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법문


기초수행18. 마음관찰4 (20080111)

사깜마
2024-10-24
조회수 108


* 기초수행18. 마음관찰4 (20080111) 


소래도 왔는데 소래가 알아듣겠나? 걱정이네. 소래가 왔으니까 소레이야 얘기를 좀 해줄게요. 마음에 관계된 거니까 벗어난 것은 아닐 겁니다.

여러분들은 자식을 어머니가 더 사랑할 거 같애요? 아버지가 사랑할 거 같애요? 같을 거 같애요? 소래야! 누가 더 사랑하는 거 같애? 응? 엄마 눈치 보지 말고. 

연경이 너는? 모르겠어? 

통상적으로는 자식은 잘 모르는데 아빠보다는 엄마가 자식을 훨씬 더 사랑한다고 그럽니다. 그게 거의 99% 이상 그렇다고 그럽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엄마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그럽니다.


이 소레이야도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남자인데 결혼을 해서 아기를 두 명을 낳았어요. 그래가지고 잘 키우고 있는데, 깟짜야나 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이 한 분 탁발을 나오는 모습을 보고, 깟짜야나 스님이 얼굴이 굉장히 하얗고 곱상하게 생기신 스님입니다. 그러니까 그 스님을 보면서 결혼을 했는데도 '아! 저 스님이 내 아내가 되었으면, 내 아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마음을 일으킨 거야. 


그런데 희한하게 이 소레이야 라는 사람이 그 마음을 품자 몸이 변해가는 거라. 자기가 여성으로 싹 바뀌어버리는 거라. 남자가 여자가 되어버리는 거라.

그래 탁발을 하러 나와가지고 남자가 여자로 바꼈으니까 집에 어떻게 갈 거야? 집에 돌아갈 수가 없는 거라. 그래가지고 다른 데 정착을 하고 살면서 거기서 또 어떤 남자하고 결혼을 했어. 결혼을 해가지고 거기서 또 어머니로서 애를 둘이나 낳게 되는 거라. 아버지로서 애를 둘 낳고, 어머니로서 애를 둘이 낳게 된 거라.


어느 날 우연찮게 자기가 남자였을 때 자기의 친구를 만나게 되는 거라. 그래서 친구한테 그 집 사정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친구가 깜짝 놀랍니다. 이 여자가 그 집일을 어떻게 아는가? 그럼 너는 어떻게 되는 거냐 하니까, 나는 사실은 남잔데 몸이 바뀌어가지고 이렇게 여자가 됐다 하고 얘기합니다. 

그래가지고 깟짜야나 스님한테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이 문제가 됐다 해가지고, 깟짜야나 스님을 초청해가지고 공양을 올립니다. 공양을 올려서 공양을 올리자마자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던 게 다시 남자의 몸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우짤끼라 인제. 요도 애가 둘이 있고, 여도 애가 둘이 있고. 어데로 갈 거야? 어데로 우짤거야? 자기 자식을 이렇게 낳아놨는데.

그래서 '아! 내가 갈 길은 세속의 길이 아닌갑다' 해가지고 출가를 하게 됩니다.


출가를 하면 어떤 때는 스님들이 참 짓궂습니다. 세속 일들은 되도록이면 잘 안 물어보는데 이건 좀 특이한 경우거든. 그래서 물어봅니다. "야야! 니 옛날에 가정생활 할 때 한 번은 남자였고, 또 한 번은 여자였고 그런데 그때 낳은 아이들 중에 누가 더 예쁘더냐?" 그러니까 소레이야가 그럽니다. "나는 그래도 엄마였을 때 나은 애들이 참 정이 가고 애착이 가더라."

이게 사실은 맞거든. 똑같이 자기 몸으로 낳은, 아버지 때는 자기 몸으로 낳은 것은 아니라도 어쨌든 자기 자식인데, 아버지였을 때는 그렇게 정을 못 느꼈는데 어머니였을 때는 그렇게 정을 느낀다는 거라. 그래서 그런갑다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내가 왜 이렇게 몸이 바뀌게 됐는가 하는 걸 갖다가 자기 자신이 잘 관찰을 해봅니다. 

나쁜 마음을 먹음으로 인해가지고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하는 거라.


여러분들도 마음만 낸 건데 뭐 어떻겠나 하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내가 만약에 도둑질하고 싶은 마음을 탁 냈다, 실제 도둑질한 것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사회법으로 따질 것 같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들킨 것도 아니고,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게 가장 나쁘다고 그러는 거라. 내가 만약에 또 다른 나쁜 마음을 먹었다, 실제로는 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은 다른 어떤 거보다도 그걸 더 뭐라 하는 거라.


그런데 이 소레이야는 그 나쁜 마음을 먹은 것으로 인해서 그런 과보를 받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걸 반드시 명심을 해야 되는 거라. '나쁜 마음 먹은 거 아무런 죄책도 되지 않는데 뭐 어떠냐?' 반드시 결과를 가져옵니다!

오히려 행위를 했을 때는 지금 현재 처벌을 받습니다. 나쁜 행동 했으면 누가 손가락질이라도 하고 있다, 그거는 결과를 바로 받아. 나쁜 마음 먹은 거는 결과는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받게 돼있다는 거라.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하는 것은 결과를 지금 즉시 받는 경우들이 많은데, 마음을 먹은 것은 뒤에 나타나게 돼있습니다. 

왜? 그런 마음들은 오래도록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가지고 있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은 것들은! 특히나 죽음에 이르게 됐을 때는 그렇게 나쁜 마음 먹은 것들이 자꾸 걸립니다. 자꾸 걸려서 그게 떠오르게 됩니다. 그럼 지가 아무리 좋은 공덕을 쌓고 좋은 일을 하더라도 다음 생에 좋은 몸을 못 받게 되는 거라.

경전에는 수없이 그런 것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는다는 게 그렇게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부처님은 가중을 따진다고 할 것 같으면 마음, 나쁜 마음을 내는 것이 가장 크고, 그다음에 나쁜 말을 하는 것, 그다음에 나쁜 행위를 하는 것 이렇게 구분을 합니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마음이나 말을 잘 조절할 거 같으면 행동은 방어를 해나갈 수가 있고, 말도 마음을 잘 조절해나가면 말도 잘 조절해 나갈 수 있는데, 마음은, 의도를 일으키는 것은 그것은 근본 뿌리를 알기 전에는 다스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렇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이미 행위로써 나타나버린 것이라서 결과를 받을 수도 있고, 그 행위 한 것에 대해서 내가 어느 정도는 풀려버린다는 거라. 그런데 나쁜 마음을 먹은 거는 행위가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응어리로써 남아있게 된다는 거라. 그래서 그런 것은 더 큰 과보를 받는다 하고 얘기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만약에 나쁜 마음 먹었으면 빨리 버려버리라는 거라. 


어쨌든 이 소레이야는 그 결과로 인해서 몸을 두 번이나 바꾸게 되고 해서 출가를 하게 됐지만은, 자식에 대한 애정은 그래도 어머니 때가 더 강했다고 그럽니다.

그러다가 이런 마음을 갖다가 소레이야가 관찰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이렇게 의도를 내는 것이 이런 나쁜 결과를 가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천천히 관찰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관찰을 해보니까, 의도가 있고 나서 행위가 있게 되고, 느낌들도 있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고, 이런 것들을 관찰해가지고 결국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깨달음에 이르러도 다른 스님들이 깨달음에 이르렀는지 잘 모릅니다. 행위하는 것은 별반 차이 없이 똑같으니까. 밥 먹고 자고 하는 것, 행위 하는 것, 그리고 수행하는 것 다 똑같으니까.


어느 때 스님이 한번 물어봅니다. 어떨 때가 더 내가 자식이 예뻤느냐?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어머니 때가 더 애정이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이 소레이야 스님이 "나는 인제 어느 때도 다 애정이 가지를 않는다. 그리고 어느 때라도 다 애정이 간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한테 가서 그 사실을 알리니까 부처님이 그럽니다. 인제 소레이야는 완전하게 깨달음을 이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애정, 가족에 대한 자비의 마음이 모든이들에게 다 가지게 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그러니까 특별히 자기 자식만 이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는 거라. 모든 이들이 다 사랑스럽게 된다는 거라.

여러분들이 마음을 잘 닦으면 그와 같이 모든 이들을 다 사랑하는 마음들, 모든 이들을 다 자비롭게 대하는 마음들을 가지게 된다 하는 겁니다.


소래이야! 소래를 “소래이야” 하고 부르니까, 소레이야 하고 비슷하다 이.

어떤 경우든지 마음을 잘 다스리도록 그렇게 해야 된다 이!

마음을 내가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아니면 어떤 마음을 내기 전에 내가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하는 것을 잘 관찰해야 돼. 그래서 이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아니면 나쁜 것이다 할 거 같으면 그거는 하지 말아야 되는 거라. 행위도 하지 말아야 되고 그런 생각조차도, 그런 마음조차도 내지를 말아야 하는 거라. 그래야 사람이 바르게 커나가고 다른 사람한테 '아! 참 잘한다.'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자! 수행을 하다 보면 보통 마음이 좀 고요해지고 이렇게 돼나가면 잠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죠?

잠도 가만히 한번 보십시오. 잠이 육체적인 현상입니까? 예? 정신적인 현상입니까? 내 몸이 자는 건데 왜? 같이 하더라도 잠은 정신적인 현상입니다!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내가 오만 생각 굴리고 있으면 잠이 안 옵니다. 번뇌가 많으면 잠 안 오죠? 거 왜 그렇습니까? 잠은 정신적인 현상입니다. 육체적인 현상이 절대 아닙니다. 몸은 피곤하다고 해도 그거는 잠이라고 얘기 안 합니다. 피곤하다고 얘기하는 거지. 피곤한 것도 느끼는 것은 뭐로 느낍니까? 마음으로 느낀다는 거라. 그래서 정신적인 현상이라는 거라. 잠이라는 것은!


잠을 가만히 보면 잠은 항상 침체됩니다. 어둡고 무겁게 깔리고 이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잠에 대해서 관찰을 하다 보면 한참 잠이 올 때는 어떻습니까? 정신이 흐리멍텅 합니다. 정신이 흐리멍텅 비몽사몽 꼭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는 것처럼.

수행에서는 이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도움이 안 되겠죠! 그래서 잠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적인 상태다 하는 것을 생각을 항상 해야 됩니다.

잠이 올 것 같으면 그렇게 흐리멍텅한 걸 가지고는 수행을 못하죠? 

마음은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되고, 마음은 항상 가볍고 자유롭게 돼있는 상태에서 수행을 해야 되는 건데 흐리멍텅 할 거 같으면 못하게 되는 거라. 공부를 할 때도 흐리멍텅 할 거 같으면 어떻게 해요? 잠 쫓아내기 위해서 막 얼굴 씻던지 이렇게 한단 말이라. 수행에서도 똑 마찬가집니다. 대상을 바꾸어주라는 거라.


그래서 잠은 마음으로 먹어야 되는 거라. ‘아, 내가 피곤하기 때문에’ 피곤해서 잠이 온다 생각할 거 같으면 이미 져버리는 거라. 대상에 져버리면 안 됩니다. 대상은 관찰해야 될 것들이지 그 대상에게 끄달려 들어가 버리면 안 된다는 거라. 밖에 있는 대상한테 끄달려 들어갈 거 같으면 정신없이 끄달려 들어가버리는 거와 마찬가지라는 거라. 잠이라는 것도 대상이라. 그 대상에 끄달려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되는 거라. 

그래서 마음을 먹기를 '이것은 정신적인 상태다'하고 여기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1단계 마음에 대해서 수행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마음을 밖으로 향하는 것을 자꾸 안으로 끄집어들이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잠도 마찬가집니다. 잠에 끄달려들어가 버릴 것 같으면 그건 마음이 밖으로 향하고 있는 거라. 잠이라고 하는 대상으로 향해버리면 안 된다는 거라. 


그럴 거 같으면 잠을 관찰하도록 해야 되는 것은 뭐로 관찰해야 됩니까? 

마음으로 관찰해야 됩니다. 


그럼 마음으로 관찰하면 어떻게 됩니까? 

잠이 올 때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인가 하는 것을 한번 관찰을 해보라는 거라. 

그럼 어떻게 돼? 내가 좀 흐리멍텅 하든지 아니면 무겁다든지 이런 마음을 느낀다는 거라. 

그런 마음을 느끼고 나서는 어떻게 돼? 

아! 이 잠이 원인이 뭔가 하는 생각을 살펴보게 되는 거라. 

내가 왜 이리 잠이 오는가? 육체적으로 피곤해서 잠이 오는 건지, 아니면 수행하기 싫어서 게으른 마음이 일어난 건지. 

게으른 마음이 일어날 거 같으면 게으른 마음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갖다가 내가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해야 되는 게, 

지금 현재 일어난 마음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관찰을 해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게으른 마음이 일어났다. 게으른 마음을 알아차릴 거 같으면 어떻게 돼요? 게으른 마음으로 인해서 잠이라는 게 쏟아지니까 당연히 차단이 돼버리고 잠은 물러가버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육체적으로 피곤하다 그럴 것 같으면 그 피곤함을 덜 수 있는 걸 갖다가 찾아야 되는 거라. 내가 많이 움직여서 그렇다 그럴 거 같으면 고요하게 앉아있든지, 안 그러면 좀 옆으로 살큼 눕든지, 이렇게 해서 몸을 좀 편안하게 해줘가지고 피곤한 걸 좀 덜어주라는 것이지 잠에 빠지라는 것은 아니라는 거라. 피곤한 걸 덜어주도록 하라는 거라. 

정 안될 거 같으면 자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거 같으면, 몸이 피곤하면 피곤함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유도를 해가지고 그걸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야 됩니다. 

그래서 현재 일어난 마음들을 갖다가 관찰을 하게 되고, 


그러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잠이 확연하게 달아났다 하는 걸 알게 됩니다. 그거는 뭡니까? 내가 이렇게 관찰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명확하게 이것을 알아차림으로 인해서 잠이 달아났다는 사실을 확신을 하게 되는 거라. 그거는 내 마음을, 일어난 마음들을 관찰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럴 때 다시 가슴으로, 

한번 가슴에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한번 관찰해보면 명쾌하고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전에 잠이 왔을 때 가슴을 관찰했을 때는 뭔가 무겁고 어둡고 이런 게 있었는데, 인제는 그렇지 않고 반대적인 것으로.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대상을 관찰할 때는 항상 이와 같이 해야 된다는 겁니다. 


침착성이 없다. 마음이 침착하지 않다.

아! 그냥 산란해가지고 마 어찌해야 될 바를 모르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침착성이 없는 것은 마음이 고요하지 않기 때문에 침착하지 않는 겁니다. 그럼 고요하게 만들어야 되는 길이 일차적인 선결요건입니다.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돼요? 침착성이 없다는 것은 뭔가 자꾸 마음이 밖으로 튀어나간다는 거거든. 그럴 거 같으면 침착성이 없을 때 그냥 막 이리저리 움직이고 마음도 움직이고 할 때 그때, 그때의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 하는 걸 갖다가 관찰을 해보라는 거라.

그럴 거 같으면 아! 이게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도 하고, 아니면 뭐 맥박도 빨라지기고 하고, 그로 인해가지고 그 대상에 더욱더 빨려들어간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려야 되는 거라. 그래서 '아! 내가 왜 이렇게 침착하지 않지?' 하는 사실을 이끌어내주도록 만들어주는 거라. 뭔가 불안한 것이 있다든지, 아니면 해야 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방황하든지 그리 할 거란 말이라. 그럴 때 아! 이게 뭐 때문에 그렇다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거라. 


그게 뭐냐면 일차적으로 밖으로 향하는 대상을 안으로 끄집어들이고, 

두 번째는 그때 일어나는 마음을 이게 원인이 뭔가 하는 걸 마음으로써 알아차리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침착하지 못한 원인이 내가 늦어서 그런다든지, 아니면 여러 가지 다른 사정으로 인해서든지 그 원인을 밝힐 거 같으면 그 원인을 제거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원인을 마음으로써 알아차리고 나서, 원인을 제거하고 나서, 그때 일어나는 느낌들을 다시 관찰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 번째가 됩니다.


어떤 경우든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이와 같은 패턴들을 지니게끔 되어있습니다. 이해하겠습니까?


자! 그런데 보통 세 가지 독이다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로바(lobha), 도사(dosa), 모하(moha) 그러죠! 

탐, 진, 치! 세 가지가 거의 대부분의 원인입니다.


탐심(貪心), 탐내는 것, 욕심부리는 것, 욕심부리는 거 그 마음을 가만히 한번 여러분들이 들여다보십시오. 욕심부리는 건 어떻습니까? 내 마음이 필요해서 욕심을 부리는 건지, 아니면 욕심부리는 것이라는 마음 자체에 뭐가 필요성이 있어서 욕심을 부리는 건지, 그거 한번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필요한 건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건지? 그 구분을 못합니다. 내가 진짜 원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요건 꼭 필요성이 있는 건지 그거 구분할 수 없다는 거라.

탐심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원하는 것과 필요성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절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진심(瞋心), 화내는 것, 화내는 건 어떻습니까?

지는 화낼 때는 바르다고 그러지. '내가 화낼 만하니까 화냈지.' 대부분 그렇게 얘기합니다. 화내는 건 나쁘다고 다들 얘기하거든. 그런데 화낼 때 어떻게 됩니까? 화내는 마음은 이게 선인지 악인지 구분 못 합니다. 절대 구분 못 합니다.


치심(癡心), 어리석은 것은 또 어떻습니까? 

흐리멍텅하면 내가 왜 이렇게 흐리멍텅한지, 이 흐리멍텅한 게 뭐 때문에 어디서 왔는지, 흐리멍텅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전혀 모릅니다. 뭘 해야 될지를 모르고, 원인과 결과를 구분할 줄 모른다는 거라. 


그런데 대부분 어떻습니까? 일반적으로 얘기할 때 선과 악은 여러분들이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되는 거고, 뭐가 또 필요한지 뭐가 또 필요하지 않는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되는 거고, 어떤 게 이익되고 이익되지 않는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 이 원인·결과를 갖다가 분명하게 알아야 지혜롭게 대처를 해나가게 된다는 거라. 


그럼 탐진치는 뭐라? 우리에겐 필요 없는 부분들이라는 거라. 

우리에게는 전혀 살아가는데 필요하지 않는 부분이다 하는 마음을 갖다가 먼저 딱 굳건하게 해야 된다 하는 거라.


그래서 항상 기억을 해야 됩니다. 탐 진 치를 몰아내기 위해서, 탐진치가 일어난 마음을 갖다가 없애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돼야 되는 것은 침착하라! 마음이 침착하지 않으면 이것을 구분 해내지를 못합니다.

마음이 침착하지 않으면 어떤 것이 바른 것이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 내가 해야 될 게 뭔지, 이게 뭐 때문에 일어난 건지, 아니면 이게 꼭 필요한 건지 아닌지 하는 걸 구분해내지 못한다는 거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이미 대상에 빨려들어가서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래서 탐진치가 일어날 경우에는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은 침착한 마음을 유지할려고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가끔씩 많이 하죠? 그렇게 일어나면 어떻게 합니까? 

예를 들어서 화가 일어나면? "침을 꼴딱 삼켜라. 삼초만 참아라. 아니면 그 대상으로부터 벗어나버려라. 다른 걸 해버려라." 이렇게 하죠! 

왜 그렇게 그런 방법들을 씁니까? 거기에 있는 마음을 왜? 선악도 구분을 못하고, 원인·결과도 구분을 못하고,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는지, 이익됨이 있는지 없는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마음속에 있을 거 같으면 어떻게 돼? 그건 안 되는 거라.

그럼 침착한 마음들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런 방법들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라. 그렇게 침착한 마음을 가져야 만이 어떤 경우든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이든, 아니면 몸이든, 느낌이든, 아니면 법이든 이런 수행들을 해나갈 수가 있다는 거라. 

꼭 수행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바른 방법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 하는 거라.


반드시 기억을 해야 되는 것은, 탐·진·치는 이런 여러 가지들을 구분하지 못한다 하는 거라.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내가 화를 내는 것, 아니면 내가 뭐 집착하는 것,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 이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하는 거라. 그것이 숨을 곳은 없다 하는 거라. 그 점을 항상 머리에다 기억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침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가끔씩 그런 경우가 있을 겁니다. 텔레비전을 비유를 들으면 안 되고, 하도 보살님들 텔레비전을 보면 그 속에 폭 빨려들어가 버려서 그건 적절한 비유가 아니고, 어디 유랑극단이 와서 쇼를 하고 있다. 그러면 관객의 입장에서 그 쇼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대상을 바라볼 때는 그와 같이 해야 된다는 거라. 그것이 화내는 것이든 탐심이든 어떤 것이든 대상이 일어나는 것은 꼭 관객이 그 쇼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래야 만이 그걸 객관적으로 보아지는 거라. 저놈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뭔가 분명하게 구분을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지 빨려들어가 버릴 것 같으면 안 된다는 거라. 

그래서 관찰자의 역할로서 머물러라. 관찰자의 역할로서!


관찰자의 역할로서 딱 마음을 먹으면 그렇게 할 거 같으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분명하게 내가 보아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설혹 불쾌한 느낌이든 아니면 고통스런 느낌이든, 아니면 고통스런 마음이든, 아니면 생각이 많이 일어나든, 그것도 다 대상입니다. 대상이 일어날 때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봐라. 그거하고 나하고는 별개라고 생각을 하라는 거라. 별개로써 관찰자로써 '이게 왜 일어나' 하고 그냥 바라보라는 거라.


그렇게 해야 만이 그것이 처음 마음을 들여다보는 순간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개입시키지 마라. 처음에 분명히 얘기했죠? 억압하지 말고, 그다음에 의도적으로 뭘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다음에 마음을 내 마음대로 정정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고, 마음을 제어하고 이런 것들을 전혀 하지 마라. 있는 마음을 그대로 보라는 거라. 


그러기 위해서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돼? 

가장 용이한 방법이 가슴입니다. 가슴에서 일어나는 느낌들! 

행위가 시작되기 전에도 관찰해야 되는 거고, 행위가 일어났을 때도 관찰해야 되고, 행위가 끝나고 나서도 관찰해야 되는 것이 이 부분이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부분만 잘 할 거 같으면 여러분들은 정말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다는 얘깁니다.


오늘은 처음 온 사람도 있고, 우리 꼬맹이도 있어갖고 일부러 진도를 나가지 않고 좀 쉽게 했습니다이. 그렇게 수행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자! 경행을 하고 좌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https://cafe.naver.com/buddhayana1/194 

0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010-4242-5140/ 010-3181-2316 

E-MAIL: stonhi27@hanmail.net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ALL RIGHTS RESERVED.


CONTACT

INFORMATION


상호명 : (사)한국테라와다불교


법인등록번호 : 135-321-0000777

이사장: 이용재

주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반계1길 21-33 붓다의 길따라 선원




TEL:   010-4242-5140/ 010-3181-2316

E-MAIL: stonhi27@hanmail.net


Copyright©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사무국

ALL RIGHTS RESERVED.




© BYULZZI Corp.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byulz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