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테라와다불교사(20)/이사장 빤냐와로스님

관리자
2021-04-21
조회수 626

작성일 : 13-10-21 15:26 


(4) 마할리 릿차위


서 문


릿차위의 왓지 공화국은 고따마 부처님의 출현 이전부터도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의 하나였습니다. 빨리 경전에 의하면 왓지와 릿차위 두 단어는 같은 국민을 뜻합니다. 마할리 릿차위에 대해서 상세한 소개로 들어가기 전에 ‘릿차위’ 와 ‘왓지’ 라는 말에 대하여 몇 마디 언급해 두는 것은 중요합니다. 릿차위와 왓지의 역사적 증거를 추적하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릿차위의 기원


바라나시 왕비가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녀는 왕에게 임신사실을 얘기했고 왕은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아침 일찍 태어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왕비는 때가 되자 반두지와까(중국 장미) 꽃처럼 생기고 살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을 상서로운 때에 낳았습니다. 그녀는 매우 불행했습니다. 자신이 낳은 그 살덩어리가 부끄러웠습니다. 그 불행한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씹어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그것을 상자에 싸서 이 상자에는 바라나시 왕비의 새끼가 들어 있다는 내용을 금종이에 새겨 붙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녀의 도움을 얻어 그 상자를 갠지스 강에 흘려보냈습니다.

  그 때 몇 명의 목동을 데리고 강가에 살고 있던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매일 하던 대로 목욕을 하기 위해 갠지스 강으로 가던 그는 물에 떠 있는 한 꾸러미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끌어당겨서 그 명문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열고, 안에서 한 조각의 고기 덩어리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상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그 때 수도자는 자신이 발견한 것은 어떤 살아 있는 물체일지도 모르고, 만일 잘 돌본다면 살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 물체를 매우 조심스럽게 가지고 가서 자신의 오두막의 가장 신성한 곳에 두었습니다. 2주 후에 그 살덩어리는 두 개로 나뉘었습니다. 수도자는 그 두 개를 극진히 보살폈습니다. 다시 두 주가 지나자 다섯 개의 육체적 상징이 그들에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한 주가 지나자 그 중 하나는 매우 예쁜 여자아이의 모습을 나타내었고, 다른 하나는 잘생긴 사내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해 그 수도자는 아버지의 정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두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이들은 투명했기 때문에 그들이 먹은 음식은 밖에서도 보였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피부가 없었습니다(닛차위 아헤숭). 다른 견해로는 그들의 피부는 주름이 생기지 않았습니다(리나 차위). 이렇게 하여 피부가 없다는 뜻의 릿차위가 유래하게 되었습니다. 


왓지의 기원


그 수도자는 오직 낮에만 탁발을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기들과 아침 내내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탁발하며 돌아다니다 오두막에 돌아오면 아주 늦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목동들이 수도자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 수도자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집착으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희들로 하여금 아이들을 돌보게 하여 주시고 스님은 수행에만 정진하십시오.” 그들의 말이었습니다. 수도자가 동의하여 목동들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오두막으로 왔습니다. 수도자는 이 아이들은 행운을 갖고 태어났고 매우 귀한 존재들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깨끗한 우유를 제공해서 왕을 기쁘게 하여 왕의 허락을 받아 작은 지역을 지키게 될 것이며 왕국을 세우게 될 것이며 쌍둥이 왕과 왕비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수도자는 아이들을 목동들에게 맡겼습니다. 

아이들은 점차 자라났습니다. 때로 아이들은 다른 목동의 아이들과 싸우면서 마구 때리기도 했고 심지어는 발로 걷어차기도 했습니다. 맞은 아이들은 부모에게 가서 수도자가 키우고 있는 고아들에 대해 불평을 했습니다. 목동들은 수도자의 아이들이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데 모두가 자신의 아이들을 계속 괴롭히지 않을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 아이 즉 빨리어로 ‘왓제땁바’를 버렸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왓지라고 불리게 된 연유이며 그들이 생활하고 놀았던 장소가 왓지 또는 와리지로 알려지게 된 이유입니다. 


웨살리 도시 기원 역사


수도자의 지시에 따라 우유로 만든 다섯 가지의 맛있는 음식으로 왕을 기쁘게 한 목동들은 약 100 요자나의 땅을 얻었습니다. 거기에 그들은 도시를 세웠고, 목동들은 열여섯의 어린 소년을 왕으로 삼고 아름다운 소녀를 왕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민족과도 결혼동맹을 맺지 않을 것(와레이양 까뜨와 까띠깡 아깡수)을 서약하게 했습니다.

이윽고 왕비는 남자아기와 여자아기의 쌍둥이를 낳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식으로 왕비는 16쌍의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리하여 왕실은 숫자상으로 크게 불어났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들은 경작을 위한 더 많은 땅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역 주위에 높은 담을 쌓아서 도시를 3배 이상 늘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도시는 거대하다는 의미로, 산스크리트어는 바이살리, 빨리어는 웨살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웨살리의 수도


부처님 시대에 웨살리는 왓지 공화국에서 가장 강력하고 번창했던 도시였습니다. 점점 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도시 변경에 높은 벽을 둘러쳐 3배나 확장시켰습니다. 각 벽의 문에 높은 벽과 망루를 가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있었습니다. 탑 모양의 7,707채의 저택과 7,707 정원과 7,707 연못이 웨살리 도시에 있었다고 빨리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 주석서는 또한 7,707 왕과 7,707 왕자와 7,707 사령관과 출납관이 웨살리에 있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웨살리라는 도시가 매우 아름답고 그 안에서의 생활은 대단히 쾌적했다는 것을 빨리 경전은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웨살리에 매우 아름답고 유명한 궁정 무희 암바빨리가 출현 한 것은 마가다 사람들이 왕에게 암바빨리 같은 궁정무희를 마가다에도 데려오도록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궁중무희들은 명성과 아름다움을 나라 안에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테리가타(장로니게) 주석서는 암바빨리로 인해 웨살리의 왕자들 사이에 불화와 다툼이 일어 당시의 법원의 결정에 의해 그녀를 평민으로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같은 주석서에 따르면 위말라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이 또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녀는 웨살리에서 몸을 파는 여자였습니다. 한번은 그녀가 마하목갈라나 스님의 인격에 반해서 자극적인 몸짓을 하며 그를 유혹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스님은 유혹당하기는 커녕 설법을 통하여 그녀를 비구니 스님으로 만들었습니다. 


릿차위 국이 왓지 공화국이라고 불렸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왓지’ 라는 말은 ‘릿차위’라고도 불리는 왓지 공화국 사람들을 뜻합니다. ‘릿차위’ 라는 말은 또한 릿차위 왕조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릿차위와 왓지라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대반열반경은 릿차위와 왓지를 종족에 의한 캇띠야(왕족)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처님의 유골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마하와스뚜(대사)에 의하면 그들은 와시스타 고뜨라에 속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은 부처님에게 가뭄으로 인해 기근이 들고 있는 웨살리에 처음으로 방문해 주길 요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갠지스 강을 건너 웨살리 국경에 도달했을 때, 릿차위 사람들은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에게 베풀었던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한 마음으로부터의 환영을 베풀었습니다. 부처님이 갠지스 강에서 웨살리 시까지 이르는 데 닷새가 걸렸습니다. 부처님께서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에 릿차위 사람들은 부처님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이 웨살리에 머무르시는 동안 지내시도록 당연한 존경과 헌신과 영예를 가지고 공회당을 내드렸습니다. 부처님은 보배경을 설법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주를 머무르신 후 라자가하로 돌아갔습니다. 84,000명이 부처님의 설법에 참석했고, 후에 릿차위 사람들은 ‘쩨띠야’ 라고 부르는 자신들의 성전을 불교 사원으로 바꿨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보가나가라에 있던 아난다 쩨띠야와 웨살리의 동, 서, 남, 북에 각각 위치하고 있던 우데나, 고따마, 삿땀바, 바후뿟따가 있는가 하면 바로 웨살리 중앙에 사란다다와 짜빨라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자신도 대반열반경에서 웨살리의 쾌적한 생활과 아름다움을 언급하셨습니다. 그 이외의 쩨띠야는 꾸시나라의 동쪽에 있던 마꾸따반다나가 있는데, 라자가하의 알라위와 숩빠띳타는 말라와 악갈라와에 속해 있었습니다. 

웨살리의 아름다움은 궁정무희인 암바빨리의 망고 정원과 고싱가 살라와나 숲과 희말라야의 산자락까지 이어지는 자연적 숲들이 있으므로 해서 더욱 빛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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