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둘라바(dullabha) - (다섯 가지) 얻기 어려운 일」이라는 제목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스님이 2017년도 여름에 우안거 중에 이 둘라바에 대한 얘기를 부산에서 한번 했었어요. 그때는 프린트물 없이 그냥 해놓으니까 잘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프린트물을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둘라바 다섯 가지를 다 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으니까, 2017년도에 했던 것들은 빼고 오늘은 다른 부분으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바른 부처님 가르침 만나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는 잘 모르죠? 그리고 여기 앞에 계신 스님들은 출가 비구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실은 잘 몰라.
그래서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고 어렵게 구한 기회인데 너무 그냥 공짜로 사는 것 같아가지고.
그래서 오늘은 다섯 가지 둘라바(dullabha)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dukkha둑카 알죠? sukha수카 알죠? 둑카의 du두에 똑같이 둘라바(dullabha)에도 du 두입니다. 그러면 du가 어떤 뜻입니까? (수행자 : 어렵고 괴롭고)
어렵고, 강이 이렇게 내려오면은 거슬러 올라가려면 힘들죠? 타고 내려가면 좋은데. 수카는 강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니까 '편하게', 둑카는 거슬러 올라가야 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 둘라바의 du도 마찬가집니다. 어렵다는 뜻입니다. du 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게 구한 기회라는 뜻으로서 둘라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큼 많은 생을 거쳐서 이 자리에 왔는지 모르죠?
그냥 어려운 얘기를 하지 말고, 경전대로 할 거 같으면 '깝빠(kappa)'가 나오고 여러 가지들 계산할려면, 우리도 옛날에 한번 계산해보니까, 현대적으로 대비를 해보니까 너무 어렵더라고.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과거 생을 다 통틀어 봐도 부처님은 출가비구로서 살았다는 때가 아홉 번밖에 없습니다. 그 무수한 생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 중에서. 그런 거 보면 여기 있는 스님들은 빠따 잡은 스님들이라. 그 기회들을 바르게 잡았으니까. 뭐 스님들만 그렇겠어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어렵게 구한 기회라는 걸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야 됩니다.
지구의 나이가 지금 몇년 정도 됐죠? 45억년, 대충 반올림 해가지고 50억년이라고 칩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유지가 된다고 그러죠? 앞으로도 한 50억년 정도 더 유지를 해서 한 100억 년이 이 지구의 나이다 그렇게 얘기할 겁니다.
지구가 100억 년 지나고 나면 어떻게 될까? 지구를 먹여살리고 있는 태양이 점점 팽창해지게 되죠. 100억년이 지나면 팽창이 되면서 그 영향이 지구에까지 미쳐서 지구가 뜨거워져서 아마 다 타버린다고 그러죠. 그래서 결국은 지구가 태양에 흡수되어 버리는 상황이 된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또 100억 년이 지난다고 그럽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또 뭔가로 인해서 지구가 만들어지는데 또 100억 년이 지나고, 그러고 나서 지금과 같이 편안하게 생물들이나 사람이 살 수 있는 기간이 100억 년이 지나고, 이렇게.
겁(劫)이라는 것은 그런 겁니다.
쉽게 말하면 4개의 겁, 성주괴공이라고 그럽니까? 4개의 것 중에서 중생들이 살 수 있는 거는 1/4밖에 안되는 거죠. 그 정도로 많이 흘러간 거죠. 45억년 지나갔으니까.
그게 인제 요즘 말로 할 것 같으면 겁(劫)이라는 의미인데, 지금을 보통 현겁이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현재의 겁을. 부처님이,,, 지구라고 칩시다. 부처님이 지구에 존재했을 때가 있고 존재하지 않았을 때가 있어요. 존재했을 때도 한 분의 부처님만 있었겠어? 아니겠죠!
어떤 그 지구에서는 1명, 어떨 때는 2명, 많을 땐 5명까지 있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은 지금의 지구가 앞으로 45억 년이 지나고, 아니 50억 년이 지나고 나면 이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는 100억 년인데 100억 년 동안에 부처님은 딱 다섯 분이 출현하신다고 그럽니다. 그럼 대충 계산을 해보면 몇십억 년에 한 분씩 오시는 거라요? 뒤에는 뭐 오시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모르겠고, 어쨌든 10억 년에서 20억 년에 한 분씩 오신다는 뜻이라.
왜 그러냐면 같은 시대에 부처님이 두 분이 같이 동시에 출현하는 법은 없으니까. 왜 그러냐 하면 한 분의 부처님이 영향력이 완전히 소멸되고 나서 잊혀진 상태에서 다시 또 오시게 되는 거니까. 앞으로 오실 분은 한 분 남았죠? 누굽니까? (수행자 : 멧떼이야) 미륵불이 남았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깐 여러분들 시대에는 전혀 안 오겠죠. 꿈도 꾸지 말고 있으라고 얘기하는 것이라. 적어도 그분이 오실려고 할 것 같으면, 경전 상에는 그렇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지금의 부처님 가르침이 몇 년 간다고 그랬어요?
경전마다 조금씩 틀리긴 한데 뭐 정법이고 뭐고 이런 걸 따지지 전에, 어쨌든 가르침이 유지가 되는 거는 기껏해야 5천 년입니다. 그러면 100억 년 기간 중에서 아니면 한 분의 부처님이 오실 때 20억 년 간격이라고 칩시다. 그중에 5천 년이면 극히 일부분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살 수 있는 거로 태어난 것만 해도 복 받은 거라요. 근데 여기 있는 스님들은 적어도 지금 출가할려고 하는 조건을 갖춰지려면 나중에도 시간이 될른지는 몰라도 부처님 시대 때 태어나서 부처님이라고 한 번이라도 친견 했으니까 이제 출가를 한 거라. 대단한 스님들이에요. 공부를 했든 안 했든 간에, 공부를 했으면 여기 안 왔겠지. 공부를 안하고 있다가 늦게사 공부한다는 것도 행운입니다.
어쨌든 그런 복을 받은 스님들인데,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부처님 가르침이 지금 존재하는 상황 안에서 그 가르침을 배우고 있는 거기 때문에 ‘참 귀한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자꾸 공부를 할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보통 경전에는 30바라밀이 나와있습니다. 바라밀 30바라밀을 무수한 생, 한 생도 빠지지 않고 갈고 닦아 가지고 이 생에서 아라한이 되는 상태가 됩니다.
근데 이제 여러분은 만약에 부처님이 될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할 것 같으면,
10가지 바라밀을 세 등분해서 30바라밀로 나누는 것들, 다 안 해도 관계는 없습니다.
근데 딱 하나 중요한 거는 수행을 해봤으면 아마 알 겁니다.
뭔가 ‘나를 받쳐주는 게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가지고, 탁 치고 넘어갈 때가 있고 그렇지 못하고 ‘아, 힘들다’ 하는 그런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내가 선한 일들을 많이 했단 말이라. 악한 일은 거의 한 적 없는데.
그럼 선한 일을 한 것과 바라밀은 차이가 있는 걸까?
바라밀이 있어야만이 이게 탁 차고 넘어갈 텐데 내가 여태까지 지어 온 것들이 바라밀이 아니었던 거라.
우짜면 좋아? 뭔 차이가 날까?
바라밀과 일반 kusala꾸살라 - 선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날까?
오늘도 법문 듣는 거 바라밀 짓는 거죠? 맞습니까? (수행자 : 네)
어째서 바라밀이라고 그래요? 꾸살라가 아닌가? 꾸살라에요? 바라밀이에요?
(수행자 : 꾸살라에요)
바라밀이라? 곧 죽어도?
여러분 오늘 계를 팔계 지키죠. 꾸살라입니까, 바라밀입니까?
(수행자 : 바라밀입니다.)
스님들이 가끔 탁발 공양 올리고 할 때 뭐라고 해요?
"상갓사 데마(Saṅghassa dema)"하고 나서, "상가에 공양 올립니다" 하고 나서 뭐라고 해요?
"이당 메 다낭 닙바낫사 빳짜요 호뚜(Idaṃ me dānaṃ nibbānassa paccayo hotu)" "보시공덕이 닙바나에 이르는 조건이나 원인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그냥 선업을 지은 게 아니고 바라밀을 지었다는 거라. 실제로 여러분들 바라밀을 짓는지는 모르겠네. 어떤 차이가 날까, 그 두 개는? (수행자 : 마음에서)
그렇지. 마음가짐이긴 한데, 탐·진·치가 없이 바라밀을 행하거나, 선업을 행할 때, 그것은 꾸살라임과 동시에 바라밀이 되는 거라.
가끔 스님이 그럴 때가 있습니다.
태국만 생각하면 나는 너무 좋아. 마음에서 바라밀이 자꾸 선한 마음이 계속적으로 일어나. 왜 그럴까? 법의 눈을 갖게 해준 곳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고향이라. 쉽게 말하면. 고향이기 때문에 그래서 태국에서 뭔가 “스님, 나 이거 좀 해줘” 이렇게 할 것 같으면 아무 소리 안 하고 기쁘게 가서 해줘. 뭔가 내가 지금 어려운 상황이 돼 있어도 그 생각 안 하고 그냥 가서 해줘.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아무런 기대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이 그냥 내가 베풀 수 있는 것들이라. 그거는 바라밀 행이라.
근데 대부분은 계를 지을 때도 억지로 계율 조목에 매여가지고 계를 지키려고 하고, 그거는 선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바라밀은 되지 못하는 거라.
수행을 해도 자꾸 해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1시간씩 하고 이럴 것 같으면 그거는 선업은 되어도 바라밀은 안 되는 거라. 그래서 적어도 바라밀이 될려면 아무 생각 없이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뭔가를 갖다가 할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게 바라밀이 되는 거라.
경전에 보면 일반 선업을 얘기할 때 왔다 "왓따 닛시따(vaṭṭanissit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 바라밀이 되는 선업은 뭐라고 할까? 앞에 vi위가 있습니다.
"위왓따닛시따(vivaṭṭanissita)" vi위는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vaṭṭa왓따는 굴레입니다. nissita닛시따는 의존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 의존하고 있는 굴레가 뭔가가 있을 겁니다. 그게 대부분 탐·진·치 입니다.
가끔씩 인제 그런 것이 있습니다. 뭔가를 했으면 한 표를 자꾸 낼려고 합니다. 근데 그거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근데 그럴 경우에는 그것은 열반으로 이끌어주는 바라밀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는 거라. 그래서 적어도 여러분들이 이 윤회라고 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것 같으면은 바라밀을 자꾸 행할려고 해야 됩니다.
조건을 얘기를 하겠습니다.
왜 재미가 없나? 왜 다 까불고 있어? 언제 들을라고? 그래서 아까 얘기했죠.
바라밀이 되는 조건,
첫 번째, 탐·진·치가 없이 뭔가를 행하라.
그래서 보시 한번을 할 때도 보시를 드릴 때의 마음, 그다음에 보시를 주는 행위에서의 마음, 보시를 하고 나서의 마음들이 항상 기쁘고 사띠가 있고 행복한 마음이 될 수 있도록 자꾸 만들어라고 하는 거라. 그것만 있을 것 같으면 적어도 그 보시하는 행위는 적어도 바라밀이 되는 거라. 이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가 뭐냐면 뭣 때문에 보시했지?
스님 잘 먹고 잘 살으라고? 그건 아니잖아? 좋은 법을 전해달라고? 그것도 일리는 있는 거고, 그런데 자기한테 해당이 되는 거는 뭐가 있어요? 내가 왜 보시를 하지? 열반에 이르기 위한 거라! 해탈하기 위해서 내가 그 바라밀을 쌓는 거지, 달리 그냥 선업 지어가지고 천상에 태어날라고? 윤회해서 조금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날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안된다는 거라.
"닙바낫사 빳짜요 호뚜" 열반을 증득해서 깨달음에 이르러서, 이 윤회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바라밀을 쌓는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선업공덕들을 쌓는 거라. 계를 지키더라도 오늘 8계를 지킵니다. 미얀마 같은 경우에 이제 '자비 바라밀'까지 포함하면 9계를 지킵니다. 지키더라도 계를 지킨다는 마음이 일으켜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켜지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어차피 지켜야 되는 것들이면은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그냥 지켜나가면 돼요.
그다음에 세 번째가 선업을 행할 때는 반드시 마음의 뭘 지닌 채 하라고?
자애를 지닌 채! 어떠한 행위를 하더라도 자애를 지닌 채 할려고 해야 됩니다. 자애가 지녀진 상태가 되면은 적어도 그것은 행위 자체는 어떤 경우든지 선업 이상은 된다는 거라.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행했으니까 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거고.
근데 그게 인제 바라밀이 될려고 할 것 같으면 그 자애의 마음이 무엇 때문에 하느냐 하는 거라. 나를 위해서? 아니잖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것만 해당이 되는 건 아니죠! 누군가에게 보시를 행했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결정심을 냈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계율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거는 무엇 때문에 하는 거라? 내가 계를 잘 지키면 누군가가 나한테 해코지할 수 있어요? 나쁜 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니면 누군가가 뭔가를 주는데 그 주는 사람한테 나쁘게 욕을 할 수가 있어요? 그건 아니라는 거라.
자애를 지니고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나와 남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거라. 그래서 그런 것들을 잘해야 됩니다.
근데 만약에 보시를 했는데 스님 입장에서 이게 보시받을 때가 아니고 물건이 아니다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요? 거부를 할 수가 있는 거라. 그럼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는 거는 그걸 행할 때는 그거에 맞는 방편들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알지 못하면 그거는 상대방이 선한 마음을 일으켜주지 못하니까 그건 선업조차도 안 돼버리게 되는 거라.
그래서 경을 배우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들이 있고, 계율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들이, 방편을 쓰더라도 지혜롭게 쓸 수 있는 상황이 돼야 되는 것이지, 그러지 못하면 그것은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거라. 그건 아마 여러분들이 일상생활에서도 잘 경험들을 할 겁니다.
맞는 말이라도 지금 이 사람이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싫어하는 마음이 있다 할 것 같으면, 맞는 말을 지금 하면 안 되는데 그걸 꼭 굳이 지금 할려고 하는 거라. 이게 역효과를 가져오는 거라. 마찬가지입니다. 선업을 행하더라도 방편을 써서라도 지혜롭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돼야 됩니다. 이런 것들이 다 모였을 때 그것은 바라밀이 돼버린다는 거라.
외우기 힘들죠?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뭔가 선한 일을 할 때
첫 번째 고마워서 합니다. 그냥 고마워서 그냥 하는 거라. 고마워서 한다 하고 마음을 먹고.
두 번째가 내가 뭔가를 하지만 어떠한 경우든지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는 거라. 결과를 바라고 하지 않는다는 거라.
이 딱 2가지만 생각을 하면은 됩니다. 그러면 적어도 선업 이상이 되고 그것이 바라밀이 돼버리는 거라.
그리고 나서 마음속으로 결정을 하는 거라.
이거는 내가 윤회로부터 벗어나서 해탈·열반하기 위한 것이다. 하고 마음을 딱 먹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그 바라밀이 형성이 돼나갑니다.
바라밀이 형성되지 않으면은 적어도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해. 그거는 틀림없는 사실이라.
내가 선업을 참 많이 쌓았는데 왜 수행에서 자꾸 단계 단계를 못 넘어갈까? 그럴 때는 한번 돌아보라는 거라. 그것이 그냥 선업이었는지 바라밀이었는지? 하는 걸 잘 돌아볼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근데 어쨌든 부처님은 과거생에서 참 많은 선업 공덕을 쌓았다고 안 하고 "참 많은 바라밀을 완성을 했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도 부처님을 만나기 힘들고 부처님 법을 만나기 힘들었을 때, 왜 만나기 힘들다고 그렇게 얘기해요?
지금이 아니면은 해탈·열반에 이르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런 거라. 지금의 조건은 가장 해탈·열반에 이르기 가장 좋은 조건이라는 거라. 그래서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라밀이 되는 거라. 그래서 바라밀을 쌓기에도 참 좋은 조건이라는 거라.
부처님은 참 태어나기 힘든 조건에서 태어나서 그 부처님 법을 우리는 지금 배우고 있습니다. 신통력이 뛰어난 사람이 누구였죠? 목갈라나죠. 목갈라나가 어느날 생각을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어렸을 적에 그렇게 그런 상상들을 해봤을 겁니다. 이 우주는 얼마나 넓을까? 저기에는 누가 있을까? 그런 거 많이 해 봤죠? 똑같아요. 똑같애.
‘저 우주에는 뭐가 있을까? 얼마만큼 내가 신통력을 가지고 그 세계들을 볼 수 있을까?’ 하고 탁 들어가요.
근데 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어요. 쉽게 말하면 우주 미아가 돼 있는 상태라. 부처님이 구해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진짜 이해하기 힘든 게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지금 목갈라나 존자한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첫 번째가 뭐냐면 부처님이 얼마만큼 큰 공덕을 지녔을까?
여러분이 그 상태 되기 전에 알 수 있어요? 절대 모릅니다. 여러분이 수다원이 되기 전에는 수다원을 모르고,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아라한을 봐도 모릅니다. 눈앞에 있어도 몰라. 근데 내가 붓다가 되기 전에 붓다의 공덕을 알고 싶다? 글귀로는 알 수 있지만 마음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알기는 힘들다는 거라. 그걸 알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냥 "참 훌륭하신 분이고 그분이 행했던 것 말했던 것 그대로 따라가야 되겠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되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가 업! 업에 대한 것!
안 적어놨나? 업에 대한 것, 업과 업의 결과. 어떤 업이 지금 작용을 할지 여러분 알 수 있습니까? 모르죠!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잘 없습니다.
어느 스님이 부처님이 없는 시대에 태어나 가지고 출가를 했어요. 딱 일주일간.
근데 그 공덕으로 경전에는 그렇게 돼 있습니다. 무수한 생애 사악처에 빠지지 않고 부처님이 태어날 때 딱 태어나서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해가지고 아라한이 됐다고 그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미얀마 같은 경우에는 출가한 스님들을 부를 때 '둘라바'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어렵게 만든 기회다' 하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부처님 법을 지금 듣고 실천하고 있는 거는 안 어려워요? 여러분들도 그런 둘라바입니다. 가장 어려운 걸 지금 경험하고 있는 거라. 그래서 업과 업의 결과에 대한 것들을 알려고 하지 말아라.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선정의 상태가 어떤 건가? 하고 알려고 하지 말아라.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선정이 어느 정도의 상태인가?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상태에 자기가 도달하기 전에는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몇 선정에서는 기쁨이 일어나고 몇 선정에선 행복이 일어나고 하더라도 그걸 경험해 보기 전에는 어떻게 알 거라? 기쁨과 행복이 어떤 차이가 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걸 논하고 있다? 그냥 해봐라는 거라.
마찬가지로 부처님 가르침을 그냥 행하듯이 행해라는 거라. 업과 업의 결과에 대해서 알려고도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행해보라는 거라. “착한 일을 하니까 좋은 일이 일어나대!” 금방 알 수 있는 것들인데도 그걸 자꾸 알려고 한다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 이 어리석은 목갈라나한테 한 얘기라.
세상의 기원,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에 이게 존재하고 어떻게 파괴되고 하는 것, 그리고 부처님이 얼마만큼 어렵게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알려고 하는 것, 의미 없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래서 그런 것들은 부처님이 분명하게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쓸데없는 것들이고 오히려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첫 번째,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설명을 쭈욱 해놔놨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바라밀에 대한 것들을, 10가지 바라밀에 대한 것들은, 10가지 바라밀은 여러분이 평상시 때 하는 것들입니다. 진리를 알려고 하는 것들은 안 합니까? (수행자 : 합니다.) 수행할 때 ‘아, 내가 이번에는 적어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수행들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냥 단순하게 선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바라밀이 될 수 있도록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5페이지 끝에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직 남아있는 현재 얻기 어려운 가르침을 만난 우리는 매우 운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이 얻기 어려운 것을 만난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하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두 번째 인간으로 태어나는 건 얻기 어렵다.
어렵겠죠. 인간으로 태어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입니다. 왜 그럴까? 인간으로 태어나도 여러분들 선한 마음이 많아요? 아니면 불선한 마음이 많아요? (수행자 : 불선한 마음)
불선한 마음이 훨씬 많습니다. 여러분은 죽고 나면 어디에 태어날 것 같애요? 인간으로 못 태어납니다. 그대로 가면.
그런데 불선한 마음이 많은 상태에 있었든, 사악처에 태어나는 상태에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건 진짜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힘든 거라. 아니면 천상세계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 좋아 죽겠는데 뭐하러 인간으로 올라고 할 거라? 안 올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상세계의 수명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깁니다. 이론적으로 할 것 같다면 사천왕이 사는 곳은 이십 깝빠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20깝빠가 아니고 20억 년. 현재의 시간으로 치면. 그러면 사천왕 5번 하면은 이 지구 망해버립니다. 그러면 5번 하고 말지, 뭐하러 왔다 갔다 수백 번을 할려고 할 거야? 안 온다는 거라.
그러니까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음에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쉬운데, 지금 여러분들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힘든 조건들을 자꾸 만들고 있다는 거라.
근데 그렇게만 보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건 진짜 다행으로 생각하고 지금 해야 될 일들을 해라는 거라. 왜 이 어려운 기회를 갖다가 자꾸 놓치고 자꾸 짜증내고 욕심부리고 공부는 안 하고 자꾸 딴 방향으로 자꾸 갈려고 하느냐는 거라.
그리고 사성제의 진리를 알아야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데, 그 어떤 다른 곳에서도 사성제 진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인간일 때 가능한 겁니다. 이때 내가 깨달음을 얻어서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지, 천상이나 아니면 악처에서? 어림없는 소리라는 거라. 그마만큼 지금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신심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얻기 어렵다.
믿음은 뭐에 대한 믿음입니까?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과 업과 업의 과보에 대한 믿음, 딱 4가지 입니다.
그걸 확고하게 했으면 여러분은 이미 수다원이 돼 있겠죠. 아직 확고하지는 않습니다. 수다원이 되기 전에는. 그런데 그래도 확고해지도록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
거기 보면은 9페이지에 보면 「"비구들이여! 나는 내 마음으로 일부 마음이 청정한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안다. 지금 이 사람들이 죽으면 천상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라고. 왜 그럴까? 그 사람들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을 확립하려고 하는 것은 마음이 청정해지면 믿음은 확립이 됩니다.
그래서 이 빨리어 게송에서 말하는 "믿음을 가진 마음을 청정한 마음"이라고 부처님이 얘기를 합니다. 청정한 마음, 가장 쉽습니다. 그죠. 사띠하면 됩니다. 사띠 하면은 그마만큼 청정한 마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사띠를 하게 될 때 마음은 청정하게 됩니다. 마음은 가볍고 마음은 대상을 집착하는 법이 없이 그대로 그냥 청정한 상태에 있다는 거라.
근데도 자꾸 잊어먹어 버립니다. 왜 사띠를 자꾸 잊느냐는 거라. '죽은 목숨'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도, 지금 자꾸 죽은 목숨같이 살고 있느냐는 거라. 사띠하는 버릇들을 자꾸 들여서 어떠한 경우든지 사띠하는 생활들이 되도록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사띠를 하면 탐·진·치가 없이 살아가집니다. 사띠를 하면은 마음은 항상 청정한 상태를 가지게 됩니다. 사띠를 하게 되면은 그것으로 인해서 ‘아, 내가 가는 길이 맞다’라는 믿음이 딱 서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행한 것들에 대해서 어떠한 것들도 받아들이겠다’ 하는 마음을 딱 가지게 됩니다. "사띠하는 것만이 믿음을 확립하는 길이다" 하는 걸 갖다가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는 것 5가지 부분(다섯 가지 채우고 준비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여기에 쭈욱 얘기해놓았습니다.
삿다 삼빠다부터 해가지고 실라, (수따, 짜가, 빤냐) 쭉 해가지고 5가지, 계로 채우는 거, 보시하고 집착을 놓아버리고, 지혜를 충만하게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쭉 얘기해놓았습니다.
그게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다시피 합니다.
사띠를 하게 되면은 계는 자연스럽게 안 어기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더 공부를 할려고 하게 되고, 공부를 하게 되면은 지혜는 저절로 자꾸 열립니다. 그래서 지혜의 단계들이 점점 더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믿음은 더욱더 굳건해지고, 자연스럽게 계는 지켜지고, 공부해야 될 양들은 점점 더 늘어나지만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고, 그리고 사띠는 계속적으로 무르익어가서 자연스럽게 사띠가 되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그러면 이제 그게 사이클이 딱 돼버리고 나면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거라.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은, 이제는 그 사람은 순조롭게 인제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해탈 열반의 길로 순조롭게 나아가지게 됩니다.
적어도 그 상태까지는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이, 믿음으로 충족하는 것이 어려운 건데 그래도 여러분들이 해나가야 됩니다.
수다원이 어렵고 아라한이 어렵고 하는 것들을 염두에 두지 말고, 순차적으로 한 발짝씩 뗄려고 자꾸 노력을 해서, 이게 사이클이 되도록 해서 서로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하면 좋습니다.
그걸 부처님은 「재산」이라고 그럽니다.
재산은 여러분들이 반드시 갖추어놔야 됩니다.
그 재산은 여러분들을 열반으로 인도해 줍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출가하는 것은 얻기 어렵다.
여러분하고 관계가 없는 것 같이 보이죠? 사실은 관계가 없습니다.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떠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출가를 하더라도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청정한 출가를 말하는 거지, 대충 사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엄밀하게 얘기할 것 같으면 단기출가 해가지고 억지로 계율 지키면서 출가 생활하는 그것도 해당은 사실은 안 됩니다. 출가 생활이 기쁘고 그리고 열반을 향해서 나아가는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게 밑바탕이 돼서 더욱더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것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갖다가 주석가들은 마력에 비유를 합니다. 9마력보다는 227마력이 훨씬 더 힘이 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띠하는 힘들도 더 훨씬 힘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힘이 크면 클수록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데도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가하는 것이 어렵다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출가자와 마찬가지의 생활을 해나갈 거 같으면은 적어도 "출가하는 것이 어렵다" 하는 것도 또 여러분들이 성취하는 것들이 됩니다.
그래서 주석서에는 「출가하는 조건에 대한 3가지」를 얘기를 해 놨습니다.
첫 번째가 부처님이 태어났을 때 부처님을 만나 뵙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거 잘 모르죠? 아직 출가를 안 했으니까 안 만난 것 같애요? 그건 모릅니다. 이 생에서가 아니고 다음 생에서 출가할지 어떻게 알아? 과거생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났을지 누구도 모르는 거라. 확실한 거는 여기 있는 스님들은 과거생에 부처님 시대 때 태어났다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가 여러분은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그다음에 세 번째 믿음으로 출가하게 되는 것.
딱 이 3가지 조건입니다.
근데 여러분은 3가지 조건을 다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재가생활 하면서도 출가자같이 살 수 있는 조건들은 얼마든지 갖추어 나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단지 7일간 출가한 것으로 무수한 생애 동안 악처에 안 빠졌다? 7일간 출가해가지고 계율 청정하게 잘 지킨 것만 가지고 되겠어요? 절대 그렇게 오해하면 안 됩니다. 다시 태어났을 때 마찬가지로 계를 잘 지키고 청정하게 살아가는 것, 무수한 생을 반복해서 태어나더라도 무수한 그 생 동안 계속적으로 계를 잘 지키고 청정하게 살아가고 선한 마음들을 계속적으로 일으킨 상태이기 때문에 그 무수한 생 동안에 악처에 빠지지 않는 겁니다.
단순하게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한순간이라도 악한 마음을 탁 먹으면 바로 악처에 빠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악한 결과가 탁 일어난다는 거라. 100번 선한 걸 했다가 1번 잘못했을 때 그 한 번 잘못한 것이 나쁜 쪽으로 유도를 한다는 거라.
근데 어떻게 7일 출가한 걸 가지고 무수한 생애 동안 악처에 안 빠질 수 있겠어요? 그렇게 오해는 하지 말아라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마음에서 악한 것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꾸 방어를 해야 된다는 거라.
생은 불확실한 것이고 어떤 경우가 내 앞에 닥칠지 모릅니다. 그런 두려움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딱 한 번 그냥 눈감아줘? 그게 있을 수가 없다는 거라.
그다음에 다섯 번째, 올바른 법을 듣는 것은 얻기 어렵다.
바른 법을 듣지 못하면 그 분은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바른 법을 듣지 못하면 어떤 것이 꾸살라이고 어떤 것이 아꾸살라인지도 모릅니다. 바른 법을 듣지 못하면 완전히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는 거라.
그마만큼 바른 법은 중요합니다.
그냥 법을 들을려고 하지 말고, 그 법이 반드시 나를 해탈·열반으로 이끌어주는 법을 들어라는 거라. 단순히 귀에 좋은 소리로만 들리고 또는 경책해주는 소리로 듣고 이런 거로만 법을 들을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미사여구로 좋은 것들은 시중에 널려 있습니다.
법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법은 단호합니다.
법은 어떠한 경우든지 반드시 방편을 썼든 뭘 했든 간에 열반으로 이끌어주는 법이 그게 법인 것이지, 그렇지 않은 것들은 바른 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꾸 지금 바른 법을 들었을 때 그걸 자꾸 듣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실천을 해보면 분명하게 기억을 합니다. '이 법만이 나를 열반으로 인도해 줄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들을.
그래서 15페이지 보겠습니다.
「Dullabha라는 얻기 어려운 것이 갖추어져 있는 지금, 여러분이 할 일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실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것이 될 수 있도록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다섯 가지 얻기 어려운 것들은 지금 여러분들은 기회를 잡은 겁니다.
그 기회를 섣불리 놓치지 말고 이 기회에 여러분들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 아래 링크의 법회 프린트물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_()_
https://theravada.co.kr/99/?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91266807&t=board
(16:25초부터 법문이 시작됩니다.)
다 받았죠?
오늘은 「둘라바(dullabha) - (다섯 가지) 얻기 어려운 일」이라는 제목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스님이 2017년도 여름에 우안거 중에 이 둘라바에 대한 얘기를 부산에서 한번 했었어요. 그때는 프린트물 없이 그냥 해놓으니까 잘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프린트물을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둘라바 다섯 가지를 다 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으니까, 2017년도에 했던 것들은 빼고 오늘은 다른 부분으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바른 부처님 가르침 만나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는 잘 모르죠? 그리고 여기 앞에 계신 스님들은 출가 비구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실은 잘 몰라.
그래서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고 어렵게 구한 기회인데 너무 그냥 공짜로 사는 것 같아가지고.
그래서 오늘은 다섯 가지 둘라바(dullabha)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dukkha둑카 알죠? sukha수카 알죠? 둑카의 du두에 똑같이 둘라바(dullabha)에도 du 두입니다. 그러면 du가 어떤 뜻입니까? (수행자 : 어렵고 괴롭고)
어렵고, 강이 이렇게 내려오면은 거슬러 올라가려면 힘들죠? 타고 내려가면 좋은데. 수카는 강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니까 '편하게', 둑카는 거슬러 올라가야 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 둘라바의 du도 마찬가집니다. 어렵다는 뜻입니다. du 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게 구한 기회라는 뜻으로서 둘라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큼 많은 생을 거쳐서 이 자리에 왔는지 모르죠?
그냥 어려운 얘기를 하지 말고, 경전대로 할 거 같으면 '깝빠(kappa)'가 나오고 여러 가지들 계산할려면, 우리도 옛날에 한번 계산해보니까, 현대적으로 대비를 해보니까 너무 어렵더라고.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과거 생을 다 통틀어 봐도 부처님은 출가비구로서 살았다는 때가 아홉 번밖에 없습니다. 그 무수한 생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 중에서. 그런 거 보면 여기 있는 스님들은 빠따 잡은 스님들이라. 그 기회들을 바르게 잡았으니까. 뭐 스님들만 그렇겠어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어렵게 구한 기회라는 걸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야 됩니다.
지구의 나이가 지금 몇년 정도 됐죠? 45억년, 대충 반올림 해가지고 50억년이라고 칩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유지가 된다고 그러죠? 앞으로도 한 50억년 정도 더 유지를 해서 한 100억 년이 이 지구의 나이다 그렇게 얘기할 겁니다.
지구가 100억 년 지나고 나면 어떻게 될까? 지구를 먹여살리고 있는 태양이 점점 팽창해지게 되죠. 100억년이 지나면 팽창이 되면서 그 영향이 지구에까지 미쳐서 지구가 뜨거워져서 아마 다 타버린다고 그러죠. 그래서 결국은 지구가 태양에 흡수되어 버리는 상황이 된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또 100억 년이 지난다고 그럽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또 뭔가로 인해서 지구가 만들어지는데 또 100억 년이 지나고, 그러고 나서 지금과 같이 편안하게 생물들이나 사람이 살 수 있는 기간이 100억 년이 지나고, 이렇게.
겁(劫)이라는 것은 그런 겁니다.
쉽게 말하면 4개의 겁, 성주괴공이라고 그럽니까? 4개의 것 중에서 중생들이 살 수 있는 거는 1/4밖에 안되는 거죠. 그 정도로 많이 흘러간 거죠. 45억년 지나갔으니까.
그게 인제 요즘 말로 할 것 같으면 겁(劫)이라는 의미인데, 지금을 보통 현겁이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현재의 겁을. 부처님이,,, 지구라고 칩시다. 부처님이 지구에 존재했을 때가 있고 존재하지 않았을 때가 있어요. 존재했을 때도 한 분의 부처님만 있었겠어? 아니겠죠!
어떤 그 지구에서는 1명, 어떨 때는 2명, 많을 땐 5명까지 있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은 지금의 지구가 앞으로 45억 년이 지나고, 아니 50억 년이 지나고 나면 이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는 100억 년인데 100억 년 동안에 부처님은 딱 다섯 분이 출현하신다고 그럽니다. 그럼 대충 계산을 해보면 몇십억 년에 한 분씩 오시는 거라요? 뒤에는 뭐 오시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모르겠고, 어쨌든 10억 년에서 20억 년에 한 분씩 오신다는 뜻이라.
왜 그러냐면 같은 시대에 부처님이 두 분이 같이 동시에 출현하는 법은 없으니까. 왜 그러냐 하면 한 분의 부처님이 영향력이 완전히 소멸되고 나서 잊혀진 상태에서 다시 또 오시게 되는 거니까. 앞으로 오실 분은 한 분 남았죠? 누굽니까? (수행자 : 멧떼이야) 미륵불이 남았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깐 여러분들 시대에는 전혀 안 오겠죠. 꿈도 꾸지 말고 있으라고 얘기하는 것이라. 적어도 그분이 오실려고 할 것 같으면, 경전 상에는 그렇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지금의 부처님 가르침이 몇 년 간다고 그랬어요?
경전마다 조금씩 틀리긴 한데 뭐 정법이고 뭐고 이런 걸 따지지 전에, 어쨌든 가르침이 유지가 되는 거는 기껏해야 5천 년입니다. 그러면 100억 년 기간 중에서 아니면 한 분의 부처님이 오실 때 20억 년 간격이라고 칩시다. 그중에 5천 년이면 극히 일부분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살 수 있는 거로 태어난 것만 해도 복 받은 거라요. 근데 여기 있는 스님들은 적어도 지금 출가할려고 하는 조건을 갖춰지려면 나중에도 시간이 될른지는 몰라도 부처님 시대 때 태어나서 부처님이라고 한 번이라도 친견 했으니까 이제 출가를 한 거라. 대단한 스님들이에요. 공부를 했든 안 했든 간에, 공부를 했으면 여기 안 왔겠지. 공부를 안하고 있다가 늦게사 공부한다는 것도 행운입니다.
어쨌든 그런 복을 받은 스님들인데,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부처님 가르침이 지금 존재하는 상황 안에서 그 가르침을 배우고 있는 거기 때문에 ‘참 귀한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자꾸 공부를 할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보통 경전에는 30바라밀이 나와있습니다. 바라밀 30바라밀을 무수한 생, 한 생도 빠지지 않고 갈고 닦아 가지고 이 생에서 아라한이 되는 상태가 됩니다.
근데 이제 여러분은 만약에 부처님이 될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할 것 같으면,
10가지 바라밀을 세 등분해서 30바라밀로 나누는 것들, 다 안 해도 관계는 없습니다.
근데 딱 하나 중요한 거는 수행을 해봤으면 아마 알 겁니다.
뭔가 ‘나를 받쳐주는 게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가지고, 탁 치고 넘어갈 때가 있고 그렇지 못하고 ‘아, 힘들다’ 하는 그런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내가 선한 일들을 많이 했단 말이라. 악한 일은 거의 한 적 없는데.
그럼 선한 일을 한 것과 바라밀은 차이가 있는 걸까?
바라밀이 있어야만이 이게 탁 차고 넘어갈 텐데 내가 여태까지 지어 온 것들이 바라밀이 아니었던 거라.
우짜면 좋아? 뭔 차이가 날까?
바라밀과 일반 kusala꾸살라 - 선업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날까?
오늘도 법문 듣는 거 바라밀 짓는 거죠? 맞습니까? (수행자 : 네)
어째서 바라밀이라고 그래요? 꾸살라가 아닌가? 꾸살라에요? 바라밀이에요?
(수행자 : 꾸살라에요)
바라밀이라? 곧 죽어도?
여러분 오늘 계를 팔계 지키죠. 꾸살라입니까, 바라밀입니까?
(수행자 : 바라밀입니다.)
스님들이 가끔 탁발 공양 올리고 할 때 뭐라고 해요?
"상갓사 데마(Saṅghassa dema)"하고 나서, "상가에 공양 올립니다" 하고 나서 뭐라고 해요?
"이당 메 다낭 닙바낫사 빳짜요 호뚜(Idaṃ me dānaṃ nibbānassa paccayo hotu)" "보시공덕이 닙바나에 이르는 조건이나 원인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그냥 선업을 지은 게 아니고 바라밀을 지었다는 거라. 실제로 여러분들 바라밀을 짓는지는 모르겠네. 어떤 차이가 날까, 그 두 개는? (수행자 : 마음에서)
그렇지. 마음가짐이긴 한데, 탐·진·치가 없이 바라밀을 행하거나, 선업을 행할 때, 그것은 꾸살라임과 동시에 바라밀이 되는 거라.
가끔 스님이 그럴 때가 있습니다.
태국만 생각하면 나는 너무 좋아. 마음에서 바라밀이 자꾸 선한 마음이 계속적으로 일어나. 왜 그럴까? 법의 눈을 갖게 해준 곳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고향이라. 쉽게 말하면. 고향이기 때문에 그래서 태국에서 뭔가 “스님, 나 이거 좀 해줘” 이렇게 할 것 같으면 아무 소리 안 하고 기쁘게 가서 해줘. 뭔가 내가 지금 어려운 상황이 돼 있어도 그 생각 안 하고 그냥 가서 해줘.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아무런 기대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이 그냥 내가 베풀 수 있는 것들이라. 그거는 바라밀 행이라.
근데 대부분은 계를 지을 때도 억지로 계율 조목에 매여가지고 계를 지키려고 하고, 그거는 선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바라밀은 되지 못하는 거라.
수행을 해도 자꾸 해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1시간씩 하고 이럴 것 같으면 그거는 선업은 되어도 바라밀은 안 되는 거라. 그래서 적어도 바라밀이 될려면 아무 생각 없이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뭔가를 갖다가 할려고 자꾸 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게 바라밀이 되는 거라.
경전에 보면 일반 선업을 얘기할 때 왔다 "왓따 닛시따(vaṭṭanissita)"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 바라밀이 되는 선업은 뭐라고 할까? 앞에 vi위가 있습니다.
"위왓따닛시따(vivaṭṭanissita)" vi위는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vaṭṭa왓따는 굴레입니다. nissita닛시따는 의존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 의존하고 있는 굴레가 뭔가가 있을 겁니다. 그게 대부분 탐·진·치 입니다.
가끔씩 인제 그런 것이 있습니다. 뭔가를 했으면 한 표를 자꾸 낼려고 합니다. 근데 그거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근데 그럴 경우에는 그것은 열반으로 이끌어주는 바라밀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는 거라. 그래서 적어도 여러분들이 이 윤회라고 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것 같으면은 바라밀을 자꾸 행할려고 해야 됩니다.
조건을 얘기를 하겠습니다.
왜 재미가 없나? 왜 다 까불고 있어? 언제 들을라고? 그래서 아까 얘기했죠.
바라밀이 되는 조건,
첫 번째, 탐·진·치가 없이 뭔가를 행하라.
그래서 보시 한번을 할 때도 보시를 드릴 때의 마음, 그다음에 보시를 주는 행위에서의 마음, 보시를 하고 나서의 마음들이 항상 기쁘고 사띠가 있고 행복한 마음이 될 수 있도록 자꾸 만들어라고 하는 거라. 그것만 있을 것 같으면 적어도 그 보시하는 행위는 적어도 바라밀이 되는 거라. 이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가 뭐냐면 뭣 때문에 보시했지?
스님 잘 먹고 잘 살으라고? 그건 아니잖아? 좋은 법을 전해달라고? 그것도 일리는 있는 거고, 그런데 자기한테 해당이 되는 거는 뭐가 있어요? 내가 왜 보시를 하지? 열반에 이르기 위한 거라! 해탈하기 위해서 내가 그 바라밀을 쌓는 거지, 달리 그냥 선업 지어가지고 천상에 태어날라고? 윤회해서 조금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날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안된다는 거라.
"닙바낫사 빳짜요 호뚜" 열반을 증득해서 깨달음에 이르러서, 이 윤회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바라밀을 쌓는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선업공덕들을 쌓는 거라. 계를 지키더라도 오늘 8계를 지킵니다. 미얀마 같은 경우에 이제 '자비 바라밀'까지 포함하면 9계를 지킵니다. 지키더라도 계를 지킨다는 마음이 일으켜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켜지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어차피 지켜야 되는 것들이면은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그냥 지켜나가면 돼요.
그다음에 세 번째가 선업을 행할 때는 반드시 마음의 뭘 지닌 채 하라고?
자애를 지닌 채! 어떠한 행위를 하더라도 자애를 지닌 채 할려고 해야 됩니다. 자애가 지녀진 상태가 되면은 적어도 그것은 행위 자체는 어떤 경우든지 선업 이상은 된다는 거라.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행했으니까 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거고.
근데 그게 인제 바라밀이 될려고 할 것 같으면 그 자애의 마음이 무엇 때문에 하느냐 하는 거라. 나를 위해서? 아니잖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것만 해당이 되는 건 아니죠! 누군가에게 보시를 행했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결정심을 냈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계율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거는 무엇 때문에 하는 거라? 내가 계를 잘 지키면 누군가가 나한테 해코지할 수 있어요? 나쁜 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니면 누군가가 뭔가를 주는데 그 주는 사람한테 나쁘게 욕을 할 수가 있어요? 그건 아니라는 거라.
자애를 지니고 할 때는 어떠한 경우든지 나와 남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거라. 그래서 그런 것들을 잘해야 됩니다.
근데 만약에 보시를 했는데 스님 입장에서 이게 보시받을 때가 아니고 물건이 아니다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요? 거부를 할 수가 있는 거라. 그럼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는 거는 그걸 행할 때는 그거에 맞는 방편들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알지 못하면 그거는 상대방이 선한 마음을 일으켜주지 못하니까 그건 선업조차도 안 돼버리게 되는 거라.
그래서 경을 배우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들이 있고, 계율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들이, 방편을 쓰더라도 지혜롭게 쓸 수 있는 상황이 돼야 되는 것이지, 그러지 못하면 그것은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거라. 그건 아마 여러분들이 일상생활에서도 잘 경험들을 할 겁니다.
맞는 말이라도 지금 이 사람이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싫어하는 마음이 있다 할 것 같으면, 맞는 말을 지금 하면 안 되는데 그걸 꼭 굳이 지금 할려고 하는 거라. 이게 역효과를 가져오는 거라. 마찬가지입니다. 선업을 행하더라도 방편을 써서라도 지혜롭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돼야 됩니다. 이런 것들이 다 모였을 때 그것은 바라밀이 돼버린다는 거라.
외우기 힘들죠?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뭔가 선한 일을 할 때
첫 번째 고마워서 합니다. 그냥 고마워서 그냥 하는 거라. 고마워서 한다 하고 마음을 먹고.
두 번째가 내가 뭔가를 하지만 어떠한 경우든지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는 거라. 결과를 바라고 하지 않는다는 거라.
이 딱 2가지만 생각을 하면은 됩니다. 그러면 적어도 선업 이상이 되고 그것이 바라밀이 돼버리는 거라.
그리고 나서 마음속으로 결정을 하는 거라.
이거는 내가 윤회로부터 벗어나서 해탈·열반하기 위한 것이다. 하고 마음을 딱 먹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그 바라밀이 형성이 돼나갑니다.
바라밀이 형성되지 않으면은 적어도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해. 그거는 틀림없는 사실이라.
내가 선업을 참 많이 쌓았는데 왜 수행에서 자꾸 단계 단계를 못 넘어갈까? 그럴 때는 한번 돌아보라는 거라. 그것이 그냥 선업이었는지 바라밀이었는지? 하는 걸 잘 돌아볼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근데 어쨌든 부처님은 과거생에서 참 많은 선업 공덕을 쌓았다고 안 하고 "참 많은 바라밀을 완성을 했다"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도 부처님을 만나기 힘들고 부처님 법을 만나기 힘들었을 때, 왜 만나기 힘들다고 그렇게 얘기해요?
지금이 아니면은 해탈·열반에 이르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런 거라. 지금의 조건은 가장 해탈·열반에 이르기 가장 좋은 조건이라는 거라. 그래서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라밀이 되는 거라. 그래서 바라밀을 쌓기에도 참 좋은 조건이라는 거라.
부처님은 참 태어나기 힘든 조건에서 태어나서 그 부처님 법을 우리는 지금 배우고 있습니다. 신통력이 뛰어난 사람이 누구였죠? 목갈라나죠. 목갈라나가 어느날 생각을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어렸을 적에 그렇게 그런 상상들을 해봤을 겁니다. 이 우주는 얼마나 넓을까? 저기에는 누가 있을까? 그런 거 많이 해 봤죠? 똑같아요. 똑같애.
‘저 우주에는 뭐가 있을까? 얼마만큼 내가 신통력을 가지고 그 세계들을 볼 수 있을까?’ 하고 탁 들어가요.
근데 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어요. 쉽게 말하면 우주 미아가 돼 있는 상태라. 부처님이 구해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처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진짜 이해하기 힘든 게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지금 목갈라나 존자한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첫 번째가 뭐냐면 부처님이 얼마만큼 큰 공덕을 지녔을까?
여러분이 그 상태 되기 전에 알 수 있어요? 절대 모릅니다. 여러분이 수다원이 되기 전에는 수다원을 모르고,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아라한을 봐도 모릅니다. 눈앞에 있어도 몰라. 근데 내가 붓다가 되기 전에 붓다의 공덕을 알고 싶다? 글귀로는 알 수 있지만 마음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알기는 힘들다는 거라. 그걸 알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그냥 "참 훌륭하신 분이고 그분이 행했던 것 말했던 것 그대로 따라가야 되겠다" 하고 마음을 먹어야 되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가 업! 업에 대한 것!
안 적어놨나? 업에 대한 것, 업과 업의 결과. 어떤 업이 지금 작용을 할지 여러분 알 수 있습니까? 모르죠!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잘 없습니다.
어느 스님이 부처님이 없는 시대에 태어나 가지고 출가를 했어요. 딱 일주일간.
근데 그 공덕으로 경전에는 그렇게 돼 있습니다. 무수한 생애 사악처에 빠지지 않고 부처님이 태어날 때 딱 태어나서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해가지고 아라한이 됐다고 그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미얀마 같은 경우에는 출가한 스님들을 부를 때 '둘라바'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어렵게 만든 기회다' 하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부처님 법을 지금 듣고 실천하고 있는 거는 안 어려워요? 여러분들도 그런 둘라바입니다. 가장 어려운 걸 지금 경험하고 있는 거라. 그래서 업과 업의 결과에 대한 것들을 알려고 하지 말아라. 하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선정의 상태가 어떤 건가? 하고 알려고 하지 말아라.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선정이 어느 정도의 상태인가?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상태에 자기가 도달하기 전에는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몇 선정에서는 기쁨이 일어나고 몇 선정에선 행복이 일어나고 하더라도 그걸 경험해 보기 전에는 어떻게 알 거라? 기쁨과 행복이 어떤 차이가 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걸 논하고 있다? 그냥 해봐라는 거라.
마찬가지로 부처님 가르침을 그냥 행하듯이 행해라는 거라. 업과 업의 결과에 대해서 알려고도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행해보라는 거라. “착한 일을 하니까 좋은 일이 일어나대!” 금방 알 수 있는 것들인데도 그걸 자꾸 알려고 한다는 거라.
그다음에 네 번째, 이 어리석은 목갈라나한테 한 얘기라.
세상의 기원,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에 이게 존재하고 어떻게 파괴되고 하는 것, 그리고 부처님이 얼마만큼 어렵게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알려고 하는 것, 의미 없는 것들이라는 거라.
그래서 그런 것들은 부처님이 분명하게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쓸데없는 것들이고 오히려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첫 번째,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설명을 쭈욱 해놔놨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바라밀에 대한 것들을, 10가지 바라밀에 대한 것들은, 10가지 바라밀은 여러분이 평상시 때 하는 것들입니다. 진리를 알려고 하는 것들은 안 합니까? (수행자 : 합니다.) 수행할 때 ‘아, 내가 이번에는 적어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수행들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냥 단순하게 선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바라밀이 될 수 있도록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5페이지 끝에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직 남아있는 현재 얻기 어려운 가르침을 만난 우리는 매우 운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이 얻기 어려운 것을 만난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하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두 번째 인간으로 태어나는 건 얻기 어렵다.
어렵겠죠. 인간으로 태어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입니다. 왜 그럴까? 인간으로 태어나도 여러분들 선한 마음이 많아요? 아니면 불선한 마음이 많아요? (수행자 : 불선한 마음)
불선한 마음이 훨씬 많습니다. 여러분은 죽고 나면 어디에 태어날 것 같애요? 인간으로 못 태어납니다. 그대로 가면.
그런데 불선한 마음이 많은 상태에 있었든, 사악처에 태어나는 상태에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건 진짜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힘든 거라. 아니면 천상세계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 좋아 죽겠는데 뭐하러 인간으로 올라고 할 거라? 안 올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상세계의 수명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깁니다. 이론적으로 할 것 같다면 사천왕이 사는 곳은 이십 깝빠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20깝빠가 아니고 20억 년. 현재의 시간으로 치면. 그러면 사천왕 5번 하면은 이 지구 망해버립니다. 그러면 5번 하고 말지, 뭐하러 왔다 갔다 수백 번을 할려고 할 거야? 안 온다는 거라.
그러니까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음에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쉬운데, 지금 여러분들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힘든 조건들을 자꾸 만들고 있다는 거라.
근데 그렇게만 보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건 진짜 다행으로 생각하고 지금 해야 될 일들을 해라는 거라. 왜 이 어려운 기회를 갖다가 자꾸 놓치고 자꾸 짜증내고 욕심부리고 공부는 안 하고 자꾸 딴 방향으로 자꾸 갈려고 하느냐는 거라.
그리고 사성제의 진리를 알아야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데, 그 어떤 다른 곳에서도 사성제 진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인간일 때 가능한 겁니다. 이때 내가 깨달음을 얻어서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지, 천상이나 아니면 악처에서? 어림없는 소리라는 거라. 그마만큼 지금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신심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얻기 어렵다.
믿음은 뭐에 대한 믿음입니까?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과 업과 업의 과보에 대한 믿음, 딱 4가지 입니다.
그걸 확고하게 했으면 여러분은 이미 수다원이 돼 있겠죠. 아직 확고하지는 않습니다. 수다원이 되기 전에는. 그런데 그래도 확고해지도록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
거기 보면은 9페이지에 보면 「"비구들이여! 나는 내 마음으로 일부 마음이 청정한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안다. 지금 이 사람들이 죽으면 천상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라고. 왜 그럴까? 그 사람들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을 확립하려고 하는 것은 마음이 청정해지면 믿음은 확립이 됩니다.
그래서 이 빨리어 게송에서 말하는 "믿음을 가진 마음을 청정한 마음"이라고 부처님이 얘기를 합니다. 청정한 마음, 가장 쉽습니다. 그죠. 사띠하면 됩니다. 사띠 하면은 그마만큼 청정한 마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든지 대상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사띠를 하게 될 때 마음은 청정하게 됩니다. 마음은 가볍고 마음은 대상을 집착하는 법이 없이 그대로 그냥 청정한 상태에 있다는 거라.
근데도 자꾸 잊어먹어 버립니다. 왜 사띠를 자꾸 잊느냐는 거라. '죽은 목숨'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도, 지금 자꾸 죽은 목숨같이 살고 있느냐는 거라. 사띠하는 버릇들을 자꾸 들여서 어떠한 경우든지 사띠하는 생활들이 되도록 자꾸 노력들을 해야 됩니다. 사띠를 하면 탐·진·치가 없이 살아가집니다. 사띠를 하면은 마음은 항상 청정한 상태를 가지게 됩니다. 사띠를 하게 되면은 그것으로 인해서 ‘아, 내가 가는 길이 맞다’라는 믿음이 딱 서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행한 것들에 대해서 어떠한 것들도 받아들이겠다’ 하는 마음을 딱 가지게 됩니다. "사띠하는 것만이 믿음을 확립하는 길이다" 하는 걸 갖다가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는 것 5가지 부분(다섯 가지 채우고 준비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여기에 쭈욱 얘기해놓았습니다.
삿다 삼빠다부터 해가지고 실라, (수따, 짜가, 빤냐) 쭉 해가지고 5가지, 계로 채우는 거, 보시하고 집착을 놓아버리고, 지혜를 충만하게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쭉 얘기해놓았습니다.
그게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다시피 합니다.
사띠를 하게 되면은 계는 자연스럽게 안 어기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더 공부를 할려고 하게 되고, 공부를 하게 되면은 지혜는 저절로 자꾸 열립니다. 그래서 지혜의 단계들이 점점 더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믿음은 더욱더 굳건해지고, 자연스럽게 계는 지켜지고, 공부해야 될 양들은 점점 더 늘어나지만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고, 그리고 사띠는 계속적으로 무르익어가서 자연스럽게 사띠가 되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그러면 이제 그게 사이클이 딱 돼버리고 나면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거라.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은, 이제는 그 사람은 순조롭게 인제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해탈 열반의 길로 순조롭게 나아가지게 됩니다.
적어도 그 상태까지는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이, 믿음으로 충족하는 것이 어려운 건데 그래도 여러분들이 해나가야 됩니다.
수다원이 어렵고 아라한이 어렵고 하는 것들을 염두에 두지 말고, 순차적으로 한 발짝씩 뗄려고 자꾸 노력을 해서, 이게 사이클이 되도록 해서 서로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하면 좋습니다.
그걸 부처님은 「재산」이라고 그럽니다.
재산은 여러분들이 반드시 갖추어놔야 됩니다.
그 재산은 여러분들을 열반으로 인도해 줍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 출가하는 것은 얻기 어렵다.
여러분하고 관계가 없는 것 같이 보이죠? 사실은 관계가 없습니다.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떠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출가를 하더라도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청정한 출가를 말하는 거지, 대충 사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엄밀하게 얘기할 것 같으면 단기출가 해가지고 억지로 계율 지키면서 출가 생활하는 그것도 해당은 사실은 안 됩니다. 출가 생활이 기쁘고 그리고 열반을 향해서 나아가는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게 밑바탕이 돼서 더욱더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것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갖다가 주석가들은 마력에 비유를 합니다. 9마력보다는 227마력이 훨씬 더 힘이 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띠하는 힘들도 더 훨씬 힘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힘이 크면 클수록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데도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가하는 것이 어렵다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출가자와 마찬가지의 생활을 해나갈 거 같으면은 적어도 "출가하는 것이 어렵다" 하는 것도 또 여러분들이 성취하는 것들이 됩니다.
그래서 주석서에는 「출가하는 조건에 대한 3가지」를 얘기를 해 놨습니다.
첫 번째가 부처님이 태어났을 때 부처님을 만나 뵙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거 잘 모르죠? 아직 출가를 안 했으니까 안 만난 것 같애요? 그건 모릅니다. 이 생에서가 아니고 다음 생에서 출가할지 어떻게 알아? 과거생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났을지 누구도 모르는 거라. 확실한 거는 여기 있는 스님들은 과거생에 부처님 시대 때 태어났다는 거라.
그다음에 두 번째가 여러분은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그다음에 세 번째 믿음으로 출가하게 되는 것.
딱 이 3가지 조건입니다.
근데 여러분은 3가지 조건을 다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재가생활 하면서도 출가자같이 살 수 있는 조건들은 얼마든지 갖추어 나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단지 7일간 출가한 것으로 무수한 생애 동안 악처에 안 빠졌다? 7일간 출가해가지고 계율 청정하게 잘 지킨 것만 가지고 되겠어요? 절대 그렇게 오해하면 안 됩니다. 다시 태어났을 때 마찬가지로 계를 잘 지키고 청정하게 살아가는 것, 무수한 생을 반복해서 태어나더라도 무수한 그 생 동안 계속적으로 계를 잘 지키고 청정하게 살아가고 선한 마음들을 계속적으로 일으킨 상태이기 때문에 그 무수한 생 동안에 악처에 빠지지 않는 겁니다.
단순하게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한순간이라도 악한 마음을 탁 먹으면 바로 악처에 빠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악한 결과가 탁 일어난다는 거라. 100번 선한 걸 했다가 1번 잘못했을 때 그 한 번 잘못한 것이 나쁜 쪽으로 유도를 한다는 거라.
근데 어떻게 7일 출가한 걸 가지고 무수한 생애 동안 악처에 안 빠질 수 있겠어요? 그렇게 오해는 하지 말아라는 거라. 어떠한 경우든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마음에서 악한 것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꾸 방어를 해야 된다는 거라.
생은 불확실한 것이고 어떤 경우가 내 앞에 닥칠지 모릅니다. 그런 두려움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딱 한 번 그냥 눈감아줘? 그게 있을 수가 없다는 거라.
그다음에 다섯 번째, 올바른 법을 듣는 것은 얻기 어렵다.
바른 법을 듣지 못하면 그 분은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바른 법을 듣지 못하면 어떤 것이 꾸살라이고 어떤 것이 아꾸살라인지도 모릅니다. 바른 법을 듣지 못하면 완전히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는 거라.
그마만큼 바른 법은 중요합니다.
그냥 법을 들을려고 하지 말고, 그 법이 반드시 나를 해탈·열반으로 이끌어주는 법을 들어라는 거라. 단순히 귀에 좋은 소리로만 들리고 또는 경책해주는 소리로 듣고 이런 거로만 법을 들을려고 하지 말아라는 거라.
미사여구로 좋은 것들은 시중에 널려 있습니다.
법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법은 단호합니다.
법은 어떠한 경우든지 반드시 방편을 썼든 뭘 했든 간에 열반으로 이끌어주는 법이 그게 법인 것이지, 그렇지 않은 것들은 바른 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꾸 지금 바른 법을 들었을 때 그걸 자꾸 듣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실천을 해보면 분명하게 기억을 합니다. '이 법만이 나를 열반으로 인도해 줄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들을.
그래서 15페이지 보겠습니다.
「Dullabha라는 얻기 어려운 것이 갖추어져 있는 지금, 여러분이 할 일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실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것이 될 수 있도록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다섯 가지 얻기 어려운 것들은 지금 여러분들은 기회를 잡은 겁니다.
그 기회를 섣불리 놓치지 말고 이 기회에 여러분들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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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원문: 한국테라와다불교 밴드
https://band.us/band/58043604/post/3447
* 참고 법문: 이전에 대구에서 하신 '다섯 가지 얻기 어려운 일' 법문
https://cafe.naver.com/buddhayana1/824
* 참고 경전: 세상의 끝을 찾으려고 했던 로히땃사 이야기(S2:26)
https://bomunghome.tistory.com/m/15716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