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집중수행 기본 교재 1 - 위빳사나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사깜마
2024-10-12
조회수 208

◈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위빳사나 수행교재』 

(2017년 2월. 마하보디선원 집중수행교재)


-- 차례

-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 초급 과정 : 좌선, 경행, 입선,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

- 좌선

- 경행

- 입선(入禪)

- 와선

- 일상의 알아차림

- 중급 과정 : 느낌의 관찰


* 수행의 기본적인 이해 [위빳사나 수행교재] (2017년 2월)

 

여러분들이 수행할 때는 움직임을 급하지 않게 해서, 


1. 모든 움직임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움직임을 알 때는 움직임의 시작을 알도록 하십시오. 

어떻게 하면 움직임의 시작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시간을 따질 때는 12시를 기준으로 해서 오후가 시작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움직임에 있어서 멈춤을 가짐으로써 움직임의 시작을 알도록 하십시오. 

움직임의 시작은 어디부터 일까요? 시간적으로는 물론 항상 지금이 시작이 될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알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시간 속에 항상 있는 시작을 지금 그대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수행을 시작하는 수행자들은 가만히 멈춘 자세를 가짐으로써 움직임의 시작을 알도록 하십시오. 이 말의 의미는 여러분이 지금의 대상을 놓쳤을 때는 대상을 놓친 것을 알고 움직임의 멈춤을 가짐으로써 다시 현재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멈춤을 활용하지 못하면 우리의 움직임들은 습관적인 것들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움직이게 되었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수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음이 지금의 대상에 가 있지 않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움직임의 시작을 알도록 하십시오. 

 

즉, 멈춤이라고 하는 분명한 시작에서부터 지금을 알고자 하십시오. 우리가 이 멈춤을 잘 활용하지 않고 귀찮다고 그냥 지나치면 여러분의 마음은 현재에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포살 경전합송의 예에서도 알아차림을 놓치면 즉시 중지하고 다시 시작합니다. 또 다른 예에서 한 비구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스님은 걸을 때에도 절대로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스님은 하루 종일 사띠를 가지고 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또한 사띠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가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 스님은 길을 걸을 때 걷는 것을 놓치게 되면 제자리로 와서 다시 걸었습니다. 

우리들은 걷다가 걷는 것을 놓쳐도 그냥 계속 걸어갑니다. 그러나 그 스님은 걷는 것을 놓치면 제자리로 와서 다시 걸었고, 또 놓치면 다시 제자리로 와서 걸었습니다. 그때 밭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저 스님이 무엇인가 잊어버려서 저렇게 왔다 갔다 하는구나하고 생각을 했지만, 사실 스님은 움직임을 놓쳤기 때문에 다시 시작을 한 것이었고 또다시 놓쳤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것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스님처럼 하지는 못하더라도 움직임에 있어 항상 시작을 갖고자 노력하십시오. 움직임의 ‘시작’을 갖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은 내가 얼마나 그 움직임에 마음이 있는지 알게 됩니다. 또 움직임을 놓쳤을 때는 그 놓친 것을 알게 돼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의 능력만큼 움직임을 놓치지 않다가 또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노력하는 마음과, 집중하는 마음 그리고 사띠를 두는 마음, 이 마음들의 능력만큼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또한 놓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움직임을 놓쳤을 때 그 놓친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놓쳤을 때 놓친 것을 모른다거나 또는 알고서도 습관적으로 대충 넘어가려고 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대충 얼버무려서 가려고 하는 그 습관을 수행에서는 용납하지 말고 분명하게 인식해서 가고자 하십시오. 여러분이 놓친 움직임에 대해서는 모두 다시 시작을 갖고자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움직임에 방해가 돼서 힘이 들 정도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귀찮아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은 수행처에 있더라도 마음은 거기에 있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몸이 화장실에 있으면 마음도 거기에 있어야만 되고, 몸이 문고리를 열고 닫으면 마음도 열고 닫는 그곳에 있어야만 되고, 몸이 수저를 들고 있으면 마음도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항상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된 것을 알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다른 것이 아니라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좌선을 하기 전에 먼저 경행을 하도록 하십시오. 

왜 경행을 먼저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좌선을 할 때보다 경행을 할 때 더 마음의 활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좌선을 했을 때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조절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행에서는 걷는 속도로써 몸과 마음을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여 걸었을 때 경행은 마음에 활력이 생기게 해주는 좋은 자세입니다. 

 

경행을 할 때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서 경행을 하십시오. 경행을 시작할 때 혼침, 다리저림, 몸과 마음의 무거움이 있는 경우에는 가볍고 좀 빠르게 걸어서 그 무거움을 해결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점점 안정되어가면서 몸과 마음의 무거움이 차츰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안정되어가면서 가볍게 걷는 것이 약간 지루해지고 변화가 필요해 지면 그때는 점잖게 걷도록 하십시오. 점잖게 걷다가 움직임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더 천천히 걷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점잖게 천천히 걷게 된 후에 변화를 주어서 어떤 것을 보기 위해 다시 빨리 걷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경행에서 주의할 점은 빨리 걷다가 천천히 걷고, 다시 빨리 걷다가 천천히 걷기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는 오히려 집중의 힘을 약화시키고 마음의 안정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마음이 안정되어 천천히 걷게 되었을 때는 발의 움직임을 단계에 따라 정확하게 보면서 가도록 하십시오. 발을 듦, 앞으로 나아감, 발을 내림, 닿음 이렇게 


2. 움직임의 단계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구분한다는 것의 의미는 움직임의 단계들을 각각 서로 다른 하나의 과정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발을 드는 것은 단지 드는 것이고, 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과정이고, 발을 내리는 것도 또 다른 하나의 과정이고, 발이 닿는 것도 또 다른 하나의 과정입니다. 

이것은 아침은 단지 아침으로, 낮은 단지 낮으로, 저녁은 단지 저녁으로 보면서 수행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침의 수행은 단지 아침으로 보고, 낮의 수행은 아침과 연관시키지 말고 또 다른 낮으로 보고, 저녁은 또 다른 저녁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발을 듦은 단지 발을 듦으로, 앞으로 나아감은 단지 앞으로 나아감으로, 발을 내림은 단지 내림으로, 닿음은 단지 닿음으로 이렇게 또 다른 하나의 과정으로 알아야 합니다. 발을 듦은 앞으로 나아감이 아니고, 앞으로 나아감은 발을 내림이 아닙니다. 발을 듦은 단지 발을 듦이고 앞으로 나아감은 또 다른 하나의 움직임의 시작입니다. 발을 내림도 또 다른 움직임의 시작이고 닿음도 또 다른 움직임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발을 듦부터 닿음까지의 한 과정에서 각 단계의 움직임을 단지 그 자체로서 볼 수 있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의 마음은 현재와 좀 더 가깝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움직이기 전에 반드시 


3. 의도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경행에서 보면 여러분은 서 있는 자세에서 걷는 움직임을 시작하기 전에 ‘걷겠다’는 마음을 내고 걸을 것입니다. 이렇게 ‘걷겠다’는 마음을 내고 난 후 가만히 보면 ‘발을 들겠다’는 마음을 내게 되고, 그 마음이 있고 난 뒤에 발뒤꿈치부터 들게 됩니다. 

이렇게 움직임이 있기 전에 의도하는 마음을 볼 수 있으면 좋습니다. 만약 의도하는 마음을 보는 것이 어렵다면 의도적으로 의도하는 마음을 붙인 후에 움직이도록 하십시오. ‘발을 들겠다’하고 발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겠다’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내려야 겠다’하고 내리고, ‘닿아야 겠다’하고 닿도록 하십시오. 또한 경행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움직임에 있어서도 움직임을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하겠다’라는 의도함을 붙이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움직이기 전에 의도함을 항상 붙일 수 있을 때 여러분의 마음은 현재에 있게 되고 움직임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잘 알기 위해 주의해야 할 것을 하나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불필요한 움직임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어떤 것이 불필요한 움직임인지 알고 그것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불필요한 움직임이 많을수록 여러분의 마음은 움직임을 떠나 산란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불필요한 움직임들을 알고 그것을 버리는 것만 잘 터득해도 자신이 습관적으로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움직임들을 가져 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거칠게 움직여 왔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분명히 알면서 움직임을 볼 때 여러분은 또한 느낌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움직임도 없을 때는 없습니다. 잠시라도 움직임이 없을 때는 없습니다. 움직임은 항상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항상 마음을 현재에 둘 수 있습니다. 다른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항상 움직임을 알도록 하십시오. 내가 움직임을 알고 있는지, 움직임을 생각으로 아는지, 아는 척하고 있는지 아니면 분명하게 아는지, 이것에만 마음을 두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왜 움직임을 알아야 할까요? 

몸의 움직임은 물질적인 것이어서 조금만 주의력을 두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느낌이나 마음이나 마음의 대상보다 더 쉽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이 분명한 대상에 마음을 두도록 하십시오. 분명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분명하게 지금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지금 마음을 분명하게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이것은 여러분들이 알기 쉬운 책을 볼 때와 같습니다. 알기 쉬운 책을 볼 때는 무슨 내용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지만, 알기 어려운 책을 붙들고 있으면 머리만 아프지 그 내용은 모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책을 보는 목적은 그저 책을 붙잡고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얻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몸을 관찰하는 목적은 그저 몸을 붙잡고 있기 위함이 아니고 쉽고 분명한 대상인 몸을 통해서 쉽게 마음을 집중하고 몸과 마음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 몸이라는 것을 잘 볼 수 있게 되면 거기에는 몸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느낌의 움직임, 마음의 움직임, 마음의 대상에 대한 움직임 모두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중수행을 하러 온 이유는 여러분이 얽혀있는 바깥의 여러 가지 다른 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하루 종일 자신을 위한 수행의 시간을 갖기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말했듯이 움직임을 알도록 하십시오. 움직임이 없을 때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더욱 분명하게 움직임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수행의 진보입니다. 다른 것이 수행의 진보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만약 움직임을 놓치고서 다른 뭔가를 찾아 알려고 한다면 마음을 올바르게 활용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힘도 적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수행에 있어 다음의 두 가지를 찾고 해결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어떻게 하면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움직임에 마음을 둘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방법을 알려드렸습니다.

 

• 성급함을 버리는 것, 

• 항상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는 것,

• 멈춤으로써 움직임의 시작을 분명히 아는 것, 

• 움직이기 전에 의도함을 붙이는 것, 

• 움직임의 단계를 구분하여 아는 것, 

• 불필요한 움직임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잘 활용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서 몰라보게 많이 알게 될 것이고, 또한 마음이 매우 빠르게 안정을 취해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일상생활과 경행에서 움직임을 잘 알게 되었을 때 좌선은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되는 매우 쉬운 것이 됩니다. 마음이 분명하고 올바르게 좌선에서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오히려 너무 쉽기 때문에 자만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움직임은 항상 있습니다. 가장 큰 움직임인 걷는 것, 서 있다 앉는 것, 앉아있다 일어서는 것에서부터 눈을 깜박이는 것, 침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것, 몸이 떨리는 것까지 어떤 움직임도 알고자 해야 합니다. 또한 움직임을 알았을 때는 거기에 계속 마음을 붙여 지속적으로 알고자 해야 합니다. 

움직임을 한번 알았다고 거기에 만족해하거나, ‘이렇다. 저렇다.’ 하는 생각을 붙이지 말고 단지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경행 또는 좌선 1시간을 할 때 한 시간 동안 계속 움직임을 아는 것을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 움직임이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경행과 좌선이 끝나고 나서 잠시 생각하도록 하고 좌선, 경행 1시간 동안은 그대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하십시오. 만약 중간에 생각을 하게 되어 무엇인가 뒤돌아보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을 쫓아가지 말고 무시하고서 계속 지금의 움직임을 아는 것을 지속하고자 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한 시간 정도는 지속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수행 중간 중간에 생각이 들어오는 것이 많이 줄어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움직임의 많은 단계들을 알게 될 것이고 또한 아침은 아침으로, 낮은 낮으로, 저녁은 저녁으로, 또 오늘 하루만 보고 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분이 수행을 하러 와서 해야 될 것은 움직임을 아는 것입니다. 가장 거친 움직임부터 가장 미세한 움직임까지, 가장 긴 시간 동안의 움직임부터 가장 짧은 시간 동안의 움직임까지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알겠다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만큼 그것이 여러분에게 집중과 지혜로써 가게 될 것입니다.

 

 

초급 과정

 

좌선, 경행,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

 

위빳사나 수행은 좌선, 경행,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이 있는데, 어느 수행이든 다음과 같은 순서를 적용합니다. 

 

1) 마음 알아차리기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지금 무슨 마음가짐인가?’하고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바라는 마음이나 근심 걱정이 있으면 알아차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먼저 그 마음을 알아차려서 편안해진 마음에서 수행을 시작합니다. 

 

2) 몸 알아차리기

 

좌선에서는 눈꺼풀, 입술, 손, 엉덩이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경행에서는 서있는 몸의 자세를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쭉 알아차리며 내려갑니다. 이것은 몸의 느낌을 알아차려 마음을 현재에 두면서 몸을 이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 없이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이든지 알아차리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수행을 시작합니다. 

 

3) 가장 두드러진 대상을 알아차리기

 

현재 몸과 마음에서 생긴 가장 분명한 대상을 알아차립니다. 좌선에서는 호흡을 주로 알아차리고 경행에서는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며 일상에서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몸의 움직임에 마음을 두는 것은 마음을 몸에 붙여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과정입니다. 

 

4) 대상에서 움직임과 느낌을 알아차리기

 

마음이 집중되면 움직임을 통해 느껴지는 몸의 감각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수행자는 느낌이 나타나면 알아차리고 느낌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움직이는 모양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느낌을 보기 위해 느낌을 찾으면 생각에 빠지고 알아차림을 놓칩니다.

 

5)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를 법으로 알아차리기

 

수행을 하면 장애는 나타나기 마련인데, 그 장애를 없애려하거나 장애를 따라가면 알아차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이들을 나타날만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법으로 알아차리고, 다시 현재의 주 대상으로 돌아와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6) 수행 중 가끔 마음과 몸의 자세를 알아차리기

 

이따금씩 ‘지금 몸의 자세는 바른가?’ 하고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등으로 현재 자신의 몸의 자세와 마음자세를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알아차림을 놓쳤다가도 다시 알아차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수행은 잘하려는 마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수행을 잘하려는 마음은 몸과 마음을 긴장시킵니다. 이런 긴장은 마음을 들뜨게 해서 알아차림을 할 수 없게 합니다. 그냥 마음을 가볍고 편안하게 하고, 지금 나타난 것은 무엇이나 다 법으로 알아차린다는 마음으로 수행을 하면 점점 더 많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1. 좌선

 

좌선은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몸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립니다. 주로 들숨 날숨에 의한 현상들을 알아차리지만, 가려움, 통증, 망상, 졸음, 싫증, 의심 등도 나타나면 그것도 모두 알아차립니다. 좌선은 여기저기로 방황하는 마음을 몸이라는 기둥에 알아차림이라는 끈으로 묶어서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밖으로만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불러서 몸에 붙이는 작업입니다. 

 

좌선을 시작할 때

 

1) 바른 자세로 앉습니다. 

 

몸의 긴장을 다 풀고 편안하면서도 바른 자세로 앉으십시오. 턱을 약간만 아래로 당기고, 허리는 편안하게 펴십시오. 손은 무릎 위에 편하게 올려놓고, 발은 반가부좌를 하거나 두 발을 나란히 바닥에 놓는 평좌를 하십시오.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을 만큼 부담 없는 편안한 자세로 앉으십시오. 

 

2)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지금 바라고 있는가, 하기 싫은가, 졸리는가, 들떠있는가, 의심하는가 등을 알아차리십시오. 이것은 현재의 마음상태나 기분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이때 어떤 마음이 있든지 그냥 ‘그런 마음이 있네!’하고 알아차리십시오. 아무 마음도 느껴지지 않을 때는 ‘아무 마음도 없네!’라고 알아차리십시오. 

3) 몸을 직접 알아차리며 내려갑니다.

 

먼저 눈꺼풀, 입술, 손, 엉덩이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이어서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자, 먼저 눈꺼풀이 있는 것을 아십시오. 눈꺼풀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느낌입니다. 이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눈꺼풀이 서로 닿아있는 것을 느끼십시오. 점차 닿아있는 부위에서 따스함, 가벼움, 무거움, 떨림, 빛 등을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중 지금 경험하는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리고 얼마동안 그 느낌의 변화를 주시하십시오. 

 

이제 입술로 갑니다. 입술이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이제 입술에 있는 따뜻함, 촉촉함, 떨림 등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변화를 보십시오. 또 느낌이 변하는 것을 얼마 동안 주시하십시오. 

 

다음은 손으로 갑니다. 손이 어딘가에 닿아있습니다. 그곳에 마음을 두고 손의 모양이나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따뜻함, 쑤심, 진동 등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느낌의 변화를 얼마 동안 주시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엉덩이로 갑니다. 엉덩이가 방석에 닿아있는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닿아있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무거움, 단단함, 떨림 등의 느낌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지금 느끼는 감각을 대상으로 그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얼마 동안 그 느낌의 변화를 주시하십시오. 

 

4) 현재를 알아차립니다. 

 

현재 이 순간을 지켜보십시오. 현재 마음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현재는 소리를 듣는 마음, 호흡을 느끼는 마음, 피부의 감촉을 느끼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근심 걱정하는 마음, 때로는 편안한 마음이 지나갑니다. 얼마 동안 이런 마음의 흐름을 주시하십시오. 이것은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보는 심념처 수행입니다.

 

5) 몸의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다시 몸으로 돌아와 앉아있는 자세를 전체적으로 크게 느껴봅니다. 가만히 몸 전체의 느낌을 주시합니다. 몸의 어디선가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호흡으로 일어나는 풍대의 작용입니다. 

 

호흡은 코, 가슴, 배, 몸의 일부에서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그중 가장 잘 느껴지는 곳 하나를 선택해서 그 자리에서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호흡은 자연스런 호흡을 해야 합니다. 복식 호흡이나 단전호흡으로 호흡을 일부러 만들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배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다면, 2, 3회 정도 들이쉬고, 내쉬고 하며 자연스런 호흡이 되도록 숨을 쉬는 것을 지켜봅니다. 

이렇듯 앉아서 천천히 호흡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 사마디(samadhi=삼매, 집중, 통일력)가 상당히 나옵니다. 

2회 내지 3회 그런 식으로 호흡을 할 때는 명칭을 붙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호흡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그렇게 호흡하는 감각, 이른바 배의 팽창 수축을 관찰하도록 하십시오. 

 

배의 팽창 수축을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배꼽 주위를 따라서 손을 대어 보십시오. 

숨을 들이쉴 때는 배의 팽창을, 숨을 내쉴 때는 배가 수축되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팽창과 수축을 이해했다면 손을 무릎 위에 되돌려 놓고 자연스럽게 호흡해 주십시오. 그 호흡에 맞추어서 배가 부풀어 오를 때 ‘일어남’이라고, 

수축되어 갈 때 ‘사라짐’이라고 해주십시오. 

 

처음에는 호흡의 움직임 중에서 ‘일어남' 하나만을 알아차리다가 어느 정도 대상에 마음이 잘 집중되면 이제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리십시오. 좀 더 집중이 되면 일어남, 사라짐, 쉼까지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집중되면서 점차 배의 팽창 수축에 따라 느낌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느낌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6) 수행 중 나타나는 장애를 알아차립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중에 마음은 어느덧 망상, 통증, 졸음, 싫증, 의심에 빠집니다. 이런 장애들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장애를 없애려하거나 싫어하지 말고 나타나는 대로 알아차리고, 즉시 몸으로 돌아와서 다시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만약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즉시 ‘망상’ ‘망상’ ‘생각함’ ‘생각함’ 하면서 마음으로부터 망상이 사라질 때까지 알아차리도록 합니다. 

위빳사나 수행에서 초심자 단계에서는 배에 집중하는 것이 여간해서 잘되지 않습니다. 호흡하여 배의 팽창 수축을 관찰하고 싶어도 곧 이 망상이 생깁니다. 

그러나 배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하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빳사나에서는 지금 마음이 가장 강하게 느끼고 있는 현상을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행을 시작하자마자 곧 망상이 생겨도 ‘망상’ ‘망상’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30분의 수행 중 모든 것이 망상이라고 쳐도 그 망상 전부를 명칭 붙여 알아차림 했으면 훌륭하게 위빳사나 수행을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명상이 향상되어 좌선 수행하고 있으면 점점 집중력이 늘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한층 한 순간 한 순간의 알아차림을 철저히 해나가면 사마타수행과 같은 삼매(사마디)상태로 되어 갑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는 돌연 수행 중에 빛이 나타나거나, 망상이 보이거나 합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흔치 않은 대상을 따르고 싶어 하지만, 이것도 망상이므로 구애받지 말고 빛이 나타났다면 ‘빛’ ‘빛’하고, 다른 현상이 나타나도 ‘망상’ ‘망상’하며 명칭 붙여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현상과 대상이 자신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오직 현상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때로는 보살이나 부처님이 마치 살아계신 듯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단지 내 마음이 마음대로 만들어 낸 망상에 지니지 않으므로 ‘보고 있음’ ‘보고 있음’하며 망상이 사라질 때까지 관찰하십시오. 

아무리 집중력이 강해져도 妄想(망상)이나 妄像(망상)은 생기기 때문에 그 현상을 빨리 알아차리고, 배의 팽창과 수축으로 곧바로 되돌아갈 수 있게 발전되면, 배의 팽창의 시작, 중간, 끝을 알게 됩니다. 이럴 때는 배의 ‘일어남’ ‘멈춤’ ‘사라짐’이라고 명칭 붙여 알아차림 합니다. 

이렇게 셋으로 나누는 관찰법은 생 주 멸이라고 하는 태어남, 존재, 소멸의 진리를 관찰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통증과 저림, 추위와 더위 등도 그것을 느꼈을 때, 곧바로 ‘통증’ ‘통증’ ‘저림’ ‘저림’ 등으로 모든 것을 명칭 붙이며 알아차립니다. 

싫다든가, 편하다든가, 즐겁다든가, 기분이 좋다든가, 무섭다, 등의 감정도 모두 그 자리에서 명칭 붙여 알아차리십시오. 좌우간 무엇이 나타나든, 어떤 감정이 떠오르든, 마음에 와 닿은 모든 대상을 명칭 붙여 알아차릴 뿐입니다. 

사마타 명상처럼 하나의 대상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대상을 명칭 붙여 알아차림 합니다. 

 

명상을 시작해 얼마 되지 않는 사람 중에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복부에 전혀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집중하려고 해도 곧 마음이 산만해져 버려 무언가 생각하기 시작한다.” 등등. 

좋습니다. 마음이 산만해져도,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해도, 그 마음이 따르고 있는 대상을 한발 빨리 알아차려 그것을 명칭 붙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드디어 마음은 가라앉아 자연히 복부의 팽창 수축을 관찰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갑니다. 

 

배의 팽창 수축에 오로지 집중할 수 없어도, 나타나는 대상마다 명칭 붙여 알아차리면 위빳사나 수행은 향상되어 가므로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리해서 복부의 팽창 수축을 관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음은 언제 어떤 경우에라도 반드시 무언가 자극을 얻기 위하여 대상을 구하기 때문에 앉아있을 경우 가장 관찰하기 쉬운 대상이 말하자면 배의 팽창 수축이므로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명칭 붙여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현상을 알아차리는 사띠야말로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앉아있는 경우 곤란한 일이 졸음입니다. 

졸고 있으면 수행은 되지 않으므로 졸음만은 피해야 합니다. 

졸음이 찾아오면 ‘졸음’ ‘졸음’하고 명칭 붙여 강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졸음이 가라앉으면 좋겠지만, 졸음이라는 것은 끈질겨서 그 정도의 명칭만으로는 여간해서 퇴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꺼풀 내려옴’ ‘눈꺼풀 내려옴’ ‘무거움’ ‘무거움’ ‘아픔’ ‘아픔’ ‘통증’ ‘통증’ 하며 졸음이 오는 길을 따라 명칭 붙이며 강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졸음이 물러가지 않으면 신체를 움직여서 졸음을 쫓습니다. 

졸음이 쏟아질 때는 대개 신체가 앞으로 기울고, 목이 굽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세를 고치려고 함’ 하며 알아차린 후, 천천히 등뼈와 목이 똑바로 되도록 바로 잡아 주면서 ‘허리 폄’ ‘허리 폄’ ‘목 폄’ ‘목 폄’ 하며 알아차립니다. 

그것으로 졸음은 떨어져 나갈 것이므로 그 후에 다시 배의 팽창 수축으로 되돌아갑니다. 

 

또 다리가 아프거나 저려오는 것도 오래 앉아 있을 경우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 경우 ‘통증’ ‘통증’하며 관찰합니다. 

통증을 쭉 관찰해 가면 통증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증은 싫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기 쉬우므로 그것도 관찰하여 ‘싫어함’ ‘싫어함’ 하며 알아차려 갑니다. 통증이라고 하는 현상은 대상으로서는 꽤 강한 부류에 속하지만, 관찰 대상으로서는 수행을 진보시키기에 적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증을 관찰하는 경우 주의할 것은 그 통증을 어디까지나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신체의 통증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통증과 저림을 관찰해도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앞의 졸음과 같이 신체의 자세를 고칩니다. 이 경우는 다리를 바꿔 꼬고 앉는다든지 하는 동작이 필요하기 때문에 천천히 하나하나의 동작을 명칭 붙여 알아차림하며 다리를 바꿔 앉아야 합니다. 

 

가려움이 나타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려움이 나타나면 우선 ‘가려움’ ‘가려움’ 하며 가려움을 관찰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려움이 신경 쓰이지 않게 되면 다음의 현상을 관찰합니다. 가려움이 진정되지 않고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긁고자 함’ ‘긁고자 함’ ‘손을 올림’ ‘손을 올림’ 피부에 ‘닿음’ ‘닳음’ ‘긁음’ ‘긁음’ 하며 명칭 붙여 관찰합니다.

긁어서 기분이 좋아지면 ‘기분 좋음’ ‘기분 좋음’ 하며 관찰합니다. 

소리나 목소리가 들릴 경우도 ‘소리’ ‘소리’라든가 ‘들림’ ‘들림’ 합니다. 

 

만일 가려움과 소리와 통증이 동시에 현상으로 나타날 경우도 마음이라고 하는 메커니즘은 하나의 대상밖에 취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결코 동시라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당연히 하나씩 하나씩 관찰해야 합니다. 

다만 마음의 변화는 빛의 속도보다 몇 배나 빠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동시에 몇 개의 현상을 취하고 있는 것같이 생각되는 것뿐입니다. 

 

이런 때에는 일단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고 마음을 개방합니다. 

그 위에서 지금 현재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대상을 알아차림 하면 됩니다. 

혹은 대상을 순차적으로 관찰합니다. 

 

7) 좌선 중에 이따금씩 몸의 자세를 살펴봅니다. 

 

좌선 중에 ‘지금 몸의 자세는 바른가?’하고 몸의 자세를 알아차립니다. 만일 몸에 힘이 들어가 있거나 반듯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리면서 반듯하게 고쳐줍니다. 그러면 다시 몸의 긴장이 풀어지며 알아차림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또 이따금씩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하고 현재를 알아차려보십시오. 만일 알아차림을 놓치고 생각에 빠졌으면 ‘생각하고 있네!’ 라고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와 다시 알아차림을 시작합니다. 이때 알아차림을 놓치고 생각에 빠졌다고 후회하면 다시 알아차림을 놓친 것입니다. 

 

좌선 중에 나타난 대상은 무엇이든지 다 법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이 잘되길 바라거나 장애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든 나타나는 대로 모두 법으로 받아들여 알아차리십시오. 

 

좌선 수행도 한 시간 앉아있을 수 있으면 충분하므로 그 후에는 똑같이 한 시간 정도 경행을 해주십시오. 

처음부터 무리하게 좌선수행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좌선, 경행, 입선, 와선의 네 가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능숙하게 조합하는 것입니다. 

좌선수행을 끝낼 때에도 확실히 명칭 붙여서 끝냅니다. 우선 명상을 ‘끝내고자 함’ ‘끝내고자 함’ ‘끝내고자 함’이라고 명칭 붙이고, 거기부터 또한 천천히 ‘일어남’ ‘사라짐’을 2회나 3회 더 한 후 ‘눈을 뜸’ ‘손을 뻗음’ ‘오른쪽 다리를 폄’ ‘왼쪽 다리를 폄’ ‘일어섬’이라고 명칭 붙여 하나하나 꼼꼼히 알아차리며 일어섭니다.

그렇게 확실히 끝내주십시오.

 

 

2. 경행

 

우리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움직이는데, 경행은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경행의 알아차림은 일상생활에서 가고, 서고, 눕고, 구부리고, 돌고, 허리를 펴고 등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합니다. 

 

일상에서 어디를 갈 때 마음이 몸의 움직임에 있지 않고 대부분 목적지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근심 걱정을 합니다. 이것은 알아차림이 없는 것으로 번뇌의 마음 상태입니다. 그러나 경행을 하여 알아차림이 숙달되면, 생활 속에서도 항상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가 있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깨어있는 상태가 됩니다. 

 

위빳사나 수행센터에서는 좌선과 경행을 같은 비율로 합니다. 좌선과 경행을 교대로 하는 것은 움직일 때나 움직이지 않을 때나 모두 알아차림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위빳사나 수행의 비밀은 경행에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합니다. 경행은 움직임의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므로 찰나를 보는 힘을 길러줍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좌선과 경행을 같은 비율로 했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이 건강을 위한 특별한 다른 운동은 하지 않고, 오직 경행으로 다리의 근력을 키우고, 소화를 돕고, 혈액순환을 돕고, 체력을 길렀으며, 탁발이나 전법 여행을 할 때도 경행을 하면서 항상 알아차림을 유지했습니다. 그만큼 경행은 좌선과 함께 실천해야 할 중요한 수행입니다. 

 

경행의 규칙

 

경행도 좌선과 마찬가지로 단계적으로 하는데, 처음에는 알기 쉬운 것부터 가볍게 알아차리다가 점차 자세하게 알아차립니다. 경행의 순서는 서고, 가고, 서고, 돌고, 가고를 반복하면서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1) 수행자는 먼저 왕복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서 몸의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정면을 향하여 섭니다. 몸의 긴장을 풀고, 두 손을 모아서 앞으로 잡거나 뒤로 잡습니다. 

 

2) 경행을 하려는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바라는 마음, 하기 싫은 마음, 들뜬 마음, 아무것도 없는 마음 등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3) 현재 서 있는 자세에서 얼굴, 어깨, 손, 종아리, 발바닥의 느낌을 직접 알아차리면서 쭉 내려갑니다. 마음이 발까지 내려오면 발이 바닥에 닿은 것을 알아차립니다. 

 

4) 이제 한발 한발 걸으면서 발바닥이 닿는 것만 알아차립니다.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하고, 앞으로 갈 때는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걷습니다. 그다음 단계로 발뒤꿈치가 들리는 것부터 알아차려 발을 들어서 놓는 것까지 다 알아차립니다. 그다음 단계로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립니다. 

 

5) 끝에 가면 반드시 서서, 서 있는 몸의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어깨의 긴장을 알아차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6) 정면을 향해 돌면서 몸이 돌아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돌 때는 천천히 돌면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거나, 혹은 어깨에 마음을 두고 어깨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다시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가려는 의도에 의해 발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7) 경행을 할 때 처음에는 발의 움직임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다가 점차 무겁고 가볍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잡히면 그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어서 그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또 경행 중에 망상이 일어나면 그것을 망상이라고 가볍게 알아차리고 다시 발의 움직임으로 돌아와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8) 눈은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서너 걸음 앞의 바닥을 봅니다. 처음에는 약간 빨리 걷다가 차츰 적당한 속도를 유지합니다. 경행을 할 때 지나치게 천천히 걸으면 몸이 긴장되어 알아차림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적당한 속도로 걸으면서 계속 발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9) 길이나 운동장에서 빠르게 걸을 때에는 발이 닿는 것만 알아차리거나, 몸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크게 주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가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이 나타나면 그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설명은 이론이고, 실제로는 자신이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 또 알아차려지는 만큼 알아차리게 됩니다. 수행자가 많은 대상을 완벽하게 다 알아차리려고 힘을 주면 안 됩니다. 완벽하게 보려는 마음이 몸을 긴장시키고 마음을 들뜨게 해서 마음이 몸에 붙어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알아차려지는 만큼만 꾸준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잘하는 것입니다. 

 

경행 수행의 실제

 

우선 걷는다라고 알아차립니다. 자신이 오른쪽 다리부터 걷기 시작한다면 오른쪽 다리의 움직임에 의식을 두어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이라고 명칭을 붙여서 자신이 걷는 다리의 감각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반드시 명칭을 붙여서 확인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망상과 혼란을 피해 집중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있다면 ‘들어올림’이라고 명칭을 붙이는 것이 위빳사나 수행의 숙달에는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약속입니다. 

명칭을 붙여 확인한다고 해도 소리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손은 뒤나 앞으로 서로 살며시 잡고있는 것이 좋습니다. 

한 걸음의 거리는 그다지 크게 띠지 않도록 자연스런 걸음이면 됩니다. 

한 걸음 걷는 것이 종료되면 다음의 한 걸음으로 옮겨갑니다. 

 

주의할 점은 오른쪽 다리를 내리는 것과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을 연속하지 않도록 하는 것 즉, 오른쪽 다리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왼쪽 다리의 뒤꿈치를 들어 올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오른쪽 발바닥이 확실히 지면에 닿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도록 해야 합니다. 

 

경행할 때 처음에는 발을 들고 내릴 때 ‘들어올림’ ‘내려놓음’이라고 2단계로 나누어 알아차리십시오. 이렇게 2단계로 구분하여 5분 정도 한 다음 마음이 가라앉은 단계에서 3단계로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이라고 3단계로 구분하여 알아차리면 좋겠지요. 

집중이 한층 잘 되어져서 다리의 움직임을 확연하게 알아차리게 되면 6단계로 나누어 갑니다. 즉, ‘뒤꿈치 들어올림’ ‘앞꿈치 들어올림’ ‘나아감’ ‘내려놓음’ ‘닿음’ ‘누름’으로 더욱 세밀하게 알아차려 갑니다. 

더 더욱 마음이 움직이는 발에 집중되어 예리해질 때는 

발을 들어 올릴 때는, ‘들어 올림’ ‘발바닥 떨어짐’ ‘올라감’이라고 구분하고

발을 옮길 때는, ‘나아감’ ‘나아감’ ‘나아감’이라고 구분하고

발을 내릴 때는, ‘내려놓음’ ‘닿음’ ‘누름’이라고 9단계로 나누어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수행자 마음의 가라앉음 정도에 따라 다르게 구분하여 실천하도록 하십시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너무 느리게 걸어 알아차림이 흩어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태에 따라 걷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경행만으로도 위빳사나 수행법의 알아차림, 사띠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방법이 됩니다. 

예를 들어 매일 한 시간 위빳사나 집중 수행을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30분은 먼저 경행을 하도록 하십시오.


출처: https://cafe.naver.com/buddhayana1/1174?tc=shared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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