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계율(戒律)은 열반의 주춧돌(1)/ 빤냐완따 스님

관리자
202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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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Kusalo

Kusalo

Apr 8, 2021, 6:1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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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테라와다불교 이사장 '빤냐완따' 스님의 목요법문>




[계율(戒律)은 열반의 주춧돌]



1.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


“아난다여,

여래가 떠난 뒤에 너희들은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 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난다여, 여래가 떠난 뒤에는

여래가 가르치고 천명한 담마(法)와

율(계·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

재차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당부하노니

모든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여라.

오래지 않아 여래의 반열반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3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여래는

반열반(완전한 열반)할 것이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습니다.


“내 나이 무르익어

나의 수명은 한계에 도달했다.

그대들을 버리고 나는 가리니

나는 내 자신을 의지처로 삼았다.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고

마음챙김을 가지고 계를 잘 지켜라.

바른 사유(思惟)로써

자신의 마음을 잘 보호하라.


이 법과 율(계·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자는

태어남의 윤회를 끝내고 마침내

괴로움의 종착역에 도달할 것이다.


<DN16 : 완전한 열반 경, Mahāparinibbāna-sutta>


고따마 붓다께서 대열반에 드시기 3개월 전 여래의 입멸을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이처럼, 담마(法)와 함께 여래가 제정해 놓은 율(계·율)을 의지해 살아가라고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여래가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서 갈애를 끊고 마침내 생사윤회의 고단했던 여행을 모두 끝낸 것처럼, 그대들도 또한 <법>과 <율>을 등불 삼고, <법>과 <율>을 열반의 주춧돌 삼아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생사해탈을 이루라는 위대하신 스승의 간절한 마음이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 여기에까지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율(律)>을 빨리어로 ‘위나야(Vinaya)’라고 합니다. <율>은 <담마(法)>와 함께 열반의 초석이 되기 때문에 <율>의 중요성을 한 번 더 강조하는 의미로서 <율법>, 즉 ‘위나야-담마’(Vinaya-dhamma)라고도 합니다. 고따마 부처님의 전도 선언 이후 교단의 형성과 함께 출가자 숫자가 급속도록 늘어났고, 출가자 중에는 세속에서의 나쁜 습관을 출가 이후에도 버리지 못한 채 승가공동체 안 밖에서 온갖 문제를 야기 시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규정을 제정해 승단의 질서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이와 같은 승단의 룰, 규칙, 규정이 <율>이며, <율> 가운데 특히 도덕적·윤리적 행위규범이라 할 수 있는 살생·투도·망어 등등을 <계(戒)>(Sīla)라고 합니다. 『앙굿따라 니까야』(AN2:17) <학습계목 경>(Sikkhāpada-sutta)에 계율의 제정 목적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2가지 이유 때문에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해 주었다.

(비구 227계, 사미10계, 재가자 5계·8계)

그렇다면 어떤 것이 둘인가?

첫째는 상가가 미덕을 갖추고,

둘째는 상가가 편히 머물도록 하기 위함이니라.

계를 지키지 않는 자를 제어하고

계를 잘 지키는 비구들을 편히 머물도록 하기 위해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해 주었느니라.

현생에서 일어나는 번뇌, 원한, 허물,

두려움, 불선법들을 차단하고

내생에서 일어날 번뇌, 원한, 허물,

두려움, 불선법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해 주었느니라.

재가자들에 대한 연민심의 발로에서

사악한 행위를 일삼는 자들의 파벌을 뿌리뽑기 위해,

신심이 없는 자에게는 신심을 일으키고

신심이 있는 자에게는 신심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정법이 오래 머물고 율을 호지하도록 하기 위해,

비구들이여,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래는 제자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해 주었느니라.”


결국, 지계의 실천은 상가공동체로 하여금 미덕을 갖추게 하고, 상가공동체를 평온함으로 이끌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수행자 개개인이 미덕을 갖추고 평온함을 유지함으로 말미암아 남에게 비난을 받거나 원한 사는 일이 없으며, 감각적 욕망으로 인한 각종 번뇌들이 차단되어 쉽게 마음집중을 이루면서 수행의 길로 나갈 수 있습니다. 『상윳따니까야』(SN1:23) <얽매임 경>(Jațā-sutta)에 보면, 부처님께서 사왓띠성의 제따와나 수도원에 머무시는 동안 어느 한밤중 한 천인(天人)이 내려와서 부처님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서 여쭙기를,


“고따마 붓다님이시여,

안으로 얽어 묶고, 밖으로도 얽어 묶는

번뇌의 그물이 중생들을 묶어놓고 있습니다.

고따마 붓다님이시여, 그래서 여쭈오니

누가 이 번뇌의 얽힌 그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 물음에 고따마 붓다께서 답하시기를


“슬기로운 자는

계율에 굳건히 머무는 가운데

번뇌를 제거하려는 노력,

불선업을 막는 지혜, 그리고

삼매와 통찰의 지혜로써

그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니라.”


여기에서 ‘얽매임’이란 인간의 3가지 번뇌, 즉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뜻합니다. 고따마 붓다께서는 이 번뇌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3가지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계·정·혜> 3학입니다. 청정한 <계행>과 <바른 삼매>와 <바른 지혜>를 구족한 이라야 만이 번뇌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불교의 궁극 목표는 오온의 윤회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열반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 궁극의 종착역에는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온전한 행복이 있고, 완전한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3독의 번뇌가 열반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 3독의 번뇌를 길이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3학을 닦는 것입니다. 즉, 계학(戒學)과 정학(定學)과 혜학(慧學)이라는 3가지 도 닦음을 통해 번뇌의 사슬을 모두 끊고 궁극의 해탈·열반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고따마 붓다께서는 닙바나(열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8가지 바르게 닦는 길 <팔정도>를 제시하셨습니다. <팔정도>는 불교수행의 총아요, 열반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팔정도>는 크게 삼학(三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바른 언어> <바른 행위> <바른 생활수단>이라는 [계학(戒學,Sīla)]과 <바른 노력> <바른 알아차림> <바른 집중>라는 [정학(定學,Samadhi)]과 <바른 견해> <바른 생각>이라는 [혜학(慧學,Paññā)]입니다.


3학을 나무에 비유하자면, <계>는 나무의 뿌리요, <정>은 나무의 줄기와 잎이요, <혜>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혜>는 사성제를 증득하고 생사해탈의 문을 열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열매)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혜>(통찰지)만 잘 계발하면 열반을 성취하고 생사해탈을 이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계>와 <정>을 함께 닦으라 하셨을까요?


<바른 지혜>는 <바른 삼매>를 의지해야만 계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른 삼매>는 <바른 지혜>를 나게 하고, <바른 지혜> 역시 <바른 삼매>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정>과 <혜>를 함께 닦는다는 의미로 <정혜쌍수>(定慧雙修)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따마 붓다께서는 <정·혜>와 더불어 <계행>의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청정한 <계행>이야말로 <바른 삼매>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계·정·혜 3학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불가분의 ‘숙명공동체’입니다. 수행의 장애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면서 마라의 군대를 향해 돌진해가는 하늘의 3각 편대와 같은 것입니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협업’ ‘읜읜’이란 말처럼,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일도 셋이 힘을 합치면 거뜬하게 해낼 수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청정한 <계행>과 <바른 삼매>와 <바른 지혜>는 각각의 닦음만으로도 커다란 공덕이 되고 어느 정도 수행의 결실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상호 보완작용을 할 때라야 만이 그 효력이 극대화될 수 있고, 마침내 열반이라는 최상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율법에는 위대한 의미가 있으니

잘 실천하면 안락함을 전해주고

사악한 욕망을 굴복시키며

부끄러움을 잘 보살펴주네.


율법은 세존의 경계이니

그 분은 가르침을 지니며

모든 것을 알고 극복한 분이라네.


율법은 이질적인 것이 없는 세계이며

안온하고 잘 설해졌으며

의심할 바가 없는 것이라네.


율법의 본문과 부록과 주제에 대해

의미를 좇아 잘 파악하는 이는

근본이 되는 길에 접어든 것이라네.


소를 식별하지 못하는 자가

소의 무리를 지킬 수 없듯이

계율을 알지 못하는 자는

지켜야 할 율의를 지킬 수 없네.


비록 경장과 논장을 잃었다 해도

율장을 잃지 않았다면

오히려 가르침은 유지되어 가네.


『율장 대품(Mahāvagga)』

<감흥어(Uddāna)> 중에서



불멸 2565(2021). 4.8

천림산 기슭에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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