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계율(戒律)은 열반의 주춧돌(7)/빤냐완따 이사장 스님

Mahanama
2021-05-01
조회수 116

7. 계행의 향기

  

어느 날 아난다 존자는 좌선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장 훌륭한 향기를 지니고 계신다. 물론 향기 중의 으뜸은 전단향과 꽃과 나무뿌리의 향기이다. 그런데 이런 물질적 향기들은 바람을 따라 가면서 향기를 풍기게 마련이다. 혹 향기가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풍길 수도 있는 것일까? 부처님의 향기는 어떨까?’ 아난다 존자는 생각 끝에 직접 부처님께 가서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이 세상 사람들로서 그가 장터에 살거나 마을에 살거나 관계없이 삼보를 의지하고 오계를 지키면서 신구의(身口意) 3업을 청정히 하고, 모든 착하지 않은 업을 멀리하고 착한 업을 지키면서 남의 고통과 어려움에 동참하여 덕이 높아 정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느니라. 그들은 그런 행동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번뇌로부터 벗어나 고통의 노예 상태에서 풀려날 것이니 그런 사람은 모든 수행자들로부터 찬사를 받느니라. 아난다여, 이와 같이 자신이 어디에 살던지 착한 행동으로서 명예와 찬사를 얻는다면 그 명성의 향기는 능히 바람을 따라가기도 하고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느니라.”

 

그리고는 다음의 게송들을 들어주셨습니다.

 

꽃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하고

산달과 따가라와 자스민의 향기 또한 그러하니라.

오직 계행의 향기만이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나니

착한 사람의 착한 행은 사방으로 퍼지느니라.

 

산달 향과 따가라 향

연꽃 향 또는 자스민 향이 있다 하나

위와 아래의 모든 향기 가운데

계행의 향기가 으뜸이니라.

 

부처님께서 한때 마하깟사빠 테라가 라자가하의 어느 가난한 마을로 탁발을 나갔다가 가난한 집의 공양이 아닌 삭가 천왕의 공양을 받은 일과 관련하여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들려주셨습니다.

 

따가라 향기와 산달의 향기는

매우 미미하고 약한 것.

오직 계행의 향기만이 강하나니

마침내 천상에까지 이르느니라.

 

이와 같이 계행의 향기는 바람이 부는 위로도 아래로도 바람을 거슬러서도 널리 퍼져 향기를 뿌립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향기도 지계의 향기로움에는 견줄 수 없으며, 천상에 이르는 사다리가 되고 닙바나에 들어가는 문이 된다 하셨습니다. 또한 계를 잘 지키는 사람은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고, 온갖 위험 등을 물리치며 편안한 기쁨을 가져와 항상 밝은 즐거움을 갖게 해 줍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이웃에게 두루 착한 일을 행할 때 우리들의 마음은 맑아집니다. 지계를 실천하며 나눔을 행할 때 우리들의 마음은 밝아집니다. 마음에서 향기가 납니다. 마음에는 울림이 있습니다. 울림에는 청아한 울림과 향기로운 울림이 있고, 소음이나 잡음 혹은 불쾌한 울림이 있습니다. 이 울림이 세상을 아름답게도 하고 추하게도 합니다. 건강하게도 하고 병들게도 합니다.

 

향 산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 묶었던 새끼줄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냄새나는 물건을 가까이했을 때 그 냄새가 몸에 베이는 것처럼 행실이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사람의 나쁜 행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하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품행이 단정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게 됩니다.

 

착한 행실로써 불선업을 짓지 않는 것이 지계의 실천입니다. 불선업을 짓지 않음으로써 선업이 증장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됩니다. 지계의 실천은 악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함은 물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음으로써 저절로 남까지 보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계는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도덕행이요 공덕행입니다. 지계를 잘 실천하는 수행자는 불선업을 지었을 때의 부끄러움과 더러움과 그 과보의 두려움을 알기 때문에 계행을 더욱 청정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굿따까 니까야』의 <빠띠삼비다 막가>(無礙解道)에서는 ‘착한 의도가 곧 계행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착한 의도는 스스로를 악으로부터 막아서 잘 보호해 줍니다. 즉 생명을 해치지 않고 보호해주며, 주지 않는 물건은 절대로 갖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배품을 행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된 언어로써 모든 행동을 올바르게 하기 때문에 ‘착한 의도를 계율’이라고 한 것입니다. ‘착한 의도’ 안에는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 남을 미워하는 마음,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착한 의도’는 만족과 감사와 자애와 연민이 늘 함께합니다.

 

흔히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난다’고 하지요.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생의 업 때문에 태어났고, 업을 지으며 한평생 살다가 업을 가지고 임종을 맞이합니다. 그 업이 다음 생을 결정짓습니다. 죽은 뒤에는 여전히 지계(持戒)라고 하는 선업의 흔적과 파계(破戒)라고 하는 불선업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고, 죽을 때 고스란히 그 업들을 가지고 선처에 나거나 악도에 떨어집니다. 『디가 니까야』<완전한 열반 경>(DN:16)에 계행이 나쁜 자의 위험과 계행이 청정한 자의 이익이 설해져 있습니다.

 

장자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에게

5가지의 위험이 있느니라. 무엇이 다섯인가?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는 방일한 결과로

큰 재물을 잃게 되느니라....

악명이 자자하게 되느니라.....

그 어떤 회중에 들어가더라도

의기소침하게 들어가느니라.

또한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는

몽매한 채로 임종을 맞느니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느니라.

 

장자들이여,

계를 가진 자가 계를 받들어 지님에

5가지의 이익이 있느니라. 무엇이 다섯인가?

계를 지니고 계를 갖춘 자는 방일하지 않은 결과로

큰 재물을 얻게 되느니라....

훌륭한 명성을 얻게 되느니라.....

그 어떤 회중에 들어가더라도

두려움이 없고 당당하게 들어가느니라.

또한 계를 지니고 계를 갖춘 자는

몽매하지 않은 채로 임종을 맞느니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악도에 떨어지는 일 없이

선처(善處) 혹은 천상세계에 태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탐욕(욕망)보다 더 뜨거운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청정한 계행은 타오르는 탐욕의 불길을 진화해 줍니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들뜨지 않고 편안해지도록 합니다. 탐심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서늘하게 식혀 줍니다. 오직 지계의 공덕수만이 탐욕의 불길을 진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성냄(분노)보다 더 독한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청정한 계행은 그 치명적인 분노의 독성 물질을 해독시켜 줍니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경직되거나 들뜨지 않고 편안해지도록 합니다. 성냄으로 중독된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줍니다. 오직 지계의 공덕수만이 성냄의 독성물질을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저속한 행, 깨끗하지 못한 행,

의심스러운 행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

감추어야 할 행이 있는 이

비구가 아니면서 비구라고 하는 이

높고 거룩한 행을 하지 않으면서 높은 행을

하는 것처럼 꾸미는 이, 몸(마음)이 온통

썩은 번뇌에 젖어 있는 쓰레기 같은 이,

이러한 파계자 보다는 차라리 벌겋게

불타는 불덩이를 안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이

훨씬 나으리라. 왜냐하면

불덩이를 끌어안고 있다 죽으면

그 몸은 한 생에만 죽음에 이르지만

오욕락에 빠진 채 나쁜 쓰레기같은 비구로 죽으면

그 몸이 죽은 다음에 즐거움이란 하나도 없는

악처에 떨어져 오랜 생을 고통 받게 되느니라.

 

이 세상에서 잘 단장한 이들이

분뇨를 멀리 하듯이, 썩은 시체를 피하듯이

선한 이들은 파계자와 가까이하는 것을 꺼리느니라.

선정과 도과의 행복에서 벗어나며,

천상의 문을 닫고 4악처의 문을 열어놓는 것과 같나니

이것이 불쌍한 것 가운데 가장 불쌍한 것이니라.

이러한 허물을 잘 생각하여 허물과 이익을

잘 선택해야 하나니, 계를 잘 지키는 비구는

모든 더러움에서 벗어나 깨끗하며

가사와 발우를 사용함에

신심이 있는 이들로 하여금 신심을 더욱 돈독캐하며

구름이 해의 밝음을 다 가리지 못하듯이

계헁이 청정한 비구의 가슴에

아견(我見)의 위험이 들어오지 못하느니라.

밝음으로 가득 찬 밤하늘의 아름다운 보름달처럼

계헁이 청정한 비구의 수행은 불법의 숲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느니라.

 

『위숫디막가』의 <Sīla-niddesa>(계율을 널리 보임)편은 이렇게 지계와 관련된 부처님의 말씀을 거듭거듭 강조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짓습니다.


지계의 향기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지계의 향기는 향기 가운데 으뜸이며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이 퍼져간다.

지계가 갖추어진 비구의 선업 공덕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큰 이익을 가져온다.

그래서 지계가 있는 비구에게 예를 갖추고

공양을 올리는 것은 커다란 복전이 된다.

인간의 행복과 천상의 행복 이 2가지 행복을

지계가 있는 비구가 얻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쉽게 얻는다.

닙바나의 행복은 한계나 구분이 없이 편안하다.

지계가 있는 이의 마음은

닙바나의 행복을 향하여 달려간다.

이토록 거듭거듭 강조하여 설명하는 것은

수행자들로 하여금 파계의 두려움을 알아

더욱 더 계를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다.

계를 파하는 허물과 지계 구족함의 이익을 잘 살펴서

남김 없는 공경과 조심스러움으로 청정히 해야 한다. 무릇 지혜 있는 수행자는 지계에 잘 머물러서

마침내 계·정·혜를 구족한

청정한 도(道)에 들어간다.

 

불교에 있어서 도덕적 행위와 수행이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계행은 더없이 중요한 수행입니다. 열반의 초석을 다지는 향기로운 수행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향기가 나기도 하고 악취를 풍기기도 합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상의 모든 행위들이 수행의 대상이고 주제입니다. 수행의 주제가 되는 그 모든 행위에서 향기가 날 때 비로소 바른 삼매를 얻을 수 있고 통찰지가 성숙됩니다.

 

현대를 글로벌 시대라고 합니다. 온 세상이 구석구석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계행의 향기가 천상에까지 이르듯이, 이제 계행의 향기는 SNS 통신망을 타고 삽시간에 온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마치 연못 한가운데 돌멩이를 던지면 사방팔방으로 잔물결이 퍼져 나아가듯 ‘일파만파’ 입니다. 이로 인해 사소한 파계 행위일지라도 그것은 예전보다는 훨씬 더 큰 나쁜 과보를 낳게 되며, 아무리 사소한 계행일지라도 그것이 청정한 것이라면 그것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크나큰 좋은 과보를 가져다줍니다. <바른 노력>과 <분명한 앎>에 의한 <바른 알아차림>으로써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이 혼탁한 세상은 점차 맑아지고 더욱 향기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아래의 게송들은 『굿따까 니까야』의 <담마빠다>(진리의 말씀)에 설해진 것들로서 마음속에 꼭 새겨두시길 바랍니다.》

 

차라리 달구어진 뜨거운 쇳덩이를 삼킬지언정

계행도 없이 신구의(身口意)를 못 다스리는 자가

어찌 신심 있는 신자의 공양을 받을 수 있으랴?

 

남을 헤치지 않는 성자와

항상 자기 행동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죽음이 없는 닙바나를 성취하나니

거기에는 슬픔도 괴로움도 없다.

 

억새풀을 꼭 쥐면 손이 상하게 된다.

나쁘게 인도되는 비구의 생활도 이와 같나니

그의 나쁜 행동이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

 

악행이란 모름지기 저지르지 않음이 좋은 것

악행을 저지르면 그 뒤에는 고통이 따르는 것이기에.

선행이란 모름지기 행함이 좋은 것

거기에 후회란 뒤따를 리 없는 것이기에.

 

악행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동안

어리석은 자들은 그것을 꿀처럼 달게 마신다.

그러나 마침내 악행이 결과를 이끌어 올 때

그들은 크나큰 고통을 겪는다.

 

이것이 내게 무슨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여

작은 허물 짓는 것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조금씩 쌓아 큰 허물을 만든다.

마치 방울씩 떨어진 물이 큰 독을 채우듯이.

 

이것이 내게 무슨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여

작은 공덕 짓는 것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지혜로운 자 그것을 조금씩 쌓아 큰 공덕을 만든다.

마치 방울 방울 떨어진 물이 큰 독을 채우듯이.

 

그가 행한 착한 공덕이

과거에 지은 모든 악행을 압도했나니

이 세상에 밝은 빛을 남겼도다.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이 밝게 빛나듯이

 

(위의 마지막 게송은 시대의 살인마였던 앙굴리말라가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비구가 되어 열심히 수행한 끝에 아라한과를 성취한 다음 얼마 뒤 마지막 입멸에 들었을 때 부처님께서 앙굴리말라를 칭송하며 비구들에게 들려주신 게송입니다)

 

 

                                                                                                                            불멸 2565(2021). 4.29

                                                                                                                           천림산 기슭에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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