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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랑 불교

관리자
2021-04-22
조회수 421

작성일 : 10-09-13 09:56 


종교 두 개를 가지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각각의 종교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 하지 않고 자기대로 해석하여 공통점을 부여하면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같은 산을 다른 방향에서 오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일 겁니다. 이런 방법에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몇 가지 종교의 교리 가운데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추려서 하나로 편집해 놓기도 하는데, 대개의 사이비 종교들이 그런 양태를 띠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종교들은 각각 다른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불교도들이 오르는 산과 기독교도들이 오르는 산이 다르다는 견해입니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지향점은 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행복이 어느 산의 정상에서 구해질 수 있느냐고 보느냐에 따라 올라야 할 산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불교도 행복을 지향합니다. 우리 삶이 괴로운[고(苦)] 줄 알아서 그 괴로움을 소멸[고멸(苦滅)]하고 행복해 지려는 노력이 불교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괴로움의 원인 또는 발생과정을 알아야 하는데, 부처님은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십이연기(十二緣起)라는 가르침을 제시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괴로움의 발생과정을 몇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저는 이 단계들에 따라 불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을 드러내 보고자 합니다.

 

[1] 업인과보 삼세윤회(業因果報 三世輪廻)와 삼종외도(三種外道)

 

  ; 부처님은 삶이 괴롭든지 행복하든지 그 원인은 업이라고 합니다. 업(業)은 의도적 행위인데, 이 행위는 반드시 결과인 보(報)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즉 업을 인(因)으로 보라는 과(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업인과보(業因果報)]. 그런데 이 업인과보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착한 업에는 즐거운 보가 따르고[선인락과(善因樂果)], 악한 업에는 괴로운 보가 따른다[악인고과(惡因苦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업과 보의 인과관계가 전생-금생-내생의 삼세(三世)에 걸쳐 적용되는 법칙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업인과보 삼세윤회(業因果報 三世輪廻)].

 

그래서 부처님은 '업인과보 삼세윤회'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불교적 삶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즐거운 보(報)든, 괴로운 보(報)든 우리 삶의 고락(苦樂)의 원인[인(因)]을 업에 두지 않는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단호하게 비판하고 부정하시는 가르침으로서 1)신의 뜻, 2)숙명, 3)우연[원인도 조건도 없음]의 세 가지로 대표됩니다. 이 세 가지를 불교에서는 삼종외도(三種外道)라고 하는 데, 그렇다면 불교와 기독교가 어떻게 다른 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2] 의도의 토대[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

 

업은 '의도적 행위'입니다. 표현하자면 업은 의도가 행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고와 락은 의도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이 어떤 대상에 주의(注意)하면 그 대상에 대한 '앎[식(識)]'이 생겨나고, 이차적으로 앎과 대상의 만남[촉(觸)]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남의 결과로 느낌[수(受)]과 생각[상(想)]과 의도[사(思)]가 함께 발생하는데[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 이때 생겨나는 의도가 바로 업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의도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탐진치[貪(욕심)-嗔(성냄)-癡(어리석음)]라는 마음작용에 오염된 의도를 갈애(渴愛)라고 하며, 갈애가 드러나는 업은 삶을 괴로움으로 이끕니다. 탐진치에 오염되지 않은 의도는 염오(厭惡)라고 하며, 염오는 삶을 고멸(苦滅) 즉 행복으로 이끕니다.

 

부처님은 의도가 갈애로 드러날 지, 염오로 드러날 지는 지혜[반야(槃若)]의 유무에 의한다고 합니다. 이때 지혜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여실지견(如實知見)]'을 말하는데, 무상(無常;조건적인 생멸)-고(苦;무상하기에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함)-무아(無我;그러기에 '나'라고 할 실체적인 존재가 없음)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지혜에 토대하여 생겨나는 의도는 염오로서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이런 지혜에 토대하지 못하고 생겨나는 의도는 갈애로서 괴로움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변치 않는 영원한 것[상(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락(樂)]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나'라고 할 것[아(我)]도 없으며, 청정하다고 할 것[정(淨)]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상-고-무아라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모든 존재에 공통된다는 사실」이 불교와 불교아닌 것을 구분짓는 세 가지 특성[삼특상(三特相)]인 것입니다.

 

그러나 상락아정이 부정되는 즉 무상-고-무아의 견해 아래 성립하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견해의 차이를 가지고서도 기독교와 불교가 같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저는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인식이 존재의 근원임[일체는 십이처(一切 十二處)]

 

모든 것 즉 일체(一切)는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육외입처(六外入處)의 만남에서 비롯된다고 부처님은 말합니다. 눈-귀-코-혀-몸-마음의 여섯 감각기능이 각각 그 대상을 만나고, 거기에 주의할 때 식(識)이 생겨나고 촉구생수상사와 업인과보의 삶이 발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인도에는 창조주 하나님인 '범[梵-브라흐만]'과 그의 분신인 '아[我-아트만]'가 모든 것의 본질 즉 일체(一切)라는 사상이 있었고, 다르게는 물질의 근본요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 등이 모든 것의 본질 즉 일체(一切)라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들과 다르게 본질없음[무아(無我)]를 주장합니다. 여기서 설명드리지는 않겠지만 감각기능과 대상의 만남 즉 인식이 존재의 근원이 된다는 의미로 입처(入處)라는 라는 표현을 씁니다. 안밖으로 각각 여섯 가지가 있으니 십이처라고도 하는 것인데, 존재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인식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인식[개념화]하기에 따라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지 인식 이전에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도 불교와 기독교가 같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드러날 것입니다. 마치 브라만교[현재의 힌두교]와 불교를 같다고 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과학으로도 불리는 유물론과 불교를 같다고 해서 안되는 것과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4] 삼세에 걸친 삶[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

 

괴로움의 발생과정을 밝힌 십이연기는 지금여기에서의 괴로움의 발생과정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괴로움의 연속과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과거-현재-미래의 삶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적 설명은 전생-금생-내생의 삼세에 걸친 윤회의 과정을 또한 설명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현실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몸의 죽음을 기준으로 하여 전생과 금생과 내생으로 구분하지만, '삶의 과정을 통해 변화하는 마음'에 의해 '동일한 나'의 삶으로 연결짓고 있는 것이지요.

 

몸의 죽음으로 소멸하고 마는 나를 말하는 가르침도 있고, 물질적[유전적]으로 연결되어 가는 삶을 말하는 가르침있습니다. 현재의 삶과 다음 세상의 삶을 말하는 가르침도 있고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과 다음 세상의 삶을 말하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그 중에 불교는 삼세(三世)의 삶을 말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도 불교와 기독교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관점은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십이연기라는 불교의 핵심교리에 의해서 불교와 기독교를 같이 볼 것인가, 달리 볼 것인가에 대한 저의 견해를 적어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라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마는 삶에 대한 진지함을 포함하는 질문인 것으로 보고 진지한 답변을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다 이해하려 애쓰지 마시고 이해가능한 만큼의 윤곽으로 활용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삶에 진지함을 놓지 마시기 당부드리면서, '행복의 종교'인 불교와 더불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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