면서 이제 그런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어느 순간 고요해지고 집중이 되어져요. 그랬을 때 바로 통찰 수행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위빳사나라고 하는 그야말로.
그렇게 하는데 하여튼간 이렇게 관념을 생각을 하면서, 자애 같은 것도 여러분들이 영상인가요? 아니면 그거를 그냥 우리 생각에 대한 마음의 어떤 관념 상태인가요? 그게, 자애 관념이에요 관념. 그리고 지금 이 단어라는게 어휘라는게 이미지 영상도 사실은 관념이라고 하는 비슷하게 우리 한국어에서 쓰이긴 쓰이는데 그냥 우리가 사랑스러움 자애 같이기뻐함 나눔 그다음에 죽음 요런 것들은 이제 다 관념이라고 우리가 관념이란 단어를 쓰자고요 우리가. 쓰고 그 외 나머지는 다 영상을 떠올려요. 영상으로써 다가가는 이 저기 사마타 수행은 대단히 그 저기 선정력이 그 단계가 많이 높더라고요. 보니까 보통 뭐 4선정까지 가고 3선정까지 가고 막 그래요. 근데 관념하는 수행을 그렇게 높이 가진 않아요. 아까 죽음에 관련된 것 이것도 초기 선정이라 그래가지고 그러나 하여튼 여러분들은 초기선정이든지 일선정이든지 간에 그런 것 그 부분까지 알 거 없고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걸 가지고 자애관을 한다든지 이런 죽음에 관련된 수행을 하면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가라앉아요. 그러면서 통찰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역할이에요. 이런 것들이. 이제 그 정도로 아시고.
이 40가지는 어떤 것들이 있냐면 간단해요. 사마타 수행의 전부에요 이 40가지가.
근데 40가지 중에서 옛날엔 스승이 1가지를 선택해가지고 제자들한테 이렇게 부처님께서도 그러셨고 그다음에 스승도 제자들에게 권유해서 너는 자애관 해라, 너는 부정관을 해라, 너는 무슨 색깔에 대한 수행을 해라, 라고 그렇게 해가지고 선정력을 키워서 통찰수행으로 이어지도록 그렇게 지도를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해나가는데 보통 40가지에는 이런 것들이 있어요.
10가지가 아까 흙 물 바람도 아까 지수화풍 관련되어진 거하고, 그다음에 색깔 청색 황색 하여튼 백색 그런 거 해가지고 색깔하고, 그다음에 허공에 관련되어진 거하고, 그렇게 해 가지고 이제 그런 카시나 10가지가 있고.
공동묘지에서 시체가 썩어가는 상태에 따라 가지고 그걸 가지고 한꺼번에 단계적으로 다 하는 게 아니고 하나 정해서 완전히 저기 처음에 갓 버려진 시체를 하든지 아니면 또 이제 좀 흩어지는 시체를 하든지 완전히 백골이 된 걸 하든지 이렇게 해가지고 단계를 나눠가지고 하는 그런 부정관하는 게 한 10가지가 있고.
카시나 그 이미 영상 떠올린 거 10가지가 있죠. 시체 공동묘지에 가서 하는 그 10가지, 벌써 그렇게 20가지가 돼요.
그다음에 초보자 여러분 잘 아시는 자비희사 4가지가 있고.
그
다음에 또 왜 저기 좀 어려운 말이지만 무색계 선정이라 그래가지고 공무변처 식무변처 뭐 그런 게 있어요. 어렵지만 색계 선정 말고 무색계 선정 그것도 또 관하는 게 있대요. 무색계 선정 4개도 스님이 가만히 살펴보니까 이미지 영상을 떠올리는 게 있어요. 허공이라고 하는 이미지 영상과 같은 게 있어요.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아니면 두 번째 무색계 선정 두 번째는 식무변처인가 그래가지고 의식이 한없이 펼쳐지는 거, 그거는 이제 관념에 관련된 거고, 거기에도 보면은 관념과 영상이 나눠지더란 말이에요. 하여튼간 그 무색계 선정 4개.
그다음에 자비희사 4개 하니까 벌써 이래저래 해가지고,
거기다가 음식에 관련된 음식에 대한 혐오 1가지.
그다음에 실제적인 몸이 구성되어져 있는 이런 사대에 관련되어진 것(사대분별1)
아까처럼 이런 거는 흙에 관련되어진 거고, 그다음에 출렁이는 거는 물에 관련되어진 거고, 아까 저기 처음에 이미지 영상 떠올리는 거하고 틀려요. 물에 이렇게 보면은 물의 어떤 이미지 아까 혹은 바람 이미지하고 사진하고 틀려요. 여기서는.
실제 이 지수화풍의 어떤 성질을 관념하는 수행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그거하고 음식하고 다해가지고 거기에 30가지가 되고, 나머지가 이제 오늘 할 거 그중에 하나란 말이에요.
아눗사띠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기본적으로 해야 될 건 아까 자애관하고, 그다음에 부정관 정도 하고, 지금 여기 10가지를 얘기할 거예요 스님이. 30가지 했고.
10가지 아눗사띠. 10가지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 중에 이 죽음을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이 있단 말이에요. 10가지는 뭐가 있냐면은 기본적으로 붓다눗사띠 붓다 아눗사띠 부처님에 대한 공덕을 거듭거듭 되새기고 우리가 회상하면서 마음을 집중시키고 신심을 키우는 걸 수행했고, 그다음에 담마눗사띠 담마의 공덕, 그다음 상가의 공덕 여러분 늘 예불하는 게 다 지금 그 아눗사띠 하고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네 번째가 짜가눗사띠 그래가지고 보시공덕에 대한 것, 그다음에 데와눗사띠 천상락을 내가 복을 잘 지어서 천상락에 태어났을 때 어떤 행복 평온함에 대한 그런 걸 가지고 이제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내가 선업 공덕을 짓고 이렇게 수행을 하는 거, 그래서 그 천상락에 대한 데와눗사띠가 있고, 그다음에 나오는 게 바로 이 마라나눗사띠란 말이에요. 그거는 우리가 집중적으로 이따가 해야 될 거고, 그거 말고는 이제 닙바나에 대한 공덕을 마음속으로 떠올리면서 몸과 마음이 조건이 다 끊어지고 정말 완전한 해탈 세계의 어떤 그런 닙바나의 공덕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죠. 아니면 해탈에 대한 걸 마음속으로 다 떠올리면은 정말 마음이 평온해지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도 열심히 수행할 것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이제 닙바나에 대한 공덕이 있고, 그다음에 까야빠띠라고 그래 가지고 몸을 32부문으로 나눠가지고 거 32부문으로 음 이걸 어떻게 돼야 되나, 몸에 대한 몸 신체에 대한 이것도 부정관하고 관련되어진 거예요. 이게 요게 아마 그 요것도 부정관하고 겹치는 부분인데 몸 신체들에 대한 뭐랄까 이런 것에 대한 영상이 돼야 되나. 몸 까야 까야가따사띠라고 그러는데 몸을 쫓아가면서 여기에 대해서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이 있어요.
그게 있고, 그다음에 중요한 거 아까 저 수행자가 얘기했던 아나빠나 아나빠나눗사띠 여러분들이 지금 위빳사나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사마타 수행을 하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지금 호흡에 대한 여러분들 왜 사념처 수행 중에서 왜 호흡에 대한 마음 집중 수행을 하고 있잖아요. 여러분들 그죠. 그게 40개의 사마타 수행 중에 하나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지금은 왜 그것이 여러분들 사마타 수행이 되냐면은 그것이 위빳사나 통찰수행과의 어떤 경계가 어떻게 되냐 하면 말이에요. 지금 이거는 10개의 아눗사띠 10개의 거듭거듭 생각하는 수행 중의 하나가 죽음에 관한 수행에 들어가고 지금 호흡에 대한 거듭거듭 거기에 대한 생각하는 수행이 들어간다고 했잖아요.
근데 이 호흡이라고 하는 게 여러분들이 이게 왜 사마타에 들어가냐 하면은, 대상을 의도적으로 선택을 하면은 지금 이거 다 여러분들 보세요. 이게 자연적으로 가만히 있는데, 자연적으로 통찰해가지고 하는 수행이 아니잖아요. 이게 의도적으로 대상을 좀 선택하고 있잖아. 그죠. 선택해서 거기다가 마음을 집중하는 거예요. 영상이든지 아니면 어떤 죽음이든지 자비든지. 그런데 이 호흡이라고 하는 것도 마음을 의도적으로 코라고 하는데 혹은 배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 타켓 초점을 맞췄잖아요 그죠? 맞춘 것 자체가 사마타의 마음집중 수행을 하러 가는 거예요 거기로. 수행 주제를 정했단 말이에요. 이 사마타 수행 주제를. 그래가지고 그 접촉하는 부분에서 이것이 끊임없이,
여러분들이 암만 잘해도 이게 완전한 환이 되기 전까지는 자연적인 성품이 드러나야만 여기서 무상한 성품이랄까 그런 자연적 삼법인의 성품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여러분들은 그냥 이 사마타 수행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그 자체가. 그래서 이 호흡에 대해서 여기를 떠나지 않고 거듭거듭 여기에 의식을 두고서 알아차림해나가는 수행 사띠해나가는 수행 요거는 뭐 우리가 이건 지금 이거는 관념하는 수행은 아니죠.
그래서 아나빠나사띠 요 수행 가지고는 예를 들자면 이게 완전한 집중 상태가 되면 사선정까지 들어간다고 주석서에는 설명이 돼 있어요.
죽음 선정 이런 것들은 해가지고 기본 초기 선정밖에 들어가질 못해요. 그러나 이 아나빠나사띠 아나빠나 아눗사띠 호흡에 대해서 거듭거듭 관찰하는 수행 요것만은 되게 깊은 선정까지 들어간다고 거기에 설명이 되어져 있어요. 실제적으로 수행을 해보면 또 그렇게 돼요.
그러나 이게 명칭을 붙이자면 이거는 계정혜 중에서 이게 선정수행에 들어가요. 그러나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집중력이 이어지면서 인제 차츰차츰 자연적으로 성품이 드러나면서 그때부터 위빳사나 수행이 시작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말로 기본적으로 선원에서 위빳사나 수행한다고 그러면 그냥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수행을 하잖아요 그죠.
그런데 그걸 이제 우리가 이름을 결국 최종적인 통찰 단계에 자연적인 성품을 보았을 때를 위빳사나 수행이라고 하고, 사실은 그 이전에 40개의 주제 중에 들어가는 수행 중에 하나에 들어가요 이게.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 아까 저기 이미지로 까시나 그거 10가지 했죠. 그다음에 공동묘지에서 부정관 하는 거 10가지 했죠. 자비희사 4개하고 무색계선정 4개인가 그거하고 음식하고 또 해가지고 또 10가지 했죠. 그렇게 다양한 수행 주제들을 불교에서는 설하고 있어요. 이렇게 있다고, 그래가지고 요 10가지 아눗사띠까지 해가지고 총 40가지라.
그럼 우리 현대사회에서 여러분들은 우리는 수행처에서 선원을 가가지고 그냥 정말 이 호흡에 대한 들숨날숨 이것도 기본적인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요한 사마타 선정 수행의 시작이 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냥 위빳사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호흡을 통해서 무상 고 무아를 본다든지 사성제에 대한 어떤 관념적인 이런 수행을 해나가고 있지만,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일상적으로 우리들이 행해야 할 수행들을 이걸 다 못해요 현대사회에서는.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이 스님이 짚어주고 제가 이 스님이 다른 외국의 스승님한테 배웠던 것들은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들, 특히 남방불교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바로 이게 부정관이나 요런 죽음관, 이걸 너무 깊이있게, 어려운 수행이 절대 아니에요. 요런 수행이라든지 자애관 같은 것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틀림없이 아침저녁 밥 먹듯이 해야 돼요. 밥 먹듯이 여러분들은. 그러니까 늘 그런 인식을 조금 가지고 계시는 게 좋아요.
그렇다면 여러분들 자애관 하는 것들은 조금씩 아시는 분들도 있고 기본적으로 우리가 자애관 자비경도 독송을 하고 하니까 조금 여러분들 들어서 알고 있는데,
죽음관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일까? 죽음에 대한 이 수행은 말이에요.
여기에 이 스님이 간략하게 정리해 놨으니까 요거 딱 들어보면은 예상외로 간단해요. 아주 간단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집에서든지 어디서든지 혼자서도 마음 놓고 하실 수가 있어요. 인제 그렇게 해서 방법을 좀 알려드릴께요. 여기에 적어둔 데로 말이에요.
오늘은 스님이 죽음 얘기하고 사마타 수행 40가지 얘기하고 하니까 좀 무겁고 부담스럽고 어려워요?
이 스님이 지금 짧은 시간 안에 사마타 수행의 전모를 가지고 전체적인 그림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있는 거예요. 언제 이런 기회 아니면 여러분들 언제 공부할 거야 이런 공부를. 이렇게 해놓고 그다음에 인제 여러분들이 꼭 필요한 핵심적인 중요한 것 몇 가지는 여러분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해 나가시란 말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여러분들한테 프린트물을 그렇게 하나씩 그걸 일상적으로 하실 수 있도록, 마라나눗사띠에 대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가장 기본적인 거에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어떻게 수행하는 걸 가르쳐드리고, 여기다 사진까지 붙여놓고 우리가 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오늘 얘기만 한 10여 분만 더 들으면 여러분들은 이 마라나눗사띠를 자연스럽게 부담 없이 아주 힘들지 않게 그것을 해나갈 수가 있어요.
우선 혹시 이제 착오가 없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혹시 여긴 녹음될지도 모르니까,
이 수행은 말이에요. 부정관을 해야 돼요. 부정관은 아수바라 그래가지고 아수바눗사띠라 그래 가지고, 아수바 몸에 대한 부정한 것을, 이것도 아눗사띠에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아수바는 아눗사띠에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이 공동묘지를 수행하는 이런 시체를 가지고 관하는 이 수행들은 그래서 직접 가서 하기도 하고 태국이나 스리랑카에 가면 병원에 가서 시체 해부하는 모습을 직접 봐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그 우리 한국의 테라와다 제 선배 스님들 다 실제적으로 수행하신 분들이에요. 실제 병원에 가가지고 병원하고 절하고 다 이게 네트웍이 다 돼 있어요. 돼 있어가지고 어떤 특정한 날짜에 수술을 하는 날짜 무슨 해부하는 날짜에 스님들이 가서 그걸 관람하는 게 있어요. 실제적으로 수술광경을 봐요.
그러면서 실제적으로 이 육체가 내 육체가 얼마나 이게 집착할 것이 못되고 부정하고 혐오스러운 것인가를 거기서 실질적으로 자기 관념을 통해서 봐요. 그래가지고 그런 이미지를 계속 이미지 영상을 떠올리기도 하고, 실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런 사진을 통해가지고 여러분들이 지금 간접적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이걸. 이렇게 하기도 하고 실제로 요런 모습 제가 선원에서 직접 본 것이란 말이에요. 이걸 가지고 선원에 해골무더기를 쌓아놓고서 이렇게 그걸 가지고 이렇게 직접 보면서 수행하기도 하고 하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해가지고 요런 시체나 아니면 공동묘지에서 수행이나 아니면 이런 해골무더기를 보면서 늘 이거에 대한 내 육신에 대한 깨끗하지 못한 부정한 것 싫어하는 마음을 계속 일으키는 거예요. 그래서 싫어하는 마음 부정한 마음속으로 가면 부정관이 되는 거고, 아수바 수행이라 해서 아수바(asubha), 수바(subha)는 깨끗한 거고, 아(a)는 부정하다는 뜻이니까 깨끗하지 않다는 얘기예요. 그래가지고 이것도 지금 이것을 실제 사람이 시신이 썩어가고 있는 모습이란 말이에요. 이게 한 보름 1달 정도 채 안 된 거예요.
이거는 인도에서 이제 강가에 돈이 없으니까 돈이 많은 부자들은 장작을 충분히 사 가지고 시체를 다 태우는데 가난한 사람은 시체를 태울 장작을 많이 못사요. 그러면 대충 타다 말아요. 혹은 몰래 버려요 몰래. 돈이 없으니 강가에다가. 그리고 떠내려 온게 저거에요. 그래서 우리 수행자들은 저런 것들을 그냥 ‘아이구 역겨워’ 하면서 그렇게 하기보다도 진정한 우리가 숭고한 마음으로 저런 걸 보면서 내 육신에 대한 허망함을 직접적으로 수행을 해요.
이런 수행을 하는데, 이런 것들이 부정하고 깨끗하지 못하고 싫어하는 게 거듭거듭 관해서 계속 그렇게 해서 관념을 하면서 이렇게 영상을 키워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걸 가지고 아수바 수행이라고 하고.
그다음에 이 해골 가지고도 말이에요. 해골 조각보면 해골이 하얗죠 그죠. 백골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거 가지고 백골 가지고도 아까 저기 까시나 10가지 영상 수행을 하게 돼요. 백골 가만히 보고 있으면 거기 흰색이 떠올라요. 흰색의 이미지를 취하는데 여기서 해골이라고 하는 관념과 흰색에 대한 이미지 수행이 동시에 되는 걸로 제가 이 스님이 아마 그렇게 추측이 돼요. 판단이 돼요. 그래가지고 그 흰색에 대한 까시나 수행 겸 그 부정관이랄까 그런 게 동시에 수행되는 것 같아요. 이 스님이 경험하고 예측하기로는 그래요. 제가 깊이 해보진 않았는데.
그렇게 해가지고 해골 가지고도 백색 카시나 오다따 까시나라 그래가지고 백색 까시나가 있어요. 그냥 요거 흰색만 보고서 흰색의 영상을 이미지를 떠올려 가지고 계속해서 그 선정력을 키워나가는 수행이 있는가 하면은, 하얀 백골을 보고서 흰색의 이미지 키워나가는 수행도 있어요. 이런 백골 가지고 부정관을 할 수도 있고 그런 흰색에 대한 까시나 집중수행을 해나갈 수도 있어요.
그다음에 하는 수행이 뭐냐면 바로 이 마라나눗사띠에요. 이걸 보고서 이 이미지를 가지고 영상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게 아니고, 영상을 집어넣으면 또 다른 부정관 쪽으로 가게 되고,
영상을 넣는 게 아니고 여기다가 이제 내 모습을 겹쳐 놓는 거예요. 이렇게 붙여놓고 이 스님이 해골 밑에 앉아 있듯이. 그래서 이 사진을 가만히 봐요. ‘나도 이렇게 되겠지’ 그러면서 이제 죽음에 대한 자기 죽음에 대한 끝 두려움 그런 것들을 자기 마음속에 담아놓아요. ‘나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지금부터 나갈 수행이 뭐냐 하면 여기다 그 영상을 계속 가져가시면 안 돼요 여러분들. 그러지 말고 여기에 대한 죽음 정도에 대한 이거 ‘나도 죽으면 이렇구나’라고 대입 정도 되는 정도만 마음을 딱 가지고,
그러면서 이제 조용히 따로 혼자 앉아서 저는 그렇게 해요. 사진 가만히 보고 나를 이렇게 클로즈업 하고 그러나 조용히 여기 앉아가지고, 혼자 그래서 여기에 죽음을 관하는 그 죽음을 수행하는 게송도 있고 여러 가지가 나와요. 이제 그런 것들 스님이 간략하게, 스님이 이걸 뭐 처음 해보는 법문이 돼가지고 이것도 스님이 지금 정리해가지고 제가 했던 것들을 그냥 여러분들한테 말로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설명이 좀 장황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가장 간략하게나마 마무리를 지어야 될 거 아니에요.
우선 기본적으로 말이에요.
여기 제목을 정했듯이 「두려운 죽음과 가장 고귀한 죽음」 고귀한 죽음 뭐라 그랬어요?
이 세상엔 단 하나의 고귀한 죽음이 있어요.
그걸 빨리어로 하면 사뭇체다마라나(samuccheda maraṇa). 마라나는 죽음이고 사뭇체다 라는 건 결박이 끊어졌다는 얘기예요. 이 나의 몸과 마음을 옭아매기 시작한 결박이 뭐가 있겠어요? 사람이 육신의 죽음은 문제가 아니에요. 여기에 탐심과 분노와 아만 무지 여러 가지 우리가 크게 말하면 10가지 결박이라고 하는데, 윤회하는 이 인간의 몸을 인간의 마음 정신을 결박하고 있는 10가지 번뇌가 있단 말이에요. 그 결박을 다 끊어버리고 마지막 이 몸과 마음이 육신의 정신의 기능이 멈추고 마지막 이제 마지막 죽음에 들어가는 거, 그거를 부처님께서는 빠리닙바나에 드셨다고 했고 한마디로 빠리닙바나예요.
오직 그 하나만이 사뭇체다 마라나 가장 고귀한 죽음이에요. 그 죽음 하나만이 우리는 가야할 길이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몸과 마음이 남김없이 끝나는 죽음, 아라한들이 빠리닙바나에 들은 그 몸과 마음이 윤회의 고통에서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남김없이 끊어진 죽음을 우리는 이 바로 사뭇체다 마라나라고 그래요.
우리는 다음 생에 올 금생에 수행이 부족해서 다음 생에 또 태어나더라도 그래도 언젠가는 이 사뭇체다 마라나 완전한 결박이 끊어진 죽음에 들 수 있도록 그런 원을 세우고 우리는 수행을 해야 돼요. 그런 가장 고귀한 죽음의 하나가 있고.
그다음에 여러분 카니까(khaṇika)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혹시? 순간적인 죽음!
여러분들은 그냥 일반적인 아까 얘기했듯이 늙고 병들어 죽는 거 있잖아요. 세속적인 죽음.
가장 고귀한 죽음하고 가장 두려운 죽음, 우리 이 세속적인 죽음이 가장 두려운 죽음이에요.
그런데 그냥 세속적인 죽음 여러분들이 이해하고 있는 거 말고, 이 수행자가 지혜의 눈이 없으면 카니까 마라나(khaṇika maraṇa)라고 그래가지고 순간적인 죽음을 이해하지 못 해요.
사람은 말이에요. 넓게 보면은 지난 겨울에 우리는 죽었어요. 지금 봄이 됐어요. 또 한 생이 태어나서 지금 또 봄을 살고 있어요. 또 조금 있으면은 이 남산에 꽃피는 호시절이 가면 또 뜨거운 여름철 또 와요. 그러면 약간의 지혜가 있는 분들은 아 나는 지금 이 여름을 또 살고 있구나라고 또 겨울이 오고, 그러면서 뭔가 이렇게 수행자들은 순간순간 뭐랄까 이거를 한 계절이 끝나는데도 자기 생멸 현상을 내가 한 생애가 끝나고 다시 또 태어났다는 걸 이해하게 돼요. 근데 이것이 조금 더 지혜가 생기면 말이에요. 하루로 가요 하루로.
어제 간밤에 말이에요. 잠자는 순간에 내가 아나빠나사띠 수행을 하든 무슨 수행을 하든지 간에 마지막 잠자는 순간 이걸 알아차림이 잘까말까 하다가 순간적으로 싹 인제 알아차림이 사라지면서 이제 잠이 들었단 말이에요. 아침에 순간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림 의식이 깨어나요. 그러면 조금 전에 간밤에 그런 절대 그거하고 지금 아침하고 나는 틀린 거예요. 죽은 삶이었고 그거는 전생이었고 새로운 생이 또 태어났다는 거를.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말하는 거는 개념 관념적인 말로 그렇다는 게 아니고 실제로 목숨이 끊어져서 죽은 것이 다시 새로운 목숨이 태어났단 얘기예요 새로. 그런 걸 실제로 느껴요 그런 거를.
근데 조금 더 나아가면은 말이에요. 이제는 어젯밤하고 오늘 말고, 이제 한 호흡으로 가요 호흡으로. 한 호흡이 3초라고 했죠. 들어오는 밖의 선선한 공기 기운이 쫙 들어와. 그런데 여기에 주의집중과 알아차림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이런 통찰은 안 생겨나요. 근데 들어오고 나가면서 자기 몸과 마음이 그때 숨 들어오기 전에 작용했던 의식 몸과 마음이 결합해서 작용했던 그것이, 그때 숨이 나오고 나서의 나하고 변화랄까 무상이랄까 여기서 그것이 하나의 죽음이고 또 이것이 새로운 태어남이라는 걸 이렇게 자각이랄까 그런 걸 하게 돼요 자각을.
근데 한 호흡 사이에서도 그런 생멸 현상을 본단 말이에요. 근데 이제 실제로 여러분들이 말이에요. 막 이렇게 수행을 하다 보면은 조금 더, 왜 위빳사나라 수행의 단계들이 있잖아요. 그런 단계를 거치든지 안 거치든지 간에, 그러나 어떤 이런 고도로 집중되어진 어느 정도 선정력이 갖추어지고 통찰력이 자꾸 생겨나가다 보면 정말 의식이 말이에요. 순간순간적으로 몸과 마음이 결합해서 여기서 아는 의식들이 사라지고 이런 것들이 순간순간 생멸하는 것들이 보여요. 피부로 절감을 한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이.
그러면서 그때서야 끊임없이 거기에서는 내가 계속 살아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끊임없이 그냥 죽어나가는 것, 죽어서 소멸돼 버리는 것, 그래서 이 카니까라는 거는 순간적이라는 의미인데 순간적인 죽음이죠. 순간적인 죽음. 그건 일반 세속적인 아까 저기 세속적인 죽음 보통의 죽음과는 달라요. 그것을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수행을 했어야만이 알 수 있는데, 그래서 사람이 죽음에는 말이에요. 여러분들 수행을 통해서 그런 지혜도 자꾸 생겨나야 돼요.
끊임없이 우리들이 계속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죽고 태어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최소한 이 순간은 아니더라도 간밤에 죽었다가 새로운 내 생이 다시 또 탄생해가지고 또 이 하루를 살고 있다고 하는 것들을 여러분들은 최소한 그 정도라도 이렇게 늘 마음속에 관념을 하고 사셔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순간적인 죽음들이 있어요. 순간적인 죽음들. 그래서 수행을 통하면 그런 순간적인 죽음도 이해하게 돼요.
그래서 죽음은 크게 3가지로 이렇게 나누는 거예요.
결박이 끊어진 가장 고귀한 죽음 하나가 있고, 순간순간 계속 조건적인 몸과 마음이 계속 순간적으로 여기서 조건지어져서 한번 작용했다가 사라지고 작용했다가 사라지고 계속 그런 것들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 순간적인 죽음이 있고, 그다음에 우리 일상적으로 늙고 병들어 죽은 이런 죽음이 있어요.
근데 이런 죽음들 중에서도 왜 그냥 객사라고 하죠. 자기 복을 다해서 사는 죽음, 시간적인 복을 다해서 죽는 죽음이 하나가 있고, 우리 일상적인 이 세상살이의 죽음이 말이에요. 우리 세속 사람들이 죽음은 그냥 천상락의 복을 다, 우리가 살다 인간의 몸을 받아서 살다가 명대로 다 살다가 죽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은, 어떤 악업에 의해가지고 금방 생전의 악업이든지 아니면 내가 전생에 악업이라든지 해가지고 살생업이라든지 그런 업에 의해 가지고요, 교통사고로 객사를 한다든지 순간적으로 무슨 사고를 당해서 급사한다든지 그런 죽음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죽음들 바탕 위에서 그런 죽음이 있다는 걸 아시고.
여러분들 이제 경전이나 논서에는 어떻게 죽음 수행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걸 한번 제가 읽어볼게요.
"이 마라나눗사띠를 수행하고자 하는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앉아서 마음을 안으로 모은다." 그래서 만약 이런 사진을 봤다면 여기에서 자신과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여기다 대입을 시켜요. 그리고 혹은 그런 게송들을 "나는 늙음에 쫓기고 있네" 게송 간단해요. 특별히 게송이 없어요. 고거 하고 지금 여기에 지금 여기에 지금 이 스님이 부교재를 쓰고 있는 요거 이 붓다의 마음 부처님의 마음길 여기에도 보면 죽음의 마라나눗사띠가 정확하게 들어 있어요 이 안에.
이게 우리 교단 테라와다 예불문 만들 때는 채택은 되지 않았을 거에요. 아마 이게. 내용이 조금 미얀마에서 주로 하던 스타일들인데, 그래서 교단에 공통적으로 사용하기가 조금 그래서 지금 예불문에 나와 있는 것하고 좀 틀릴 거예요. 하여튼간 요거 나와 있는 것도 참고해 보면 거기에 다양한 게송들이 나와요.
그 게송이나 지금 제가 써온 게송이나 고 정도의 게송들을 읽고서 거기에다가 자기 죽음을 가지고 이제 ‘아 나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마음을 좀 뭐랄까 조금 심각하달까 좀 진지하게 고요히 앉아서 짧게는 5분 10분 30분 길게는 몇 시간씩 해요. 이렇게 해가지고 이렇게 수행 해나가는데 보통 가장 간단한 수행은 이래요. 여러분 하나 적으실 분은 적으세요.
보통 뭐라고 나와 있냐면은 이거 빨리어랑 같이 하시면 더 좋아요. 빨리어랑. 근데 조용한 곳에 앉아서 마음이 준비가 됐단 말이에요. 그럼 내가 저런 사진을 봤던지 아니면 하여튼간 내 죽음을 한번 더 생각해 본 다음에 인제 조용한 곳에 앉아가지고
"마라낭 바윗사띠", "마라낭 바윗사띠", 딱 지금 저기 딱 3구절이 나올 텐데 마라낭 바윗사띠 해놓고, "언젠가는 죽는다" 에요 이게.
또 하나가 있어요 그다음에.
"지위띤드리양" "지위띤드리양" 그것은 "목숨이 끊어질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마라낭" "마라낭" "죽음" "죽음" 이에요.
보통 이게 가장 기본적인 문구예요. 간단하다니까요. 한글로만도 다 할 수 있어요.
첫 번째 마라낭 바윗사띠가 "아 언젠간 죽을 것이다. 이 생명이 끝날 것이다." 똑같은 말이에요. 뭐 언젠가 죽을 것이다. 생명이 끝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기가 요 비슷한 말을 만들어도 돼요. 언젠가는 끝나든지 반드시 죽는다든지 그렇게 단어가 바뀌어도 상관없어요. 이 "마라낭 바윗사띠, 마라낭 바윗사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이 생명이 끝날 것이다." 저는 그렇게 해요. 그렇게 하고
또 그다음에 "지위띤드리양 지위띤드리양, 이 목숨eh 반드시 끊어질 것이다. 끊어질 것이다."
또 세 번째 "마라낭 마라낭, 죽음 죽음" 하면서 나의 죽음을 그야말로 아주 실제적으로 한번 떠올려 보는 거예요. 죽은 모습을 떠올리는 게 아니고.
그렇게 해가지고 그냥 한글로만 할 수 있고 빨리어가 완전하게 익숙해지고, 아니면 빨리어만 가지고도 가능해요. 근데 이렇게 섞어서도 가능해요. 요게 간단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간편한 방법이에요. 그래서 요렇게 해가지고 저기 앉아가지고, 5분이고 10분이고 30분이고 하면서 계속 마라낭 마라낭 할 필요 없고 이거 처음에 하다가 중간쯤에선 멈출 수 있어요.
멈추면 자기 죽음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랄까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서, 나의 죽음을 가만히 그런 게송과 더불어서 죽음에 쫓기고 있는 나의 모습, 곧 죽을 나의 모습을 마음을, 저기 죽을 때의 그런 급박한 상황을, 그런 걸 가만히 마음속으로 이렇게 관념적으로 생각하면서 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집중이 생겨나고 어떤 두려운 마음 같은 것들이 좀 생겨나요, 죽음에 대한. 그럼 어떤 마음이 생기냐 하면 ‘아 수행을 해야지’ ‘내가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선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이 생긴단 말이에요. 그때 선정 마음이 보통 초기 선정이라 그래요.
그러나 위빳사나 수행 우리가 통찰 수행을 키워나간다면 최고의 높은 선정을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가장 그런 초기 기본적인 선정에서부터 우리는 이런 통찰 수행으로 진입해서 수행에 들어가는 거란 말이에요.
이제 그렇게 했으니까 여러분들이 만약에 죽음을 생각할 때 하지 말아야 될 게 있어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생각하면 안 된다. 연인이나 부모나 자식 같은 경우, 그러니까 나를 대입을 시키더라도 생각해보세요. 내가 사랑하는 자녀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나도 저렇게 될 것이다. 라고 하면은 잘못된 길로 갈 가능성이 있어요. 너무 사랑과 연민 슬픔 때문에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 자식이나 거기서는 그걸 그런 죽음을 대상으로 하지 말라.
그다음에 미워하는 이도 안 된다. 원수 아유 저 사람 정말로 날 일평생동안 괴롭혔던 사람이 죽으면 아이고 고소하다 그래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다들. 그래서 그런 마음이 생겨날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그다음에 여기에는 뭐라 하냐면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이의 죽음도 생각하면은 두려운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와 있어요. 근데 어찌 됐든지 간에 너무 무덤덤한 거 말고.
그런데 요것도 지혜롭게 생각하면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이런 것들도 여기에 지금 칠판을 붙여놨던 이런 것들은 남의 그림이지만 이런 것들을 나라고 생각해요. 나라고.
여기 죽음의 핵심 포인트는 뭐냐 하면 마라나눗사띠의 핵심포인트는 내 죽음을 거듭거듭 생각하는 거예요. 내 죽음을. 대신에 조금 요런 걸 활용을 하는 거죠 이렇게.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봤다 그러면 부정관을 하면서도 이렇게 죽음관으로 옮겨갈 수도 있어요. 마라나눗사띠로 옮겨갈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공동묘지에 있는 시체를 보면서 여기다 나도 이렇게 되겠지 하면서 여기선 관념 이미지를 가져오면 안되고, 여러분들 병원이나 장례식장에 가잖아요. 스님은 허다하게 가가지고 이렇게 테라와다 축원도 해주고 돌아가신 모습을 무수히 보거든요. 거기서 계속 끊임없는 부정관 수행 이런 마라나눗사띠를 무수히 해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수행자라면은 여러분들 지금 현재 사회 어디 가서 부정관 수행을 해요. 아니에요. 병원에 가면 많이 할 수 있어요. 염 하는데 가서 내 부모도 염하지만 내 부모 친구 이웃 염할 때 거기 경건한 마음으로 좋은 데 가기를, 공덕이 쌓여서 좋은 데 날 수 있기를 기원하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냉정한 마음으로 거기서 부정관해야 돼요. 여러분들은 마라나눗사띠 죽음관해야 돼요.
거기서 ‘나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그러면 삶의 자세가 틀려져요. 그리고 지혜로운 분들은 우리나라 이런 환경에서도 충분히 수행이 가능해요. 이런 사진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이런 것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기본적으로 해나가는 거란 말이에요.
근데 이렇게 아무렇게나 죽음을 당하니, 저절로 죽으니, 부귀호사를 갖추다가 호사를 갖춘 이의 죽음, 하여튼 억만장자가 살다가 죽었다, 대통령이 죽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걸 가지고 나의 죽음으로 환원시켜가지고 그런 걸 수행할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나도 언젠간 죽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죽을 것이다. 반드시 이 생명은 끝난다. 죽음 죽음' 그 정도가 가장 기본적으로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그 마라나눗사띠 할 때 수행이에요.
그렇게 해가지고 여러분들 만약에 이제 마음 집중 좀 잘 되고 하면은, 그 정도 선만, 늘 매시간 하라는 게 아니고 일상적으로 여러분들의 마음이 나태해지고 집중이 안 될 때 이런 수행을 하시란 말이에요. 그렇게 해서 해나가는데,
그래도 여기에 집중이 잘 안된다라고 하면은 이제 요 가르침에서 뭐라고 나와 있냐면 8가지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8가지의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에요. 이것도 거기가 거기니까 그걸 일러드릴 테니까 여러분들이 한번 이해를 해보세요.
제 2단계 지금부터는 죽음을 관하는 8가지 방법.
이것도 붓다고사 스님께서 정리해 놓으신 거예요. 제가 나중에 정리되면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법문자료실에 죽음과 연관돼가지고 정리해가지고 한번 올릴까 생각을 하는데 그럴 여가가 겨를이 될까는 모르겠어요. 근데 8가지 방법이 뭐냐면은, 이건 시간 관계상 합시다.
첫 번째는 아까 그런 식으로 하는 거하고 좀 비슷한데 그거보다 조금 더 확대된 거예요. 앞에서 말한 대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여튼 초기 선정이 이렇게 마음집중이 잘 안 되더라, 그러면은 다음을 좀 확산시켜 나가보란 얘기지.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죽음의 저승사자가 내 앞에 가까이 와서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 저승 사자가 지금 오라줄을 들고 나를 이렇게 묶어 매고 가든지 아니면 그야말로 저승의 사자가 칼날을 들고 내 목을 당장 칠 듯이, 여러분들 그거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쵸.
눈 감고서 정말 저 문 앞에 문만 열면 내가 지금 오늘 이 밥숟가락 먹고 문 앞으로 한 발짝만 나가면 저승사자 마라가 칼을 들고 지금 딱 서 있어요. 이렇게 문 밖에 큰 칼을 들고, 나오면 바로 그냥 죽음의 세계로 데려갈라고.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그걸 가지고 마음속으로 두려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죠. 그렇게 해서 저승사자한테 내 목이 바로 날아가는 모습을, 그런 죽음도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다는 얘기예요. 그게 하나 있고
두 번째는 그다음에 많이 부유하게 살던 사람들, 모든 명예를 다 누렸던 사람이 갑자기 무너져 가지고 죽는 거. 그런 죽음도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어요. 요번에 여러분들 아세요? 그 아이폰 만들었던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가 맞나요? 그분 같은 경우에도 모든 세계의 부를 다 만들고 이 세계에 21세기에 새로 혁명을 일으켰잖아요. 그분이 마지막 남기는 말 한마디가 이 스님은 참 처절하달까 좀 뭐랄까 인간에 대한 비애를 느끼게 하더라고요.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한마디가.
"나는 그래도 이 세상에 뭔가를 좀 남기고 뭔가 남고 싶었습니다."라고. 그래도 뭔가가 이 세상에 대한 선업이든지 뭐든지 간에 무언가로 존재하고 뭔가 남기고 싶고 남아야 되는 집착 같은 것들이 그 마지막 유언 한 구절에서, 인터넷에서 봤는데 무언가를 그래도 하나 다음 세대에 내가 죽어서라도 뭔가가 좋은 것이 남겨지기를 바라는, 그게 사실 남아있는 10가지 결박 중에 하나에 들어가는 하나거든요.
그러나 그걸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애착을 가지면서 무너져요 마지막에. 그랬듯이 다 갖춘 사람들 혹은 대통령도 뛰어내렸잖아요. 인간의 고통이에요 그게. 인간 보편적 고통이란 말이에요 이게. 그러면서 그런 걸 보면서 참 저렇게 다 가지고 있는데도 진시황제도 죽었는데 뭐. 록펠러드 98살에 100살 못 채우고 죽었거든요. 내가 2년만 더 살게 해준다면 내 전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 세계에다가 공고를 했어. 결국은 바로 돌아가셨지. 그래가지고 자기 시신을 영구 냉동보관 했잖아요. 지금도 아마 보관되어 있을 거예요. 돈이 워낙 많으니까. 그래서 어느 날 어느 훗날엔가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 나를 다시 살려라. 그럴 정도로. 그러나 사람은 무너지니까 암만 억만 장자라도 그랬듯이, 그런 죽음도 그 죽음을 내 죽음으로 이렇게 가져올 수가 있다는 얘기예요.
그다음에 이미 죽은 사람과 함께 자기의 죽음도 이렇게, 아까 그것과 비슷한 게 있고, 그다음에 추위와 더위에 조금만 더워도 우리는 열사병에 걸려 죽고 조금만 추워도 죽고 벌레한테 쪼금만 물려도 독충에 물려 죽고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이 몸, 이런 게 있고.
또 하나 또 생각할 게 여러분들 언제 죽을지 아세요? 죽음의 징조를 모른다. 내가 전생의 업으로 혹은 지난 악업으로 인해가지고 교통사고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진 몰라요.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날지 모르고, 이 문 열고 나가다가 이 건물이 다 폭삭 무너져서 죽을지도 몰라요. 사람은 내일을 알 수 없는 게 보통 일반적인 우리들의 죽음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들도 한번 생각해보는 게 방법에 들어가요. 그렇게 했고
그다음에는 하나만 더 합시다. 이런 것도 생각하셔야 돼요.
나는 오늘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경전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 논서에도 그렇고, 주석서에는 어떤 비구가 ‘난 오늘 이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데 오늘 이 남은 하루 마지막 내가 이 마라나눗사띠로서 수행을 해야지. 그래서 이제 통찰력 있는 수행으로 발전시켜서 내가 해탈해야지’ 라고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래서 하루, 하루 아니면은 한나절, 아니면 내가 오늘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 이 법문 마지막에 한 5분 정도 남았단 말이에요. 이 5분 남은 순간밖에, 내가 지금 마지막 밥 1숟갈 뜨고 있는 순간에 10초 15초, 요 마지막 밥 한 숟갈 떠서 입으로 가는 이 순간에 이 절박한 짧은 순간에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러면서 마라나눗사띠를 하라고 이렇게 이런 가르침들을 전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게 있고, 마지막 하나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마지막 하나 여덟 번째가, 살아있는 순간은 극히 짧다고 생각하라. 그래서 어느 정도 짧다고 생각하냐면은 여러분들이나 인생을 사실 살아보니까 짧죠 짧기는. 저기 설악산 밑에 있는 백담사에 계신 오현 스님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저 저물녘에 날고 있는 하루살이 때들은 아침에도 아침에 뜨는 해도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아서 이젠 더 이상 볼 것 없다고 원 없이 오래 살다 간다고 떠났는데, 이놈의 나는 머리 깎고 중이 됐는데도 이제 죽을 때가 다 됐는데도 하나도 산 것 같지가 않아. 만약 이렇다면 내가 천년이 나한테 주어졌다면 생명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우리가 과연 살았다고 하겠는가"
절대 만족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천년을 살아도 부족해요. 그리고 천년 후에는 ‘허이 벌써 언제 이 천년이 다 갔어?’ 그러고 산단 말이에요 여러분들. 똑같애요. 그러나 말이에요. 이렇게 100년 삶도 무상하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는데 지혜로운 자들은 순간순간적인 그 삶이 짧다는 걸 알아요. 순간순간 소멸해 간다는 걸 안단 말이에요.
여러분들 이 수레바퀴 마지막 그림자 밑에는 땅이에요. 땅이 있고 위에 수레바퀴가 있어요. 이렇게 해가지고 굴러가 이것이 여러분들은 나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살아있는 난 언제 순간이냐 하면 요거 요거 요거 딱 순간에 지면에 닿는 순간만 살아져요 여러분들이. 요 순간만 여러분들 뭐하겠어요?
이 수레바퀴에 지금도 잘 굴러가고 있어요. 굴러가고 있는데, 요 접촉한 순간만 이건 아주 큰 미세한 하나의 점에 불과해요. 그 닿는 순간에 뭐가 있냐면 몸과 마음이 연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여기 바퀴가 살짝 0.1미리만 굴러가도 또 뭐가 있냐면, 다음 마음이 이 마음은 죽은 게 아니라 바왕가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버려요 밑으로. 잠자서 죽은 마음이라고 그래요 그걸 가지고. 잠자는 마음이라고도 하고. 그럼 또 다음 마음이 조건을 만나서 몸과 마음이 작용하면 다음 마음이 또 생겨나요. 그래가지고 또 죽어요 그다음에.
계속 이런 죽음들이 삶과 죽음이 계속 끊임없이 쳇바퀴 돌면서 순간 순간 순간 아까 저기 카니까 마라나를 얘기했듯이 순간적 생명이 계속 지고 있다는 건데 여러분들은 그냥 일생도 이 번갯불같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라고 하는 것도 넓게는 아셔야 돼요. 이렇게. 참 인생은 정말 무상하다, 그런 것들을 관념하면서 그렇지 매 순간순간 우리가 지혜로써 이렇게 몸과 마음의 작용이 계속 소멸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여러분들은 인제 조금 차츰차츰 그렇게까지 관념할 수 있는 통찰력과 그런 힘이 좀 생기셔야 돼요.
이렇게 우리는 과거에는 우리가 살아 있었지만 현재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냐 말이에요. 절대 안 그래요 여러분들은. 요 순간만 살아있고 죽었단 말이에요.
앞으로도 여러분들 살 것도 아니고 과거에 그냥 살아왔던 건 맞아요. 어떻게 전생을 살았든지 어제 간밤에 살았든지 간에 작년에 살았든지 간에 살아왔던 건 사실인데, 지금 살고 있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앞으로 살 것도 아니고 그냥 과거에서 살았을 뿐이고, 오로지 지금 한 순간만이 땅에 접촉하는 이 수레바퀴가 굴러가면 땅에 접촉하는 한 순간순간만이 그냥 고 순간만 살아 있을 뿐이에요. 고거 지나가면 다음은 죽고 없는 거야.
근데 그렇게 순간 순간적인 죽음까지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그런 지혜가 생겨나도록 여러분들이 열심히 정진해야 되고, 인생은 그야말로 천년을 산다고 해도 우리는 다 살았다고 만족할 수 없는 무상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아까 지금 얘기했던 것들이 보면 이게 집에서 가만히 곰곰 생각해보면은 대충 그런 것도 생각이 떠오르실 거예요. 그래서 이런 떠오르는 것들을 가지고 이젠 처음에 간단하게 이렇게 "나는 죽을 것이다. 금방 내 목숨 끝날 것이다." 라면서 "마라낭 지위땅"하고 아까 "마라낭 마라낭" 그 정도로 기본적으로 하고 그런 게송 정도 하다가.
좀 더 확대할 거 같으면 아까 저기 우리 스님이 부교재로 주고 있는 요 책 안에도 보면 그런 게송이 많이 나와 있어요. 그 게송도 활용을 하고 그것도 활용을 하고, 그다음에 나중에 법구경을 잘 보세요. 법구경. 지금 몇 시예요. 시간이 6시가 다 됐죠.
오늘 스님이 숙제를 하나 내줄 테니까. 집에 혹시 법구경을 가지고 계신가요? 법구경 있으신 분? 없으신 분? 법구경 이 게송에 보면은 여기에 죽음관에 대한 정확한 수행 근거가 하나 나와요. 내가 게송 번호를 알려드릴 테니까. 서점에 가셔서라도 메모를 하세요. 메모라도. 게송만 알려드릴 테니까 이 4개의 게송 연달아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 사왓디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느 푸줏간 주인 아들한테 이 죽음에 대한 법문을 하세요. 그래서 이 푸줏간하는 분이 말이에요. 이제 고깃간 장사를 하면서가 평생 고기만 먹고 살아요 이 사람은. 고기 아니면 밥을 안 먹어요 이 사람은.
그런데 이제 마지막 보면 하루는 갑자기 다 팔고 고기 한덩이가 남겨졌는데, 내일 고기 새로 들어오고 그래서 오늘 요거 가지고 점심 식사를 딱 할려고 하는데, 인제 푸줏간 주인 그 남자분이 밖에 잠깐 볼일을 보러 잠깐 간 사이에 그 부인 되시는 분이 이걸 팔았다고 그럽니다. 부득이하게 절친한 친구가 와가지고 그냥 부득이하게 지금 내가 절대로 고기가 필요하니까 이걸 팔으라고, 당신 신랑은 이거 잠깐 안 먹어도 되고, 생각하니까 뒤에 또 금방 좋은 물건이 들어오니까 하여튼 막 사정사정을 하니까 그렇지 요거 1덩이 좀 팔면 어떨까 싶어가지고 그걸 팔았어요. 팔았는데 신랑이 와가지고 이제 없네. 난리가 났네. 그랬더니,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풀반찬을 해가지고 밥을 먹었는데 맨날 야들야들한 최고의 육질 얼마나 좋은 걸로 좋은 부위로 골라 먹었겠어요. 여러분들 그 육식 고기 저기 그런 특수한 부위 있잖아.
최고의 그런 부위 먹다가 갑자기 나물 반찬으로 바뀌니까 막 돌 씹는 것처럼 못먹겠대. 그래서 그만 그냥 상을 내동댕이쳐버리고 내 도저히 안 되겠다 해가지고 외양간에 가가지고 그냥 소인가 염소인가 해가지고 그 소 혀를 그걸 그대로 절단을 해가지고 그걸 가지고 섭취를 했어요.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바로 이 급작스러운 죽음을 만난 거예요. 그 얼마 후에 바로 그냥 급사를 해버렸어요. 급사하는데 이제 고통스럽게 아주 고통스럽게 죽죠. 그래 가지고 자기 부인이 그 모습을 보고서 자기 아들을 데리고 이사를 가요. 이제 뭐 푸줏간이니 뭐 다 때려치우고 교육 도시로 가가지고 아들을 교육을 시키면서 이제 그의 아들이 잘 성장해가지고 훌륭한 사람이 됐는데. 그 아들이 있는 그 지역이 불심이 강한 도시라서 거기가 마침 부처님이 계시고 하는 그 사왓티성이었어요.
거기가 기원정사 그 절이니까 당연히 불심이 세죠. 그래서 거기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늘 법문을 듣고 부처님의 재가불자로서 살아가는데 그때 이사 갔던 그 아버지는 죽고 푸줏간 주인은 죽고 그 아들네 손주란 말이에요 여기는. 저기 이사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그 사람이 아들을 낳아가지고, 손주 수집관이 그 고통스럽게 죽은 아비지옥에 떨어져 죽은 그 푸줏간 주인의 손주가 하여튼간 부처님한테 독실한 불자란 말이에요. 그 젊은 사람이.
하여튼간 이사 갔던 어머니도 죽고 하여튼 그 사왓티성에서 금 제련업을 하는데 그 양반이 불심도 없고 할아버지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고 그렇게, 이 불교에 대한 전혀 이해도 없고 그냥 헛사시는 거 보니까 삶에 만족하면서 늘 풍족하게 오욕락에 막 집착하면서 이렇게 사는 걸 보니까 그래도 아버님 삶이 저러면은 우리 옛날 할아버지 삶도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은데 이게 아니지라고 하면서 내가 언제 한번 부처님 법문을 한번 들려드려야겠다. 그러면서 인제 공양청을 해가지고 부처님을 모셔와요. 그래가지고 아버지한테. 그러니까 옛날 푸줏간에 손주가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법문을 듣게 해드려요. 그때 이 4개의 경을,
몇 번 게송이냐면 235번 게송일 거예요.
235에서 35 36 37 38 이게 정확한 이게 담마빠다 법구경 주석서에도 분명히 죽음관에 대한 수행하는 게 분명히 나와 있어요. 부처님께서 사람의 죽음에 당하는 게 얼마나 두려운 것이며 허망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이에요. 그래가지고 그 아버지가 부처님 법문을 듣고 바로 이 마라나눗사띠를 통해가지고 바로 통찰에 의해서 들어가죠. 그래가지고 바로 아나함 다시는 이 세계에 돌아오지 않은 성자의 계위까지 올라가요. 그 주석서에는 그렇게 기록되어져 있어요.
그래서 가장 핵심적인 이 스님이 찾아낸 경전이 마라나눗사띠에 대한 경전의 근거를 찾는다면 바로 이 부분 235번부터 238번까지 게송이에요. 거기에 게송에 나오니까 여러분들은 찾아서 읽어보시고 그걸 가지고 자기 수행 생활에 활용하시라구요. 아시겠죠.
※ 법문을 녹취하고 옮겨적는 과정에서 잘못 이해했거나 오타 등으로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녹취한 이의 잘못입니다.
그리해도 모든 과정들에서 누구에게든 이로움이 더 많기를 바랍니다. _()_
* 출처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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