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법문


빤냐완따 큰스님 추모법회(20260329. 담마와나선원)

사깜마
2026-03-29
조회수 100





* 빤냐완따 스님 추모법회(20260329. 담마와나 선원)


오늘은 빤냐완따 스님 추모법문입니다. 빤냐완따 스님은 출가하기 전에 알고 있었어요. 태종사에 가서 수행하고 이래 가지고. 그때는 스님이 태국에 있다가 은사 스님이 태종사에 계시니까 태종사에 와서 뭐 하고 있으면 수행하러 오고 그렇게 했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출가하고 싶다.” 이래가지고 그때 태종사 도성 스님, 그다음에 거해 스님, 그리고 저, 그렇게 세 사마상이 돼가지고, 그렇게 칸띠담모라는 인법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러고 나서 스님은 조금 더 공부하겠다 해가지고 미얀마에 가서 다시 빤냐완따라는 이름을 다시 받았어요. 그래서 보통 "인법 스님"하고 부르기도 하고 "빤냐완따 스님"하고 부르기도 하고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어떡하나. 계를 줬던 빤냐완따 스님 같은 경우는 같은 스승 밑이니까 사제가 되는 거지. 먼저 돌아가버렸네. 나도 오래 살았는 모양이다. 사제가 먼저 돌아가는 게. 한국의 테라와다 불교가 만들어지고 나서 몇 스님들이 이제 계속적으로 돌아가시고 있습니다.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 모르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누가 먼저 돌아가실 것 같아요? 모르지요? 언제 돌아가는지는 알아요?

 

그런데 왜 헛되게 세월을 보내고 있어? 빤냐완따 스님 돌아가시니까 슬퍼요? 슬픈 거는 선한 감정이에요? 악한 감정이에요? 근데 돌아가신 스님 때문에 악한 마음이 일어나면 빤냐완따 스님이 진짜 잘못한 거네? 누가 잘못한 거라?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자기 자신이죠. 빤냐완따 스님이 일으키자 소리 안 했을 거고, 일으킨 건 본인이잖아. 왜 슬픈 감정이 일어날까? 악감정이.

 

악감정은, 슬프다는 감정은 분노의 일종입니다. 내가 이랬으면, 좀 오래 살았으면 싶었는데, 마음대로 안 되고 딱 그냥 입멸해 버리니까 그 사실로 인해서 나는 마음에서 싫다는 감정이 일어나게 되는 거라. 그 싫다는 감정이 일어나니까 그다음에 일어나는 것이 이제 그 스님에 대해서 떠올리다 보니깐 ‘슬프다’ 아니면 ‘힘들다’ 뭐 이런 감정들이, 그런데 어쨌든 그 악감정을 일으키면 안 되겠죠.

지금부터라도 그런 악감정은 일으키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거는 빤냐완따 스님이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 자신이 그대로 지은 행위에 대해서 결과를 받게끔 되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든지 선한 마음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스님을 떠올림으로 인해서 슬픈 감정이 일어나야 되는 게 아니고 선한 마음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거 해주기 위해서 오늘 법문이 필요한 거라. 알겠죠?

 

제목이 뭐라고 적어놨어요?

"육체는 늙어가나 이름과 명성은 늙지 않는다"

육체가 늙어가기만 하겠어요? 병들고, 죽게 돼있죠. 그걸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변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 진리도 "나마곳따(nāma-gotta)"에 관한 일입니다. 쉽게 말하면 육체적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것에 해당이 된다는 뜻입니다. 정신적인 것도 언젠가는 부처님 가르침이 없어질 날이 또 생길 겁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가르침대로 안 살고 또 그걸 실천 안 하면 없어지는 것이지 뭐, 다르게 되겠어요?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 육신은, 부처님 육신은 80년 사셨지만, 부처님 가르침은 아직도 2600년 계속 이어오고, 그게 부처님이 잘못 살아왔거나 아니면 잘못 보여주지 안 했었으면 그 가르침은 금방 끝나겠지.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은 어떠한 경우든지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에 이를 수 있고, 그대로 따라보니까 참 행복하고 잘 살아가게 되거든. 그래서 그 가르침을 더욱 자꾸 접하게 되는 거라.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은 지금도 계속 존속해 있다는 거라.

처음에 테라와다로 출가를 하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소리가 뭐냐면

"부처님 같이 살아라." 뭐 조금만 잘못하면

"그러면 안 돼. 부처님같이 행동해야 돼. 부처님같이 말해야 돼."

맨날 옆에 따라다니면서 그래. 처음에는 그게 이해가 안 됐어요. 나중에 이해를 하는 때가 탁 오게 됩니다. 아직 번뇌가 남아있는 사람은 잘못을 할 수가 있습니다. 잘못을 하고, 잘못 말하기도 하고, 탐진치가 일어나기도 하고 합니다. 출가자라 해서 달리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탁 머리에 꽂히는 게

"어, 내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 있나? 부처님과 같이 살고 있나?" 하는 게 자꾸 떠올라요. 하도 들어가지고. 그러다 보니까 대부분 테라와다 스님들은 부처님 못지 않는 존경을 받게 됩니다. 왜? 진짜 부처님 같이 살아가고 있거든. 부처님 같이 말을 하고 있거든. 자기 속이야 부글부글 끓든지 어쨌든지 간에 그게 밖으로 표출되지는 잘 않는다는 얘기라.

지금은 수행을 가르치는 것도 스님이고, 부처님 가르침을 가르치는 것도 스님이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서구화된 한국이나 서양 같은 경우에는 재가자들이 담당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본 뼈대는 스님들이 그걸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 부처님 법을 계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은 스님이지, 재가자가 아니라는 뜻이라.

그래서 스님들은 더욱더 임무가 막중한 거라. 행동거지 하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아마 빤냐완따 스님도 그러했을 거라고 봅니다. 또 우리가 겪어 본 빤냐완따 스님, 저 같은 경우에는 이 30년을 겪었으니까, 어찌 보면 스님 입장에서는 좋은 말벗이 있었는데 그냥 어느 순간에 탁 그냥 사라져버린 상태가 돼버립니다.

같이 부처님 법에 대해서 이렇게 차담하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스님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럴 때 보면 돌아가신 건 어쩔 수가 없지만, 요 한쪽 팔이 툭 떨어져 나가는 그런 느낌은 받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같이 슬퍼하고 그러지는 않고, 그 대신에 여러분들에게 "바른 법을 조금 더 열심히 전해야 되겠구나. 스님 몫까지." 그런 생각들은 일으키고 있습니다.

 

근데 여기 있는 빤냐와로 스님도 언젠가는 여러분들 곁을 떠날 겁니다. 모르지. 저보다도 여러분들이 더 빨리 떠날 수도 있겠지. 떠날 때 뭘 가지고 갈 거라? 뭘 가지고 가는 게 좋겠어요?

여러분은 빤냐완따 스님에 대해서 추억할 때 뭘 많이 기억을 합니까? 스님 같은 경우에는 글을 아주 화려하게 잘 써요. 그래서 우리 예불문 있죠? 예불문 초안은 스님이 만들고, 그리고 그걸 검토를 거치는 거는 상가 대중 스님들이 전부 다 검토를 다 거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걸 화룡점정이라고 그러지. 그 불교의범을 한글로 아주 아름답게 다듬은 거는 빤냐완따 스님이라. 어떨 때는 너무 화려하게 해서 내가 “마음에 안 든다.”하고 할 때도 있고 “그냥 직역하라.” 하고 할 때도 있고 했지만, 그래도 다듬는 건 참 잘 다듬어요.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하면 일반 대중들이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부담 없이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길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참 잘했습니다.

 

그리고 태종사에서 일주일 용맹정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평상 위에서 그냥 햇볕만 가려 있고, 모기장만 쳐진 그 아래에서 눕지도 않고 일주일간 그렇게 용맹정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스님도 그렇게 일주일 용맹정진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출가를 했어도. 대부분 잘 때 되면 자지 앉아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 습관이 있어가지고 잠시간이 되면 잠이 와요. 그러면 앉아서 잡니다. 그러다가 정신이 퍼뜩 들어가지고 이렇게 돌아보면 다른 스님들도 다 내같이 조불고 자고 있어. 그런데 꼭 한 스님 빤냐완따 스님만 꼿꼿하게 수행을 하고 있어.

물론 그때는 빤냐완따 스님 출가한 지 얼마 안 됐기도 했고 다른 선배 스님들한테 그런 모습들을 보이기도 싫은 것도 있었지만은, 그때 이제 처음 느낀 게 ‘아, 저 스님이 그래도 수행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어찌 보면은 다른 한국에 있는 스님들도 훨씬 수행을 열심히 했던 것들을 저는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룬 것도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스님이 내뱉는 담마에 대한 한마디 말들이 굉장히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단 홈페이지에는 보면 빤냐완따 스님이 남긴 교학과 수행에 대한 글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올라오기 전에 한 일주일 전에 ‘스님이 뭔 글을 남겼지?’ 하면서 한번 좀 훑어봤어요. 그런데 스님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참 많이 있구나 하는 것들을, 그마만큼 ‘부처님 가르침을 어긋나지 않게끔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풀어내는 능력이 참 뛰어났구나’ 하게 걸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마 여기 있는 스님뿐이 아니고 여러분들도 똑같이 스님의 가르침을 그렇게 듣고 또 배우고 그렇게 해왔을 겁니다. 그거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걸 기억하고 있으면 앞으로는 그 스님을 기억할 때 슬프다는 감정을 일으켜야 되는 것이 아니고,

kataññutā-katavedi(까딴뉴따-까따웨디)라고 그럽니다.

 

태국 같은 경우에는 스님들 조그마한 쪼래기(자루)를 이렇게 줄 때 대부분 거기에 글귀로 태국말로 써져 있지만, 써져 있는 게 kataññutā-katavedi(까딴뉴따-까따웨디)라고 그렇게 적어놓습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 “니가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아라. 그리고 감사할 줄 알면 그것을 실제로 실행해라.”라는 뜻입니다.

출가한 스님들한테 재가자가 그냥 뭐 돈이 많아가지고 뭐 쪼래기 하나라도 이렇게 해주는 게 아니니까, 이거 어렵게 어렵게 만들어 가지고 쪼래기 하나라도 주는 거니까, 이거 그 재가자들의 감사함을 알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스님에 대해서 딱 떠올린다’ 그러면 가장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이 ‘감사합니다’ 하는 거라. ‘이런 법을 듣고 배우고 내가 실천할 수 있게끔 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거라. 그게 '까딴뉴 웨다' 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아, 이같이 좋은 법의 가르침을 들으면 기쁜 마음이 자꾸 싹 일어나는 거라. 그러면 이걸 가르쳐준 스님이 누구라고? 빤냐완따 스님입니다.

그래서 빤냐완따 스님께 ‘존경합니다’하는 마음이 탁 일어나는 거라. 그게 katavedi(까따웨디)라고 그럽니다. 나도 그렇게 이제 법의 맛을 봤으니까, 참 이것을 먼저 체험하신 스님을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는 마음을 자꾸 담아야 됩니다.

 

호흡을 한번 해봅시다. 들이쉬고 내쉬고, 눈을 감고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쉴 때 명칭을 붙이기를 빤냐완따 스님을 떠올리면서 ‘감사합니다’ 하고 들이쉬고, 숨을 내쉴 때 ‘존경합니다’ 하면서 한번 내쉬어 보십시오.

됐습니다. 할 수 있겠어요? 쉽죠? 수행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리고 kataññutā-katavedi(까딴뉴따-까따웨디)라고 하는 거는 이렇게 실천이 될 때 그 값어치가 드러나지게 됩니다.

앞으로는 빤냐완따 스님을 기억할 때는 먼저 스님을 회상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이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해야 됩니다. 수행할 때 어떤 수행처에서는 호흡을 들이쉴 때 들이쉰다고 명칭을 붙이고, 내쉴 때 내쉰다고 명칭을 붙이고, 그거와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명칭을 붙이지 않으면 마음은 온 마음을 기울여서 감사하다는 것으로 가지 않고 마음이 달아나버립니다. 그래서 명칭을 붙여서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면서 해주면은 적어도 그때의 마음은 선한 마음들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서 깊이 있게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는 마음을 탁 명칭 붙여서 하고 있으면 뭐가 일어나겠어요? 아까 슬프다는 감정은 성냄의 영역이라 그랬죠. 성냄의 반대가 뭐죠? 기쁨의 영역입니다. pīti(삐띠)가 탁 일어납니다. 온몸에서 소름 돋듯이 감사함으로 딱 충만 되는 게 느껴집니다. 온몸이 존경하는 마음이 확 퍼지는 것이 빛이 퍼져나가듯이 싹 퍼져나갑니다.

조그마한 명칭 하나라도 온 마음을 기울이면 선한 마음이 오히려 크게 증장돼서 나에게 다가와지게 됩니다. 산만했던 마음? kataññutā-katavedi(까딴뉴따-까따웨디)를 딱 하면서 마음은 집중된 힘이 탁 나갑니다.

 

saṁyama(상야마)라고 하는 그 빠알리어 단어가 있습니다. 여기에도 그 뒤에 써놨습니다. 우리가 대상을 알아차릴 때 어떻게 알아차립니까? 대상이 있는지를 딱 알고 그 대상에 바르게 딱 겨냥해서 딱 그 대상을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그 대상은 어떻게 해요? 변하는 대상이죠. 변하지 않는 대상은 없습니다. 그러면 계속적으로 그걸 따라가면 됩니다. 따라가다 보면은 변하는 특성이 탁 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변화하는 게 보입니다. 그럼 그게 변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은 마음은 이미 여기 있는 게 아니고 그 대상하고 딱 같이 일치돼 가지고 있는 게 보여집니다. 그걸 빨리어로 saṁyama(상야마)라고 그럽니다. 한국에서는 그걸 '극기'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극기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합니다.

 

그런데 뭘 극복하는 거죠? 화가 일어나는 걸 극복하는 거고, 집중하지 못하는 걸 극복하는 거고, 어리석게 노력하지 않는 마음들을 극복하는 것이 saṁyama(상야마) 입니다. 그런데 그 saṁyama(상야마)는 대상을 바르게 겨냥하고 그것을 분명히 알아차리고 변해가는 속성을 보면서 마음이 거기에 딱 집중돼 있을 때, 그래서 하나로 마음이 거기에 완전히 몰입되는 상태가 됐을 때 그때를 saṁyama(상야마)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럴 때는 탐 진 치는 딱 극복이 돼버린 상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할 때도 하나의 명칭이지만은 완전하게 그렇게 호흡 시작하면서, 들이쉬면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명칭과 함께 호흡이 딱 끝나도록 해야 됩니다. ‘존경합니다’도 호흡이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시작해가지고 호흡이 끝날 때 딱 끝나도록 한번 해보십시오.

처음에는 잘 맞추기 힘들더라도 계속적으로 하다 보면, 바르게 겨냥했으면 그 겨냥한 걸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마음은 딱 거기에 일치가 돼서 호흡을 ‘들이쉰다, 내쉰다’하고 알아차리는 게 아니고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면서 계속적으로 그 대상을, 실재하는 대상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호흡이 불러오는 게 어떻게 불러와지고, 꺼지는 게 어떻게 꺼지는 것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되는 거고. ‘불러올 때 분명히 틀리네’ ‘꺼질 때도 분명히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로 보여지네’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다 보면 마음이 완전하게 몰입이 돼버립니다.

그러면 어찌 보면 어떤 사람은 숨 한 번으로도 빤냐완따 스님에 대해서 회상하면서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했는데 삼매에 툭 들어버릴 수가 있는 거라. 스님께 보답할 수 있는 게 그마만큼 좋은 게 있어요?

 

여러분이 수행을 하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 걸 스님이 바란 적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른 가르침을 전할까 하고 노심초사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이것을 접할 수 있게끔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스님이 해왔던 길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그걸 따라야 됩니다. 그게 여러분들의 의무입니다.

빤냐완따 스님은 육신은 이미 입멸했지만은 여러분들에게 살아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부처님이 우리 곁에 계속적으로 살아 있듯이, 빤냐완따 스님도 여러분들 곁에서 계속적으로 살아 있게끔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끔 선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면서 살아가도록 하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빤냐완따 스님 돌아가셨죠? 여러분도 언젠간 죽을 거죠?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언제 죽을지 모르죠? 죽을 때 뭘 가져갈 건데? 여러분 수행하고 공덕밖에 없습니다. 이걸 등한시하면 나중에 진짜 후회합니다. 공덕 쌓는 일에 등한시하는 것도 안 될 뿐 아니라, 수행하는 것도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0

INFORMATION


단체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고유번호 : 138-82-04817

이사장: 박석현

주소 :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신양3길 70

TEL: 010-7514-1998/ 010-3181-2316 

E-MAIL: sura.ambattha@gmail.com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

ALL RIGHTS RESERVED.


CONTACT

INFORMATION


단체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고유번호 : 138-82-04817

이사장: 박석현

주소 :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신양3길 70




TEL:   010-7514-1998/ 010-3181-2316

E-MAIL: sura.ambattha@gmail.com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

ALL RIGHTS RESERVED.




© BYULZZI Corp.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byulz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