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테라와다불교사(9)/이사장 빤냐와로스님

관리자
2021-04-21
조회수 650


작성일 : 13-10-04 23:24



석가종족 공화국


경전에는 까삘라왓투(카빌라성)가 막강한 꼬살라 공화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는 점을 명백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석가종족은 꾸시나라의 말라족 그리고 와이살리의 릿차위족과 마찬가지로 민주 공화국이었습니다.  


다음은 석가종족 공화국의 지배 아래 있던 도시와 마을들의 일부입니다. : 짜뚜마, 코마둣사, 사마가마, 데와다하 혹은 나가라까, 메달룸빠, 실라와띠, 울룸빠, 까삘라왓투, 도나왓투.  


석가족의 수도인 카빌라성은 인구밀도가 높았고, 거리는 사람들로 넘쳤습니다. 도심에는 싯닷따 왕자가 9층, 7층, 5층의 궁전들을 갖고 있었고, 시민들도 이층, 삼층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만따빠사디까(일체선견율)에서는 그들 시민 역시 4층 건물에서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히니 강은 까삘라왓투와 꼴리야 왕국의 경계선이었습니다. 강 위에는 댐이 건설되어 있었고, 석가족과 꼴리야족 사이의 분쟁이 거의 전면전으로 치닫게 된 것은 바로 이 강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조정으로 인하여 전쟁은 피하게 되었습니다. 로히니 강은 북으로부터 남으로 흐르고 있었고, 이 강의 남동 방향으로 라자가하(왕사성)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또한 까삘라왓투 부근에는 매우 울창한 숲(마하와나)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우기 안거 수행을 위해 종종 그 숲에 가곤 했습니다. 그 숲은 웨살리의 마하와나와는 달리 자연 숲이었습니다. 까삘라왓투에는 니그로다라마(니그로다 원림), 깔라케마까라마와 같은 수도원과 그리고 가따야 사끄야에 의해 세워진 수도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까삘라왓투(카빌라성)의 입법부는 많은 층으로 구성된 산타가라(공회당)가 있는데, 최상 기관인 산타가라는 국회와 매우 흡사합니다. 다른 층으로 이루어진 그 밖의 산타가라가 또 있었습니다. 


국가 업무가 행해지고 논의가 이루어지고, 필요한 포고령(법령)이 공포되는 곳은 최고위 산타가라인 최고입법위원회 안에서였습니다. 당시의 국가는 근본적으로 농업 국가이기에 무슨 종류의 씨앗을 심고 언제 거둘 것인가가 중요했습니다. 공화국이므로 하나의 결정이라도 최고위 입법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라야 받아들여지곤 했습니다. 왕은 다만 최고의 산타가라에서 결정된 것만을 실행에 옮길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행정부는 매우 인기가 높았습니다. 꼬살라의 왕이 석가족의 왕자를 요청하는 사신을 보냈을 때 그 요청은 산타가라에서 논의되었습니다. 이것은 산타다라의 최고 권위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 까삘라왓투에 산타가라 두 개가 설립되었다고 경전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짜뚜마가마에도 산타가라가 있었습니다. 왕 숫도다나가 통치하고 있던 까삘라왓투는 그러므로 다양한 산타가라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왕족 


숫도다나 왕은 석가 왕조에 속해 있었고, 왕족 중에서 고따마 가문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는 네 명의 형제와 두 명의 누이가 있었습니다. 마하마야 왕비는 첫 번째 왕비였고 빠자빠띠 고따미는 두 번째 왕비였습니다. 싯닷따 왕자는 마하마야 왕비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반면 순다리난다 공주와 난다 꾸마라 왕자는 빠자빠띠 고따미의 소생이었습니다. 순다리난다는 싯닷따 왕자보다 먼저 태어났으며 난다 꾸마라는 마하마야왕비가 죽은 후에 태어났습니다.  


석가 종족은 본래 매우 오만했으며 활을 쏘는데 달인이었습니다. 석가 종족이 캇띠야(왕족)계급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경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고따마 가문에 속한다는 것 역시 많은 경과 주석서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후자는 어떻게 부처님이 석가종족을 고따마로서 불렀는지에 대하여 상응부 경전의 아왓수따경(유루경) 주석서에 의해서도 발견됩니다. 부처님은 한때 숫도다나 왕을 고따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숫따니빠따(경집)의 빱밧자경(출가경)에서 아난다 스님은 부처님을 아딧짜 고뜨라(태양종족)에 속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과의 만남


싯닷따 왕자가 태어난 후 숫도다나 왕은 담당기관에 각각 9층 7층 그리고 5층으로 된 세 채의 저택을 짓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왕자를 수많은 하녀들 가운데서 자라도록 했습니다. 싯닷따 왕자의 탄생 7일 후에, 어머니는 부처님 출생 후 7일만에 죽는다는 전설대로 마하마야 왕비 역시 부처님 출생 7일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동생 빠자빠띠 고따미가 갓 태어난 왕자의 양육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싯닷따의 탄생 5일 째 되던 날, 명명식이 거행되었습니다. 108명의 가장 저명한 브라만 중에서 ①라마 ②다자 ③락카나 ④맛띠 혹은 만띠 ⑤꼰단냐 ⑥보자 ⑦수야마 ⑧수닷따 이상 8명이 두 손가락으로 왕자를 향해 가리키며 만일 그가 세속의 삶을 산다면 군주가 될 것이고 만일 세속을 단념한다면 완전히 깨달은 사람인 붓다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연소한 꼰단냐는 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는 붓다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하여 왕자는 모든 점에서 완벽해져야만 한다는 의미로 전능자, 싯닷따로 명명되었습니다. 

싯닷따 왕자의 탄생 소식을 듣자 왕족 최고성직자인 장로 깔라데왈라 성인 아시따가 왕궁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비상한 여덟 개의 완벽한 힘의 재능을 부여 받았고 과거 40겁과 미래 40겁의 흔치 않은 지식의 가피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왕자의 발의 법륜의 성스러운 징후를 살펴보고는 전지의 지식으로 왕자가 틀림없이 붓다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는 갓 태어난 왕자에게 경배를 올렸습니다. 


숫도다나 왕도 왕자가 의심할 나위 없이 미래에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처음으로 아들에게 절을 했습니다. 한번은 숫도다나 왕이 799개의 장식을 한 쟁기로 쟁기질을 하고 있을 때 싯닷따 왕자는 잠부나무아래 휘장을 친 요람 속에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나무 그늘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왕자 주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휘장 뒤의 요람 속에서 아기왕자가 결가부좌를 하고 명상에 잠겨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숫도다나 왕은 두 번째로 아들에게 절을 했습니다. 숫도다나 왕은 아들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까삘라왓투에 돌아와 니그로다라마에서 신통력을 보인 후에 세 번째로 절을 했습니다. 

숫도다나 왕에 이어 거기 모였던 모든 석가족 백성들이 부처님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보살인 웻산따라 왕자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이때였습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후의 부처님은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라자가하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풋사달(음력 12월) 그믐날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 라자가하로 가셨다는 것을 알고 숫도다나 왕은 아홉 번을 부르러 보냈습니다. 매번 초청할 때마다 1000명의 사람을 딸려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기만하면 출가해 버려 왕은 아무런 답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시절 싯닷따 왕자와 가장 친한 사이였던 깔루다이 대신을 보내면서 까삘라왓투를 방문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그 또한 수행원 1000명과 더불어 출가자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에게 보낸 10000명 모두 부처님 그늘에서 안식처를 찾아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대신이었던 깔루다이는 얼마 안 있어 아라한에 이르렀습니다. 하루는 깔루다이 스님이 숫도다나 왕이 전하는 말을 부처님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왕은 늙었으며 죽기 전에 부처님을 만나보고 싶은 간절한 염원을 전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처님은 팍구나달, 즉 음력 2월의 그믐날에 까삘라왓투를 향해 떠났습니다.  


가는 데만 두 달이 걸린 부처님은 60 요자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까삘라왓투에 웨사카달, 즉 음력 4월 그믐날에 도착했습니다. 니그로다는 아름다운 정원과 적당한 공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머무르시기에 가장 훌륭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그곳에서 지내시도록 했습니다. 그 당시 부처님은 2000명의 스님들을 거느리고 계셨습니다. 다음날 부처님은 까삘라왓투 시내에서 발우를 팔에 감싸 안으시고 길을 따라 걸어가셨습니다. 그곳은 6년 전 출가하기 전에 마차를 타고 왕자의 복장을 하고 저녁 산책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이 광경에 까삘라왓투의 주민들은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이상한 기분에 쌓여 부처님에게 경배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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