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애착에 대하여 (4) / 빤냐완따 스님

관리자
2024-08-18
조회수 72


《 '애착'에 대하여 》4/5


                 [ 4 ]


이 승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수행법을 배우거나 수행중에 장애를 만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녀와의 갈등문제ㆍ가정불화ㆍ사업실패로 인한 극도의 절망감ㆍ우울증ㆍ자폐증 등 다양한 고민거리를 가지고 찾아옵니다. 문제가 심각한 경우에는 직접 상담하지만 대개는 전화로 도움을 줍니다. 


아래에 소개될 4가지 사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보편적 속성인 <애착>(갈애ㆍ집착)과 관련된 것으로서, 첫번째ㆍ두번째는 직접 상담을 통해 오래전에 치유되었거나 현재 치유중인 사례이며, 세번째는 최근에 이 승이 실제로 겪었던 일을 정리해놓은 것, 그리고 네번째는 미얀마 불교대학교 총장을 지내셨던 난다말라 비왐사 큰스님의 일화입니다.



       《 사례ㆍ1 》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이 승이

경남 산청에 머물고 있었는데, 

50대 초반의 여교수님(싱글맘) 한 분이 

짙은 색안경을 낀 채 따님의 부축을 받으며

찾아왔습니다. 사연인 즉은


시간강사로 시작하여 부교수까지는 됐지만 

아직 정교수가 되지 못해 늘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분발하여 연구실적도 많이 쌓고

학교측에 거액의 기부까지 함으로써 마침내 

정교수직에 대한 약속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런데 최종발표날 총장님 말씀이,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도 이번엔 

누락되었습니다. 다음번에는 꼭... "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극도의 절망감으로 그만 시각을 거의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병원에서도

손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지인이 이 승을 한번 찾아가보라 했답니다.


충격을 받으면 눈이 먼다는 얘기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대하니 난감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확신은 없었지만 희망을 주었습니다. 


"선천성은 아니니 어쩌면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명상수행을 통해 극도의 안정을 취한다면

(삼매에 들어 극도의 평온을 체험하고 나면)

어느 정도는 회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님, 진정으로 살고자 한다면 

시키는대로 한번 해보십시오.

현재로선 마음집중이 거의 불가할테니

집에 가셔서 108배 절부터 해 보십시오.

몸의 동작(움직일 때의 감각) 하나하나에 

아는 마음을 일치시켜 관찰해 보십시오.

그리고 거실이나 마당에서 줄을 잡고

왼발ㆍ오른발,  왼발ㆍ오른발 ... 혹은 

들고 ㆍ가고ㆍ놓고,  들고 ㆍ가고ㆍ놓고 ...

이렇게 발의 움직임의 감각에 

아는 마음을 일치시켜 관찰해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이 차츰 진정되면 그때부터는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을 해 보십시오.

살려면 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건강이 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부처님전에 마음 모아 축원 올리겠습니다."


그리고는 헤어졌습니다. 그 뒤 이 승이 

외국에 나가있는 바람에 소식이 끊겼었는데

1년만인가 2년만인가 연락이 왔습니다.


"스님,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처님전에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통화 말미에)


"스님, 좋은 사람이 한 분 생겼습니다. 

나이 차이가 좀 나는데 어떨까요? ..."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얼마나 진실되게 사느냐가 중요하지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는데 이제

좋은 도반 만났으니 함께 수행하면서

모쪼록 건강하고 행복한 삶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결과에는 초연하라"

는 옛 성현의 말씀이 있습니다.

결과를 전혀 생각지 않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결과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과에 대해 초연하게 되면

마음이 편안하고 유연해집니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공간이 넓어져서

그 어떤 극한 상황에 놓일지라도 

결코 당황해하거나 절망하지 않음으로서 

모든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부디, 대자대비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이 

댁내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 사례ㆍ2 》 


이 사례자는 <우울성 감정조절장애>로 인해  10년 넘게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중년여성 불자입니다. 감정기복이 잦다보니 종종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빚습니다. 얼마전에는 가족(남편과 자녀)과의 감정충돌로 인해 가족이 해체될 수도 있는 상황까지 갔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긴 시간 상담해 본 결과 의외로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올곧고 가족애가 투터운 분이었습니다. 


몇 달전 사례자는 친정 어머님과 함께 직접 이 승을 찾아와서 그간의 속사정과 온갖 속깊은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의 글은 사례자와의 상담을 일단락 지은 후 그간의 내용을 정리해서 문자전송한 <당부의 글>입니다. 당사자의 양해를 구하여 인명이나 구체적인 상황ㆍ시점은 밝히지 않고 미흡한 부분 몇곳 손을 본 다음 여기에 올립니다. 


                ※


부처님ㆍ담마ㆍ상가에 지심귀의하오며,


매화꽃 피는 봄날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보살님과 보살님 가족의 평안을 위해 이 승의 인생경험과 수행의 지혜를 조금 발휘해 보았습니다.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보살님께서는 잘 받아들여 주셨고, 그 덕에  당장은 아니지만 반드시 조금씩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질 것같은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부처님 가르침 따라 지혜롭게 이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머지않아 옛이야기할 날 반드시 올 것입니다.


보살님은 장점이 참 많은 분입니다. 또래 엄마들과 다르게 매우 가정적이고, 알뜰한 주부이고, 매우 정숙하고, 한마디 한마디가 이치에 맞는 말씀입니다. 가족들이 이 승에게 보내온 문자만 보더라도 걱정하고 계신 친정 어머님이나 애들아빠보다는 보살님이 더 사려깊어 보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입니다. 


보살님은 보살님만의 올바른 정신의 틀(가치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틀이 너무나 견고해 보입니다. 그래서 장점이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틀, 즉 나의 바른 생각, 나의 그런 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본인이 힘들뿐만 아니라 상대방은 더욱더 힘들어집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는 법입니다. 


현대는 개인주의, 즉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입니다. 누구나 간섭받는 걸 실어합니다. 특히 보살님의 도덕적 가치기준을 애들아빠나 애들은 따라가기 힘듭니다. <당신은 내 남편이니까 이렇게 해야 해>, <내 아이들은 저렇게 하면 안돼 이렇게 해야 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갈등이 생겨납니다. 그로인해 수없이 부딪쳐 왔지 않습니까?


보살님의 기준이 있듯, 그들에게도 저마다의 가치기준이 있습니다. 애들이 밥을 안먹든, 집안을 어질러놓든, 혹은 애들아빠가 연락을 안하고 밤늦게 들어오든, 친척친구 집에서 자고 들어오든 그 어떤 상황일지라도 좀 너그럽게 보아넘길 줄 아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때론 실수도 눈감아주고 내마음 안알아준다고 너무 야속해 할 것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안되는 게 인생입니다. 


나만 옳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자녀도 부부도 부모도 본래는 모두가 외로운 행성입니다. 그들은 모두 평행선을 걷고 있는 언젠가는 영원히 이별해야 할 타인입니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뿐입니다. 지나치게 집착하면 고통이 뒤따릅니다. 그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나치게 나의 잣대를 들이대지 마세요.


진정으로 그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기도해보세요. 보살님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보살님이 행복해집니다. 애들과 애들아빠는 엄마의 그러한 따뜻함ㆍ너그러움을 원하고 있습니다. 보살님이 부정적인 감정을 자제하고 좀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진다면 애들과 애들아빠는 감동하여 돌아오지 말래도 돌아옵니다. 


애들과 애들아빠는 그렇게 안하는데 보살님에게만 그러라하니 야속하고 속상하지요?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당장 상대방을 바꿀 순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바뀌어야죠. 그래야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바뀌면 신기하게도 상대방도 바뀝니다. 보살님이 살기 위해선 보살님만의 고정관념ㆍ견고한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단단한 틀을 <유연한 틀>로 바꿔야 합니다. 견고한 틀에 대한 집착, 상대방에 대한 강한 애착을 내려놓지 않으면 본인도 상대방도 힘들어집니다. 


세상에 내맘에 딱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마음 안알아주고, 내뜻대로 안한다고 해서 미워하고 증오하면 상대방도 괴롭지만 내가 더 고통스럽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집착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내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해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의 희생으로 상대방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보살님의 감정기복과 감정변화의 진폭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크다고 해서 스스로 그 감정에 굴복당해서는 안됩니다. 원래 내 의지대로 통제가 잘 안되는 것이 인간의 감정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내 마음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화를 내면 그 화를 받아주기보다는 상대방은 더 강하게 반발합니다. 화 때문에 가정이 해체되고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한 순간의 화를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화를 잘 참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잘 알지(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 못하면, 혹은 <이미 화가 일어났음>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화에 사로잡혀 감정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욕설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합니다. 


화를 통제하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화라는 감정이 상대방은 물론 본인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지는가에 대해 사무치도록 숙고해야 합니다. 이 승이 하는 말 뼈에 사무치도록 새기고 또 새겨서 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뇌리에 각인시켜야 합니다. 이 승이 준 빨리어 예불문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독송하십시오. 특히 <자애경>을. 그리고 틈날 때마다 이 승이 준 책이나 글도 반복해서 읽어보세요. 


<두번째> 방법이 화를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것은 화가 일어날 때 화나는 감정을 알아차림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가 일어날 때 그 감정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갑니다. 한번 빨려들어가면 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채 <화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 악역을 일부러 자처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태나 이미 화가 일어나서 흥분하고 있는 상태를 알아차리면 그 화는 더이상 증폭되지 않습니다. 가령 창문 넘어 들어오는 도둑(화)을 집주인이 두눈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다면 과연 도둑이 들어올 수 있을까요?


화는 본래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뜬구름같은 것입니다. 화는 대상에 반응하면서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자연적인 심리현상일 뿐 마음속에 화의 주머니가 들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는 대상(상대방)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강도가 올라갑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화낼 일도 없지요. 그렇다고 상대방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이 마음이 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화가 날 때는 즉흥적으로 표출하지 말고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한 다음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상대방 앞에서 화가 치밀어오르면 먼저 두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심호흡을 하세요. 크게 한번, 두번, 세번. 그리고 치밀어오르고 있는 화를 들여다보세요. 화가 조금씩 갈아앉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화가 진정되지 않으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세요. 그리고 걸으세요. 왼발ㆍ오른발,  왼발ㆍ오른발 ... 혹은 들고ㆍ가고ㆍ놓고,  들고ㆍ가고ㆍ놓고 ... 하며 가볍게 산책하세요. 대화를 나눠보니 보살님은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 때문인지 요즘은 처음보다 훨씬 편안해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고초를 너무나 긴 시간동안 겪다보니 고요히 앉아 어느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너무 조바심내지도 마세요. 십수년을 마음고생하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마음 먹은대로 되겠습니까? 멀리 보고 가세요. 무량한 공덕을 갖추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가세요.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혹은 머지않은 어느날에 고통의 끝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이 이 승의 인생경험과 수행체험을 통해 터득한 행복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보살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보살님과 보살님 가족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는 행복한 날이 곧 올 수 있기를 먼발치에서나마 기원하겠습니다. 천신의 보호가 함께하기를!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가족 모두의 마음속에 환하게 비춰지기를!

 

                ※


자식마저도 의지가 되지 못하고

부모 배우자도 그를 지켜주지 못한다네.

마침내 죽음이 그에게 닥쳐왔을 때

어느 누구도 그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네.


이 같은 진리를 안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계율을 청정히 하고

마음의 온갖 장애들을 제거하여

빠르게 닙바나(열반)의 도에 이른다네.


                           《Dhammapada》

       .              <법구경> 288ㆍ289 번송


                ※


    불멸 2568. 4.19

    천림산 기슭에서 

    메따와 함께 _( )_


0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010-4242-5140/ 010-3181-2316 

E-MAIL: stonhi27@hanmail.net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ALL RIGHTS RESERVED.


CONTACT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010-4242-5140/ 010-3181-2316

E-MAIL: stonhi27@hanmail.net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

ALL RIGHTS RESERVED.




© BYULZZI Corp.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byulz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