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학술] 한국테라와다불교 학술세미나(4-4, 고영섭교수 편)

관리자
2021-04-22
조회수 495

작성일 : 12-06-30 19:20

 글쓴이 : 빤냐완따 


 지난 2009년 8월28일 열렸던 제1회 한국테라와다불교 학술세미나의 마지막 발제논문 고영섭교수 편을 인제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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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제4논문> 


남방불교 전래와 전통 한국불교


고 영 섭(동국대)



* 목 차 *


1. 문제와 구상


2. 비바사의 전래와 수용 


3. 마하연의 전래와 수용


4. 대승불교의 확산과 전통화


5. 남방불교의 재전래와 수용


6. 정리와 맺음


  

1. 문제와 구상


전통 한국불교는 북방불교이자 대승불교로서 그 정체성을 삼고 있다. 이것은 전통 한국불교의 자기동일성을 북방불교인 대승불교에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구려와 백제 및 신라인들 역시 북전불교를 주로 수용하였다. 이것은 한국불교의 통설이 되어있다. 하지만 역사의 근거가 되는 사료와 기억(구술) 및 유물과 유적에 의하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한국불교의 초기 전래과정을 살펴보면 분명히 남방불교 전래의 근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고운 최치원(857~?)이 쓴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의 기록에 의하면 “비바사(毗婆沙)가 먼저 이르자 온 고을 사람들이 사제(四諦)의 바퀴를 몰아가고, 마하연(摩訶衍)이 뒤에 이르자 온 나라 사람들이 일승(一乘)의 거울을 비추이네”라는 구절이 보인다. 여기서 ‘비바사’는 자각(自覺)과 존재의 분석[阿毘達磨]에 집중하는 ‘남방불교’를 일컫는 개념이고, ‘마하연’은 대승의 교법으로서 자각(自覺)과 각타(覺他)를 원만히 이루려는 ‘북방불교’를 일컫는 용어이다. 또 ‘비바사’는 부파불교의 소의논서인 『대비바사론』 등과 같은 ‘자세한 주해’[廣解]로 널리 알려져 있고, ‘마하연’은 대승불교의 교과서인 『대승기신론』 등과 같은 ‘커다란 탈것’[大乘]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불교사의 흐름 속에서 보더라도 이 구절은 “성문승의 가르침인 ‘사(성)제’를 역설하는 남방불교가 먼저 이른 뒤에 일불승의 가르침인 ‘일(불)승’을 역설하는 북방불교가 전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기록은 지금껏 ‘무시’되어 왔거나 ‘부정’되어옴으로써 한국불교의 통설이 되지 못했다.


최치원의 기록에 의하면 부파불교에 기초한 남방불교 전래설은 결코 허구가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최치원의 기록을 부정할 논리적 근거도 찾을 수 없다. 전통 한국불교에서는 최치원이 쓴 다른 기록들은 원용하면서도 유독 이 기록만은 무시 혹은 부정해 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최치원이 사용한 ‘비바사’(毗婆娑)와 ‘남방불교’를 동일시하지 않은 이유에 있을까. 그 이후에 나타나야 할 남방불교에 대한 사료의 부족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남방불교에는 빨리어계 삼장에 기초한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 및 아나사나빠띠[入出息念] 등의 다양한 수행법이 존재한다. 때문에 대중적인 수행법인 위빠사나만으로는 온전히 남방불교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치원 기록의 문맥은 분명 존재 분석[阿毘達磨]을 기초로 하는 남방불교의 별칭으로서 ‘비바사’를 쓰고 있다. 동시에 일불승[一佛乘]을 기초로 하는 북방불교의 별칭으로서 ‘마하연’을 쓰고 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비바사’는 위빠사나만이 아니라 사마타와 아나사나빠띠 등까지 포괄하는 남방불교 의 수행체계와 교학체계 전체를 일컫는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산스크리트계 경론에 기초한 ‘마하연’은 대승의 교법을 일컫는 것으로서 대승불교를 기치로 내세우는 북방불교 전체를 일컫는 언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한국불교역사 속에서 고중세 이래 ‘남방불교의 전래’와 지난 이십년 이래 ‘남방불교의 재전래’의 접점을 통해 전통 한국불교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북방불교와 남방불교의 재접점’을 찾아보려는 시도이다. 고중세의 남방불교 전래설의 거론과 현대의 남방불교의 재전래에 대한 논구는 북방불교의 전통을 고수해온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훼손하기보다는 오히려 한국불교의 외연을 넓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 선행 연구를 참고하면서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접점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이를 통해서 남방불교 전래설의 역사적 근거와 그 재전래의 현실적 논거를 통해 한국불교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로서 삼아보고자 한다.


  

2. 비바사의 전래와 수용 


남방불교는 빨리어계 삼장과 이것에 기초한 아비달마교학을 내용으로 한다. 지역적으로는 탄생지인 인도에서 서남 및 동남 아시아로 전래된 불교를 일컫는다. 이미 붇다 당시부터 불교는 인접지역(나라)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해서 남전불교는 인도와 접한 스리랑카와 미얀마 및 말레이시아와 태국 그리고 캄보디아와 라오스 및 인도네시아와 싱카포르 등을 포괄하는 동남 및 서남 아시아 지역 전체로 퍼져나갔다. 


최근 이십년 이래 사마타와 위빠사나 및 아나사나빠띠 등의 수행법을 기반으로 한 아비달마불교의 한국 내 재전래를 논자는 고중세의 전래에 이은 ‘남방불교의 재전래’로 부르고자 한다. 최근 이십년 이래 남방불교는 ‘격의’(格義)와 ‘교판’(敎判) 및 ‘돈오’(頓悟)와 ‘견성’(見性)을 강조하는 북방불교의 교학체계와 수행체계와 다른 방식으로 재전래 되었고 그 수행법은 대중성을 얻으면서 널리 수용되고 있다. 해서 논자는 종래 한국불교의 주변으로 치부해 왔던 고중세 남방불교의 존재와 최근래 이십년 이래의 남방불교의 재전래와 수용을 통해 한국불교 내부로의 자리매김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우리 역사에서 남방불교의 전래는 서남 및 동남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불교의 동류(東流)를 의미한다. 그리고 한국의 남방불교는 한반도 남부에 자리했던 금관가야와 대가야로 유입된 불교이자 중국 남조의 동진(東晋) 및 남제(南齊)로부터 유입된 백제불교의 일부이다. 가야는 지역적으로 한반도 남부에 있으며 바다를 끼고 있어 일찍부터 인도와 동남아 및 중국 남부를 거쳐 온 남방불교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가야불교는 전래설과 기원설 등에서부터 여러 주장이 혼재하고 있다. 


선행연구에서는 종래 가야불교, 특히 대가야 불교의 전래 경로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 방향으로 짐작하고 있다. 하나는 바다 가까이 접근해 있던 금관(김해)가야로부터의 불교 유입 가능성이고, 또 하나는 중국 남제로부터의 불교 유입 가능성이며, 그 다음은 백제로부터의 불교 유입 가능성이다. 그러면 대가야불교의 유입 과정과 수용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는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의 불교 전래 가능성이다. 금관가야의 불교가 대가야를 거쳐 신라에 전해진 것이라면, 대가야에는 신라보다 먼저 불교가 전래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신라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기록처럼 고구려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수용한 것이 아니라 가야지방에서 신라로 수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온 것이기보다는 대가야나 성산가야 쪽에서 일선(一善, 선산) 지방에 이르는 것이 훨씬 용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행연구에서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인도 쪽에서 가락의 바닷가에 도착한 전법승(傳法僧)이 불교를 전하므로, 질지왕(銍知王)으로 하여금 창사 흥법(創寺興法)하게 하고, 이어서 낙동강 연안의 여러 가야 나라들을 차례로 유력하면서 전법하고는, 강을 건너 신라 땅까지 전교의 행각을 뻗쳤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당시의 일선군이 고구려 쪽보다 가야 쪽이 더 가깝고 또 강을 연해서 교통 상으로도 고구려에서 보다는 훨씬 왕래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셋째, 묵호자란 그 호칭이 남방(인도) 도래적인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다. 그래서 신라의 불교유입은 금관가야⟶대가야⟶신라로의 경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 주장은 고구려에서 건너온 아도의 북방불교 전래설과 달리 신라로 건너온 묵호자의 남방불교 전래설을 부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두 번째는 중국 남조 남제에서 대가야로 불교 전래 가능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당시 남제와 긴밀한 교류관계를 유지했던 대가야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였을 것이다. 때문에 『남제서』에 나오는 대가야의 사신파견은 단순한 외교사절의 파견이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사절로 방문했던 것이며 남제의 발전적 모습을 이룬 근거로서의 불교에 자극과 영향을 받아 불교를 들여왔을 것이다. 해서 남제에서 백제를 거쳐 신라, 백제의 접경처인 일선군에 들어왔을 것이며, 소지(毘處)왕 대에 백제 불교의 동점(東漸) 가능성도 같은 맥락 속에서 읽어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대가야의 악기인 가야금이 남제 악기의 6줄과 같은 것도 바로 이러한 영향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백제 불교의 성격이 무엇이었으며 백제에 전해준 중국 남조의 남제 불교 성격이 무엇이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세 번째는 백제에서 대가야로의 불교 전래 가능성은 5-6세기로 접어들면서 대가야와 백제의 회맹관계 속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시기 고구려와 말갈과 함께 북쪽 변경에 침입해서 호명(狐鳴) 등 7개성을 빼앗고 다시 미질부(彌秩夫)로 진군하였다. 대가야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백제군과 공동전선을 펴고 있었다. 동시에 신라와 공조한 연합군의 일원으로도 참가하였다. 백제의 성왕은 고구려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회복하기 위하여 가야군과 신라군과 함께 북진군을 일으켜 한강 하류의 6개 군을 차지하고 신라는 한강 상류의 120개 군을 차지하였다. 그 후 신라의 배신으로 벌어지게 된 관산성 전투(554)에서 대가야는 백제의 성왕을 도와 함께 출전하였다. 이러한 양국 간의 지속적인 군사동맹은 두 나라의 긴밀성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불교를 신봉했던 군주로 널리 알려진 백제 성왕은 5부율 72권을 가지고 인도에서 귀국한 겸익(謙益)에게 범어 율부를 번역하게 하였다. 또 담욱(曇旭)과 혜인(惠仁) 등이 지은 율소 36권에 몸소 아비담 신율의 서문을 지을 정도로 불교에 몰입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미루어 볼 때, 백제에는 이미 승관제(僧官制)가 정비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또 평소 성왕과 함께 움직임을 가졌던 대가야로서는 백제로부터 불교를 전해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성왕은 552년에 불교를 전수하는 등의 문화공세를 펴다가 이듬해인 553년에는 왜의 군병을 요청하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 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면 실크로드를 넘어왔던 북방불교의 흐름과 달리 동남아 해상로드를 거쳐 전래된 남방불교 전래설은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5세기 초부터 대가야는 백제와 공조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불교를 받아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로부터의 불교 유입 가능성은 김해지역에서 불교식 장법(葬法)이 도입되면서 고층고분이 사라지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대가야(고령)에서는 이렇다 할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어 금관(김해)가야에서 불교 유입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 지역의 고아동 고분에서는 불교 신앙의 주요 상징인 연꽃 문양이 나오고 있는 점도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고아동 벽화고분의 천정에 새겨진 연화문은 그 형식에 있어 여제(麗濟)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고구려 고분보다는 백제의 무녕왕릉 및 공주 송산리 6호분, 송산리 29호분 등 백제의 벽화 고분을 닮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가야의 불교는 백제로부터 유입 가능성이 제일 큰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백제는 이미 침류왕 원년 때(384) 호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을 거쳐 백제로 건너오면서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왔다.마라난타[童學]는 인도 또는 서역 출신의 승려로 보이며 이 시기 불교의 성격으로 보아 아비달마 관련 불교 신행을 했던 승려로 추정된다. 아비달마는 존재의 분석과 자기의 구원에 집중하는 가르침이다. 동진에서 온 마라난타에 이어 성왕 때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백제의 겸익(謙益) 등이 인도에서 베달다 삼장과 함께 범본 오부율 72권을 가져와 번역하였다. 담욱과 혜인은 이 율부에 주석을 달아 율소 36권을 저술하였다. 또 성왕은 번역된 비담과 신율의 서문을 지었고 새로 번역된 불전을 태요전에 받들어 간직했다. 따라서 겸익이 인도에서 돌아와 번역한 율부가 부파불교 율부라는 점과 혜균(慧均)과 도장(道藏 및 혜현(慧顯) 과 현광(玄光) 등의 교학이 삼론학과 성실학과 법화학 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백제불교는 북방불교만이 아니라 남방불교도 수용하였고 대가야불교는 남북전 불교 모두를 받아들인 백제불교와 긴밀한 연관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


  

3. 마하연의 전래와 수용


전통 한국불교는 비바사(毘婆沙) 불교와 마하연(大乘) 불교를 모두 받아들였다. 이것을 좀 더 넓게 보면 한국불교는 인도 대승이전의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를 다 받아들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빨리어계 경론을 기초로 한 인도 부파불교와 산스크리트계 경론을 기반으로 한 인도 대승불교를 아울러 수용한 것을 의미한다. 고운 최치원의 「봉암사지증국사적조탑비」의 기록처럼 ‘비바사’와 ‘마하연’을 모두 받아들인 것이 된다. 그들의 순서는 고운의 표현처럼 “비바사가 먼저 이르렀고 마하연이 나중에 전래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는 제17대 소수림왕 2년(372)에 중국 전진(前秦)왕 부견(符堅)이 보낸 사문 순도(順道)와 불상과 경문을 수용하였다. 순도 이후에도 법심(法深)과 의연(義淵)과 담엄(曇嚴)이 불교를 전해왔다. 또 2년 뒤(374)에는 사문 아도(阿道)가 중국 동진(東晋)에서 건너와 불교를 전했다. 왕실은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지어 순도와 아도를 각기 머물게 했다. 불보(佛寶)를 상징하는 불상(佛像)과 법보(法寶)를 인증하는 경문과 승보(僧寶)를 대표하는 순도의 삼보를 구비함으로써 고구려불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내용적으로는 비담(毘曇)과 성실(成實) 및 삼론(三論)과 법화(法花) 등이 모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부파불교와 대승불교가 공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는 제15대 침류왕 원년(384)에 인도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중국 동진(東晋)에서 건너와 불교를 전했다. 왕이 교외에까지 나아가 그를 맞아들여 궁중에 머물게 하고 공경히 받들어 공양하며 그의 가르침을 품수했다. 이듬해 2월에는 왕실은 새롭게 도읍한 한산주(漢山州)에 절을 짓고 10명의 승려를 출가[受具得度]시켰다. 제17대 아신왕은 “불법을 높이 받들어 믿고 복을 구하라”[崇信佛法求福]는 교지를 내렸다. 왕이 불교의 교화를 좋아하여 크게 불사를 일으키고 함께 기리며 받들어 행하자 불교가 널리 퍼져 나갔다. 내용적으로는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구사와 성실 및 삼론과 법화 등이 공존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가야는 인도 혹은 동남아 또는 백제에서 불교를 받아들였다. 가야는 시조인 수로왕(首露王, 42~199)의 부인인 허황옥(許黃玉)이 아유타국(阿踰陁國)에서 올 때 배에 싣고 왔다는 바사석탑을 주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석탑만으로 가야불교의 기원을 잡기에는 여러 면에서 무리가 있다. 이외에도 수로왕의 도읍 지정 이야기와 만어사 설화 그리고 장유사의 전설과 칠불암 설화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 설화와 전설 역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 그 뒤 제8대 질지왕 2년(452)에 왕이 수로왕의 부인인 허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로왕과 왕후가 결혼한 곳에다 왕후사를 세웠다. 그리고 삼보에 공양 올릴 비용으로 절 주변의 평전 10결을 주었다. 


가야불교는 왕실에 의한 기획과 지원을 공인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특히 국호인 ‘가락’(駕洛)이 ‘가야’(伽倻)로 바뀌게 된 것은 그 땅에 불교가 전해진 뒤에 오래지 않아서 그 불전(佛典)의 이름을 취하여 종래의 ‘가락’이나 ‘가라’(加羅)라 써오던 옛이름 대신에 ‘가야’(伽倻)라 하였을 것이며 그 지방에 불교가 처음으로 행하여진 때(질지왕 2년, 452)를 상한선으로 하여 그 뒤의 오래지 않은 시기에 가야라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본다면 가야불교는 북방불교와 남방불교 모두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신라는 제13대 미추왕 2년(263)과 제19대 눌지왕(417~458) 및 제21대 비처왕(479~499)과 제23대 법흥왕 14년(527)에 승려 아도(阿道) 혹은 사문 묵호자(墨胡子)가 불교를 전해왔다는 기록이 혼재한다. 그런데 이들 기록에는 모두 아도(阿道)와 묵호자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물론 아도는 ‘머리카락을 깎은 사람’[阿頭, 我頭]으로, 묵(흑)호자는 ‘얼굴이 시커먼 외래 사내’[黑胡子]라는 일반명사의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는 미추왕 대부터 불교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국가적 수용이 있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결국 법흥왕 대에 있었던 이차돈(異次頓, 506~527)의 순교사건을 계기로 삼아 불교를 공인했다. 그리고 고목신앙의 성소였던 천경림(天鏡林)은 불교 사찰인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로 대체되었다.


이들 네 나라로 대표되는 초기 한국불교는 사찰을 ‘복을 닦아 죄를 멸하는 곳’[修福滅罪之處]으로 인식했다. 해서 왕은 이들 사찰을 중심으로 ‘불법을 받들어 믿고 복을 구하라’[崇信佛法求福]는 교지를 내렸다. 고구려와 백제 및 가야는 왕들의 적극적인 수용과 지원에 의해 국가불교가 되었다. 이와 달리 신라는 천신(天神)신앙과 고목(古木)신앙 및 귀족세력의 반대를 물리치고서야 불교를 공인할 수 있었다. 결국 가야는 신라에 의해 흡수되었고 고구려와 백제는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에 합병되어 통일신라가 탄생하였다. 통일신라 불교는 이들 네 나라 불교의 에너지를 종합하여 한민족의 이해와 요구에 부응하는 민족불교로 한국불교를 꽃피웠다.



4. 대승불교의 확산과 전통화


사국의 불교는 각기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고구려와 백제 및 신라의 적극적인 불교정책은 불교의 확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 신라는 이차돈 순교를 겪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불교를 공인할 수 있었다. 신라는 법흥왕과 진흥황 이래의 르네상스에 힘입어 통일의 기반을 다지면서 먼저 가야를 흡수하였다.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신라는 사국을 통일하였다. 반도 내의 통일신라와 대륙의 대발해는 남북국 시대를 열면서 각기 한민족의 기질과 토양을 아우르며 발전해 나갔다. 


먼저 고구려는 승랑(僧朗)의 삼론학과 보덕(普德)의 열반학을 기반으로 고구려불교의 독자성을 확립하였다. 여기서 구사학과 성실학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부파불교를 기반으로 한 종학으로 전개되었다. 백제는 현광(玄光)의 법화학과 혜현(慧顯)의 삼론학 및 겸익(謙益)의 율학을 기반으로 백제불교의 독자성을 확보하였다. 여기서 겸익의 율학은 아비담 율부를 기초로 한 부파불교 교학이었다. 이 점은 동진에서 건너온 마라난타의 도래와 함께 소승 아비담율을 수용하고 주석을 달고 왕이 서문을 달기까지 한 백제불교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중국에서 도선(道宣)에 의해 대승의 율학으로 대성되어 남산 율종으로 이어졌다.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서 활발했던 삼론학과 열반학, 구사학과 성실학 등을 이어받았고, 스스로도 중국으로 유학승을 보내 지론학과 섭론학, 율학과 밀학, 자은(법상)학 등을 흡수하였다. 이어 중국불교의 최종적 형태인 천태종과 화엄종, 정토종과 선종까지도 흡수하였다.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불교의 성취를 계승하면서 유식을 기반으로 한 문아(圓測)의 일승(一乘/대승-소승)학과 여래장을 기반으로 한 원효(元曉)의 일심(一心/心眞如-心生滅)학 및 화엄을 기반으로 한 의상(義湘)의 이기(二起/性起-緣起)학 등으로 승화되었다. 태현(太賢)의 유식학과 원표(元表)의 화엄학도 신라불교의 주축을 세워갔다. 이는 통일신라 불교가 본질[性宗]에 치중하는 삼론학과 천태학보다는 현상[相宗]에 집중하는 유식학과 화엄학에 집중한 결과로 보인다. 이처럼 신라 통일 전후기의 사상적 경향은 유식학과 화엄학이 주축이었다.


특히 이 시기는 불교의 토착화에 기반한 교학의 발전으로 민족불교의 문예부흥을 이루어냈다. 통일신라 불교사상가들은 당시 동아시아 불교사상사의 논의들을 흡수하여 이 땅의 기질과 토양 위에서 대승불교를 새롭게 해석해 내었다. 이러한 사상적 토대 위에서 과학과 종교와 예술이 아름답게 통섭된 미륵반가사유상과 불국사 및 석불사 본존불(석굴암)과 같은 미학이 탄생할 수 있었다. 불교사상가들은 중국 이래의 13종파 불교를 수용하면서도 1종 1파에 매이지 않았다. 유식가였다가 정토가 등이 될 수 있었고, 화엄가였다가 유식가 등이 될 수도 있었다. 오히려 각 종파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불교 통합의 노력을 기울였다. 대발해 불교 역시 고구려 불교를 계승하고 당시 북위(北魏) 및 당(唐)으로 대표되는 중국불교를 흡수하면서 독자적인 불교를 일구었고 일본불교와 여러 차례 교류하였다.


신라 하대와 고려 전기에는 종래의 교학 및 교종에 대응하는 선학 및 선종이 전래해 왔다. 선법의 전래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을 확립시켰고 이후 한국불교의 특징이 되는 교선일치(禪敎一致) 혹은 선교일원(禪敎一元)의 전통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불교는 붇다의 마음을 일컫는 선과 가르침을 일컫는 교의 기반과 토대를 확보하면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더러는 교가 주가 되고 선이 종이 된[主敎從禪] 적이 있었다. 더러는 선이 주가 되고 교가 종이 된 적[主禪從敎]도 있었다. 고려의 균여(均如)와 의천(義天)은 교학의 정점인 화엄학의 독자적 문법을 세웠다. 간화선법을 기반으로 한 선종과 화엄학을 기반으로 한 교종의 경쟁은 오히려 한국불교의 건강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 결과 지눌(知訥)과 일연(一然)은 간화선과 묵조선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리고 태고(太古)와 나옹(懶翁)은 임제선과 무심선의 기틀을 확보했다. 이들은 이 시기 고려불교의 대표적인 선사들이었다.


조선조에 들어서자 이전 시대와 같은 국가불교 시대를 마감하고 자생(自生)불교 시대를 열어갔다. 조선의 태종과 세종은 고려 이래의 불교교단을 7종 혹은 선교(禪敎) 양종으로 구조 조정하였다. 그 결과 연산군과 중종 때는 불교의 구심이 완전히 해체되었다. 비록 교단이 해체되기는 했지만 불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선 정부는 서울 사대문 안에 승려들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불교는 여전히 백성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있었다. 불자와 유자들은 외유내불(外儒內佛) 혹은 양유음불(陽儒陰佛)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존재감을 유지해 갔다. 조선 중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맞이하면서 승병을 일으켜 호법(護法)을 위한 호국(護國, 勤王)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후 휴정의 문도들인 사명, 소요, 편양, 중관의 사대문파들은 부휴계와 연합하여 임제법통의 확립과 간화선 우위의 선교겸수의 전통을 확립했다. 이 과정에서 태고 보우 법통설이 확립되었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거친 뒤 강원과 선원과 염불원으로 이루어진 삼문(三門) 수업의 형식으로 불교의 수행체계가 정비되었다.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의 제자 편양 언기(鞭羊 彦機, 1581~1644)는 스승의 사상을 계승하여 경절문(徑截門)과 원돈문(圓頓門)과 염불문(念佛門)에 짝지었다. 그리고 그는 이들 셋에 대응하는 ‘근기는 각기 다르지만 법은 하나’라고 했다. 즉 삼문은 방편상 셋이기는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일심문에서 나온 하나였다. 비록 공식적인 교단은 사라졌지만 삼문 수업의 확립을 통해 무형이나마 교단은 복원되었다. 그리고 이 때 확립한 임제 태고법통은 조선 후기 불교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졌고 그 역사적 권위는 근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조선 말 대한 초에 들어서면서 불교계 사정은 어려워졌다. 다만 몇몇 선각자들의 노력에 의해 대한불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국권을 잃었던 식민지 시절의 불교는 더욱 어려워졌고 그 후유증에서 비롯된 교단 정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통 불교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렸다. 1950년대의 정화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분규가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진입한 한국불교는 다시 소생하여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오랜 역사 동안 한국불교는 북방불교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13종파의 물리적 종합(비빔)과 화학적 삼투(곰)의 방법으로 인도-중국-일본 불교와는 다른 개성을 발휘해 왔으며 선법과 교학의 통섭의 노력인 ‘교선일치’(敎禪一致, 義天), ‘선교일원’(禪敎一元, 지눌), ‘사교입선’(捨敎入禪, 휴정)을 특징으로 해 왔다. 그리하여 한국불교에서 대승불교는 확산되었고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한국불교는 북방불교를 수용하면서도 소승에 상대되는 대승을 넘어선 일승(一乘)의 종합성과 13종의 지류들을 통섭하는 바다와 같은 일미(一味)의 독자성을 발휘하였다. 


  

5. 남방불교의 재전래와 수용


우리나라 고중세 이래 한동안 단절되었던 남방불교는 개혁과 개방을 물결을 타고 새롭게 전래되었다. 때는 민주화가 막 마무리 되어가던 1980년대 말엽이었다. 한국은 1960~1970년대의 산업화를 마감하고 1980년대 이래 민주화시기를 맞이했다. 민주화시절 내내 군사정부에 대한 비판적 에너지의 발산으로 극도의 대립을 경험한 세대들은 민주화의 막바지에 이르자 이념 갈등에서 비롯된 정치적 혼란상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졌다. 


해서 바깥으로만 발산하던 에너지의 고갈로 생긴 심신의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즈음 불교계 일부가 민주화 과정에 동참하면서 불교계 내의 주요 수행법인 간화선의 효용성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1989년 무렵 위빠사나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스리랑카와 태국 및 미얀마 등 동남아 불교 국가로부터 위빠사나가 알려졌다. 


당시 조계종 수행자였던 거해(巨海)의 안내로 미얀마의 우빤딧따 사야도가 그의 스승 마하시 사야도(1905~ ?)가 전세계에 널리 알린 수행법인 위빠사나를 한국에 소개하였다. 그 뒤 거해는 위빠사나선우회를 조직하여 많은 회원들을 이끌고 미얀마 등지에서 수행하면서 남방불교로의 출가를 촉발시켰다. 특히 이 선우회는 90년대 초반 이래 활발한 수행프로그램과 미얀마 등지의 성지순례법회를 이끌면서 국내에 위빠사나 수행붐을 주도했다.


위빠사나는 수행방법에 따라 행선과 좌선, 생활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배의 팽창과 수축에 주의를 기울여 지켜보며 배가 팽창하고 수축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단계부터 시작한다.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 저림과 아픔, 가려움 등 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각과 망상, 기억, 분노, 행복 등 마음의 상태를 관찰할 수 있다. 때문에 비교적 배우기 쉽고 경전에 제시된 수행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어 출가자 뿐만 아니라 재가자들에게서 큰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이즈음 미얀마를 비롯한 태국과 스리랑카의 고승들의 서적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민주화 운동을 통해 바깥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던 한국인들은 이제 내면의 자기를 찾고자 위빠사나에 대해 크게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일부 국내 출판사와 불교 출판계가 초기 불전들과 동남아 고승들의 저술을 번역해 내기 시작하면서 남방불교에 대한 재인식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때마침 미얀마와 태국 및 스리랑카 등지에서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위빠사나선우회 출신의 김열권 등 재가 수행자들에 의해 남방불교는 불교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새롭게 인식되었고 널리 확산되었다.


더욱이 동남아 출가 수행자들과 노동자들이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출가자와 신행 중심의 북방불교와 재가자와 수행 중심의 남방불교는 한국 불교계의 지형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일찍이 간화선 수행의 관성화를 경계하고자 무심선(無心禪)을 제창했던 고려 말의 인도 날란다 대학 출신이었던 지공 선현(指空 禪賢, 1235~1361) 선사의 가풍과도 상통하는 점이 있다. 간화선법을 들고 정진하던 수좌들도 잠시 화두를 내려놓고 미얀마 등지로 수행을 떠났다. 그들은 위빠사나를 통해 간화선 수행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점차 출가 중심 정통교단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재가 중심의 수행공동체와 수행문화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수행에 목말랐던 다수의 불자들이 미얀마 등지로 건너가 출가수행을 계속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수행 중심으로 이어지던 위빠사나 공동체를 제어하기는 어려웠다. 위빠사나가 소개되기 시작하던 1989년 전후 전통 교단은 남방불교의 안착을 경계하면서 위빠사나 지도자들을 회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위빠사나는 대중적인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제3수행법과 함께 널리 확산되면서 새로운 수행법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렇게 되자 기존 교단은 더 이상 위빠사나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고 교단 내에서도 자기반성에 기반한 변화의 기운이 태동했다. 급기야 전통 사찰에서도 위빠사나와 사마타 및 아나사나빠띠 수행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개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전후에 이르러 전통 교단은 대중들의 수행에 대한 욕구와 변화를 감지하면서 종래의 간화선을 되돌아보며 간화선에 전반에 대한 지침을 담은 교재와 간화선 대중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불교의 브랜드인 간화선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동시에 템플스테이(사찰체험)문화가 보편성을 얻으면서 간화선의 대중화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이처럼 위빠사나의 확산은 전통 교단에 큰 자극제가 되었고 수행에 대한 방법을 재검검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촉매제가 되었다. 동시에 위빠사나 수행자도 크게 늘어나면서 선원과 수행처가 탄생되었고 기성 교단과 변별되는 새로운 불교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불교계로 보아서는 일거 양득이었고 모두가 사는 윈-윈의 길이었다.


이와 더불어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와 베트남의 틱낫한의 서적들이 국내에 번역되어 열독되면서 수행공동체 설립은 더욱 확산되었다. 비록 달라이 라마는 한국에 오지 못했지만 그는 인근 일본과 대만 및 호주 등지에서 한국불교의 발전을 기원했다. 틱낫한은 2003년 한국에 입국하면서 프랑스의 ‘플럼빌리지’(자두마을)은 세계적인 수행처로서 한국에 널리 소개되었다. 결국 수행에 대한 다양한 요구는 새로운 수행공간을 탄생시켰고 급기야는 새로운 수행문화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위빠사나에 대한 국내 언론 및 불교계 언론들의 보도에 힘입어 수행 관련 정보들이 공유되었고 교단 안팎에 수행의 필요성에 관한 여론이 조성되었다. 아래 도표는 현재 한국불교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남방불교 수행처 내지 위빠사나 수행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도량들이다. 우선 선원 대표와 정진 일시 등이 확인되는 도량 중심으로 도표를 작성해 보면 아래와 같다.


  


< 도표 1 > 전국 위빠사나 선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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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원 선원장 정진 일시 위 치 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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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선원 붓다락킷따 토요집중수행 경기도 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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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보디선원 냐나로까 둘째 셋째 주말 경북 경주 내남면 박달리 


(慧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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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불교한국명상원 妙圓 월화수토/자율정진 서울 강남/ 경기도 가평 설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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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사 性悟 매주 금토 자율정진 서울 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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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사 寂境 주말 초심수행자 경기도 남양주


금 9박10일 집중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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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마을 能慧 금 2박3일/ 충북 천안


집중수행 5박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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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연위빠사나 牧牛 매일 자율정진 광주 주월동


명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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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마로까 담마위하리


(연방죽선원) (法住) 경험수행자 수시가능 경북 봉화 아나빠나사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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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야나미따명상선원 수시/월말 집중수행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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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선원 지장사 김열권 목 4박5일 집중수행 충북 조치원 아나사나빳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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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넷째주 금요일 경북 김천


집중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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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반냐라마 붇다빨라 토 집중수행/ 서울 서초


(本願) 자율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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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반냐라마 붇다간다 목 집중수행/ 대구


자율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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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반야라마 담마디빠 자율정진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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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사 빤냐완따 넷째 일 오전10시 경남 산청


(忍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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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사 담마선원 재범 두 달에 한번 6박 7일 강원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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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사 다보수련원 平等 수시(여름집중수행) 충북 괴산 사마타, 자애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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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하시선원 우또다나 목/ 자율정진 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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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길따라 빤냐와로 화목일/ 자율정진 부산


(眞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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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사 자율정진 경남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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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암 法山 화목토 경북 영천시 청통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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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디따라마 우빤딧따 주말/자율정진 서울 약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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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마코리아 수시 경북 상주 푸른누리 도량


고엥카 명상코스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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